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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73화 (73/219)

00073 3-7. 재정비 =========================

“아차, 그만 버릇대로 해버렸군. 충분히 힘을 발휘하게 해줘야하는데 깜빡했어. 이젠 충분히 검을 뻗을 때까지 기다려줄 테니 마음껏 기술을 펼쳐봐.”

카넨으로선 어이가 없었다.

지금까지도 봐준 게 아니었단 말인가.

아무리 로엘이 천재라 불린다 한들 카넨도 어릴 때부터 신동 소리 들어온 검술의 달인이었다.

게다가 힘이 모자란 것도 아니다.

같은 마나 마스터이지 않은가.

마나 운용능력과 상대의 수를 내다보는 능력.

이 두 가지 능력에서 차이가 나는 것이었다.

카넨은 충분히 검을 뻗는데도 여유롭게 막아내는 로엘을 보며 내심 놀랄 수밖에 없었다.

‘실력이 뛰어나신 건 알고 있었지만 실제로는 이만큼이나 차이가 났었구나. 하늘 위에 하늘이 있다더니......’

로엘은 몇 번 더 검을 받아내다가 카넨이 검을 당겼을 때 따라 들어가 그녀의 발목 언저리에 검을 대었다.

“아까부터 말하고 싶었는데. 5연속 베기 이후에 검을 되돌릴 때 너무 무방비야. 팔로 검을 당기는 게 아니라 허리로 검을 당겨야지. 실전이었으면 팔목이 날아갔어.”

이미 대부분의 인간들은 5연속 베기의 1~2단계 때 목이나 가슴을 베일 것이다.

대륙 내의 인간 중에서 지금의 카넨을 상대할 사람은 몇 명 없을 텐데도 로엘은 초짜를 가르치는 양 엄격하게 지적해주었다.

카넨은 지적을 받자마자 부끄러움을 느낄 수밖에 없었다.

‘내 검술은 허점투성이였구나. 이런 내가 킬더 왕국의 최고 검사라 불리니까 킬더 왕국이 약소국이라도 무시당한 거겠지. 좀 더 정진했어야 하는데 너무 게을렀어.’

킬더 왕국 로즈 기사단이 들으면 학을 뗄 얘기였다.

킬더 왕국 내에서 카넨 만큼 스스로에게 혹독한 수련을 부여하는 검사는 없었기 때문이다.

그런 카넨이 부끄러움을 느끼게 할 만큼 로엘의 검술은 완성형에 가까웠다.

하늘을 날 수 있는 능력만 있다면 베나티아도 이길 수 있는 그런 실력이었다.

로엘은 카넨의 손목에서 검을 떼내며 몇 걸음 더 물러나주었다.

“지금 마나 상태는 어때?”

“슬슬 조금씩 꼬이고 있어요.”

“정확히 어떤 부분이 꼬이려 하는지 말해줘.”

“양쪽 발목이랑 등허리 부분이요.”

“검 쓸 때 활용하지 않는 부분이군. 역시 일반 검으로 싸우는 것에 익숙하지 않아서 그런 것 같아. 선혈의 장미를 쓸 땐 검이 억지로 몸 전체를 활성화시키니까 괜찮았던 거겠지.”

“전하의 진단이 맞는 것 같아요.”

“일단 1시간 휴식 후에 다시 하도록 하자.”

“1시간씩은 너무 길지 않을까요?”

“마나가 꼬일 것 같으니까 약을 먹어두는 게 좋아. 약효가 돌려면 시간이 필요하니까 1시간 텀은 둬야겠지. 조급해하지마. 카넨 정도의 실력자라면 이번 휴가 안에 문제를 해결해낼 수 있을 거야.”

휴식시간을 설정하는 것까지 배려하는 세심함을 내비치는 로엘이었다.

카넨은 검에 부여한 마나를 회수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

빌로스 왕궁 안의 의무부 안.

오늘도 메델은 개인연구를 하느라 늦게까지 남아있었다.

다른 의원들도 메델의 열정을 본받아 대다수가 남아 있는 상황이었다.

겐크 왕국이 3공국으로 분할되면서 대륙 북쪽에서만 나는 진귀한 약초들을 쉽게 얻을 수가 있었다.

의무부 약제실에 새 약초들을 가공하여 만든 약품이 병에 담겨 차곡차곡 선반 위에 올려졌다.

메델은 얼마 전에 만든 샘플 하나를 찾으러 약제실에 들렀다.

라벨 붙은 약병을 하나하나 살펴보던 메델이 고개를 갸웃거리며 약제실 담당 의원에게 말을 걸었다.

“내가 여기 놓아두었던 신약 샘플 못 봤나?”

의원들이 퇴근하지 않아 자신도 퇴근을 하지 못해 꾸벅꾸벅 졸던 의원이 정신을 차리며 선반을 훑어보았다.

