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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15화 (115/219)

00115 5-5. 산맥에 들어간 자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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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코가 나간 후에 노인이 계산대 뒤에 있는 문을 향해 말했다.

“이걸로 된 것입니까?”

계산대 뒤의 문에서 망사모자를 쓴 여인이 걸어 나왔다.

“네, 아주 잘하셨어요.”

바다와 떨어진 곳에 있는 이런 작은 마을에 리바이어던의 생간이 들어올 리 없었다.

설사 들어온다 하더라도 허름한 마법물품 가게에게 리바이어던의 생간을 구입할 만한 여력이 있겠는가.

여기까지 리바이어던의 생간을 들여온 이가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여인은 노인에게서 어음 뭉치를 전해 받은 후 그 중 100골드짜리 어음 하나를 노인에게 내밀었다.

“이건 수고비예요. 이 일은 아무에게도 말하지 마세요.”

“물론입니다. 그런데 어째서 이런 일을 하시는 겁니까?”

망자모자 아래로 드러난 붉은 입술이 수줍은 미소를 머금었다.

“별 거 아닌 뒷바라지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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블랑코가 물건을 구해왔다.

게다가 뱀파이어 마을에서도 협상을 할 생각이 있다고 전해왔다.

그란데 백작은 망설일 것 없이 하루 안에 모든 처리하고자 했다.

그란데 백작, 메델, 블랑코는 협상할 물건을 가지고 듀란델 산에 올랐다.

지하공동묘지 앞에 도착하자 뱀파이어 몇 명이 마중 나와 있었다.

이미 그란데 백작과는 구면이기에 어려움 없이 바로 무덤 안에 들어갈 것을 권해왔다.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안에 들어가시죠.”

그란데 백작 일행은 뱀파이어들을 따라 지하공동묘지 안으로 들어갔다.

지하공동묘지 안은 음습한데다 질척하고 퀴퀴한 냄새가 가득했다.

그나마 지하 안을 밝히고 있는 건 벽에 드문드문 걸려 있는 양초뿐이었고, 바닥은 뭔지 모를 끈적한 진흙이 파다했으며, 수백 년도 더 된 듯한 유골이 잡동사니마냥 이리저리 굴러다니고 있었다.

깔끔하게 생활하고 있는 웨어울프와는 정반대였다.

십자 복도가 연이어 나타나 미로를 걷고 있는 느낌을 주는 가운데 뱀파이어들의 걸음이 멎었다.

뱀파이어들은 벽에 달려 있는 문을 열며 말했다.

“들어가시죠.”

문 안에는 상당히 넓은 공간이 있었다.

크기는 빌로스 왕궁의 연회장쯤 될까.

지하공동묘지의 방에 귀족의 관을 넣기 전에 제사를 지내던 곳인 것 같았다.

넓은 공간임에도 불구하고 조명은 고작해야 양초 몇 개뿐이었다.

양초의 은은한 불빛 사이로 뱀파이어들의 실루엣이 어른거리는 게 보였다.

다소 으스스한 분위기였기에 블랑코과 메델이 긴장하며 어떤 사태든 대응할 수 있게 대비하였다.

오직 그란데 백작만이 태연하게 뱀파이어 사이로 들어가며 협상을 시작했다.

“자세한 사정은 낮에 했으니 바로 본론에 들어가지. 우리가 가져온 것은 리바이어던의 생간일세. 이것과 그쪽의 피를 교환하고 싶네.”

“확실히 진귀한 물건이긴 하군요. 진짜라는 보장은 있습니까?”

“킬더 왕국 마법물품 감정사의 보증서가 있네.”

한 뱀파이어가 그란데 백작이 내민 보증서를 낚아채듯 받아들었다.

보증서는 진품이었다.

거기에 리바이어던의 생간을 섭취할 경우에 얻게 될 효과까지 적혀 있었다.

[리바이어던의 생간 : 진통제 효과, 체력증진 효과가 있어 먹을 시 일시적으로 고통을 느끼지 않게 되고 지치지 않게 된다. 다만 효과가 떨어지면 굉장히 지치게 되니 사용에 주의할 것.]

진품인데다 단기전투에 최적인 효과까지 지니고 있었다.

뱀파이어들은 보증서를 읽곤 서로 눈빛을 교환했다.

리바이어던의 생간을 섭취한 후에 그란데 백작을 습격하면 훨씬 더 확실하게 그를 죽일 수 있다.

