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91화 (91/219)

00091 4-6. 유인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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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헤란 북쪽 산 너머에는 커다란 구조물 하나가 세워져 있다.

수백 년 전에 지어진 빌로스 원형투기장인데 수용인원만 5만 명에 이른다.

옛날에는 종종 마나대회를 열어 마나유저, 마법사에 타종족들까지 참가했었다고 한다. 뿐만 아니라 몬스터들을 잡아다 서로 싸움을 붙이기도 했었다.

그런데 투기장을 열 때마다 비용이 많이 드는데다, 백성들이 생업을 소홀히 하고 투기장 일정에만 정신이 팔려서 최근 100년 동안 거의 사용하지 않았다.

로엘은 방치된 투기장을 다듬어 잊혀졌던 마나대회를 개최할 생각이었다.

일단 왕궁의회의 허가가 있어야 하기에 왕궁회의 때 대회개최를 제안해보았다.

결과는 물어보나마나였다.

그란데 백작과 라이너리 백작은 두 말할 필요도 없다는 듯 로엘의 제안에 적극찬성 하였다.

“훌륭하신 생각입니다. 빌로스의 명성이 나날이 높아지고 있으니 업적을 기릴 대회 하나쯤을 있어야지요.”

“올해 가을에 샹데르로 자리를 옮기면 기회가 없으니 이참에 대회를 열어보는 것도 좋겠군요. 명목은 빌로스킬더 연방국가 설립기념 대회가 어떻겠습니까?”

말 꺼내기가 무섭게 제안에 살을 붙이며 일사천리로 이야기를 진행시키는 두 백작이었다.

다른 의원들도 질 새라 의견을 쏟아내었다.

마나대회 일정부터 시작하여, 참가제한이나 안전대책, 외지인의 숙박과 교통관리, 상인조합와의 연계까지.

빌로스 왕국이 날로 커져가고 있다곤 해도 대부분의 의원들은 테헤란에서 일에 치여 지내는 형국이었다. 그래서 자기들도 즐길 수 있는 이벤트가 생겨나자 열을 올리며 많은 것을 제안하였다.

그러던 차에 클라임 후작이 중구난방으로 흘러넘치는 의견을 수습하기 위해 나섰다.

탕! 탕!

클라임 후작은 나무망치로 책상을 두어 번 두드리며 말했다.

“다들 조용히 하게. 여기가 무슨 시장통이라도 되는 줄 아는가!”

클라임 후작의 한 마디에 웅성거리던 회의장이 잠잠해졌다.

회의장을 정리한 클라임 후작은 긴 콧숨을 내쉬며 로엘에게 질문을 던졌다.

“전하, 몇 가지 짚어두고 싶은 게 있습니다. 전하께서도 대회에 참가하실 생각이십니까?”

백성들을 비롯한 모두가 마나 마스터인 로엘의 참가를 기대하고 있을 거다.

허나 로엘이 참가하면 우승할 게 뻔하니 사실상 로엘 이외의 경기들은 흥미도가 떨어질 게 분명했다.

로엘은 그 부분까지 염두에 두고 있었기에 어렵지 않게 대답하였다.

“난 참가하지 않을 거야. 나만을 위한 대회로 만들 생각은 없어.”

“그렇다면 상품은 어떤 걸 거실 생각이십니까? 과거 문헌에 따르면 우승자는 기사 작위와 함께 영지를 부여했다고 합니다만.”

“옛날과 마찬가지로 기사 작위와 영지를 상품으로 내걸 생각이야. 국적, 종족, 나이 상관없이 마나를 다루는 자들이면 전부 참가하라고 공지를 걸어놔.”

“네, 그리 하겠습니다. 나머지 세부사항은 각 부서체허 보고서 형식으로 올리는 게 효율적일 테니 그리하라 전하겠습니다.”

“아마도 그게 낫겠지. 그리해줘. 나머지 사람들 중에 지금 결정에 반대하는 사람 있어?”

로엘이 허가했는데 반대할 사람은 없었다.

그란데 백작과 라이너리 백작이 허리를 숙이며 명을 받들었고, 나머지 신하들은 국왕과 크라임 후작, 두 백작이 동의했는데 어찌 반대할 수 있겠냐며 찬성표를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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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 보름간의 심의 끝에 마나대회와 관련된 세부사항이 모두 결정되었다.

마나대회 일정을 정하자마자 수도 전체에 공문을 내걸었고, 각 영지 및 다른 왕국에도 공문을 돌렸다.

참가신청은 한 달 동안만 받으며 참가조건은 단 하나뿐이었다.