“어떤 약품 말하시는 겁니까?”

“그 왜 내가 어제 만들어서 놔둔 샘플 있잖나. 마나를 무시하고 작용하는 미약 말일세.”

약제실 담당 의원이 보관내역을 뒤적거리며 고개를 저었다.

“그런 물품은 넣은 적 없습니다.”

“넣은 적이 없다니! 내가 자네에게 특별히 맡겼지 않나!”

“여기 내역을 보십시오. 어제 의원님이 맡기신 약병에는 마나억제제란 라벨이 붙어 있었습니다. 내역서에도 의원님이 직접 적으셨고요.”

“엉? 이게 왜 여기 적혀 있어? 카넨 경에게 주려던 약품이었는데?”

사흘 전, 카넨이 자신의 증상을 말하며 약을 만들어 줄 수 없겠냐고 부탁을 해왔었다.

메델은 마나억제제가 유용할 거라 여겨 이틀만 기다려 달라 했고, 어제 마나억제제가 완성되어 카넨에게 넘겨줬었다.

그때는 라벨을 붙이지 않고 바로 넘겨줬는데 이전에 만들어놓은 신약을 착각하고 잘못 건네준 모양이었다.

메델은 이마를 치며 곤란함에 휩싸였다.

“이거 큰일 났구먼. 카넨 경은 지금 어디 있나?”

“로엘 전하를 따라 임모벨 영지에 가셨습니다.”

“당장 말을 준비해주게. 난 레이아 공주님께 가서 드라고라의 혈청을 빌려오겠네.”

마나를 무시하고 적용되는 미약이라 마나 마스터라도 효과가 적용되겠지만, 드라고라의 혈청은 물건 자체가 모든 독을 해독하는지라 미약의 효과를 없애줄 것이다.

메델은 쓸데없는 오해가 없도록 적당한 변명거리를 생각해내며 레이아의 별궁으로 향했다.

“연구 목적으로 빌린다고 해야겠군.”

///

첫날 수련 이후 카넨의 상태는 눈에 띠게 좋아졌다.

카넨이라면 충분히 금방 좋아질 수 있을 거란 로엘의 말과 같이 이튿날 오후부터 서서히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2시간 수련, 1시간 휴식 로테이션으로 4번째 대련을 하는 중이었다.

쩌엉!

별안간 살얼음을 밟은 듯한 파열음이 울려 퍼지더니 로엘이 한 걸음 물러났다.

카넨의 상단베기를 막다가 갑자기 그녀의 검이 더욱 강한 빛을 발하는가 싶더니 생긴 일이었다.

카넨이 냉기 마나를 제대로 다룰 수 있게 되었다는 증거였다.

카넨도 자신이 이만한 힘을 낼 줄은 몰랐는지 연계를 이어나가지 못하고 멍하니 서있었다.

로엘은 팔을 뻗어 마나 블레이드로 카넨의 검을 옆으로 밀쳐낸 후 마나를 거두면서 검면으로 카넨의 머리를 장난스레 두드렸다.

“아직 끝난 게 아닌데 방심하면 안 되지.”

“아, 죄송합니다. 설마 전하께서 밀려나실 줄은 몰랐어요.”

“오호, 엄청난 자신감인데?”

“아뇨, 그게 아니라... 죄송합니다.”

“장난으로 한 말이야. 사과할 거 없어.”

“그렇군요. 죄송합니다.”

“사과할 거 없다니까. 설마 일부러 그러는 건 아니지?”

“전혀 아닙니다. 그럴 리가 없잖습니까.”

로엘과 있는 내내 계속 긴장하고 있어서 농담으로 분위기를 풀어보려 하는데도 먹히지가 않았다.

아무리 카넨이 바른생활여인이라지만 공식선상이 아닌 사적인 자리에서까지 너무 딱딱하게 구는 게 아닌가 싶었다.

엘로나의 말에 의하면 엘로나와 카넨 둘이 있을 때는 때때로 긴장을 푼다고 하는데 로엘 앞에선 절대 긴장을 풀지 않고 있었다.

함께한 시간이 길지 않아서 그런 걸까.

가만히 생각하던 차에 로엘은 카넨이 긴장감을 유지하는 이유를 알아냈다.

“설마 서큐버스 가호 때문에 계속 긴장하고 있던 거야?”

정곡을 찔렸는지 카넨이 크게 숨을 들이켰다가 내쉬었다.

하얀 입김이 그녀의 타들어가는 마음을 대변하듯 길게 뿜어져 나왔다.

“후우, 역시 모르고 계셨나 보네요.”

사정을 알고 나니 카넨이 얼마나 복잡한 상황에 놓여 있는지 알 수 있었다.

마나를 안정시키기 위해선 로엘의 도움이 필요하고, 그러자니 멋쟁이 재밍 때문에 로엘에게 자꾸 끌리고, 로엘은 그것도 모르고 자꾸만 세심하게 배려해주니 멋쟁이 재밍을 떠나 설렐 수밖에 없고.

