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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79화 (79/219)

00079 4-2. 파도 위의 검무 =========================

선박 50미터 앞의 수면 아래에서 크라켄이 헤엄쳐 다가오고 있었다.

크라켄.

오징어의 모습을 띤 바다몬스터로 그 크기가 어지간한 중형선급이었다. 선박 밑으로 다가와 기다란 10개의 다리로 선박을 휘감아 부순 다음 사람을 잡아먹는 걸로 유명한 바다몬스터이기도 했다.

보통은 육안으로 확인할 수 없게 바다 깊은 곳에서 상승하는 방식으로 덮쳐오는데 이번에는 이상하게도 전방에서 나타났다.

기사와 선원들은 각자 무기를 꺼내들어 난간으로 이동하였다.

크라켄이 갑판 위에 다리를 뻗기 전에 쳐내려고 미리 대기하는 것이었다.

크라켄을 상대할 땐 난간에 대기해서 다리를 쳐내는 게 정석이었다.

로엘도 배 선두에 서서 크라켄의 움직임을 유심히 지켜보았다.

그런데 크라켄의 움직임이 이상했다.

배를 향해 온다기 보단 무언가 쫓고 있는 움직임이었다.

더욱 자세히 보니 크라켄 앞에서 누군가가 급하게 헤엄치고 있었다.

로엘은 난간에 발을 걸치고 힘껏 뛰어내려 바다에 떨어졌다.

루엔의 수상보행마법 덕분에 물에 빠지지 않고 수면에 찾지할 수 있었다.

수상보행은 마치 부드러운 푸딩 위를 걷는 느낌이었다.

파도가 출렁일 때마다 몸이 휘청거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머뭇거릴 틈은 없었다.

로엘은 마나를 끌어올리며 수면을 박찼다.

수면을 찰 때마다 로엘의 뒤로 하얀 물보라가 튀어 사방으로 튀었다.

빠르게 크라켄에게 접근하던 로엘은 지척까지 다다라서야 쫓기는 이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었다.

힘차게 지느러미를 흔들고 있는 세이렌 한 명.

오르비르 산에서 만났던 셸리였다.

“셸리?”

셸리로 로엘을 발견했는지 애절한 목소리로 로엘을 불렀다.

“로엘! 살려줘요!”

크라켄은 세이렌과 이동속도가 비슷하다.

신체적인 조건까지 따지면 언제 잡혀도 이상하지 않을 상황이었다.

셸리는 살겠다는 일념으로 필사적으로 헤엄치고 있었다.

그러나 로엘과 마주친 것 때문에 긴장이 느슨해졌는지 속도가 약간 느려졌고 그 틈을 타 크라켄의 다리 하나가 셸리를 향해 뻗어졌다.

로엘은 단박에 몸을 날려 공중에서 반 바퀴 돈 후 그대로 검을 뽑아냈다.

아디만티움으로 만들어진 검신 주변으로 푸른 기운이 덧씌워지면서 마나 오러가 뿜어져 나왔다.

서걱! 서걱!

실처럼 뻗어나간 마나 오러가 크라켄의 다리 하나를 단숨에 잘라냈다.

크라켄의 다리가 보기에는 오징어 다리처럼 보여도 두께를 감안하면 그 강도는 바위와도 같다.

하지만 로엘의 마나 오러 앞에서는 도마 위의 오징어나 마찬가지였다.

다리 하나를 잘라내자 크라켄이 수면 위로 머리를 드러내며 돌기 가득한 입을 크게 벌렸다.

“구오오오!”

거대한 고둥을 분다면 이런 느낌일까.

크라켄이 포효하자 각종 생선 썩은 내가 로엘을 향해 뿜어져 나왔다.

로엘은 손으로 코와 입을 막으며 미간을 찌푸렸다.

“거참 양치질 정도는 하고 다니지. 소금물 입에 넣고 가글만 해도 냄새는 안 나겠다 야.”

로엘의 핀잔을 알아듣기라도 한 건지 크라켄이 남은 9개의 다리를 모두 뻗어내었다.

빨판 달린 검붉은 색 다리 9개가 괴기스럽게 다가오는 가운데 로엘이 제자리에서 강하게 발을 굴렀다.

퉁!

로엘의 발구름으로 인해 바닷물이 높게 치솟으면서 물기둥이 로엘을 감쌌다.

크라켄의 다리 9개가 로엘이 있을 거라 추정되는 물기둥을 덮쳤으나 허공을 공격한 양 아무 것도 걸리지 않았다.

물기둥이 가라앉았을 때 로엘은 사라지고 없었다.

이미 로엘은 크라켄의 다리 중 하나에 올라타 그 위를 질주하는 중이었다.

불안정한 파도 위를 달리는 것보다 차라리 크라켄의 다리 위를 달리는 게 더 편했다.

