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96 4-7. 암살자를 찾아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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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엘은 타이밍 좋게 제2 간이 대결장 앞에 도착하였다.
로엘이 도착하자마자 로엘 앞순번의 참가자들이 간이 대결장 아래로 내려오고 있었다.
그와 동시에 진행위원이 로엘의 번호를 불렀다.
“156번! 156번 참가자 없습니까? 156번 참가자 분은 번호표를 지참하고 결투장 위로 올라오십시오!”
로엘은 자신의 번호표를 들어 보이며 간이 결투장 위로 올라갔다.
진행위원이 로엔의 번호표를 확인하며 로엘의 상대번호를 불렀다.
“189번!”
로엘의 맞은편에서 민둥머리 용병이 올라왔다.
승모근이 승천할 기세로 어깨에 힘을 주고 올라오는 꼴이 우스꽝스럽기 짝이 없었다.
자신은 다이아급 용병이다 이거다.
실버급에게 질 리가 없고 생각하는지 벌써부터 승자 행사를 하고 있었다.
민둥머리 용병은 189번 번호표를 꺼내 보이며 승리를 확신한 양 실실 웃었다.
“처음부터 보너스 스테이지로군. 오늘 밤은 후련하게 잘 수 있겠어.”
간이 대결장 주변에서 동정의 눈빛이 쏟아졌다.
모두가 로엘에게 동정의 눈빛을 보내고 있었다.
아까 본 블랑코와 도돈의 대결은 마나유저 중급과 초급의 싸움이니 비웃을 생각으로 구경하러 온 자들이 있었다.
그러나 다이아급과 실버급은 차이가 너무 많이 나서 볼 생각조차 안 드는 게 사실이었다.
구경꾼들은 거의 없었고 그나마 자기 차례를 기다리는 참가자들만이 ‘이번 경기는 빨리 끝나겠구나’하고 서있을 뿐이었다.
그저 책임감 강한 진행요원만이 너무 큰 격차에 의한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열의를 내비치고 있었다.
“상대를 죽이는 건 절대! 절대! 안 됩니다! 그 점 주의하시면서 정당한 결투 펼치십시오. 그럼 시작하겠습니다!”
민둥머리 용병이 느긋하게 양날 도끼를 붕붕 돌리며 발걸음을 한 걸음씩 데었다.
로엘을 가지고 노는 것에 그치지 않고 차근차근 상처를 입힐 생각이었다.
치명상만 아니면 얕은 상처 정도야 얼마든지 입혀도 되니까.
반면 로엘은 도박조직을 이용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얼른 끝내고 카넨과 합류하고 싶었다.
그런데 민둥머리 용병이 거슬리게 군다.
시합 전부터 짜증나게 굴더니 이번에는 시합 때까지 마주치게 되어버렸다.
‘쟨 어차피 타종족이 아니니까 용의선상에서 제외되잖아. 금방 끝내야겠군.’
실버급 용병이 다이아급 용병을 단숨에 쓰러뜨리면 주목 받을 거다.
하지만 그 주목이라 해봤자 과소평가 받던 다크호스가 나타난 정도이지 로엘의 정체가 들킬 염려는 없었다.
무슨 뜻이냐고?
이런 뜻이다.
투웅! 콰직!
민둥머리 용병은 느긋하게 한 걸음씩 떼고 있었는데 순간적으로 로엘의 신형이 흐려지더니 민둥머리 용병 지척에서 나타났다.
로엘은 검을 뽑지도 않고 검집에 끼운 그대로 휘둘러 민둥머리 용병의 가슴을 직격했다.
로엘의 검집이 가슴에 직격한 순간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울렸다.
가격 이후 민둥머리 용병이 뒤로 넘어가기까진 얼마 걸리지 않았다.
쿠웅!
대자로 뻗은 민둥머리 용병은 흰자위를 드러낸 채로 기절해버렸다.
로엘이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몸을 돌려 걸음을 옮기는 동안 제2 간이 결투장 주변에 침묵이 감돌았다.
