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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02화 (102/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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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 시끌벅적 본선

도디가 사용하고 있는 좁은 동굴.

밤이 찾아들어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쳐왔지만 도디는 잘만 자고 있었다.

회색털에 덮여 새근새근 차고 있던 도디에게 한 명의 사내가 찾아들었다.

동굴 입구에 턱을 걸쳐 놓고 있는 달 한 덩이.

그를 등진 사내가 얌전히 손을 뻗어 도디의 어깨를 흔들었다.

“일어나, 도디. 일어나라고.”

업어갈 수 있는 사람은 없겠지만 업어 가도 모를 정도로 잠에 빠져 있던 도디였다.

도디는 사내가 몇 번 더 흔든 후에야 팔로 입가의 침을 닦으며 일어났다.

“캉강?”

캉강이라 불린 사내는 삐쩍 마르고 옆머리만 남은 조기탈모 30대 남성이었다.

캉강은 꾸물꾸물 일어나는 도디를 보며 이를 바득바득 갈았다.

답답한 걸 겨우 참듯이 말이다.

“그래, 나다. 오늘 시합 결과는 어떻게 됐어?”

“전부 이겼다. 캉강은?”

“내가 겨우 3차전에서 떨어질 사람은 보였나 보지?”

“미안하다, 캉강. 그런 뜻으로 한 말이 아니었다. 리비노는?”

“놈은 꼴사납게 1차전에서 졌어. 갈비뼈랑 무릎을 다쳤다는데 무릎 상태 봐선 앞으로 용병질은 무리라 봐야겠더군.”

“다치면 아프다. 병문안 가고 싶다.”

“이미 쓸모없어진 녀석에게 가봤자 무슨 도움이 되겠어. 놈은 이미 재기불능이니까 신경 꺼.”

캉강. 브리니아 왕국에서 활동하던 다이아급 용병.

그는 이번에 조직의 명령을 받아 마나대회에 참가하였다.

캉강, 리비노, 도디의 임무는 단 한 가지였다.

우승하여 로엘을 암살하는 것.

암살 이후 빌로스 병사들에게 포위당한다 하더라도 조직이 반드시 빼내준다 하였다.

무엇보다 암살에 성공하면 막대한 포상금이 기다리고 있었다.

빌로스 왕국의 위세가 닿지 않는 무인도에서 하인과 여자를 잔뜩 들여놓고 평생 놀고먹을 수 있을 정도의 포상금이 말이다.

헌데 도디를 제외한 캉강과 리비노에겐 또 하나의 지령이 부여되었다.

도디가 우승을 노릴 수 있게 계속 거짓말을 해주라는 게 아닌가.

그 거짓말이라는 게 ‘도디의 어머니를 살리려면 돈이 필요하다는 것,’, ‘빌로스의 국왕인 로엘은 선한 척하지만 나쁜 놈.’이라는 것이었다.

이 두 가지 거짓말만 있으면 도디는 우승 및 암살을 위해 몸을 아끼지 않을 거라고 하였다.

반대로 두 다이아급 용병에겐 자신들은 우승할 능력이 안 된다는 것처럼 들렸었다.

그래도 명색이 다이아급 용병인데 지능 떨어지는 하프울프보다 못하다고 여겨지는 게 달가울 리 없었다.

자존심 때문이라도 본인이 직접 우승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래서 도디의 움직임을 감시하는 것보다 자신이 우승하는데 더 중점을 두고 움직이고 있었다.

도디의 관리는 밤에만 하고 말이다.

조직의 명령을 무시할 수는 없으니까 구색만 갖추자는 생각이었다.

“도디, 낮 동안 쓸데없는 짓하진 않았겠지?”

“별일 없었다. 실격당할 뻔하긴 했는데 착한 친구가 도와줬다.”

도디에겐 시합이 없으면 무조건 동굴에서 대기하라고 했다.

그런데 말을 듣지 않고 딴 짓을 한 것이었다.

캉강은 인상을 찌푸렸다.

“시합 외에는 동굴 안에만 있으라고 했을 텐데? 우승하기 싫나보지?”

“노인공경 할 줄 모르는 나쁜 녀석이었다. 그래도 착한 친구 덕분에 실격 면했다.”

“착한 친구란 게 누군데?”

“로이엘.”

