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56화 (56/219)

00056 3-2. 누가 누굴 꼬셔? =========================

로엘의 멋쟁이 재밍에 걸린 셸리는 뭍에 올라온 이유도, 겐크 왕국을 도울 필요도 전부 버린지 오래였다.

혹여나 잘못을 묻는다 하더라도 이런 식으로 물어선 안 되는 것이었다.

그녀의 처분은 원흉인 겐크 왕국과의 관계정리 이후에 행해도 늦지 않았다.

로엘은 겐크 왕국과의 관계정리가 우선이라는 것을 인식시키려 했으나 루드르가 로엘의 손을 강하게 뿌리쳤다. 그리곤 어이없게도 이번에는 로엘에게 불쾌함을 드러냈다.

“네놈은 또 뭐냐! 인간 놈이 감히 이 드워프 왕에게 손을 댄 것이냐!”

자기를 구해준 게 로엘임을 모르는 것도 아닌데 감사는 못할망정 화를 내고 있었다.

마치 다른 이가 자신을 구해주는 건 당연한 일이라 여기는 것처럼 말이다.

황금밖에 모르는 띨띨한 왕이라더니 그 말이 사실인 모양이었다.

“빌로스의 국왕 엘리오스 킨 로엘이다. 네게 놈 소리 들을 이유는 없다 생각하는데?”

“인간 나라의 국왕이었나? 마침 잘 됐군. 겐크 왕국을 머저리들에게 선전포고를 할 테니 이 몸을 도와라. 5왕국에 포함된 국가의 왕이라면 중립협정을 모르지 않겠지?”

중립협정은 협정 초기에 능력이 악용될 수 있으나 그 세력이 약해 보호가 필요한 곳을 도와주기 위해 만든 제도였다.

그런데 그걸 마음에 안 드는 국가를 멸망시키기 위한 수단으로 쓰려는 것이다.

대륙통일의 야심을 대놓고 드러내는 겐크 왕국조차도 중립협정을 이용하는 머저리 같은 짓은 하지 않는다.

중립협정을 이용해 상대 국가를 멸망시키고 그를 기반으로 통일한다해도 거기에 명예따윈 없기에.

음유시인들은 해당 국가가 통일한 게 아니라 중립협정이 통일했다고 읊을 것이기에.

특히나 전쟁이 벌어지지 않기에 움직이는 로엘 입장에선 루드르의 모습이 한없이 꼴사나워 보였다.

로엘은 자신을 향해 침을 튀기며 펄펄 날뛰고 있는 루드르를 한심한 눈빛으로 내려다보았다. 그리곤 경고 한 마디 없이 곧장 검집으로 루드르의 얼굴을 후려쳤다.

빠각!

강하게 휘둘러진 검집은 루드르의 앞니를 부러뜨리며 그를 뒤로 튕겨냈다.

얻어맞을 줄은 꿈에도 몰랐는지 루드르가 욱신거리는 입가를 매만지며 멍한 표정을 지었다.

이내 곧 루드르는 자신이 맞은 게 현실임을 자각하며 욕지거리를 내뱉으려 했다.

그러나 그가 말을 내뱉기도 전에 로엘이 검을 뽑아 목에 들이대었다.

“황금에 미친 아둔한 루드르야. 네놈은 스스로를 왕이라 칭할 자격도 없어.”

“무, 무슨 개소리를 지껄......”

서걱!

로엘의 검끝이 루드르의 수염 일부를 잘라냈다.

나풀거리는 수염을 보며 루드르가 섬뜩함에 잠겨 말을 잇지 못했다.

그의 말이 멎은 사이 로엘이 말하길.

“왕이면 모든 게 허용될 거라 생각하나? 그대는 세이렌의 유혹에 빠지기 전에도 이미 황금에 미쳐 장인들에게 무리한 업무량을 요구했다고 들었다.”

“그게 뭐 어쨌다고? 어차피 장인 녀석들은 기술을 발휘하는 걸 기뻐한단 말이다. 놈들은 하고 싶은 일을 하고 난 황금을 얻는다. 거기에 무슨 잘못이 있단 말이지?”