몇 안 되는 구경꾼, 대기하던 참가자, 심지어 진행요원까지.
“...”
“...”
“...”
10초 가량 침묵이 지속되던 차에 진행요원이 간이 결투장 위로 올라섰다.
진행요원은 민둥머리 용병이 완전히 기절한 걸 확인하며 로엘의 승리를 외쳤다.
“승자! 156번!”
그 후에 곧장 민둥머리 용병의 가슴을 살피면서 의료반을 불렀다.
“의료반! 얼른 들 것을 가져와!”
헐레벌떡 달려온 의원과 조수들이 민둥머리 용병의 상태를 살폈다.
“허어, 이 사람 용병생활은 이제 끝났구먼. 갈비뼈 대부분이랑 무릎이 아작 났어.”
“네? 맞은 건 가슴뿐입니다만.”
“무릎 전후방이 끊긴 게 확실한데 원인이 무슨 소용인가. 쯧쯧, 그래도 갈비뼈 쪽 뼛조각이 내장에 박히지 않아서 다행이군. 조심해서 들 것에 올려놓게.”
깔끔하게 용병생활을 마감시킨 로엘이었다.
로엘과 민둥머리 용병의 승부는 시시할 것이다!
사람들의 예상은 완전히 적중했다.
대신 쓰러지는 쪽이 달랐을 뿐이었다.
간이 대결장 아래로 내려온 로엘은 주변의 시선을 받으면서도 태연하게 간이 대결장에서 벗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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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식간에 대결을 끝낸 로엘은 카넨과 합류하기로 한 지점으로 갔다.
투기장에서 한참 떨어져 인적 드문 테헤란 북쪽 산 어귀에 들어섰다.
사람이 거의 찾아들지 않는 수풀 사이에 카넨이 한 사내를 잡아두고 있었다.
사내는 비루한 차림의 평민으로 나이는 30대 초반쯤 되어보였다.
카넨의 조치인지 헝겊을 재갈 삼아 입을 봉해놓았고, 움직이지 못하게 나무기둥에 묶어 놓은 상태였다.
로엘은 너무 격하게 묶어놓은 느낌이 있어 카넨에게 질문을 날렸다.
“이것도 개인취향이야?”
그럼에도 발끈하지 않고 가까스로 감정을 억제하며 대답하는 카넨이었다.
“하도 입이 걸해서 재갈을 물려두었습니다.”
“아, 난 또 다른 개인취향인 줄 알았지.”
“전하.”
“농담이야. 입이 걸하면 얼마나 걸하길래......”
로엘이 대수롭지 않게 여기며 사내의 재갈을 풀었다.
재갈을 풀자마자 사내가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야이 개자... 으읍!”
로엘은 번개와 같은 반응으로 재갈을 도로 물렸다. 그리곤 방긋방긋 웃으며 말했다.
“저기 말이야. 이번 대회에서 도박하면 안 된다는 거 알고 있지?”
묶여 있는 사내가 알게 뭐냐는 듯 눈을 부라렸다.
단속반은 아니라 여겨 성질을 부리고 있었다.
성질을 부리는 걸로 보아 로엘은 물론이고 카넨까지 모르는 모양이었다.
이냥저냥 소문에 휩쓸려 돈을 걸었다가 잃는 ‘픽 구걸 종자’인 것 같았다.
로엘은 만약을 위해 챙겨 나온 하니온 왕궁 소속의 금패를 꺼내들었다.
“하니온 왕궁의 비밀단속반이다. 이제 네가 어떤 상황인지 알겠지?”
왕가 소속의 기사나 병사들이 로엘의 위조신분을 알아차렸을 경우를 대비해 준비해둔 것이었다.
제대로 먹혀들었는지 사내의 눈동자가 크게 떨렸다.
사내는 자포자기한 듯 고개를 떨궜다.
그 후에야 로엘은 재갈을 풀어주었다.