“이름 말고 다른 정보는?”

“모르겠다. 아! 그 친구도 3차전 통과했다. 그리고 은패를 가지고 있었다.”

캉강은 도디의 말을 토대로 로이엘이란 자에 대해 추정하였다.

도디가 누군가와 시비가 붙었는데 지나가던 실버급 용병 하나가 도와준 것 같았다.

실격처리가 될 뻔했다는 것, 다른 사람과 필요 이상으로 접촉했다는 건 그리 달갑지 않은 소식이었다.

캉강은 겁을 주듯 목소리를 낮게 깔며 말했다.

“이제부터 다른 녀석들과 일체 접촉하지 말고 시합 외의 시간에는 동굴에 있도록 해. 알겠어?”

“로이엘도 만나면 안 되나? 로이엘 착하다.”

“다른 참가자한테 잘해주는 놈들은 전부 꿍꿍이를 숨기고 있지. 그 로이엘이란 작자도 너와 붙을 때를 대비해서 접근해온 걸걸?”

“모르겠다. 나 은인이라 해도 대결에선 안 봐준다. 꿍꿍이 같은 거 있어도 상관없다.”

“멍청아. 누가 대놓고 봐달라고 하냐. 친한 척 다가오면서 네 약점을 파악하거나 약 들어 있는 음식 같은 걸 줄 수도 있단 거지.”

“아하. 캉강 똑똑하다. 아는 거 많다. 알겠다 다른 사람 안 만나겠다. 로이엘도 나쁜 녀석이다.”

“그래, 알아들었으면 됐어.”

“캉강한테 항상 고맙다. 캉강이 어머니 살릴 수 있는 방법 가르쳐줘서 여기까지 왔다.”

“알았으면 우승해서 로엘 국왕을 처리해. 그러면 네게 막대한 돈이 들어올 거고 그래야 네 어머니가 살 수 있으니까.”

“로엘 국왕. 나쁜 왕. 많이 들었다. 우승해서 내가 혼내줄 거다.”

도디가 무의식중에 동굴 입구에 있던 돌 하나를 움켜쥐었다.

손아귀 힘만으로 돌 하나가 와드득 부서지며 손가락 사이에서 돌조각이 떨어졌다.

///

예선전 3일차.

이제 예선전도 마지막 4차예선만 남겨둔 상태였다.

남은 인원은 100명.

오늘 승자 50명이 본선에 올라가 시드참가자와 함께 64강전을 벌인다.

도디를 잠정적 암살자 후보로 빼놓은 지금, 확인해야 할 후보는 소닉 고블린과 하이엘프 뿐이었다.

로엘과 크라넬 둘 중 한 명은 두 후보와 붙었으면 했는데 안타깝게도 대진표추첨이 안 좋게 나왔다.

크라넬은 킬더 왕국 출신의 귀족 자제와 붙게 되었고, 로엘은 블랑코와 붙게 되었다.

마나유저 초급의 실력으로 최종예선까지 남은 것이다.

오크 전사 시절부터 상당한 센스를 보유하고 있다 여겼는데 설마 역습형 검술 하나로 최종예선까지 남을 줄은 몰랐다.

로엘과 블랑코는 제1 간이 결투장 위에서 서로 마주 보고 섰다.

오늘은 그란데 백작이 업무 때문에 왕궁에 있어 구경하러 나오지 않았다.

블랑코도 로엘의 변장을 알아보지 못했는지 타인 대하듯 예를 갖추었다.

“잘 부탁한다. 좋은 승부를 펼쳤으면 좋겠군.”

“동감이다. 잘 부탁하지.”

이윽고 진행요원이 시작신호를 알렸다.

시작부터 블랑코는 방어태세를 취하고 있었다.

이전의 승부들보다 훨씬 더 경계심이 짙어진 모습이었다.

로엘에 대한 정보는 1차전의 한 방 승부뿐.

그러나 다이아급 용병을 한 방에 보내버렸다는 것만으로도 로엘을 경계하기엔 충분했다.

로엘은 최선을 다하려는 블랑코를 보며 내심 즐거워하였다.

왕으로서 향상심을 가지고 항상 노력하는 신하의 모습을 보는 것만큼 즐거운 일은 없었다.