삽시간에 크라켄의 머리에 도달한 로엘은 거칠 것 없이 크라켄의 머리에 검을 그었다.

마나 오러가 크라켄의 머리를 가로로 횡단하는가 싶더니 크라켄의 머리가 벌어지며 두 동강 났다.

로엘은 갈라진 틈새에서 튀어나오는 잔해를 피해 뒤로 물러나며 셸리에게 다가갔다.

오랫동안 헤엄친 탓인지 셸리는 완전히 지쳐 고꾸라지기 일보직전이었다.

셸리가 수면 위로 상체를 드러낸 채로 로엘의 다리에 매달렸다.

“로엘, 보고 싶었어요. 쫓기면서 로엘이 나타나주길 바랐었는데 정말로 나타났네요. 제 간절한 마음을 느끼고 구하러 와주신 거 맞죠?”

“아니, 마도섬 가다가 우연히 마주친 거야.”

“우연히? 우연히 마주치다니 역시 운명?”

“됐으니까 어떻게 된 건지나 설명해. 너 인어니까 해저섬 소식도 알겠네. 해저섬에 무슨 일이라도 생긴 거야?”

“매정하시긴. 아, 부끄러워서 그러시는 거구나.”

“까부는 건 여전하군. 이거나 걸쳐. 배 위로 올라가야하니까.”

로엘이 입고 있던 웃옷을 벗어 셸리의 머리에 대충 얹었다.

인어들은 물속에서 지내기 때문에 의복을 입지 않는다.

그래서 현재 셸리의 상체는 아담한 가슴이 그대로 드러나 있는 상태였다.

셸리가 웃옷을 주섬주섬 입자마자 로엘이 그녀를 번쩍 안아들어 어깨에 들쳐 업었다.

갑작스럽게 어깨에 걸쳐진 셸리가 당황하며 입을 열었다.

“갑자기 왜 들쳐 업어요?”

“배 위로 올라가야한다 했잖아. 운반해주는 거야.”

“이왕 옮겨주실 거면 공주님 안기가 좋은데.”

“확 통발에 넣어서 가지고 가버린다.”

“그거 보쌈선언?”

“아니거든.”

원래 긍정덩어리 성격이었던 건지 무슨 말을 해도 긍정적으로 받아들이는 셸리였다.

셸리를 데리고 갑판 위로 올라간 로엘은 그녀를 내려놓았다.

셸리는 갑판 위에서 꼬리지느러미를 축 늘어뜨리며 숨을 골랐다.

“휴우, 아무튼 덕분에 살았어요. 어제부터 계속 크라켄한테 쫓기고 있었거든요.”

“어떻게 된 일인지 차근차근 설명해봐.”

“일단 로엘과 헤어진 후에 강을 따라 북해로 나갔죠. 하구에서 해달 무리를 만났는데 글쎄 요즘 사람들이 쓰레기를 너무 버려서 조개를 먹을 때마다......”

“불필요한 부분은 빼고 해저섬의 일이나 말해봐.”

“피, 로엘은 제가 어떻게 지냈는지 궁금하지 않아요? 성장해서 돌아오라 해놓곤.”

“전혀 성장하지 않았으니까 문제지.”

“알겠어요. 할 말은 많지만 나중에 하죠 뭐. 이차이차 저차저차 해서 해저섬까지 도착했는데 발광물방울이 안 올라오는 거예요. 이상해서 확인해봤는데 머맨들이 해저섬을 점령한 상태지 뭐예요.”

일반적으로 인어의 종류에는 여러 가지 종류가 있는데 머맨은 물고기의 꼬리라기보다 바다뱀의 꼬리를 지닌 남성 인어라 할 수 있었다.

물론 헤엄치는데에 있어선 세이렌, 머메이드, 듀공과 다를 바가 없지만 성격 면에서 다른 인어들보다 몇 배나 더 포악한 자들이었다.

현 용왕 블라스크가 즉위하기 전까진 수영능력을 이용한 해적질, 해변에 나온 인간여자납치, 무분별한 어선 습격 등을 일삼았다. 그러나 블라스크가 즉위하면서 인간 습격이 금지되었고, 머맨들은 그에 반발해 반란을 일으켰다가 실패하여 모두 추방당하게 되었다.

최근 200년 간 용왕의 시선을 피해 어둡고 습진 곳에서 간간이 해적질이나 하던 그들이 해저섬을 점령했다고 한다.

로엘은 셸리의 말에서 대강 사정을 파악했다.

“머맨들이 블루오션을 손에 넣었다 이거군.”

머맨들이 해저섬을 점령하고 블라스크를 제압하여 블루오션을 빼앗았다면 모든 게 들어맞는다.