사내는 동정심이라도 유발하려는지 거짓 가득한 사정을 술술 읊었다.
“흐흑, 전 포이그에 사는 러스라고 합니다. 어느 날 어떤 여인이 저에게 복이 많은 얼굴이라고 하며 복을 트게 하기 위해 이것저것 사게 하더니 결국 가산을 탕진해버렸습니다. 어떻게든 복구하고자 피치 못해 한 일이니 제발 한 번만 봐주십시오.”
쥐어짜낸 듯한 눈물을 흘리는데 거기에 속아 넘어갈 로엘이 아니었다.
로엘은 살벌하게 검갑을 퉁기며 물었다.
“다시 묻지. 본명은?”
로엘의 손가락이 검 손잡이를 밀어 올리면서 차가운 검날이 드러났다.
이 이상 거짓을 고할 경우 어떻게 될지 알아서 생각해보란 뜻이었다.
완전히 겁을 먹은 사내는 결국 사실대로 고하였다.
“사실... 다이러스라고 합니다.”
“참가자들 결투 결과 가지고 도박했지?”
“네.”
“도박조직이 있다는 거군.”
“그렇습니다.”
“안내해봐. 배팅을 했다는 건 도박조직이 어디 있는지 안다는 거겠지?”
곧장 도박조직의 본거지로 가겠다는 말이었다.
다이러스는 당황하면서 재고를 권하였다.
“업무에 충실하시려는 건 알겠지만 녀석들만큼은 건드리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 왕궁 안에 어마어마한 빽을 두고 있는 조직이니까요.”
“그거 아주 좋은 정보군. 누구인지 말해봐.”
“그, 그란데 백작님을 빽으로 두고 있는 놈들입니다! 국왕 전하의 오른팔이신 분이니 함부로 건드렸다간 비밀단속반이실지라도......”
얼마나 대단한 이름이 나오나 했는데 그란데 백작이란다.
로엘로선 헛웃음이 절로 나올 수밖에 없었다.
“하하, 웃는 녀석들이네. 일단 안내해.”
“네? 그란데 백작님 모르십니까? 로엘 전하의 최고 측근이신 분이라고요.”
로엘은 웃음을 참느라 안간힘을 썼다.
카넨도 웃음을 참기 힘든지 손으로 입을 가리며 고개를 돌리곤 어깨를 들썩이고 있었다.
오로지 다이러스만이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였다.
일단 로엘은 다이러스를 묶은 로프를 풀어주며 입을 열었다.
“됐으니까 안내해.”
다이러스가 도망갈까 고민하다가 로엘의 검날이 아직 드러나 있는 상태인 걸 보곤 완전히 포기했다.
“에효, 나 오늘 죽는 날인갑네. 이왕 죽는 거면 날치알이라도 실컷 먹고 죽고 싶은데.”
“죽지 않을 거고 도박 처벌도 극형까진 가지 않을 테니까 일단 걸어. 게다가 웬 날치알이람.”
“제가 바닷가 출신이거든요.”
“포이그 출신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 증명했구만.”
“헙! 아하하, 안내해드리겠습니다. 따라오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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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러스는 로엘과 카넨을 테헤란 시가지로 안내했다.
테헤란 시내는 마나대회 때문에 외지인이 많이 들어와 평소보다 한층 더 북적거리고 있었다.
다이러스로선 북적거리를 인파를 이용해 도망친다는 선택지는 죽어도 선택할 수 없었다.
로엘과 카넨은 수많은 인파 속을 산책로 걷듯 유유히 통과하며 다이러스에게 바짝 따라붙고 있었다.
때문에 다이러스는 도망칠 생각 따윈 할 수조차 없어 그대로 시가지 한복판의 낡은 건물로 들어섰다.
다이러스가 안내한 건물은 낡은 목조 건물이었는데 1층짜리 건물에 크기도 그리 크지 않았다.
건물 안은 늙은 여인 한 명이 카운터를 지키고 있는 잡화점에 불과했다.
