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113화 (113/219)

00113 5-5. 산맥에 들어간 자들 =========================

크왈루는 나무접시에 고깃덩이를 나눠 담아 그 중 두 개를 각각 그란데 백작과 블랑코에게 권했다.

“오늘 아침에 잡은 카우루의 고기요. 대접할 게 이런 것밖에 없구려.”

“카우루면 몬스터 아니요?”

카우루는 두 발로 걸어 다니는 소 모습의 몬스터로 에메랄드 산맥 일대에서만 사는 몬스터였다.

소 모습을 하고 있다지만 육식, 채식을 모두하는 잡식성 몬스터이다.

두 발로 걸어 다닐 때는 순하지만 배가 고프면 네 발로 걷기 시작하여 보이는 생물체란 생물체는 모두 들이박는 사고뭉치 몬스터이기도 했다.

아무리 소의 모습을 닮은 몬스터라지만 몬스터 고기인 이상 거부감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크왈루는 진미라도 되는 양 계속 고기를 권하였다.

“우리 마을에서 대접할 수 있는 것 중 최고에 속하는 것이니 사양 마시오. 이대로 손님께 아무 것도 못해드리면 에밀라가 계속 신경 쓸 것이오.”

거부감을 느끼는 그란데 백작과 달리 블랑코는 크게 어려워하지 않고 카우루 고기를 손으로 집어 들었다.

오크평원 출신의 오크들은 종종 몬스터의 습성을 누르지 못하고 날뛰는 놀을 죽여 그 고기를 먹기도 한다.

당연히 놀의 고기는 노린내가 심하고 질겨서 먹을 만한 것은 못 되지만 배가 고플 땐 그거라도 먹어야만 했다.

그래서 카우루의 고기 정도는 속는 셈치고 먹고 볼 수 있는 것이었다.

그런데 막상 고기를 입에 넣자 사과향을 머금은 달콤한 육즙이 입안을 적셨다.

블랑코는 화들짝 놀라 왼쪽 어깨를 들썩였다.

“이거 정말 몬스터 고기 맞습니까? 최상급 쇠고기 이상의 맛입니다.”

블랑코의 반응을 본 그란데 백작이 정말인가 싶어 고기의 모퉁이 부분을 살짝 뜯어먹어 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정말로 최상급 고기 이상의 맛을 자랑하는 고기였다.

그란데 백작은 몬스터 고기가 이만큼의 맛을 지닌 것에 감탄하였다.

“이런 고기가 있었다니! 이게 정말 몬스터의 고기가 맞단 말이오?”

“카우루의 고기는 잡은 직후에 하루만 이런 맛을 낸다오. 시간이 갈수록 다른 몬스터 고기랑 비슷해져서 그날 전부 먹는 편이라오. 운이 좋아야 만날 수 있는 몬스터라서 좀처럼 먹기 힘든 고기인데 운이 좋았구려.”

구우면 의미가 없고 잡은 직후에 생고기로 먹어야만 최고의 육질을 맛볼 수 있다고 한다.

기대하지도 않던 최상의 대접을 받게 된 그란데 백작과 블랑코였다.

따로 자를 것도 없이 입에 넣기만 하면 솜사탕처럼 뜯겨 나오는 부드러운 고기였다.

체면도 잊고 손으로 고기를 잡아 와구와구 먹던 그란데 백작이 문득 동작을 멈추었다.

“맛있소. 너무나 맛있구려. 전하께도 이 맛을 맛보게 해드리고 싶건만. 아, 보관마법 같은 걸 걸면 테헤란까지 가져갈 수 있을지도.”

옆에서 블랑코가 입에 담은 고기를 삼키며 부정했다.

“이런 산골짜기에서 하루 만에 보관마법을 걸어줄 마법사를 어떻게 구합니까? 메델 의원님음 보관마법 쓸 줄 모르십니다. 무리죠 무리.”

그란데 백작은 블랑코가 쥐고 있던 고기를 덥석 잡아 빼앗으며 머리를 쥐어박았다.

“이놈아, 무리라고 하기 전에 시도는 해봐야할 것 아니더냐.”

“말로 하시면 되지 때리긴 왜 때립니까?”

“명색이 내 제자라면 그런 나약한 소리를 해선 안 되느니라.”

그란데 백작과 블랑코가 옥신각신하는 사이 침실 문이 열리면서 메델이 나왔다.

메델의 표정이 썩 좋지 않음을 확인한 그란데 백작과 블랑코는 진지함을 되찾으며 질문을 날렸다.