“말장난 따위로 넘어가려 하지마라. 장인들은 오는 의뢰 물리지 않는다는 자신의 신념을 지킬 뿐이고 네놈은 그를 이용해 자신의 욕심을 채웠지. 그리고 이거 아나 모르겠군. 내가 여기서 널 베면 선전포고를 할 사람이 없어지지. 네가 믿는 중립협정도 지금의 널 지켜주진 못해.”

방 안에 있는 자는 로엘과 루드르, 셸리뿐이었다.

로엘의 경우 아무도 모르게 잠입한 것이니 루드르를 벤다 하더라도 루드로로선 할 수 있는 게 아무 것도 없었다.

일단 루드르를 몰아세우긴 했지만 정말로 벨 생각은 없었다.

루드르를 베는 게 근본적인 해결책은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공포심과 무력은 갈등을 해결하는 가장 단순한 방법이긴 하다만 후환을 남기기 마련이다.

겐크 왕국이 얽힌 이 사태를 해결하려면 드워프 왕국 스스로 겐크 왕국을 떨쳐내게 만들어야 했다.

루드르에게 공포심을 심어준 건 어디까지나 입을 다물게 할 뿐 로엘의 진짜 수단은 따로 있었다.

때마침 따로 움직이게 하였던 카넨이 루드르의 방 안으로 들어왔다.

“로엘 전하. 분부대로 드워프 장로들을 데려왔습니다.”

드워프 왕의 친족들로 구성된 드워프 장로회.

그들의 대부분이 장로회 소속이자 드워프 장인이기도 했다.

아까 놈이 들려주길 처음에는 20인의 장로 중 13명이 겐크 왕국의 의뢰만 받아들이겠다는 왕명에 맞서 상소를 올렸다 한다. 그러다 드워프 왕궁 지하감옥에 갇히게 되었다기에 카넨을 시켜 탈출시키도록 한 것이다.

땟국물로 지저분해진 장로들 중 허리가 굽은 최고 연장자가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예를 갖추었다.

겉모습에서 연륜이 느껴지는 자답게 인간의 예법을 알고 있는 것이었다.

“뵙게 되어 영광입니다, 빌로스의 국왕이시여. 드워프 장로회 회장 구크라 합니다.”

“이 광산에서 가장 오래된 연장을 쥐고 있는 자여. 드워프의 일은 드워프의 손으로 마무리해야 한다 여겨 그대들을 불렀으니 그대의 의견을 말해보아라.”

“빌로스 국왕의 말한 왕이 가져야할 마음가짐은 모루에 닿은 망치소리마냥 저희의 마음에도 와닿았습니다. 허나 아직 어리다하여 응석을 받아준 저희 장로회의 잘못도 없다 말할 수 없습니다. 모든 죄는 제가 뒤집어쓰겠습니다.”

보통 이쯤 되면 회개할 법도 하다만 루드르는 이미 뿌리까지 썩은 자인지라 반성의 기미는커녕 내심 기뻐하고 있었다.

‘숙부께서 대신 죽어주겠다 이거군. 살았다. 살아남았어.’

허나 뒤에 이어진 구크의 말에 루드르의 표정이 새파랗게 질렸다.

“지금 이 순간 장로회는 반역을 일으켜 드워프 왕국의 모든 결정권을 얻어내겠습니다.”

“뭐? 반역? 이런 미친!”

구크는 벽에 걸린 도끼를 하나 집어 들어 루드르에게 다가섰다.

루드르가 욕지거리를 내뱉으며 일어나려 했으나 다른 장로들도 다가와 루드르의 몸을 꽉 눌렀다.

드워프 장로들에게 깔린 루드르는 바둥거리며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

“놔! 이거 놓으란 말이다! 반역? 당치도 않은 소리마라!”

구크는 눈시울이 붉어진 채로 단호히 말했다.

“반역자의 오명은 내가 뒤집어쓰마. 더 이상은 왕국이 망가지는 걸 보고만 있을 순 없구나.”

“난 왕이라고! 이건 말도 안 돼! 난 아무 잘못 없어! 겐크 왕국 놈들이 잘못한 거란 말이다!”

이번 일은 단지 계기에 불과할 뿐이지 이미 오래 전부터 도화선엔 불이 붙어 있었다.