다이러스는 빽빽하게 들어차 있는 각종 물건 중 이쑤시개 한 뭉치를 골라 3골드와 함께 카운터에 내밀었다.
“잔돈은 가지세요. 그리고 화장실 좀 쓸 수 있을까요?”
늙은 여인이 가느다란 눈을 치켜뜨더니 카운터 뒤에 있는 문을 가리켰다.
“저리로 들어가게. 쭉 들어가면 화장실이 있다네.”
아무래도 이쑤시개가 암호고 1골드가 입장료인 것 같았다.
3명이니까 3골드를 내민 것이었다.
다이러스가 자연스럽게 카운터 뒤로 들어갔고, 로엘과 카넨도 그를 따라갔다.
문 뒤로 들어서자마자 다이러스가 낮은 목소리로 간절하게 말했다.
“수사 때문에 제 돈 쓴 거니까 감옥에 넣더라도 돈은 꼭 갚아주십시오.”
돈을 전부 잃었다는 말 하나만큼은 거짓이 아닌 것 같았다.
로엘은 한심하다는 눈빛을 띠며 금화 두 개를 튕겨주었다.
“옛다. 날치알이라도 먹고 감방 들어가던가 해라.”
“감사합니다, 수사관님. 자자, 이쪽으로 오시지요. 이 길 쭉 따라 가면 지하도박장이 나옵니다.”
좁은 복도를 따라 쭉 들어가다보니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이 나왔다.
계단을 밟고 내려가자 금방 철문이 나타났는데 철문에 달린 작은 사각문이 열리면서 문지기의 눈이 드러났다.
“위에서 뭘 샀나?”
다이러스가 잡화점에서 산 이쑤시개 뭉치를 내밀었다.
“이걸 샀습니다.”
문지기가 이쑤시개 뭉치를 확인하더니 문을 열어주었다.
“들어와라.”
철문이 열리자 쇠창살이 설치되어 있는 환전소부터 보였다.
환전소 너머로 이어진 복도 끝에는 넓은 공간이 있었는데 마법전구를 설치했는지 지하임에도 불구하고 대낮처럼 밝았다.
로엘을 비롯한 세 사람은 환전소 앞을 지나쳐 넓은 공간으로 들어섰다.
테헤란 지하에 이런 곳이 존재하는구나 싶을 정도로 거친 도박장이었다.
고르디의 룰렛하우스가 클래식 음악이라면 이곳은 고성방가가 가득한 곳이랄까.
행해지는 도박은 투견, 데드 매치, 몬스터 매치 등 대부분이 피 튀기는 종목들뿐이었다.
광기 어린 도박중독자들의 욕지거리가 가득한 가운데 유독 인기가 많은 곳이 있었다.
바로 이번 마나대회의 각 결투 결과를 놓고 돈을 거는 테이블이었다.
기다란 직사각형 테이블에 접수원들이 주르륵 앉아 있고, 접수원들 뒤로 커다란 칠판이 있었는데 칠판에 오늘 행해지는 경기들과 각 경기의 승자에 따른 배율이 적혀 있었다.
대진표가 정해진지 한나절도 지나지 않았건만 벌써 대진표 정보가 들어온데다 실력에 따른 배율까지 정해져 있었다.
그만큼 이곳 도박조직의 정보력이 대단하다는 증거였다.
더하여 로엘이 도박조직을 이용하기로 마음먹은 이유이기도 했다.
로엘은 도박조직 소탕 겸 마나대회 참가자 전원에 대한 정보를 얻기 위해 이곳에 온 것이었다.
유독 접수원들이 자주 들락거리고 있는 방이 눈에 들어왔다.
여기까지 온 이상 망설일 게 무에 있겠는가.
로엘은 검 손잡이를 만지작거리며 그란데 백작을 들먹이는 작자들을 보러 가고자 걸음을 옮겼다.
“이용해도 하필 그란데 백작이냐. 가자, 카넨. 어떤 머저리들인지 확인해보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