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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63화 (63/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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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 육식계 드래곤

로엘은 카넨의 몸 주변을 휘감고 있는 기운을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풍겨오는 느낌만 놓고 보면 마나로 추정되는 기운이었다.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시리가 서리 앉은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그 아이가 떨어져 내린 곳이 하필이면 공물수레 위였어.”

“공물수레?”

“프로즌 마운틴 정상에 계시는 블루 드래곤 베나티아 님께 바칠 빙결주를 실은 수레였는데 그 아이가 떨어져 내리면서 와장창했지. 술은 죄다 그 아이가 뒤집어썼고.”

시리의 말에 의하면 빙결주는 프로즌 마운틴에서만 자라는 귀한 약초들을 담가 만든 술이라 한다. 그러나 말이 술이지 각종 약초가 담고 있는 마나와 설인 특유의 발효법으로 담가서 인간 입장에선 액체를 빙자한 마나 용액이나 마찬가지였다.

보통 빙결주 한 병에 30년치 마나가 녹아들어 있는데 카넨이 공간이동으로 떨어졌을 때 6병이 담긴 상자 위로 떨어지면서 병이 모두 깨져버렸다고 한다. 더불어 카넨이 6병치 술을 모두 뒤집어쓰면서 180년치 마나가 카넨에게 깃들게 되었다.

인간들이 사용하는 마나랑 달리 마나 자체에 냉기 속성이 깃들어 있어 하얀색을 띠는 것이었다. 원래라면 감당키 어려운 마나가 몸속에 들어오면 마나폭주가 일어나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지만 일반 마나랑 달라서인지 아직 별다른 이상은 없어보였다.

그러나 이어지는 시리의 말이 로엘을 움직이게 만들었다.

“보기에는 자는 것처럼 보이지만 얼른 기운을 흡수하지 못하면 얼어붙고 말 거야. 마나흡수를 도와주고 싶지만 우리 마을엔 그럴 만한 실력자가 없어.”

블루 드래곤에게 바칠 귀중한 공물을 깨부쉈지만 이미 부서진 건 부서진 거고 사람 목숨은 그것과 별개이니 도와줄 수 없어 곤란하다 말한 것이었다.

로엘은 팔을 걷어붙이며 시리와 츄보를 뒤로 물러나게 하였다.

“지금부터 마나를 흡수할 수 있게 간섭할 테니 아무도 들어오지 못하게 하세요.”

“실력은 충분해?”

마나운용 실력을 묻는 말에 로엘이 피식 웃으며 대답했다.

“적어도 인간 중에선 상위권에 속합니다.”

로엘이 손을 뻗어 카넨의 가슴에 손을 얹었다.

보기와 달리 제법 뭉클한 감촉이 손 안 가득 들어왔다.

그러나 그를 감상할 여유따윈 없었다.

카넨의 몸에 둘러진 냉기의 마나가 로엘을 거부하듯 로엘의 손을 얼려버리려 하였다.

로엘은 손부터 시작하여 팔 전체에 마나를 두르며 마나전이를 시행했다.

로엘의 마나가 카넨의 몸속에 들어들어갔다.

마나를 투입하자마자 카넨의 몸속을 표류하던 막대한 마나가 공공의 적이라도 만난 양 저희들끼리 규합하여 로엘의 마나를 밀어내려 하였다.

로엘은 힘으로 카넨의 마나를 누르는 대신 자신의 마나를 미끼삼아 카넨의 몸속에 뚫려 있는 마나회로로 냉기 마나를 유도했다.

냉기 마나가 방금까지 길이 없는 오프로드를 달리고 있었다면 지금은 마차전용도로에 올라선 거나 다름없었다.

냉기 마나는 속도를 달리하여 빠르게 로엘의 마나에게 달려들었다.

여기서 로엘의 마나가 따라잡히게 되면 카넨의 몸속에서 두 개의 이질적인 기운이 충돌하여 카넨을 물론 로엘까지 위험한 상태에 빠져버린다.

사람마다 체형이 다르듯 마나회로도 각 구간의 길이나 휘어져 있는 방향이 다른 터라 타인의 몸속에서 마나를 빠르게 움직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그러나 지금 마나운용을 하는 게 누구라 생각하는가.

로엘의 마나는 카넨이 지닌 마나회로를 유려하게 주파하여 상체에서 하체, 다시 하체에서 상체로 마나를 한 바퀴 돌렸다.

원래 있던 카넨의 60년치 마나에 180년치 마나를 합쳐 총 240년치 마나가 로엘의 마나를 쫓아다녔다.

240년치 마나 중 60년치 마나는 원래 있어야 할 자리에 안착했으나 나머지 180년치 마나가 문제였다.

일단 마나 익스퍼트가 되면 마나저장량이 200년치까지 늘어나니 나머지 180년치 중 140년치를 흡수시킬 수 있다. 그러나 그러려면 마나를 기체화하여 인식하는 느낌이 필요하다.

그를 행할 카넨 본인이 의식을 잃어 일반적인 방법을 행할 수가 없었다.

로엘은 계속해서 180년치 마나를 끌고 다니며 머리를 굴렸다.

‘잠깐, 굳이 마나 익스퍼트 단계를 거칠 필요가 있나? 마나 마스터 단계로 바로 갈 순 없을까?’

마나유저니 마나 익스퍼트니, 마나 마스터니 하는 것들 전부 인간이 정해놓은 단계일 뿐이다.

