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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101화 (101/219)

00101 5-1. 돌연변이 하프울프 =========================

대기하고 있던 참가자들은 긴장감 때문에 험악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러나 고개를 돌려 카넨의 모습을 확인하곤 언제 긴장했냐는 듯 흐물흐물 녹아내리는 표정을 지었다.

“아, 네. 얼마든지 물어보십시오. 뭐든지 대답해드리겠습니다.”

“다른 건 아니고 156번 로에, 아니 로이엘 씨의 경기는 어떻게 됐나요?”

“156번 경기는 로이엘의 부전승으로 끝났습니다. 상대였던 하프엘프가 크게 다쳐버렸거든요.”

카넨과 잠시 떨어져 있던 사이에 또 무슨 일이 벌어진 모양이었다.

좀 더 이야기를 들어보니 하프울프과 하프엘프 사이에 분쟁이 있었고 하프엘프가 한 방에 나가떨어졌다고 한다.

그 뒤에 로엘이 하프울프의 변호를 위해 위원회로 따라갔다는 것까지 들을 수 있었다.

하프울프, 하프엘프 둘 다 암살자후보들이다.

한 방에 떨어져 나간 하프엘프는 후보에서 제외해야 할 테니 사실상 이제 남은 건 3명이었다.

현재 로엘은 남은 3명 중 한 명인 하프울프에게 접근한 상태라 할 수 있었다.

카넨은 질문에 대답해준 용병에게 가벼운 인사를 하며 로엘을 찾아 나섰다.

“대답해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럼 좋은 대결 펼치세요.”

있는 얘기 없는 얘기 떠들어대던 용병은 카넨의 뒷모습을 보며 홀린 듯 멍한 표정을 지었다.

“정말 예쁜 사람이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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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디의 처분은 가벼운 경고조치로 끝났다.

의식을 되찾은 베리가 도디를 보자마자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제 무덤을 팠기 때문이었다.

진행위원회 사람들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이다.

로엘의 변호도 한 몫했다.

진행위원회 본부에서 나온 도디는 북슬북슬한 뒷덜미 털을 쓸어내리며 연신 고개를 꾸벅였다.

“고맙다. 로이엘 없었으면 실격 당했을 거다. 보답하고 싶다.”

“굳이 보답하고 싶으면 밥이라도 한 끼 사.”

“밥. 마침 도디 배고팠다. 따라와라. 식사 대접하겠다.”

로엘로선 도디와 대화를 나누며 그의 속을 떠볼 상황이 필요했다.

기본적으론 대결에서 힘을 가늠하는 방법을 쓰고 있지만 대화를 통해 속을 떠보는 것도 탐색의 방법 중 하나였다.

도디는 로엘을 테헤란 뒷산으로 안내했다.

기본적으로 테헤란 북쪽의 산은 왕가의 소유지만 산 어귀는 개방해놓은 상태였다.

테헤란의 평민들은 산 어귀에서 장작용 땔감이나 산나물, 민물고기나 산짐승을 얻어가는 편이었다.

지금은 평민들 대부분이 테헤란 외곽 지역의 개발도시로 이동하고 있는 터라 산을 찾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

봄이 다가옴에 따라 산짐승이나 개구리들이 겨울잠에서 깨어나고 있었고, 나뭇가지마다 봉오리가 맺혀 봄을 맞이할 준비 중이었다.

말라붙은 소나무 잎을 바삭바삭 밟으며 산으로 들어가던 도디가 계곡물 앞에서 걸음을 멈췄다.

“잠시만 기다려라. 금방 대접하겠다.”

로엘은 허름한 식당에서 식사하는 걸 상상하고 있었는데 설마 자급자족으로 대접할 줄은 몰랐다.

깊은 산속에서 살다가 나왔다 했으니 도디에겐 이게 일반적인 대접인 것이었다.

아직 2월이라 물가에 살얼음이 끼어있는데도 도디는 성큼성큼 물속으로 발을 들였다.

도디의 덥수룩한 다리털이 젖어 들어갔다.

그는 무릎까지 잠기는 위치까지 들어갔는데 일반 남자 같으면 하반신이 모두 잠길 정도의 깊이였다.

맑은 물 아래를 유심히 지켜보던 도디가 순간적으로 물속에 손을 담갔다. 그리곤 물손을 쳐내듯 손바닥을 휘둘렀다.

철썩!

수면이 아직 봄도 아닌데 벌써 깨우냐는 듯 요란하게 튀어올랐다.