뱀파이어들은 보증서가 진짜라는 걸 알면서도 일부러 시치미를 떼며 섭취할 핑계거리를 만들었다.

“이 보증서가 진짜인지 아닌지 잘 모르겠군요.”

“잘 보게. 킬더 왕국 관청의 인장이 찍혀 있지 않은가.”

“인간 나라의 인장에 대해선 잘 모릅니다. 직접 먹어봐야 알겠군요.”

표면적으로는 뱀파이어들도 인간과 교류가 없는 걸로 알려져 있기에 그란데 백작도 시식을 인정했다.

그란데 백작은 검을 뽑아 리바이어던의 생간을 크게 자르며 묵직한 덩어리 하나를 넘겨주었다.

“진짜인지 확인하려면 어쩔 수 없군, 먹어보게.”

뱀파이어들이 간 덩어리를 받아 한 입씩 베어 먹기 시작했다.

돌려가며 한 입씩 먹는데 먹은 자마다 표정이 오묘해졌다.

상상했던 것보다 맛이 좋은 모양이었다.

그란데 백작과 블랑코가 카우루의 고기를 먹었을 때의 표정과 비슷했다.

아무래도 리바이어던의 생간도 카우루의 고기와 비슷한 타입의 몬스터 고기인 것 같았다.

그런데 시식하는 과정이 조금 이상했다.

확인을 위해서라면 몇 명만 먹으면 될 것인데 뱀파이어 전원이 간 덩어리를 돌려 먹고 있었다.

수상함을 느낀 블랑코가 그란데 백작에게 슬쩍 귓속말을 하였다.

“백작님. 뭔가 이상합니다. 왜 전원이 먹는 걸까요?”

블랑코가 의문을 제시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란데 백작은 여유롭기만 했다.

“맛있는 것이니 다들 나눠 먹고 싶은 거겠지.”

“그 정도의 온정이 있는 자들이라면 진작 에밀라 씨에게 피를 줬을 거라 생각합니다만.”

“허어, 의심하지 말거라. 이들이 뭐 하러 우리를 해치려 하겠느냐. 우리를 습격하면 전하께서 가만히 있지 않을 것 정도는 저들도 알고 있지 않겠느냐.”

뱀파이어들이 자신들을 해칠 이유가 전혀 없었다.

게다가 혹시나 뱀파이어들이 엉뚱한 생각을 품었다 해도 충분히 뿌리칠 자신이 있었다.

그란데 백작은 자신감 충만한 상태로 뱀파이어들이 마음껏 시식하도록 놔뒀다.

시식을 마친 뱀파이어들은 평소 이상으로 몸에 힘이 들어감을 느꼈다.

정말로 리바이어던의 생간에 도핑효과가 있던 것이었다.

갈증으로 인한 능력상승과 도핑효과.

지금이라면 최소한의 피해로 그란데 백작을 처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뱀파이어들은 슬슬 본색을 드러내려 하였다.

‘아직이다. 아직은 살기를 눌러 둬라. 전원 일제히 공격하는 거다.’

‘놈이 아직 방심하고 있는 지금 시작해야 해.’

‘3, 2, 1. 지금이다!’

눈빛을 교환하던 뱀파이어들이 눌러뒀던 힘을 한꺼번에 끌어올리며 공격에 나서려고 했다.

그들이 살기를 내뿜으려던 찰나.

뱀파이어 전원이 나른한 감각에 잠기며 곯아떨어졌다.

풀썩! 풀썩!

하나둘 쓰러지는 뱀파이어들을 본 그란데 백작은 의문에 휩싸였다.

“어? 이보게! 무슨 일인가! 정신 차리게!”

쓰러진 뱀파이어 중 한 명에게 다가가 어깨를 흔들려는데 뱀파이어의 얼굴에서 코고는 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르렁~”

뱀파이어들 전원이 잠들고 만 것이다.

큰일이라도 난 줄 알고 걱정했던 그란데 백작은 뒷머리를 긁적이며 뱀파이어를 도로 뉘였다.

“뭐야 자는 거였나.”

“이상하네요. 리바이어던 생간을 먹으면 더 혈기가 끓어오른다 했는데.”

“뭐 뱀파이어 특유의 식곤증 같은 거겠지. 게다가 우리 온다고 미리 피를 빼놨었구만. 처음부터 거래할 생각이었으면서 튕기기는.”