이번 기회에 넌지시 한 수 가르쳐주는 것도 나쁘지 않을 것 같았다.

로엘이 가만히 서있자 블랑코가 검 끝을 흔들며 로엘이 먼저 덤비도록 유도했다.

“내게 공격을 강요할 생각은 말아라. 지키는 것이 나의 최종목표이니 나로선 얼마든지 서있을 수 있다.”

“잠시 딴 생각을 해서 말이지. 공격해줄 테니 잘 막아봐.”

로엘은 성큼성큼 앞으로 걸어가며 검에 마나를 부여했다.

로엘의 검에는 기껏해야 마나유저 초급 수준의 마나만 부여되었다.

다이아급 용병을 한 방에 보냈다는 건 적어도 마나유저 상급 이상이라는 건데 마나유저 초급 수준의 힘만 쓰는 것이 이상했다.

구경꾼들은 탐색전이라도 하려는 거려나 하고 생각했지만 검을 마주하고 있는 블랑코만은 로엘의 의도를 파악했다.

‘같은 힘을 써도 이길 수 있다는 건가. 대단한 자신감이군.’

아무리 블랑코의 센스가 뛰어나다하더라도 마나유저 초급의 힘으로 마나유저 상급의 힘을 막아낼 수 있을 리 없었다.

타격점 선점으로 가속도를 못 붙이게 한다 해도 힘에 밀려버린다.

블랑코를 힘으로 압도하는 게 아니라 기술로 압도할 생각인 것이다.

로엘은 블랑코의 표정이 굳어지는 것을 확인하였다.

‘내 의도를 알아차렸구만. 자, 그러면 어디 한 번 받아보라고.’

로엘이 블랑코의 어깨를 향해 검을 찔렀다.

블랑코는 집중력을 날카롭게 다듬으며 로엘의 첫 수를 간파해냈다.

‘찌르기로 거리를 잴 생각이군. 그렇다면 진짜 공격은......’

견제용 공격에 불과할 테니 한 번 흘려낸 후 다음 공격에 대비할 생각이었다.

그런데 블랑코의 수를 읽어낸 로엘이 허리에 힘을 주며 견제용 공격에 허릿심을 실었다.

처음에는 힘이 실리지 않았던 찌르기가 한순간에 어깨를 꿰뚫어버릴 강한 일격으로 탈바꿈하였다.

블랑코는 당황하며 뒤늦게 검을 가로로 들었다.

채쟁!

로엘의 검이 아래에서 올라온 블랑코의 검과 부딪쳐 살짝 궤도가 틀어졌다.

때문에 검은 블랑코의 어깨가 아닌 비어 있는 오른팔 부근을 찔렀다.

블랑코에게 오른팔이 남아있었다면 오른팔이 꿰뚫렸을 거다.

로엘은 한 걸음 나아가며 이번에는 좌에서 우로 검을 그었다.

블랑코가 어떻게든 가속도를 붙이기 전에 막으려고 타격점을 찾아내 경합에 나섰다.

‘발뒤꿈치에 힘이 들어갔어. 지금 타격하면 녀석은 힘을 실을 수 없어.’

정확한 타격점을 찾았다 여겨 검을 마주 휘두르는데 검이 경합한 순간 로엘의 검이 블랑코의 검을 흘려내었다.

로엘의 검에는 명백히 힘이 빠져 있었다.

블랑코 혼자 체중을 실었다 여겨 과도하게 힘을 주고만 것이다.

블랑코로선 믿을 수가 없었다.

‘체중을 실었는데 검을 흘려냈다고? 몸이 얼마나 유연한 거야?’

순간적으로 로엘의 발을 본 블랑코는 놀람을 감추지 못했다.

방금까지 분명 발뒤꿈치에 힘이 실려 있었는데 어느새 발 앞쪽의 엄지발가락으로 옮겨가 있었다.

엄지발가락을 축으로 삼으면 무게중심이동이 쉬워진다.

그래서 블랑코의 검을 흘려낼 수 있던 것이었다.

발뒤꿈치를 축으로 삼는 척하면서 무게중심 페이크를 사용한 것이다.

로엘은 자세가 흐트러진 블랑코의 품으로 파고들어 검 끝을 세웠다.

로엘의 검 끝이 아래에서부터 블랑코의 턱을 겨누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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