“어떻게 됐나?”

메델의 뒤를 따라 에밀라가 걸어 나왔다.

에밀라까지 한 자리에 모인 상태에서 메델이 진찰결과를 말하였다.

“진찰해보니 하프계열 출산으로 인해서 몸 안의 밸런스가 무너진 것이더군요. 솔직히 말하면 지금 아슬아슬한 상태입니다.”

집 안에서 활동할 정도이니 어느 정도는 괜찮지 않나 싶었는데 그게 아니었다.

하프계열 출산으로 인한 육체 밸런스 붕괴의 경우 사전징조 하나 없이 돌연사를 할 수도 있기 때문에 빠른 치료가 필요했다.

모두의 관심사는 치료법이 있느냐 없느냐는 것이었다.

“치료할 수 있는 건가?”

“아마 할 수 있을 겁니다. 예전에 하프엘프 여성을 치료한 적이 있으니 그때와 같은 치료약을 제조하면 되겠죠.”

치료할 수 있다는 말에 모두의 표정이 밝아졌다.

폼으로 대륙에서 손꼽히는 의원이라 불리는 게 아니었다.

하지만 아직 메델의 말은 끝나지 않았다.

“다른 약재는 가져온 약통 안에 있습니다만 단 한 가지. 따로 구해야할 것이 있습니다.”

“무엇인가?”

“뱀파이어의 피가 대량으로 필요합니다.”

///

듀란델 산에 위치한 뱀파이어의 마을.

마을이라 해봤자 버려진 지하공동묘지에 뱀파이어들이 살기 시작하면서 거점이 되었을 뿐이었다.

지하공동묘지는 먼 옛날 바실리스크가 살던 거대 동굴을 개조한 것이라 무척 넓으면서도 복잡한 미로처럼 이루어져 있었다.

지하공동묘지의 가장 안쪽에 위치한 방.

방 안은 어두웠고 방 중앙의 탁자 위에 촛대 하나가 올려져 있었다.

촛대 너머에선 어떤 사내가 손 안에서 호두를 굴리는 중이었다.

더하여 촛대 바로 옆에 냉기를 품고 있는 거울이 있었다.

사내는 어제 입수한 물건을 내려다보며 침음을 흘렸다.

“흐음, 이런 물건이 있었을 줄이야. 이걸 입수할 줄 알았다면 검황의 책자를 주지 않았을 텐데.”

입수한 물건의 정체는 고룡의 빙경이란 물건으로 그 어떤 언어든 고대어로 바뀌어 비춰주는 물건이었다.

고대에는 고대어가 대륙공통어나 마찬가지였는데 당시에 워낙에 많은 언어가 있어 각 언어를 번역하기 위해 당시의 드래곤 로드가 만든 물건이었다.

엘프의 숲에서 공작활동을 펼치고 있는 자가 보내온 물건인데 이게 있었다면 검황의 책자를 교섭물품으로 주지 않았을 거다.

사내는 고룡의 빙경을 집어 들어 빛이 닿지 않는 방구석으로 이동했다.

한치 앞이 보이지 않는 방 안이건만 밝은 곳을 걷는 양 자연스러운 움직임이었다.

사내가 막 금고를 열어 고룡의 빙경을 넣었을 때.

문이 열리면서 고우트가 들어왔다.

고우트는 만신창이가 된 모습으로 비틀거리며 사내의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죄, 죄송합니다. 로엘에게 당했습니다.”

고우트가 테헤란에서 있었던 일을 보고하였다.

마나대회가 사실은 로엘의 함정이었으며 마나대회의 유력후보를 매수하려 했는데 그 유력후보가 로엘이었던 것, 목적을 이루지 못하고 검황의 책자를 빼앗긴 것까지 모두 말하였다.

보고가 끝난 후.

의외로 사내는 화를 내지 않았다.

화를 낼 수 있을 리 없었다.

고우트가 함정일 가능성을 제기했는데도 작전을 강행한 게 사내였기에.

심지어 암살자 전원 탈락 이후 매수수단으로 쓰라며 검황의 책자를 준 게 사내 본인이었기에 말을 꺼내면 꺼낼수록 자기 실수만 되짚는 꼴이었다.

사내는 입김을 불어 양초를 끄곤 말을 꺼냈다.

“어쩔 수 없군. 일단 망자섬으로 간다.”

“설마 정말로 그 분께 로엘의 전언을 전할 셈이십니까?”

