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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04화 (104/219)

00104 5-2. 시끌벅적 본선 =========================

“선수입장! 156번 로이엘! 1002번 그란데!”

원형 경기장의 3시 방향, 9시 방향에 달린 쇠창살이 위로 올라가면서 입구가 열렸다.

3시 방향에선 로엘이 걸어 나왔다.

차림새는 살짝 구식 스타일의 여행복 차림이었고 여전히 중년 티가 풀풀 나는 모습이었다.

다만 예선전과 다른 점이 있다면 검집이 바뀌었다는 점이었다.

예선전에서 썼던 검집이 철제 검집이었는데 지금 소유한 검은 미스릴제 검집이었다.

미스릴 검을 가지고 나왔다는 뜻이다.

로엘로선 아디만티움 검을 가지고 나올까하다가 그건 너무 눈에 띄지 않나 싶어 미스릴 검을 들고 나왔다.

미스릴 검이라면 돈 있는 용병들도 종종 들고 다니니까 아무도 이상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이었다.

이어서 9시 방향의 입구에서 그란데 백작이 걸어 나왔다.

그란데 백작은 금실로 수를 놓은 백색 제복을 입고 나왔다. 제복 가슴팍에 독수리 문양이 새겨져 있었는데 빌로스 왕가의 명예를 짊어지고 나왔다는 걸 의미했다.

그란데 백작의 허리춤에도 미스릴제 검집이 걸려 있었고, 본선을 위해 간만에 몸을 풀었는지 어깨가 벌어져 있었다.

와아아!

로엘과 그란데 백작은 열화와 같은 환호성 속에서 원형 경기장 중앙에 섰다.

얼마간 거리를 두고 마주 보았는데 그란데 백작의 눈썹이 크게 꿈틀거렸다.

“음?”

아니나 다를까 로엘의 얼굴을 보자마자 그란데 백작의 한쪽 무릎이 들썩이고 있었다.

1초까지도 필요 없었다.

보자마자 알아차린 것이다.

로엘은 고개를 저으며 그란데 백작에게만 들릴 정도의 목소리로 말했다.

“실력이 녹슬진 않았겠지?”

그란데 백작에겐 이 한 마디면 충분했다.

그란데 백작으로선 로엘이 왜 정체를 숨기고 대회에 참가했는지 궁금했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게 아니었다.

로엘이 그란데 백작과의 대결을 기대하고 있지 않은가.

전력을 다해 그 기대에 부응해주어야만 한다.

그란데 백작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검을 뽑았다.

로엘도 그에 맞춰 검을 뽑아들었다.

두 개의 미스릴 검이 같은 선상에서 겨누어지자마자 더프가 동전을 튕겼다.

동전이 땅에 떨어지는 게 시작신호였다.

본선의 뜨거운 환호성 때문에 시작신호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을 수도 있어 동전을 신호로 쓰는 것이었다.

높이 올라간 동전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그란데 백작이 먼저 땅을 박차며 로엘에게 접근하였다.

상대가 로엘인데다 그란데 백작의 실력을 기대하고 있다.

어찌 힘을 빼고 공격하겠는가.

시작부터 그란데 백작은 마나 블레이드를 생성하였다.

그란데 백작의 마나 블레이드가 아래에서 위로 쓸어담듯 휘둘러졌다.

‘전하께 닿기를!’

충성 100%, 평생충성 그란데군의 전력이 담긴 검이 로엘을 향해 날아갔다.

그러나 로엘은 가차 없이, 매몰차게 검을 아래로 그어 그란데 백작의 검을 옆으로 튕겨냈다.

차앙!

///

본선 64강 1차전이 끝난 후.

투기장 안은 굉장히 술렁거리고 있었다.

강력한 우승후보로 여겨졌던 그란데 백작이 패배했기 때문이었다.

1차전 내용 자체는 충실했다.

선제공격을 가한 그란데 백작의 공격이 무위로 돌아갔으나 그란데 백작은 차분함을 잃지 않고 가문의 검술을 펼쳤다,

그러나 결국 로엘에게 닿지 못하고 15분의 공방 끝에 그란데 백작의 검이 튕겨나가 시합이 끝나버렸다.

혜성 같이 등장한 신인 마나 익스퍼트의 등장에 투기장의 열기는 식을 줄을 몰랐다.

그 다음 경기는 시드번호를 받은 두 귀족 가 자제의 대결이었는데 나름대로 네임벨류가 있는 자들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첫 경기의 여운 때문에 아무도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아직 두 번째 경기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투기장 안의 응접실에서 로엘과 그란데 백작이 따로 자리를 잡았다.

누구도 들을 걱정 없는 밀폐된 공간에서 로엘이 가발과 수염을 떼내었다.

“실력은 여전하군. 땀을 흘린 건 오랜만이야.”

“전하의 실력에 비하면 한참 모자랍니다. 좀 더 전하의 기대에 부응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헌데 전하, 어째서 저희에게 비밀로 하고 대회에 참가하신 겁니까?”