뱀파이어에 대해 잘 아는 편이 아닌지라 원래 간을 먹으면 바로 자는 거겠거니 하고 크게 신경 쓰지 않는 그란데 백작이었다.

게다가 방 한구석에 뱀파이어의 피가 담긴 밀폐용기가 의심을 날려주었다.

생간을 먹으면 바로 잠들어 버리기에 미리 뽑아놓은 게 아닐까 싶었다.

그거 외에는 달리 생각할 것이 없었다.

그란데 백작은 남은 리바이어던의 생간을 뱀파이어 사이에 놔두고 밀폐용기를 챙겼다.

40리터 정도 되는 대용량 밀폐용기였기에 블랑코의 한 쪽 어깨론 감당이 안 될 것 같아 그란데 백작이 직접 들쳐 업었다.

“자, 돌아갑세. 얼른 약을 만들러 가세나.”

블랑코와 메델은 이게 맞나 싶으면서도 그란데 백작의 재촉에 떠밀려 지하공동묘지 바깥으로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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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란데 백작 일행이 떠난 자리에 망사모자를 쓴 여인이 나타났다.

여인을 따라 각종 국적의 무사들이 넓은 방안으로 들어왔다.

여인의 옆에 있던 무사 한 명이 뱀파이어들의 상태를 살피며 말했다.

“전부 깊이 잠들었습니다. 수면제가 제대로 먹혀들었습니다.”

뱀파이어들이 잠든 것은 식곤증도 리바이어던 생간의 부작용도 아니었다.

블랑코에게 사기 전에 미리 강력한 수면제에 재워뒀기 때문이었다.

망자모자의 여인, 코르네는 모자의 망사를 걷어내며 화장기 진한 얼굴을 드러냈다.

“전부 포박해서 킬더 왕국 지하도박장 창고에 가두세요.”

“옮긴 후에 심문할까요?”

“당연히 그래야죠. 심문해서 나머지 지부들을 알아내도록 하세요.”

“네, 알겠습니다.”

코르네의 정보망에도 걸리지 않던 조직이 마나대회로 인해 처음으로 꼬리를 드러냈다.

코르네는 로엘을 매수하려 했던 자가 뱀파이어임을 알고 얼마 전부터 뱀파이어 마을을 주시하고 있던 상태였다. 그 와중에 그란데 백작이 도착했고 그가 협상을 하려 한다는 걸 알게 되어 손을 쓴 것이었다.

이제 포박한 뱀파이어들을 족쳐 나머지 지부들을 알아내어 모조리 부술 생각이었다.

코르네 본인이 만든 지하세력을 이용해서 말이다.

코르네는 뱀파이어를 포박하여 옮기는 것 외에도 지하공동묘지 안에 있는 모든 것을 탐색해보았다.

그 결과 상당한 자료와 희귀물품이 나왔다.

코르네는 희귀물품 중 고룡의 거울이 있는 걸 확인하곤 물건더미에서 그것만 쏘옥 빼냈다.

“이건 넌지시 웨어울프 마을 근처에 놓아두도록 하세요. 근처에 카우루를 몰아넣으면 그 이가 사냥하다가 발견할 거예요. 보존마법 대신 쓸 수 있겠다고 생각해서 냉큼 집어가겠죠.”

그란데 백작이 보존마법을 겸하여 고룡의 거울을 가져가면 로엘이 검황의 책자를 해석할 수 있을 거다. 덤으로 그란데 백작에게도 책자의 내용을 알려줄지도 몰랐다.

코르네의 무사는 조심스레 의문을 표했다.

“모든 일을 꼭 이렇게 몰래 처리해야만 하는 겁니까? 슬슬 양지로 나가도 될 것 같습니다만.”

지금이라면 빌로스 왕국이 대륙의 7할을 차지했으니 빌로스 왕국 산하의 조직으로 활동해도 무리가 없었다.

허나 코르네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아직은 때가 아니에요. 조만간 로엘 전하께서 대륙통일을 이룩하실 거예요. 그때 우리 그 이가 날아오를 수만 있다면 음지에서 활동하는 것 정도는 얼마든지 감수할 수 있답니다.”

모든 것은 그녀의 그 이인 그란데 백작을 위한 것이었다.

말을 하는 동안 코르네의 얼굴에는 주름이 생기지 않을 정도의 작은 미소가 서려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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