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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65화 (65/219)

00065 3-6. 그래도 그란데 백작은 그란데 백작이다 =========================

3-6. 그래도 그란데 백작은 그란데 백작이다

겐크 왕국 서쪽에 위치하여 서쪽 국경을 따라 주욱 늘어서 있는 에메랄드 산맥.

에메랄드 산맥의 북쪽지대에 있는 루나틱 숲 한가운데에 그란데 백작이 나무등걸에 기대어 앉아있었다.

그란데 백작은 주머니에 남은 담뱃잎을 꺼내어 짧은 곰방대에 우겨넣었다.

한 개피 남은 성냥으로 불을 붙여 연기를 한 모금 빨아들였다.

연기가 폐부에 스며들면서 나른한 기분이 들었다.

전방의 숲 사이에선 수십 개의 횃불이 아른거리고 있었다.

그란데 백작이 내뿜는 연기가 한숨을 형상화한 듯 아스라이 퍼졌다.

“조금도 쉬게 해주질 않는군.”

사건은 사흘 전에 발생하였다.

사흘 전, 그란데 백작은 군비축소위원회의 업무 일환으로 에메랄드 산맥에 위치한 겐크 성벽을 하나하나 심사하는 중이었었다.

그런데 갑자기 겐크 왕국의 기사와 병사들이 들이닥쳐 군비축소위원회를 체포하려 들었다.

체포하러 온 자들은 겐크 왕국 서쪽을 다스리는 뭉크 공작 휘하의 라이닝 기사단이었다.

겐크 왕국이 브리튼 교의 파문을 각오하고 전쟁준비를 하고 있으니 브리튼 교 소속인 군비축소위원회를 제거하러 온 것이었다.

특히 마나 익스퍼트인 그란데 백작을 제거할 수 있는 기회이기도 한지라 똑같은 마나 익스퍼트인 뭉크 공작이 직접 기사단을 지휘하여 그란데 백작의 목을 치려했었다.

그 뒤로 어떻게 됐냐고?

그란데 백작이 살아있다는 것만으로도 설명은 충분할 거다.

그래도 보충을 하자면 그란데 백작은 덤벼오는 뭉크 공작의 오른쪽 눈을 벤 후 포위망을 뚫고 나와 도주길에 올랐다.

어차피 뭉크 공작의 목표는 그란데 백작 사살이기 때문에 도주하는 동안 군비축소위원회 소속 사람들을 하나둘씩 겐크 왕국 북쪽, 동쪽, 남쪽으로 보냈다.

그 뒤에 홀로 남아 에메랄드 산맥을 타기 시작하여 지금에 이르게 된 것이었다.

사흘 동안 벌인 전투만 하더라도 십 수 번.

그란데 백작 혼자 베어낸 기사의 숫자만 9명.

베어낸 병사는 60명.

그럼에도 아직 30명에 달하는 기사와 500명의 병사가 그란데 백작을 쫓아오고 있었다.

마나는 거의 바닥났고, 몸 곳곳에 검상이 남아있지만 일어날 수밖에 없었다.

그란데 백작은 검을 지팡이 삼아 일어나며 곰방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그리고는 검에 마나 블레이드를 덧씌우며 좌측을 베었다.

서걱!

그란데 백작을 기습하려던 병사 한 명이 들고 있던 창과 함께 두 동강 나며 피를 뿜었다.

기습이 실패하자마자 사방에서 함성 소리가 들려왔다.

“놈이 알아차렸다! 전원 사방에서 공격해라!”

“와아아!”

사방에서 죄여오는 기사 및 병사들의 공격에 그란데 백작이 검을 양손으로 쥐며 정자세를 갖췄다.

그가 검을 휘두른 방향은 전방도, 측면도 아닌 후방이었다.

그란데 백작은 적이 한 점에 모이는 때를 기다려 후방의 거목을 베어냈다.

우드드득! 쿵!

거목이 뒤쪽으로 넘어지면서 뒤쪽에서 죄여오던 병사들이 나무에 깔리거나 피하느라 진영이 흐트러졌다.

그란데 백작은 나무밑동을 밟고 높이 뛰어 흐트러진 진영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앗!”

“크아악!”

“놈을 막... 아악!”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병사건 기사건 한 명씩 인원이 줄어들었다.

삽시간에 다섯 명이 쓰러지면서 포위망 한 구석에 틈이 생겨났다.

그 틈을 놓칠 그란데 백작이 아니었다.

그란데 백작은 벌어진 틈을 통해 포위망을 뚫고 나오며 나무 사이로 번쩍 뛰어 들어갔다.

아까 나무 너머에 바로 절벽이 있으며 절벽 아래에 깊은 연못이 있는 걸 봐두었기에 일부러 다이빙하듯 높이 뛴 것이었다.

그란데 백작의 몸이 허공에 뜨는가 싶더니 빠르게 아래로 낙하하며 깊은 연못물에 빠졌다.

풍덩!

높이가 상당한 절벽이었던지라 깊은 곳까지 몸이 가라앉았다가 다시 떠올랐다.

차가운 물이 검상에 스며들어 쓰라림이 가중되었지만 그란데 백작은 이를 악물며 연못에서 빠져나왔다.

절벽 위에서 추격대가 화살을 날릴까 싶어 젖은 몸을 이끌고 엄폐물 뒤에 숨었는데 이상하게도 화살은커녕 쫓으라는 외침 한 조각조차 들리지 않았다.

그란데 백작은 김이 서린 숨을 뿜어내며 중얼거렸다.

“뭔가 있는 거군.”

추격대가 다급해하지 않을 때는 그만한 이유가 있는 거다.

