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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99화 (99/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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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 돌연변이 하프울프

2차 예선이 오전에 치러졌고, 곧바로 오후에 3차 예선을 치르기로 하였다.

귀찮은 일을 피해 여자들을 따돌렸던 로엘은 대진표추첨이 끝난 후에야 추첨판으로 돌아올 수 있었다.

로엘의 상대는 907번이었다.

하프엘프 베리가 로엘의 상대로 선정된 것이다.

안 그래도 예선에서 암살자후보 한두 명 정돈 탐색해보고 싶었는데 잘된 셈이었다.

로엘은 점심식사 이후 3차 예선을 치를 제1 간이 결투장에서 대기하였다.

대기하고 있는 참가자 숫자는 오전에 비해 확 줄어들었다.

3차 예선쯤 되니 남은 참가자 숫자가 200명대로 줄어서 하나의 간이 결투장당 20명 정도만 대기하게 되었다.

대진운이 좋아서 남은 사람도 있고, 자기 실력으로 올라온 사람도 있었다.

어느 쪽이든 이쯤 왔으면 본선을 노려볼 법했다.

예선참가자 중 본선에 올라가는 자는 50명.

시드배정을 받은 14명의 사람들과 합류하여 본선 64강 토너먼트를 벌일 수 있었다.

굳이 우승을 못하더라도 본선에 올라가 좋은 활약을 펼치면 지방의 귀족들에게 섭외되어 귀족의 기사라도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각 나라, 각 지방의 귀족들이 보낸 자들이 예선현장을 돌아다니며 싹수 있는 자들을 섭외하고 있었다.

그건 로엘도 예외가 아니었다.

카넨이 따로 다른 암살자후보를 보러 다니느라 로엘 혼자 있었는데 콧수염을 기른 정장사내가 말을 걸어왔다.

“156번. 로이엘 맞으시죠?”

현재 로엘은 로이엘이란 가명을 쓰고 있었다.

허나 로이엘이란 이름으로 불릴 일이 거의 없어 조금 늦게 반응하였다.

“맞습니다만 무슨 용건이라도?”

“제 소개부터 해야겠군요. 전 크레인 공국에서 파견된 산디라고 합니다. 1차 예선 때의 활약은 잘 보았습니다. 혹시 크레인 공국의 기사가 되실 생각은 없으십니까?”

현재 구 겐크 왕국이 3공국으로 나뉘면서 각 공왕들이 인재를 모집하느라 난리였다.

관리해야 할 땅이 늘어난데다 영지를 운영하는 것과 나라를 운영하는 건 천지차이이니 인재 모집에 혈안이 되어있었다.

3공국의 추운 날씨와 왕국보다 위상이 떨어진다는 점에서 상당한 연봉을 제시하고 있었다.

변장으로 인해 생긴 헤프닝이었다.

로엘은 웃으면서 정중히 거절하였다.

“지금은 대회에 집중하고 싶군요.”

“그러면 나중에라도 대답을 해주시지 않겠습니까?”

“그러죠.”

대회가 끝나면 왕궁으로 돌아가 있을 것이기에 로엘이 말하는 나중이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산디는 마음이 정해지면 언제든지 찾아오라며 크레인 공국 파견단이 머무르고 있는 숙소를 가르쳐주었다.

산디가 물러나자 산디의 뒤에 서있던 베리가 보였다.

산디에 가려져서 몰랐는데 줄곧 로엘을 노려보고 있었던 듯했다.

대전상대끼리 시작 전에 기싸움을 하는 거야 흔한 일이니 가볍게 무시하려했다.

그런데 베리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대뜸 말을 걸어왔다.

“섭외 받아서 기분 좋겠군.”

“별로.”

“참 귀찮은 일이야. 나도 어제 크레인 공국의 섭외를 받았거든. 크레인 공국뿐만 아니지. 제니아 공국의 섭외도 받았었지.”