루드르 본인만 폭약으로 향해가는 불길을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을 뿐.

구크는 자신의 손이 더럽혀질 것을 각오하며 힘차게 도끼를 내리찍었다.

///

새로 적은 공문을 받아 성벽 바깥으로 걸어가던 로이스 백작은 겐크 왕국 병사들과 마주쳤다.

드워프 장인들의 감옥 앞의 병사들과 교대하기 위해 올라가는 병사들이었다.

로이스 백작은 별 생각 없이 그들을 지나쳤다.

그런데 잠시 후, 교대하러 올라갔던 병사들이 그대로 내려오는 게 아닌가.

로이스 백작은 무슨 일인가 싶어 그들을 불렀다.

“왜 다시 내려오느냐? 교대하러 올라갔던 게 아니더냐?”

추위를 피하기 위해 빠르게 내려가던 병사들이 어리둥절해하며 말을 꺼냈다.

“광산 입구에서 로이스 백작님이 아무도 들이지 말라하셨다기에 돌아가는 중이었습니다.”

“뭣이? 내가 언제 그딴 명령을 내렸단 것이냐!”

“하지만 광산 입구의 병사들이......”

본래 광산 입구는 꽉 닫아놓았기에 지킬 필요가 없었다.

로이스 백작은 수상한 낌새를 느끼며 헐레벌떡 산 위를 향해 뛰었다.

“네놈들 모두 따라와라! 얼른!”

“아, 네!”

뒤뚱거리며 힘겹게 광산 정문으로 되돌아간 로이스 백작은 숨을 몰아쉬며 광산 정문 앞을 보았다.

병사들의 보고대로 본래 쇠창살 앞을 지키고 있어야 할 병사들이 광산 정문 앞에서 오들오들 떨고 있었다.

로이스 백작은 강하게 기침을 하여 겨우 숨을 고르곤 성질을 내었다.

“뭣들 하는 것이냐! 어째서 원래 자리가 아닌 이딴 곳에 서있냔 말이다!”

추운 곳에 서있느라 고생하던 병사들은 자기들이 왜 욕먹는지 그 이유조차 몰라 어안이 벙벙해졌다.

“아까 백인장님이 로이스 백작님의 명령이라면서 저희를 이곳에 배치시켰습니다.”

“백인장들은 전부 성벽 바깥에 있는데 무슨... 설마......”

지금 겐크 왕국의 계획을 뒤틀 수 있는 자는 한 명밖에 없었다.

이런 일을 할 만한 자는 로엘뿐이었다.

하지만 어떻게?

절대 뚫릴 리 없는 광산이거늘 어떻게 들어갔단 말인가.

여러 가지 의문이 샘물처럼 콸콸 솟아났지만 지금은 그게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지금 광산 안은 완전히 노마크 상태란 소리 아닌가.

로이스 백작은 당장 광산 안으로 들어가 상황을 파악하려 했으나 그가 정문 개방을 요청하기도 전에 안쪽에서 정문이 살짝 열렸다.

열린 틈 사이로 손에 피를 묻힌 구크가 걸어 나왔다.

분명 왕궁 지하감옥에 갇혀 있어야 할 자가 걸어 나오자 로이스 백작으로선 당황을 금치 못했다.

구크는 제대로 말조차 꺼내지 못하고 있는 로이스 백작을 노려보며 말했다.

“이 시간 부로 드워프 왕국은 드워프 장로회가 이끌 것이다. 겐크 왕국의 끄나풀이여. 그대의 왕에게 돌아가 말해라. 이제부터 드워프 왕국은 겐크 왕국을 금수의 나라로 여길 것이며 우리는 금수의 말을 알아듣지 못하니 그대들의 의뢰는 알아듣지 못하는 것으로 치부할 것이다.”

말을 마친 구크는 로이스 백작의 대답을 들을 필요도 없다는 듯 광산 안으로 도로 들어가 정문을 닫아버렸다.

찬바람이 부는 정문 앞에서 로이스 백작은 분노에 잠겨 부들부들 떨었다.

“엘리오스 킨 로엘. 정녕 겐크 왕국과 척을 지겠다는 거구나. 전하께서 반드시 널 가만두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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