00116 5-6. 카넨, 공인 받다. =========================
5-6. 카넨, 공인 받다.
에메랄드 산맥 깊숙한 곳에 위치한 둠러스의 레어.
약초 가득한 레어 입구 사이에 푸른 머리칼을 지닌 미인이 나타났다.
베나티아는 약초 사이로 난 길을 걸으며 둠러스를 불러댔다.
“로드! 나 왔어!”
베나티아의 부름에 응한 것은 둠러스가 아니라 한 명의 서큐버스퀸이었다.
베르나트가 레어 깊숙한 곳에 위치한 방에서 하품을 하며 나왔다.
“흐아암~, 아침부터 뭔 난리래. 어라? 베나티아잖아. 무슨 일이야?”
“베르나트? 아, 너 로드의 레어에서 지낸다고 했었지. 그 영감님이랑 용케 같이 사네.”
“같이 사는 거 아냐. 지금 둠러스 유희 나갔어.”
“뭐? 타이밍 한 번 최악이구만. 로드한테 물을 게 있어서 찾아왔는데.”
“뭘 물어보려고 했는데? 나한테라도 말해봐.”
꿩 대신 닭이라고 베르나트도 제법 박식한 편이니 물어도 상관없을 것 같았다.
베나티아는 레아 안에 자라난 나무에 등을 기대며 지금 안고 있는 고민을 털어놓았다.
“얼마 전부터 마나호흡을 할 때마다 조금씩 덜 차는 느낌이 들더라고. 무슨 병이 아닐까 싶어서 상담하러 온 거야.”
베르나트가 듣자마자 떠오른 게 있는지 슬며시 운을 띄웠다.
“너 혹시 로엘이라는 인간 알아?”
“당연히 알지. 네가 말해줬잖아.”
“걔 혹시 야크트 마을에 있는 여자랑 관계 맺었어?”
“야크트 마을이 어딘데?”
“모르는가 보네. 그럼 너랑은 관계 맺었어?”
“응. 지금 나 빌로스 왕궁에서 지내는 중이야.”
혹시나가 역시나로 변하는 순간이었다.
베르나트는 베나티아가 겪고 있는 현상에 대해 설명해주었다.
서큐버스의 가호를 받은 남자가 서큐버스 여성과 관계를 맺을 경우 지속흡수능력이 각성하게 된다는 것을 말해주었다.
설명을 들은 베나티아가 혼자 생각에 잠기더니 뒤늦게 반응하였다.
“뭐야! 그럼 여태까지 약간 허전했던 게 전부 로엘이 내 마나 가져가서 그런 거였어?”
“그런 셈이지.”
“이 녀석 안 되겠네. 내 마나를 가져가면서 말 한 마디 안 했다 이거지?”
“내가 말 안 해줘서 본인도 모를......”
“당장 돌아가서 여태까지 받아간 마나값, 앞으로 받아간 마나값 전부 톡톡하게 짜내야겠어. 기다려라 요놈!”
베르나트가 로엘은 모르고 있을 거라고 말하려 했으나 베나티아는 듣지도 않고 후다닥 레아 바깥으로 나가버렸다.
홀로 남은 베르나트는 가만히 서있다가 대뜸 하품을 하며 중얼거렸다.
“흐아암~, 나도 모르겠다. 본인들이 알아서 잘 해결하겠지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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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편 테헤란에선 막 마나대회가 끝난 참이었다.
결국 우승은 카넨이 차지했고, 그녀 자신의 명예와 킬더 왕국의 명예를 드높이는데 성공했다.
카넨의 입장 상 기사작위와 영지를 받을 순 없는 노릇이기에 모든 걸 현금화하여 막대한 양의 금은보화를 하사하는 걸로 마무리 지었다.
마나대회가 끝난 직후에 레이아가 하니온 왕국으로 떠났다.
결혼 전에 울크를 비롯한 하니온 귀족들을 만나고 올 예정이었다.
아마 한두 달 정도는 머물다 오지 않을까 싶었다.
레이아가 떠나자마자 의외의 손님이 빌로스 왕궁을 찾아왔다.
손님이란 다름아닌 엘로나였다.