고개를 절래절래 젓는 베리의 표정에서 우월감이 새어나오고 있었다.

왜 말을 걸어오나 했는데 자기가 더 잘났다고 말하려고 온 거였다.

하프계통의 종족들은 어릴 적부터 차별을 많이 받거나, 거친 환경의 빌렝턴에서 자라나기 때문인지 꼬인 성격이 많았다.

그건 인간 수준에선 상위권에 속하는 외모를 지닌 하프엘프도 예외가 아니었다.

베리가 로엘의 기선을 제압했다고 생각하던 때.

또 다른 정장사내가 로엘에게 다가왔다.

“로이엘 씨 맞으시죠? 반갑습니다, 하니온 왕국 바카스 공작님 휘하에 있는 스우렌이라 합니다. 바카스 공작 가 소속 퀵실버 기사단으로 오실 생각 없으십니까?”

하니온 왕국의 마나 익스퍼트 중 한 명인 바카스 공작.

그 바카스 공작 가 소속의 퀵실버 기사단은 하니온 왕가 기사단과 맞먹는 명문 기사단이었다.

빌로스 왕국으로 치면 케이델 공작의 철갑기마대와 동급이라 할 수 있었다.

3공국에게 몇 번의 섭외 제안을 받았든 퀵실버 기사단 제안 한 번만도 못했다.

허나 로엘은 관심 없다는 표정으로 단칼에 거절했다.

“지금은 대회에 집중하고 싶으니 나중에 마음이 생기면 찾아가겠습니다.”

일개 용병이 명문 퀵실버 기사단의 입단 제의를 거절한다?

상식적으로 있을 수 없는 일이기에 스우렌은 자신이 잘못 들었나 싶어 확인 차 질문을 던졌다.

“하하, 제대로 못 들으셨나 보군요. 퀵실버 기사단에서 입단 제의를 하는 겁니다. 퀵실버 기사단이 어떤 기사단인지는 아시죠?”

“네.”

“그런데도 거절하시겠다고요?”

“네.”

“허~ 참. 이런 기회는 흔치 않은데 정말 괜찮으시겠습니까?”

“네.”

정말로 로엘을 섭외하고 싶은지 계속 확인질문을 하던 스우렌은 제 풀에 지쳐 포기하였다.

당장 로엘을 섭외하는 건 포기하는 대신 입단할 마음이 생겼을 때 들러달라며 바카스 공작 가 파견단이 머무르고 있는 숙소를 알려주고 갔다.

스우렌이 떠난 후에도 로엘은 심드렁하게 자기 차례를 기다릴 뿐이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마냥.

옆에서 보고 있던 베리는 어이가 없어 멍하니 입을 벌리고 있었다.

‘퀵실버 기사단이면 로얄 기사단급은 되는데 그걸 거절한다고?’

죽을 둥 살 둥 싸워 우승해서 얻는 상품이나 스우렌의 제의를 받아들여서 얻게 되는 직위나 똑같은데 어째서 거절하는 건지 알 수 없었다.

로엘의 생각이야 어떻든 간에 로엘에겐 명문 기사단 섭외가 들어왔는데 자신에겐 오지 않은 것에서 강한 열등감을 느꼈다.

더불어 자신이 퀵실버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이 떠올랐다.

‘내가 이 자식을 쓰러뜨리면 나한테 제의가 오겠군. 그러면 이 귀찮은 대회를 더 이상 안 해도 되는 거잖아.’

시시각각으로 변하는 베리의 표정을 보고 있던 로엘은 어렵지 않게 그의 생각을 짐작할 수 있었다.

로엘만 쓰러뜨리면 퀵실버 기사단에 들어갈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 게 훤히 보였다.

싸우기도 전에 베리가 암살자가 아님을 알 수 있었다.

그저 출세욕과 과시욕에 찌들어 있는 하프엘프에 불과했다.

마나 익스퍼트인지 확인할 것도 없이 시작하자마자 끝내는 게 상책일 것 같았다.