강함의 차이 때문에 단계를 만들어 놓은 거지 조건만 만족한다면 굳이 단계를 거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시도 해볼 만한 가치는 있었다.

로엘은 냉기 마나를 카넨의 머리로 유인했다. 그러면서 안착시켜놓았던 카넨의 마나까지 도로 유인하여 다시 240년치 마나가 움직이기 시작했다.

먼저 로엘의 마나가 머리로 가는 길을 미세하게 뚫어놓으면 카넨의 마나가 따라 들어오며 길을 넓혔고, 냉기 마나가 그 길을 통해 추격해왔다.

예전에 로엘이 마나 마스터가 되었을 때의 감각을 되살리며 정수리에 닿기 직전에 아슬아슬하게 진로를 우회하여 머리에 원형 마나회로가 깔리게 하였다.

그러자 카넨의 몸에 변화가 일어났다.

그녀의 몸 안에 쌓여 있던 노폐물이 모공을 통해 배출되었고, 여자치곤 다소 다부진 체격이 재형성되면서 여성스러운 체격으로 바뀌었다.

다소 왜소해진 것처럼 보이기도 했지만 그게 마나 마스터로서 최적의 모습이었기 때문에 그리 변한 것이리라.

냉기 마나의 효과인지 피부는 눈이 내려앉은 듯 새하얬으며 머리카락도 하얗게 물들기는 했는데 노인의 백발이 아닌 흰여우를 연상케 하는 윤기 나는 백발이었다.

원래의 카넨이 갈색 늑대였다면 지금의 카넨은 한 마리의 흰여우라 할 수 있었다.

마나를 흡수하면서 안정을 되찾은 카넨이 눈꺼풀을 파르르 떨며 눈을 떴다.

로엘은 한시름 놓으며 차가운 얼음바닥에 엉덩이를 깔고 앉았다.

“후우, 어떻게든 잘 됐네. 기분은 어때?”

“네? 뭐가 뭔지 잘......”

이제 막 의식을 되찾아 어리둥절해 하는 카넨을 위해 시리가 얼음거울을 들이밀었다.

얼음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 카넨은 한참 동안 멍하니 있다가 자신의 얼굴을 매만졌다.

“어? 어라? 어?”

본인도 무슨 반응을 해야 할지 몰라 당황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로엘은 아무 것도 모르는 카넨을 위해 모든 걸 설명해주었다.

공간이동을 한 것부터 카넨을 마나 마스터의 경지로 끌어올려준 것까지.

항상 인스턴트 마나 익스퍼트란 소리를 들어야 했던 카넨은 감격에 겨워 무릎을 꿇었다.

“평생 갚지 못할 큰 은혜를 입게 되었습니다. 정말 이 은혜를 어찌 갚아야 할지......”

“기왕 얻게 된 힘이니 엘로나를 위해 쓰도록 해.”

“그거야 당연한 것이고 로엘 전하를 위해서도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원하신다면 이 몸을 마음대로 하셔도......”

“하하, 기껏 기분전환이 되었는데 그런 소리하지마. 안 좋은 일을 겪은 직후잖아.”

새 것이나 다름없는 육체가 되었다지만 굳이 지금 은혜 갚기에 급급할 필요는 없었다.

아직 해결해야 할 문제가 남아 있었기에.

시린이 두 사람의 대화에 끼어들며 문제를 상기시켰다.

“감격하고 있는 와중에 미안한데 아직 공물문제가 남아있어.”

“그렇죠. 블루 드래곤이 베나티아 님이라 했던가요?”

“맞아. 3000년을 사신 웜급 드래곤이시지.”

드래곤.

신이 보낸 인간계의 파수꾼이자 1만년의 수명을 지니며 각종 마법에 능한데다 그 어떠한 검과 마법도 모두 막아낸다는 비늘을 가진 존재.

용마전쟁 때 대다수가 사망하였으며 남은 드래곤들은 자신의 레어에 틀어박혀 빈둥... 아니 보충의 시간을 가지고 있다고 한다.

드래곤의 경우 나이를 들수록 강해지는데 0~500년은 헤즐링, 500~5000년은 웜급, 5000~10000년은 에이션트급이라 불리운다.

에이션트급이 되면 말 한 마디로 억지를 강행하는 언령이란 능력을 가지게 되어 사실상 인간의 인지를 아득히 뛰어넘은 존재가 된다고 보면 된다.

스카이 마운틴에 사는 블루 드래곤 베나티아는 웜급 드래곤으로 언령을 쓸 수 있는 나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인간이 감히 범접할 수 없는 존재임은 분명했다.

웜급 드래곤의 드래곤 브레스는 한 방에 일국의 수도를 몰살시킬 수 있다하니 말이다.

오랫동안 레어에만 박혀 설인과 설녀들에게 달리 요구하는 것 없이 조용히 지내온 베나티아이나 이번에 손님이 찾아왔다며 설인과 설녀들에게 술과 안주를 공물로 올리란 명령을 내렸다.

그래서 각 마을에서 고르고 고른 술과 안줏거리를 이 마을에 모아 실어 나를 예정이었는데 카넨이 수레를 박살내버린 거다.

시리는 카넨이 일어서면서 비게 된 눈침대에 자신이 엉덩이를 걸치며 말했다.

“베나티아 님은 미식가야. 빙결주가 제대로 완성된 건 오랜만이라 매우 기대하고 계셨는데 그 여자가 홀라당 뒤집어썼으니 어떻게 나오실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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