사방으로 튀는 물방울 사이에서 민물고기 한 마리가 섞여 나오더니 계곡 옆 자갈밭 위에 떨어졌다.

자갈밭에 떨어진 민물고기가 분하다는 듯 자갈 위에서 마구 퍼덕였다.

이어서 도디가 손짓을 한 때마다 민물고기가 한 마리씩 자갈밭에 떨어졌는데 아무리 봐도 늑대보단 곰에 가까운 사냥법이었다.

하긴 도디의 덩치와 지능을 생각하면 늑대의 사냥법 보단 곰의 사냥법이 어울리는 편이었다.

누가 도디에게 사냥법을 가르쳐 준지는 모르겠지만 도디의 특징을 잘 파악하고 가르쳐준 모양이었다.

도디에서 물에서 나온 건 다섯 마리째 민물고기가 자갈밭 위로 떨어진 후였다.

도디는 우악스런 손짓으로 민물고기 중 한 마리를 덥석 잡으며 로엘에게 권했다.

“먹어라.”

익히지도 않은 날 것을, 그것도 비리디 비린 민물고기를 날 것으로 먹으라 하고 있었다.

전생이나 전전생에선 뱀도 가죽만 벗겨 그대로 씹어 먹었다만 이번 생에는 워낙에 잘 먹고 잘 지낸 터라 비린 것을 먹던 감각이 모두 죽어 있었다.

도디는 비늘이나 내장을 손질 안하고 민물고기 한 마리를 통째로 입에 넣었다. 도디의 입안에서 민물고기가 으적으적 분쇄되더니 남김없이 삼켜졌다.

“맛있다. 사양 말고 많이많이 먹어라. 모자라면 또 잡겠다.”

“익혀 먹으면 더 맛있을 것 같아서 말이야.”

“익히려면 요리해야한다. 도디 요리 못한다. 어머니도 요리 못한다. 그래서 익혀 먹은 적 없다. 로이엘 요리할 줄 아나?”

“나도 할 줄 몰라. 대충 구우면 되지 않겠어?”

부싯돌이라도 구해 와서 불을 피워볼까 하는데 수풀 사이에서 카넨이 걸어 나왔다.

카넨은 로엘의 말을 들었는지 자갈밭에 들어서며 고개를 강하게 저었다.

“무작정 굽는 게 능사가 아녜요. 제가 손질해드릴게요.”

“아, 미안 카넨. 어디로 간다고 말했어야 했는데.”

“괜찮아요. 하프울프 분이 눈에 띄어서 산에 들어가는 걸 볼 수 있었거든요. 그런데......”

카넨이 말꼬리를 흐리면서 로엘에게 눈길을 주었다.

로엘은 무언가 할 말이 있음을 감지하곤 자연스럽게 도디를 떨어뜨릴 말을 꺼냈다.

“도디, 여긴 카넨이야. 내 친구지. 합석해도 될까?”

무의식중에 카넨이 친구란 말에 어깨를 들썩였지만 감지하지 못할 정도의 작은 반응이었다.

한편 도디는 오히려 환영한다는 듯 순진무구한 미소를 띠며 도로 물속으로 들어갔다.

“로이엘은 은인이다. 로이엘의 친구도 대접해주고 싶다. 기다려라. 몇 마리 더 건져내겠다.”

도디가 흙탕물이 되지 않도록 조심조심 물속으로 걸어들어 가는 사이.

카넨이 예비용 단도를 꺼내 생선 손질을 시작했다.

그녀의 손이 능숙하게 비늘을 긁어내고 배를 갈라 손으로 내장을 꺼냈다.

그러면서 로엘에게 보고를 하였다.

“크라넬 경이 뱀파이어와의 시합을 마쳤습니다.”

“결과는?”

“20분의 대련 결과 크라넬 경이 항복을 받아냈습니다.”

“뱀파이어는 아니었군.”

“네, 하프엘프도 아니었던 모양이더군요.”

“시합 전부터 어느 기사단이든 들어가려고 안달이 나있더라고. 붙어보지 않아도 알 수 있었지.”

“저 하프울프는 어떻... 그 이전에 하프울프가 맞긴 한 겁니까?”

“하프울프라고 웨어울프랑 닮으라는 법은 없지. 하프계통 중에 돌연변이가 생겨나는 게 드문 일은 아니잖아.”

“그렇긴 하죠. 저 하프울프는 어떻습니까? 보기에는 많이 어설퍼 보입니다만.”