“무슨 헛소리를! 그 분께서 지금 조직의 필요성에 의문을 느끼고 계신다. 들러서 우리의 필요성을 피력해야 하는 상황이란 말이다.”

와드득!

어둠 속에서 호두 부서지는 소리가 울려퍼졌다.

사내가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려주는 소리였다.

조직은 어디까지나 망자섬의 하위기관으로 만들어진 세력이었다.

꼬리를 밟히지 않기 위해 본부 자체를 만들지 않았고, 길드나 마을의 형태로 지부를 형성하였다. 거기에 조직의 책임자인 사내가 1년마다 거처를 옮기면서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해왔다.

그토록 공을 들여 정체를 숨겨왔고, 수 년간 각종 계획을 세웠건만 로엘에 의해 모조리 무산되고 말았다.

원래대로라면 겐크 왕국이 전쟁을 일으켰거나, 해저섬과 대륙의 육해대전이 일어났거나, 로엘이나 로엘의 측근 중 한 명이라도 죽었거나 한 가지는 성립되었어야 했다.

헌데 지금 상황은 어떤가.

로엘은 이미 대륙의 7할을 손에 넣었고, 그것도 모자라 마탑과 해저섬까지 함께 하고 있다.

‘그 분’의 인내심이 극에 달했고, 뒷공작 없이 바로 대륙침공을 하는 쪽으로 마음이 기울고 있는 상태였다.

이미 망자섬엔 충분한 병력이 모여 있었다.

이대로 대륙침공이 시작되면 전쟁이 승리로 끝났을 때 조직의 일원들은 아무 것도 얻지 못한다.

적어도 대륙침공에 일조했다고 말할 수 있는 성과가 필요했다.

‘그 분’을 설득하여 성과를 만들어낼 시간을 얻어내야만 했다.

사내는 신경질적으로 의자를 박차고 일어났다.

“지금 당장 망자섬으로 간다. 따라와라.”

고우트는 마지못해 고개를 숙이며 사내를 따라 방에서 나갔다.

///

뱀파이어의 지하공동묘지 입구에 위치한 어느 고목의 높은 나뭇가지 위에 세 명의 사내가 숨어있었다.

나뭇가지가 아슬아슬하게 세 사내의 몸무게를 지탱 중이었다.

세 사내는 나뭇가지 위에서 다닥다닥 붙은 채로 쪼그려 앉아 지하공동묘지 입구를 바라보았다.

먼저 첫째가 말을 꺼냈다.

“으스스한 곳이군. 지하 전체가 뱀파이어의 마을이라 했던가?”

둘째가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형님. 여기가 놈들의 소굴 같은 곳인가 봅니다. 근데 망자섬으로 가긴 가는 걸까요?”

“전하께서 조직의 존재를 알아차렸으니까 보고하려면 한 명 이상은 망자섬에 갈 게야. 일단 들어가 보자. 들어가 보면 뭐라도 얻어낼 수 있겠지.”

“그냥 여기서 기다리는 게 나을 것 같은데요.”

“음? 너 설마 무덤에 들어가는 게 무서운 것이냐?”

정곡을 찔렀는지 둘째가 부자연스럽게 고개를 돌려 시선을 피하였다.

“그,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설마 유령 나올까봐 무서워서 그러는 건 아니겠지?”

“무서워하긴 누가 무서워합니까. 괜히 들어갔다가 뱀파이어들 사이에 고립될까봐 그런 거죠.”

“쯧쯧, 솔직하지 못한 녀석 같으니. 무서우면 여기 있거라. 나랑 셋째만 갔다오마. 셋째야.”

“네. 준비됐습니다.”

“오늘은 대답이 시원시원하구나.”

“이번엔 나뭇가지에 걸터앉아 있었거든요. 진작 이렇게 앉을 걸 그랬어요.”

어느새 셋째는 쭈그리고 있던 다리를 펴고 나뭇가지에 엉덩이를 붙인 채로 앉아있었다.

첫째는 셋째의 자세를 보며 마음에 안 든다는 듯 미간을 좁혔다.

“너 당장 쭈그려 앉아.”

“네? 왜요?”

“그렇게 앉으면 높이가 낮아지지 않느냐.”

“에이, 몇 센티나 차이난다고 그러십니까.”

“모자란 녀석. 모름지기 암살자라면 조금이라도 높은 곳에서 목표물을 내려 봐야 하느니라. 몇 센티 차이로 목표물을 놓치면 어쩌려고 그러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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