“로엘!”
엘로나는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로엘의 품에 안겼다.
그녀는 여전히 고운 피부와 주름 한 점 없는 아름다움을 유지하고 있었으며 은은한 은방울꽃 향이 몸에 배어있었다.
사전연락도 없이 찾아온 것이기에 로엘은 얼떨떨한 상태에서 그녀를 안아주게 되었다.
“올 거면 미리 얘기하지. 갑자기 손님이라길래 누가 왔나 했네.”
“보고 싶어서 급하게 왔어요. 수도이전준비가 끝났거든요.”
“그래? 미안. 조만간 나도 합류해서 도우려 했는데 전부 맡긴 꼴이 되어버렸네.”
“후후, 그만큼 나한테 잘해주면 되죠.”
“네, 알아서 모시겠습니다, 여왕님.”
농담을 주고받으며 미소를 짓는 로엘과 엘로나였다.
대화를 주고받는 내내 두 사람 사이에선 차분함이 맴돌았다.
로엘은 이참에 엘로나에게 루엔을 소개시켜주기 위해 루엔의 공방으로 데려갔다.
엘로나로선 루엔의 이야기만 들었을 뿐 실제로 본 적은 없기에 상당히 긴장하며 로엘을 따라갔다.
그리하여 루엔과 엘로나가 마주쳤을 때.
루엔과 엘로나는 서로를 빤히 쳐다보았다.
한 10초쯤 마주보고 있었을까.
먼저 말을 꺼낸 건 루엔이었다.
“오~ 엄청난 미인. 깜짝 놀랐어.”
엘로나는 은색 단발머리를 찰랑거리며 무표정으로 자신을 올려다보는 루엔을 보다가 로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로엘.”
“왜?”
“이 귀여운 생물은 뭐죠?”
“오면서 말했잖아. 루엔이야.”
엘로나가 한 번 더 루엔을 쳐다보다가 다시 로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만져 봐도 돼요?”
“그건 나 말고 루엔한테 물어봐야지.”
“루엔... 양?”
“루엔이면 돼.”
“루엔, 안녕?”
엘로나의 인사에 루엔이 손을 번쩍 들며 인사를 받아주었다.
“안녕.”
“난 엘로나라고 해. 내 얘기 들은 적 있어?”
“엄청난 미인이라 했어. 베나티아보다 미인일지도.”
칭찬은 여왕도 춤추게 한다고 엘로나의 입가에서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
엘로나는 조심스럽게 루엔의 머리에 손을 올려 쓰다듬었다.
로엘의 쓰다듬에 비해선 별로인지 평소의 갸릉거리는 소리를 내진 않았다.
허나 엘로나에겐 루엔이 손길을 거부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충분했다.
엘로나는 루엔의 머리를 쓰다듬으며 로엘 쪽으로 고개를 홱 돌렸다.
“킬더 왕국으로 가져가도 돼요?”
“누가 들으면 곰인형인 줄 알겠어. 올해 가을에 같이 살게 될 거니까 그때까지 참아.”
“아, 그랬었죠. 우웅, 너무 귀엽다. 이런 애한테 질투 느꼈었다니 저도 아직 한참 멀었네요.”
엘로나가 루엔의 머리를 쓰다듬는 것도 모자라 꼬옥 안기까지 하였다.
루엔은 계속되는 스킨십이 귀찮은지 슬슬 바둥거리기 시작했다.
“귀찮아. 너무 많이 만지지마.”
“어머, 미안. 내가 너무 귀찮게 했지?”
“쓰다듬기는 하루 3분까지야.”
“아, 3분까지였구나. 앞으로는 주의할게.”
“로엘은 제외.”
“후후, 루엔도 로엘이 좋나보네.”
“응, 엄청 좋아.”
엘로나와 루엔이 대화를 나누고 있는 사이 왕궁 정문에서 또 다른 일행이 들어섰다.
이번에는 그란데 백작 일행이었다.
에메랄드 산맥에 갔다가 벌써 돌아온 것이었다.
엘로나와 루엔은 친목을 다지도록 놔두고 따로 그란데 백작을 맞이하러 갔다.