“좀 더 속을 떠봐야지. 근데 너 생선 손질도 잘하네.”

“트라켄 호수에서도 생선은 제법 잡히는 편이니까요.”

수산시장 아낙네마냥 쭈그려 앉아 손질한 생선을 하나하나 모으는 카넨이었다.

그녀의 손등에 은색 껍질조각과 비늘이 잔뜩 묻어났다.

카넨은 손을 씻은 후 적당한 나뭇가지를 모아 생선을 꿰었고, 가지고 있던 부싯돌로 불을 피워 불가에 생선꽂이를 꽂아놓았다.

세 사람은 모닥불을 둘러싸고 산중식사를 시작했다.

도디는 구운 생선을 경단꼬치 먹듯 단번에 쑤욱 빼내며 입에 넣었다.

상당히 뜨거울 텐데도 불구하고 안색 하나 변하지 않고 씹어댔다.

허옇게 익은 생선살을 씹던 도디가 열기 배인 김을 뿜으며 좋아라 했다.

“맛있다. 너무너무 맛있다. 구우면 맛있어지는 거였다. 고맙다, 하얀 여자.”

카넨이 백발에 새하얀 피부라서 하얀 여자라 부르는 것이었다.

로엘은 신이 나서 열기를 훅훅 내뱉는 도디를 보며 질문을 날렸다.

“도디는 뭣 때문에 대회에 참가한 거야?”

생선을 하나 더 집으려던 도디가 움직임을 멈추었다.

사정이 있는 듯 어리숙하던 얼굴에 진지함이 감돌았다.

“도디 어머니 아프다. 돈 많이 필요하다. 그래서 우승해야한다.”

“어떻게 아프시길래?”

“병 때문에 뱀파이어 피 필요하다. 뱀파이어 마을에선 배신자라면서 피 안 준다. 다른 곳에서 구하려면 돈 많이 필요하다.”

기사의 봉급 자체는 그다지 많지 않다.

다만 이번 마나대회 우승상품으로 받게 될 영지를 나라에 반납하면 시가에 맞게 목돈을 지급해준다.

어머니를 위해서.

자급자족이 가능한 산골 하프울프가 이 먼 곳까지 찾아와 대회에 참가할 이유로는 충분했다.

로엘은 다소 아련함을 느꼈다.

로엘의 어머니는 어렸을 때 돌아가셨기에.

효도할 기회조차 없었던 그이기에 도디를 보고 아련함을 느꼈다.

“그런 일이 있었군. 어머니께서 쾌차하길 바라도록 하지.”

“고맙다. 로이엘 착하다. 좋은 친구 생겼다.”

“하하, 친구라. 뭐 즐거운 식사를 했으니 그리 부르지 못할 것도 없나.”

이후 영양가 없는 대화로 시간을 보내던 로엘과 도디는 모닥불이 꺼질 때 즈음 자리를 파하였다.

도디는 계속 산속에 있는 동굴에서 지내왔다며 계곡을 따라 올라갔다.

반면 로엘과 카넨은 숙소로 돌아가기 위해 산 아래로 걸음을 옮겼다.

로엘은 머릿속으로 도디와 나눴던 대화를 검토하며 입을 열었다.

“카넨, 코르네에게 연락해서 도디의 말이 사실인지 확인해달라고 해줘.”

“네. 사실이면 어떻게 할까요?”

“메델을 보내봐야지. 도울 수 있을 게 있을지도 모르니까.”

“거짓이라면요?”

“암살자인 게 확정되겠지. 어느 쪽이든 나로선 환영이야. 도디의 말이 사실이면 암살자로 의심하지 않아도 되고, 거짓이면 병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없다는 거니까.”

암살자를 밝혀내서 다행인 게 아니라 병에 시달리는 어머니가 없다는 것에 더 비중을 두고 있는 로엘이었다.

카넨은 도디와의 대화 이후 로엘의 등에 쓸쓸함이 깃든 것 같아 저도 모르게 로엘 등에 손을 올렸다.

로엘이 뒤를 돌아보자 카넨이 뒤늦게 정신을 차리며 사과했다.

“아! 죄송합니다.”

“등에 뭐라도 묻었었어?”

“뭐랄까. 어머님이 계셨다면 전하를 매우 대견해하셨을 거예요.”

“고마워, 카넨.”

로엘은 슬며시 하늘을 올려다보며 나지막이 중얼거렸다.

“그 말을 직접 듣지 못한다는 게 아쉬울 뿐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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