머맨들은 블루오션을 이용해 바다 몬스터들로 하여금 인간을 습격하라 명령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게 끝이 아니었다.

셸리는 자신이 해저섬에서 본 것을 언급하였다.

“그것뿐만이 아니에요. 머맨들이 해저섬에 리바이어던들을 모으고 있어요.”

파도를 일으킨다는 고래 형상의 거대 몬스터 리바이어던.

그들을 집합시키고 있다는 게 의미하는 바는 매우 컸다.

한 마리만 있어도 해일급 파도를 일으킬 수 있는 몬스터다. 수십 마리가 모여 있다면 항구도시 하나쯤은 가볍게 물바다로 만들 수 있을 거다.

머맨들은 리바이어던을 이용해 해안도시들을 습격할 생각인 것이다.

태생적으로 인간을 싫어하는 작자들이니 충분히 가능한 발상이었다.

해저섬에서 가까운 나라는 겐크 왕국인데 겐크 왕국은 이제 빌로스의 영역이나 다름없으니 가만히 있을 순 없었다.

머맨들을 막으려면 일단 바다 속으로 들어갈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하다.

로엘은 먼저 마도섬에 가서 맥셀과 의논할 필요를 느꼈다.

“블린트!”

“네, 전하.”

“먼저 마도섬으로 가야해. 속도를 높일 수 있겠어?”

“최대한 속력을 내보겠습니다. 순풍만 계속 불어준다면 이틀 안에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럼 그리 해줘.”

“네!”

///

해저섬 안에 위치한 용왕의 용궁.

원래 블라스크가 앉아 있어야 한 비늘 왕좌에는 수염이 덥수룩하게 난 머맨이 앉아 있었다.

현재 머맨들을 이끌고 있는 호테우스란 자였다.

그는 원래 머맨들의 해적단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큰 스웜 해적단을 이끄는 자였는데 머맨들을 모두 통합하여 해저섬을 점령해버렸다.

호테우스는 이마에 박은 블루오션을 만지며 조소를 지어보였다.

“크크크, 블루오션을 달고 있는 기분이 이런 것이었군. 애지중지하던 블루오션을 빼앗긴 기분은 어떤가, 블라스크?”

비늘 왕좌가 있는 단상 아래에선 같은 머맨이나 인간을 사랑하는 머맨인 블라스크가 있었다.

블라스크는 마나봉인사슬에 묶인 채로 호테우스를 노려보았다.

“네 이놈. 애써 유지되어오던 인간과의 평화를 단숨에 무너뜨릴 생각인 것이냐.”

“어리석군, 블라스크. 인간이란 잘해주면 잘해줄수록 기어오르는 작자들이지. 바다에 비하면 얼마 되지도 않은 육지에 살고 있단 이유만으로 저희들이 세계의 주인인 양 행동하는데 그 꼴을 가만히 두고 볼 수만 있겠느냐.”

“육지와 바다는 별개의 영역이다. 네가 하려는 짓은 섭리를 거스르는 짓이야!”

호테우스가 단상에서 내려와 발로 블라스크의 머리를 짓밟았다.

블라스크가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즐기며 말하길.

“아직 자기 처지를 모르나 보군. 어제 네년의 딸이 기웃거리기에 크라켄을 보냈지. 조만간 네놈의 눈앞에서 네년의 딸을 욕보여주마. 크하하하, 아주 기대되는군.”

호테우스는 블라스크의 눈앞에서 그의 딸을 취할 생각에 기포가 생길 정도로 크게 웃었다.

그러나 그의 웃음소리는 오래 가지 못했다.

수하 한 명이 다가와서 유쾌하지 못한 소식을 전했기에.

“대장, 블라스크의 딸년을 잡으라고 보냈던 크라켄이 도리어 당했다고 합니다.”

“뭐라고? 딸년에게 크라켄을 죽일 힘은 없었을 텐데?”

“아무래도 인간의 도움을 받은 것 같습니다. 지금 블라스크의 딸을 태운 배가 마도섬으로 향하고 있다 합니다.”

“마도섬이라면 인간 마법사들의 섬 아니더냐. 감히 건방진 짓거리를 해주었군. 당장 리바이어던 부대를 그리로 보내라!”

“하지만 마도섬에는 7써클 마법사를 비롯해서 많은 마법사들이......”

“마법사만으로 물속의 리바이어던을 어찌할 수 있을 것 같으냐! 토 달지 말고 시키면 시키는대로 하란 말이다!”

“알겠습니다.”

수하가 부리나케 뱀꼬리를 흔들며 용궁 바깥으로 나갔다.

호테우스는 블라스크의 머리를 밟은 채로 연신 비웃음을 흘렸다.

“대륙을 뒤집기 전에 마탑부터 무너뜨리는 것도 나쁘지 않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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