막 왕궁 안에 들어선 그란데 백작은 말에서 내리며 착지와 동시에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신 그란데. 전하께서 주신 임무를 수행하고 지금 막 복귀했습니다.”
“수고했어.”
뒤이어 마차에서 자루를 들쳐 업은 블랑코가 내렸고, 메델이 숄더가디건을 걸친 여인을 보조하여 함께 내렸다.
여인은 왕궁 분수대 앞에 모인 귀족들을 훑어보다가 그란데 백작이 무릎을 꿇고 있는 걸 보았다.
자신도 무릎을 꿇어야하나 말아야하나 고민하기에 로엘이 그녀의 고민을 덜어주었다.
“몸도 안 좋은데 무리할 거 없어. 편히 인사토록 해.”
“전하의 배려에 감사드립니다. 에밀라라 합니다. 모자란 자식을 거두어주신 것도 모자라 이리 도움을 주시니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할지......”
“고생은 세 사람이 했지 내가 한 건 없어. 조촐하지만 왕궁 뒷산에 집을 마련해두었으니 편히 지내도록 해.”
시끌벅적한 왕궁 안은 요양에 좋지 않을 테니 왕궁 뒷산에 있는 안 쓰는 산장을 치워두었다. 시중을 들 궁녀도 한 명 붙여 두었다.
언제든지 메델이 왕진을 갈 수 있는 위치인데다 이미 루엔과 지내고 있는 도디와도 언제든지 만날 수 있으니 적절한 조치라 할 수 있었다.
에밀라가 도망했다는 걸 들은 도디가 늑대의 모습으로 헐레벌떡 뛰어나와 에밀라와 재회인사를 나누었다.
로엘은 모자끼리 느긋하게 대화를 나눌 수 있게 궁녀로 하여금 준비한 산장으로 안내하라 일렀다.
도디가 에밀라를 태워 왕궁 뒷산으로 향한 후에야 로엘도 느긋하게 보고를 들을 수 있었다.
“에밀라의 표정이 밝더군. 치료법을 찾았나보지?”
“네, 메델의 말에 의하면 반 년 안에 완치될 수 있다고 합니다.”
“수도이전 전에 완치되겠군. 따로 보고할 일은 없고?”
그란데 백작은 오히려 이쪽이 본론이라는 듯 블랑코가 짊어진 자루를 가리켰다.
“전하, 제가 구해온 물건을 봐주셨으면 합니다. 별궁으로 가시지요.”
개방된 곳에서 할 만한 이야기는 아닌지 목소리가 다소 가라앉아 있었다.
로엘은 그란데 백작의 요청을 받아들여 별궁의 서재로 자리를 옮겼다.
로엘의 서재에서 그란데 백작이 블랑코에게 눈길을 보냈다.
“블랑코. 안에 있는 물건을 보여드리거라.”
“네.”
블랑코가 자루를 내려놓으며 자루입구를 묶어 놓은 끈을 끌렀다.
자루 안에서 냉기가 풀풀 피어오르는 생고기가 나왔다.
로엘은 자리를 옮겨가면서까지 보여줄 물건인가 싶어 의문을 표했다.
“봐줬으면 하는 게 고기였던 건 아니겠지?”
“일단 봐주셨으면 하는 건 두 가지입니다. 이 고기는 카우루의 고기로 생고기 채로 먹을 수 있는 몬스터 고기입니다. 어떻게 해서든 전하께도 맛보게 해드리고 싶어 이리 가져왔습니다.”
“그란데 백작이 그리 말할 정도면 그만한 가치가 있는 고기겠지. 한 번 줘봐.”
“이 자리에서 드시려고요?”
“그러려고 자리 옮긴 거 아녔어?”
“자리를 옮긴 건 다른 물건 때문입니다. 블랑코.”
“네.”
블랑코가 자루 깊숙이 손을 넣어 거울 하나를 꺼냈다.
보기에는 평범한 거울 같았는데 거울 주변으로 냉기가 피어오르고 있었다.
로엘은 블랑코에게서 거울을 건네받았다.
직접 만져보니 더더욱 범상치 않은 물건임을 알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