마나를 이용한 전투능력을 가진 자일 것.

시가지 곳곳에 공문이 내걸리고 있었다.

로엘과 레이아는 성벽 위에서 시가지를 내려다보며 대화를 나누었다.

“계획대로 잘 될까?”

“조직에 바보만 있는 게 아니라면 반드시 암살자를 투입할 거야. 이만한 기회는 둘도 없을 테니까.”

조직 입장에선 로엘을 암살하기에 이만한 기회가 없다.

마나대회에서 우승할 수만 있다면 둘도 없는 암살기회가 주어진다.

기사서약을 할 때 로엘이 코앞까지 다가오게 되니 그만한 암살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대회에서 우승하려면 어중간한 실력으론 턱도 없으니 상당한 실력자를 투입할 거다.

대회 참가자 중 특출나게 강한 자를 중심으로 탐색하여 생포해볼 생각이었다.

대회에서 우승할 정도의 강자라면 아무 것도 모르는 말단 정도가 아니라 어느 정도 조직 내에서 한 위치하는 인물일 테니까.

여러 모로 계산이 많이 들어간 작전이라 할 수 있었다.

로엘은 레이아의 손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레이아의 손에는 묵직한 자루가 들려있었다.

레이아는 로엘이 시켜서 하라는 대로 준비물을 챙겨오긴 했다만 영 내키지 않는 눈치였다.

“정말 이런 걸로 되겠어?”

자루 안에는 은으로 만든 용병패와 평범한 철제 장검 한 자루, 가발과 수염 등의 변장도구가 들어 있었다.

신하들에겐 대회에 참가하지 않겠다고 했지만 몰래 참가할 생각이었다.

레이아는 로엘이 직접 나설 필요가 있나 싶어 의문을 내비쳤다.

“네 작전대로라면 우승자가 나올 때까지 기다리면 되는 거잖아. 암살자가 암살 시도할 때 막아내고 그 자를 생포하면 되는 거 아냐?”

“우리 뛰어난 상임고문님이 그런 말을 할 줄은 몰랐는걸? 마나대회 우승자가 진짜 암살자인지 알려면 내가 암살시도 당해야 하는데 괜찮겠어?”

“생각해보니까 그렇네.”

로엘이 누군가에게 당할 실력은 아니지만 상대도 그걸 알고 반드시 죽일 수 있는 수단을 확보해서 올 거다.

게다가 조직에서 우승할만한 실력자를 암살자로 투입한다 해도 그 암살자가 ‘100퍼센트 우승’할지 확신할 수 없었다.

그래서 로엘은 대회에 참가하여 직접 암살자가 누군지 판명할 생각이었다.

로엘은 레이아에게 받은 분장도구를 착용해 40대 중반 실버급 용병으로 분장하였다. 실버급 용병으로 분장한 로엘은 레이아에게 한 쪽 눈을 찡긋 감아 보이며 말했다.

“자리 비우는 동안 위장 잘 부탁해. 너 아니면 부탁할 사람 없는 거 알지?”

로엘이 자리를 비운 사이 레이아가 로엘의 침실에서 머무르며 로엘의 몸이 안 좋다는 핑계를 대어주기로 하였다.

레이아가 말하는 ‘몸이 안 좋다.’는 여러 의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에 신하들이라 할지라도 자세한 연유를 묻기 힘든 핑계이기도 했다.

“알아서 잘 처리할 테니까 조직 끄나풀이나 제대로 잡아와. 이만큼 수고하는데도 못 잡아오면 혼날 줄 알아.”

“예예,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마님.”

“이왕이면 마누라라고 해주면 좋겠는데.”

“네네, 우리 마누라 걱정하지 않게 잘 처리하고 올게.”

“그래그래, 잘 다녀와, 우리 서방님.”

로엘은 40대 초반의 모습을 한 채로 멋들어지게 웃으면서 시가지로 섞여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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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이아가 로엘의 부재를 연기해주었기에 로엘은 마음 편히 마나대회 신청서를 쓸 수 있었다.

마나대회 신청서를 써서 투기장 정문의 접수원에게 제출하였는데 접수원이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로엘의 옷차림을 훑어보았다.

보통 실버 용병은 마나유저 초급 수준으로 평가 받는 편이었다.

내민 것이 실버 용병패인데다 리얼리티를 위해 살짝 허름하게 분장한 상태여서 접수원이 탐탁지 않게 여길만도 했다.

“마나유저 초급은 우승하기 힘드실 텐데 괜찮으시겠습니까?”