“그럴 만한 일이 있었어.”

로엘은 마나대회를 열게 된 경위와 지금 하고 있는 암살자 탐색에 대해 알려주었다.

늦게나마 로엘의 의도를 알게 된 그란데 백작은 섭섭함 이전에 분노부터 분출했다.

“크윽, 감히 주제도 모르고 전하를 노리다니. 제게 맡겨주십시오. 가문의 기사들을 모조리 동원해서 몇 년, 몇십 년이 걸리더라도 놈들을 찾아내겠습니다.”

“그럴 필요는 없고 지금 당장 해줬으면 하는 일이 있어.”

“무엇입니까? 뭐든지 시켜만 주십시오.”

“내일 새벽에 메델이 에메랄드 산맥으로 향할 거야. 메델과 합류해서 함께 에메랄드 산맥으로 가줘.”

이대로 그란데 백작을 테헤란에 남겨뒀다간 뭘 할지 모르니 아예 다른 곳으로 보내두려는 것이었다.

그란데 백작은 한 치의 고민조차 하지 않고 로엘의 명령을 받들었다.

“알겠습니다, 전하.”

///

64강 두 번째 경기는 첫 경기의 여운에 묻힌 채로 관객들의 호응 없이 조용하게 끝났다.

싱거운 경기가 냉각제 역할을 했는지 분위기가 다소 가라앉은 상태에서 세 번째 경기가 다가왔다.

세 번째 경기는 카넨과 캉강의 시합이었다.

관중들은 승률이 반반이라 여기고 있었다.

“이번 시합은 예측하기 어렵구만.”

“카넨이 마나 익스퍼트 중에서야 최하위지만 그래도 마나 익스퍼트니까 카넨이 이기지 않을까?”

“그게 들리는 말에 의하면 선혈의 장미를 다른 사람에게 넘겨줬다더라고.”

“뭐? 그럼 단순한 마나유저 상급인 거잖아. 네 말대로 예측하기 힘든 걸.”

캉강도 나이는 이제 30대에 들어섰지만 용병계에 뛰어든 지는 벌써 20년째다.

의뢰 1000회 달성이란 간판을 내걸고 있지만 캉강이 수행한 의뢰엔 10대 시절에 수행한 잡심부름도 포함되어 있기에 일각에선 거품 베테랑이라고 조롱하는 편이었다.

인스턴트vs거품.

같은 업계에서 조롱당하는 이들끼리의 대결인지라 여러 가지 면에서 진흙탕 싸움이 되지 않을까 예상하였다.

그러나 카넨이 입장했을 때, 모두가 카넨을 조롱할 생각 따윈 집어치웠다.

건강미 넘치는 그을린 피부의 여인.

그 정도로만 알고 있는데 웬 백옥 같은 피부를 지닌 절세미인이 나타나는 게 아닌가.

첫 번째 경기와는 다른 타입의 탄성이 터져 나왔다.

“저 사람이 카넨이라고?”

“소문과는 완전히 다르잖아. 엘로나 여왕에게도 지지 않을 미인인데?”

“도저히 믿어지지가 않는군. 여신은 실존하는 거였어.”

카넨의 뒤를 이어 캉강이 입장했다.

캉강은 원형 경기장의 중앙에 그어진 대기선에 올라섰다. 그리곤 카넨만 바라보고 있는 관중들을 둘러보며 내심 불쾌해하였다.

‘계집 하나가 꾸미고 나왔다고 전부 헤실거리고 있구만. 그래봤자 마나유저 상급. 내겐 비장의 수단이 있지.’

캉강에겐 비책이 있었다.

이번 대회를 위해 거금을 털어서 마법물품 하나를 샀다.

신비의 베일이란 이름을 지닌 펜던트인데 착용하고 있으면 착용자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몇 번 막아준다.

이게 참 유용한 게 사용자가 인지하지 못하는 공격도 막아준다는 점이었다.

막을 땐 보이지 않는 투명한 막이 검을 흘려보내는지라 공격하는 입장에도 캉강이 피한 것처럼 느껴지기 때문에 들킬 염려도 없다.

막을 수 있는 건 마나유저 상급 수준의 공격까지지만 대회 참가자 대부분이 마나유저 상급이니 그야 말로 승리의 부적이나 마찬가지였다.

대진운만 좋으면 도디가 마나 익스퍼트를 전부 쓰러뜨려주고, 자신은 꼼수로 결승까지 간 다음 도디랑 붙게 되면 그를 속여 기권시킨 후 로엘을 암살. 그리고 돈을 받아 도주.

여기까지가 캉강의 시나리오였다.

그런데 더프가 던진 동전이 바닥에 떨어졌을 때.

캉강의 시나리오는 모래성처럼 와르르 무너졌다.

그의 눈앞에 드리워진 한 줄기의 마나 블레이드 때문에.

선혈의 장미가 아닌 평범한 검을 들고 있는데도 카넨은 유감없이 마나 블레이드를 발휘하고 있었다.