타겟이 가는 방향이 막다른 길이거나, 아니면 미리 덫을 쳐두었거나.

아니나 다를까 그란데 백작이 연못에 뛰어들 걸 예상이라도 한 듯 몇몇 사내가 어두운 나무 그늘에서 걸어 나왔다.

라이닝 기사단 소속 기사들이었다.

걔 중에는 안대를 낀 뭉크 공작도 섞여 있었다.

뭉크 공작이 자신의 무기인 철제 메이스를 곤봉 다루듯 빙글 돌리며 조롱을 날렸다.

“과연 빌로스 최고의 검사라 할 만하군. 네놈 하나에 이리 애를 먹을 줄이야. 하지만 지겨운 추격전도 이제는 끝이다.”

방금 포위망을 뚫을 때 마나를 써버려서 마나량이 완전 바닥을 치고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한다 해도 유지시간은 고작 5분 내외이리라.

반면 뭉크 공작은 수하들을 소모하여 그란데 백작의 힘을 빼놓았기 때문에 정작 본인은 충분히 회복한 후였다.

누가 봐도 절체절명의 상황이나 그란데 백작은 믿는 구석이라도 있는 양 세게 나갔다.

“끝이긴 하겠지. 오늘은 눈 하나가 아니라 목이 날아갈 테니까.”

떡하니 되받아치는 말에 뭉크 공작이 여유를 잃고 발끈하였다.

유리한 쪽은 자신인데도 말이다.

“네놈이 그리 자랑하던 로엘 국왕도 한낱 재가 되었거늘 무엇을 믿고 이리도 당당한 것이냐!”

그란데 백작은 눈 하나 깜빡하지 않고 뭉크 공작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뭉크 공작으로선 상대가 사정거리 안에 들어왔음에도 불구하고 냉정을 유지하지 못한 게 화근이 되고 말았다.

뭉크 공작의 반응이 아주 잠깐 늦어진 사이 그란데 백작의 검이 푸른빛을 뿜어냈다.

푸쉭!

그란데 백작의 마나 블레이드가 아직 마나 메이스를 부여 받지 못한 철제 메이스를 잘라내며 뭉크 공작의 손목을 앗아냈다.

체력이 충분했다면 뭉크 공작의 가슴까지 검을 뻗어냈겠지만 역시나 체력이 너무 소모되어 거기까진 무리였다.

뭉크 공작이 잘린 손목을 부여잡으며 욕지거리를 내뱉었다.

“망자의 신하 주제에 감히! 앞으로 대륙은 겐크 왕국이 지배할 것이다! 네놈 따위가 뭘 할 수 있다 생각하느냐!”

기사들이 뭉크 공작을 지키려고 나섰으나 그란데 백작은 남은 마나를 모조리 쥐어짜내어 낭비에 아까운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그러면서 살기등등한 눈빛으로 뭉크 공작을 보며 말하길.

“뭉크 공작. 네놈은 두 번의 망발을 지껄였다.”

난 아직 마나가 많이 남아있다.

네놈들 따윈 단숨에 베어버리고도 남으니 길을 터라는 의미를 담은 혼신의 블러핑이었다.

그란데 백작의 기백에 밀린 기사들이 저도 모르게 두세 걸음씩 물러나고 말았다.

안 그래도 마나 익스퍼트 중에서도 상위 세 손가락에 안에 든다 평가 받는 그란데 백작이다.

같은 마나 익스퍼트라도 뭉크 공작보다 반 수 이상 강한 실력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란데 백작이 혼을 실은 기백을 내뿜고 있는데 어느 누가 물러나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란데 백작은 뭉크 공작에 한 걸음 다가가며.

“하나는 감히 나 따위를 빌로스 최고의 검사라 칭한 것이고.”

두 걸음 다가서며.

“또 하나는 내 주군을 모욕한 것이다.”

그란데 백작이 마나 블레이드 깃든 검으로 뭉크 공작의 가슴을 찔렀다.

차캉!

마나 블레이드라면 풀 플레이트 아머를 꿰뚫고도 남을 터이나 그러지 못하고 튕겨 나왔다.

간발의 차로 마나가 모두 소진되어 마나 블레이드가 풀린 것이었다.

앞으로 1초.

단 1초만 더 지속되어 주었더라면......

그란데 백작의 마지막 노림수가 수포로 돌아가면서 뭉크 공작이 자신감을 되찾았다.

뭉크 공작은 방금까지 기겁했던 걸 손바닥 뒤집듯 싹 바꾸며 그란데 백작을 비웃었다.

“크하하! 잘난 척 지껄이더니 허세였나 보군. 그래, 내 눈과 손목을 앗아갈 수준은 되는 사내였다. 후에 네놈의 아내를 밑에 깔고 그리 말해주겠노라, 캬하하!”

그란데 백작의 기백이 사라지면서 쫄아 있던 기사들도 압박감에서 풀려났다.

뭉크 공작은 대륙 세 손가락 안에 드는 검사의 목을 직접 치기 위해 기사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놈을 붙잡아 대가리를 내밀게 만들어라! 내 직접 놈의 목을 쳐서 서쪽 선봉대의 깃발 위에 꽂아 놓겠다!”

뒤늦게 저체온증까지 찾아들면서 그란데 백작에겐 저항할 기력조차 남지 않게 되었다.

라이닝 기사들이 그란데 백작을 붙잡아 무릎 꿇리려 하였다.

죽느니 주군 이외에는 무릎 꿇지 않겠다.

그러한 일념으로 버티려 했으나 그마저도 여의치 않던 때에.

하늘에서 중후한 바람소리가 일더니 위대한 존재가 떨어져 내려 육중한 발로 뭉크 공작을 깔아뭉갰다.

쿠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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