스스로는 쟁쟁한 여인들이 붙어 있는데 감히 돌싱 따위가 어딜 끼어들겠냐며 자괴감 느끼고 있을 거고.

로엘은 무안함에 콧등을 긁적였다.

“무신경하게 굴어서 미안했어.”

“아뇨, 전하의 잘못이 아닙니다.”

“아예 지금부턴 못되게 굴어줄까? 차라리 속으로 욕할 수라도 있으면 멋쟁이 재밍이 덜할 거 아냐.”

“아마 소용없을 것 같습니다만... 제가 전하를 미워할 수 있을 리 있겠습니까.”

가만 보면 카넨도 참 고지식하다.

그런 점 때문에 스스로에게 시련이 될 줄 알면서도 로엘에게 부탁을 해온 거겠지만.

로엘은 검에 다시 마나 블레이드를 씌워내며 말했다.

“잡념이 있을 땐 움직이는 게 최고지. 슬슬 효과가 나타나고 있으니까 수련강도를 높이겠어. 괜찮지?”

“네, 잘 부탁드립니다.”

곧바로 로엘과 카넨의 마나 블레이드가 부딪치면서 그 여파로 인해 발밑의 자갈들이 한껏 퍼져나갔다.

///

에메랄드 산맥의 황혼 계곡 안.

구 겐크 왕국에선 절대로 들어가선 안 되는 금지구역이나 마찬가지인 곳이었다.

왜냐하면 황혼 계곡 안에 그린 드래곤 둠러스의 레어가 있었기 때문이다.

황혼 계곡 안에 기둥을 세워 만든 저택급 건물 안에서 녹색 머리카락을 가진 화려한 미남자가 걷고 있었다.

7000년을 산 에이션트 드래곤 둠러스.

그는 창고 안으로 들어가 끝도 없이 늘어서 있는 선반에서 몇몇 술을 집어 들었다. 그가 용마전쟁 이전에 담가놓은 독한 담금주들이었다.

둠러스는 담금주 몇 병을 빼내어 레어 중앙을 가로질렀다.

건물 안임에도 불구하고 바닥에는 온갖 풀들이 가득 자라있었다.

언뜻 보면 잡초처럼 보이지만 전부 진귀한 약초들이었다.

술병을 안은 채로 걷던 둠러스는 어느 방 안에 들어갔다.

방 안의 테이블 옆에는 날개 달린 여인 한 명이 앉아있었다.

이미 테이블 위에는 빈 병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지만 두 사람 다 술자리를 파할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둠러스는 새로운 술병을 열며 이전에 하던 이야기를 이어서 계속했다.

“낄낄낄, 그래서 너 때문에 한 마을이 여자 마을이 됐다고? 하여간 너희들 마족들은 가만히 있어도 민폐구만.”

둠러스를 찾아온 여인, 서큐버스 퀸 베르나트는 술잔을 채우며 능청스럽게 어깨를 으쓱였다.

“태어나길 그리 태어난 걸 어쩌겠어. 그래도 난 고의로 한 게 아니라고.”

“그나저나 이상하구만. 웜급 드래곤도 함부로 손대기 힘든 서큐버스 퀸을 봉인한 자라... 에이션트급이 아니면 힘든 일이잖아. 이제 남은 에이션트급은 나밖에 없고.”

“고민해봤자 뭐하겠어. 무사히 풀려났으면 된 거지 뭐. 그나저나 계속 로드의 레어를 사용할 생각이야?”

현재 둠러스의 레어는 드래곤 로드만이 쓸 수 있는 레어로 베르나트가 사랑했던 이전 로드의 레어이기도 했다.

이전 로드의 레어에서 남은 생을 보내려 했는데 둠러스가 거주하고 있어 베르나트로선 고민할 수밖에 없었다.

둠러스는 손을 휘휘 저으며 말했다.

“한동안 유희나 다녀올까 해. 그동안 네가 쓰고 있어.”

“그렇다면 고맙게 쓰고 있도록 할게.”

“그나저나 봉인 풀어준 남자한테 가호 집어넣었다며? 너무 위험한 거 아냐? 그러다 지속흡수능력이 각성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그래?”

“괜찮아괜찮아. 서큐버스 계열의 여자랑 관계를 맺어야 각성하는 능력이니까. 지금 대륙에 있는 서큐버스는 나뿐이고.”

“그건 아니지. 네 영향을 받은 여자들도 하위 서큐버스의 일종이라 봐야하지 않겠어? 로엘이란 녀석이 그녀 중에 한 명이라도 관계를 맺으면 능력이 각성할 걸?”

“에이, 그렇게 마구잡이로 관계 맺는 놈은 아니니까 괜찮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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