그것을 본 관중들이 크게 웅성거렸다.

지금까지는 그녀의 미모에 홀려 그녀를 보고 있었지만 이제는 그녀의 검만 보고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

“선혈의 장미가 없는데도?”

“킬더 왕국도 제대로 된 익스퍼트를 손에 넣었구나!”

인스턴트 익스퍼트라는 오명이 벗겨지는 순간이었다.

카넨이 마나 익스퍼트에 오르지 못했기 때문에 본인은 물론 킬더 왕국까지 욕 보여야 했었다.

제대로 된 마나 익스퍼트 하나 없는 나라라며 말이다.

이루 말할 수 없는 고양감의 카넨의 몸 곳곳에서 흘러넘쳤다.

이제 마나 블레이드의 위력을 선보이기만 하면 지금까지의 불명예는 모두 씻겨나가리라.

이 기념할 만한 순간을 꽃피워줄 제물로 선택된 캉강이었다.

‘잠깐! 마나 익스퍼트가 되었다는 말은 못 들었다고!’

캉강은 다가오는 카넨의 마나 블레이드를 보며 눈앞이 캄캄해졌다.

///

마나 블레이드를 아낌없이 사용하는 카넨을 상대로 캉강이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시합은 1분도 채 되지 않아 끝났고, 역대 마나대회에서 가장 빠른 시합으로 기록될 시합이 되었다.

한편 로엘은 관람석 앞좌석에 앉아 있었다.

관람석 앞좌석은 VIP석에 들어가지 못한 귀족 가 사람이나 기사, 부자들이 앉는 좌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누구도 로엘이 그들 틈에 있는 것을 두고 불쾌해 하지 않았다.

무려 그란데 백작을 이긴 인물에게 어느 누가 불쾌함을 드러내겠는가.

예선전 때처럼 기사단에 들어오라는 말조차 없었다.

어지간한 수준으론 마나 익스퍼트를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었다.

덕분에 로엘은 귀찮은 일 없이 편하게 앉아 있었다.

다음 시합을 관전하고 있는데 카넨이 찾아왔다.

그녀는 검은색 망사가 드리워진 모자로 얼굴을 가리고 귀부인풍 검은색 드레스로 갈아입은 상태였다.

육체재구성 이후의 모습이 알려졌기 때문에 이제부터 로엘과 함께 다니려면 얼굴을 가리고 다녀야 했다.

킬더 왕국의 여기사와 혜성처럼 등장한 용병이 함께 다니면 온갖 소문이 떠돌 테니까.

카넨은 로엘의 옆에 다소곳한 자세로 앉으며 작게 속삭였다.

“나쁘지 않았죠?”

“훌륭했어. 당초의 목적은 달성했네.”

“네, 이제 암살자 탐색에 좀 더 집중할 수 있겠네요.”

“지금까진 집중하지 않았나봐?”

“아뇨, 그게 아니라......”

“농담이야. 내가 하는 말이면 일단 진지하게 받아들이고 보더라?”

“입장이 입장이니까요.”

“다음 경기나 보자고. 중요한 경기니까 집중해야해.”

다음 경기는 소닉 고블린 뎁데프와 하프울프 도디의 시합이었다.

더프가 먼저 뎁데프의 번화 이름을 호명함에 따라 3시 방향 입구에서 뎁데프가 걸어 나왔다.

키는 약 1미터쯤 될까.

길쭉한 귀에 매부리코, 노란색 일색의 눈, 비쩍 마른 몸과 앙상한 팔과 다리.

전형적인 고블린의 모습이었다.

다만 고블린과 다른 점이 있다면 원래 고블린이 초록빛깔 피부라면 소닉 고블린은 회색이었다. 게다가 머리카락이 자라나지 않는 일반 고블린과 달리 소닉 고블린은 짧은 흑발을 지니고 있었다.

소닉 고블린은 고블린 계열에 속하는 종족으로 몸놀림이 매우 재빠르고 무기는 주로 단검을 사용하는 편이었다.

소닉 고블린 종족 중 간혹 마나를 사용할 줄 아는 자가 나타나는데 속도에 중점을 둔 방식을 이용하는 걸로 알고 있다.

코르네에게 전해 받은 정보에 의하면 뎁데프는 용병생활을 하다가 누명을 써서 5년 동안 징역살이를 했고, 과거를 뿌리치고 새 삶을 시작하기 위해 과거를 묻지 않는 마나대회에 참가한 것이라 하였다.

원형 경기장 안에서 뎁데브는 말을 아끼며 무뚝뚝하게 서있는 반면 도디는 두리번거리며 수많은 관중들을 훑어보았다.

“사람 많다. 도디 사람 이렇게 많은 거 처음 본다. 안녕 고블린, 잘 부탁한다. 도디가 이길 거지만 그래도 잘 부탁한다.”

뎁데브는 도디의 어리버리한 모습을 보며 생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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