한편 베리는 로엘에게서 떨어지며 싸울 준비를 갖추려 하였다.

퀵실버 기사단 입단이 걸려 있는 만큼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을 생각이었다.

‘화살촉을 바꿔야겠군. 봐주는 거 없이 바로 다리부터 꿰뚫어야겠어.’

예선1, 2차전 때는 뭉툭하게 깎은 돌화살촉을 썼지만 원래 베리의 화살촉은 미스릴제 화살촉이었다. 그것도 평범한 미스릴제 화살촉이 아니라 마나운용에 반응하여 방향을 바꿀 수 있는 마법진이 새겨진 화살촉이었다.

베리는 대결에 앞서 화살촉을 갈아 끼우기 위해 허리춤을 더듬었다.

그런데 화살촉을 넣어둔 가죽주머니가 없었다.

분명 허리춤에 매달아놓았는데 감쪽같이 사라졌다.

대체품도 없는 터라 베리는 당황하며 주위를 둘러보았다.

떨어뜨린 게 아닌가 하여 주변을 둘러보고 있는데 어떤 노인이 베리의 주머니를 든 채로 멀어지고 있었다.

소매치기 당했다 여긴 베리는 냅다 달려가 노인의 어깨를 붙잡았다.

“어이, 영감. 소매치기도 상대를 봐가면서 했어야지.”

노인의 모습은 그야말로 거지 그 자체였다.

나이는 60대 초중반쯤 되었을까.

희끗희끗 올라오고 있는 백발은 언제 감았는지 먼지가 소복하게 앉아 있었고, 주름 사이사이마다 때가 끼어 있었다.

한 손에는 동전 몇 개가 들어가 있는 사발이, 다른 한 손에는 베리의 가죽주머니가 들려있었다.

베리는 가죽주머니를 낚아채듯 빼앗으며 주먹을 높이 들었다.

베리의 성난 모습을 본 거지노인이 다급하게 손을 저었다.

“오, 오해입니다. 저는 주인을 찾아주려고......”

거지노인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베리의 주먹이 노인을 후려쳤다.

퍼벅!

아무리 마나를 사용하지 않고 주먹을 썼다지만 몸 먹고 다니는 거지노인이 혈기 넘치는 청년의 주먹을 버텨낼 리 없었다.

베리의 주먹에 맞은 노인이 몸을 가누지 못하고 풀썩 쓰러졌다.

베리는 손을 탁탁 털며 한껏 이마를 좁혔다.

로엘을 보면서 쌓여 왔던 짜증과 소매치기 당할 뻔했다는 분노가 겹쳐 화풀이에 가까운 발길질이 이어졌다.

베리의 신발 앞코가 노인의 팔을 걷어찼다.

그로인해 노인이 쥐고 있던 동냥그릇이 데구르르 흙바닥을 구르면서 때 묻은 동전이 마구 흩어졌다.

노인이 피 같은 동전을 주우려고 바둥거리든 말든 베리는 차가운 시선으로 노인의 손을 밟았다.

“이 도둑놈이 믿을만한 거짓말을 해야지. 이게 어떤 물건인 줄 알고 함부로 건드려?”

“으윽, 제, 제 말 좀 들어주십쇼 용병 나리. 제가 가진 건 없어도 남의 것을 탐한 적은 없습니다요.”

베리는 한 번 더 발길질을 하려다가 제 옷이 더러워질까 싶어 발을 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반면 거지노인은 가까스로 몸을 추스르며 동전을 주우려고 안간힘을 썼다.

그러나 사람들은 거지노인이 바닥을 더듬고 있든 말든 제 갈길 가기 바빴다.

그 탓에 동전이 사람들의 발에 이리저리 차이면서 더더욱 줍기 힘들게 되었다.

한참 멀리서 뒤늦게 상황을 알아차린 로엘은 불쾌함을 드러내며 거지노인 쪽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실력 이전에 인성부터 글러 먹었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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