로엘은 괜한 걱정을 한다 싶어 자신감 넘치게 대답하였다.

“토너먼트라는 게 실력 반 행운 반 아니랍니까. 시도하는 게 나쁜 건 아니죠.”

“그리 생각한다면 열심히 하십시오. 자, 여기 참가증 있습니다. 로이아 씨, 참가증 받으세요.”

대충 로엘과 레이아의 이름을 합쳐 가명을 만들었었다.

안 그래도 허름한 차림에 여자 같은 이름까지 겹쳐 더더욱 얕보이기 쉬운 처지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로엘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대신 접수대 앞에 늘어선 기다란 행렬을 훑어보았다.

‘어디 보자. 암살자라 할 수 있을만한 사람이 있으려나.’

타국의 실력자, 골드급 용병, 타종족의 실력자 명단쯤은 모조리 외워둔 상태였다.

몇몇 눈에 띄는 실력자들이 있었지만 ‘단 한 명’ 가장 눈에 띄는 사람이 있었다.

로엘의 바로 뒤에 카넨이 서있었고, 로엘이 비켜주자마자 그녀가 접수원에게 신청서를 제출하는 게 아닌가.

로엘은 신청서를 내고 옆으로 빠져나오는 그녀를 보며 놀란 표정을 지었다.

“어?”

카넨은 자신을 알아본 일개 용병인 줄 알고 차가운 눈빛을 쏘아 보냈다.

“긴 말 하지마라.”

카넨도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참가한 모양이었다.

허나 마나 마스터인 그녀가 참가하면 로엘이 몰래 참가한 의미가 없기 때문에 어떻게든 막아야만 했다.

카넨은 일개 용병에겐 관심 없다는 듯 횅하니 몸을 돌리며 시가지 속으로 걸어들어갔다.

로엘로선 그녀가 참가하여 암살자가 몸을 사리는 경우는 피하고 싶었다.

왜 카넨 정도 되는 여자가 빌로스 왕궁에 알리지 않고 참가신청을 한 걸까.

로엘은 카넨을 따라가 그녀의 사정을 파헤치고 자신의 사정을 알리고자 했다.

참가신청을 마친 카넨은 행렬처럼 북적거리는 테헤란 중앙도로를 가볍게 파헤치며 나아갔다.

마나운용능력이 뛰어나지면서 움직임이 더욱 재빨라졌다.

그러나 로엘도 마찬가지로 마나 마스터였기 때문에 따라잡는데 무리는 없었다.

테헤란 중심부의 인파를 헤치며 나아가던 그녀가 도착한 곳은 어느 고급여관이었다.

시가지에 위치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귀족 저택급 규모를 자랑하는 라벤더 상단 소유의 여관이었다.

카넨이 고급 여관에 들어간 것을 본 로엘은 당당하게 고급 여관 입구에 발을 들였다.

귀족을 상대로 하는 고급 여관답게 입구에 문지지가 있었다.

문지기들은 허가 받지 않은 자가 오자 창을 십자 모양으로 겹치며 앞길을 막아섰다.

“이곳은 예약손님과 그 수하 이외에는 들이지 않는 곳입니다. 들어갈 수 있는 사람임을 증명해주십시오.”

로엘은 안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안주머니 안에는 빌로스 왕가의 금패와 위장용 용병 은패가 들어있었다.

왕가의 금패를 들이밀면 쉽게 들어갈 수는 있겠으나 금패를 드러내면 위장한 의미가 없었다.

문지기들이 의심스런 눈초리를 보내는 가운데 로엘이 명쾌한 해결책을 내놓았다.

“킬더 왕국에서 온 카넨 경을 불러주시오. 그녀에게 급히 전할 말이 있소.”

“카넨 경? 어디의 누구인지 말씀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수련여행. 그 한 마디만 전하면 알 것이오.”

말을 전하기 위해 두 명의 문지기 중 한 명이 고급 여관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말을 전해들은 카넨이 헐레벌떡 뛰어 나왔다.

수련여행.

그 의미를 아는 자는 로엘뿐임을 알기에 로엘이 부르는 줄 알고 급하게 나온 것이었다.

급하게 뛰어나온 카넨은 아까 차갑게 쏘아붙인 용병이 서있는 것을 보곤 어리둥절하였다.

“아까 본... 그런데 수련여행? 어? 어라?”

로엘은 카넨의 목소리가 주변의 이목을 이끌기 전에 가깝게 붙으며 속삭이듯 말했다.

“나도 묻고 싶은 게 많으니까 자연스럽게 행동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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