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53화 (53/219)

00053 3-2. 누가 누굴 꼬셔? =========================

현 드워프 왕 루드르는 본래 욕심이 많은 인물로 특히 황금에 욕심이 많은 자였다. 그가 왕위를 물려받은 이후 인간들의 의뢰를 더욱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불어 의뢰에 대한 보수는 모조리 황금으로 받았다.

식량이야 자급자족할 수 있을만큼 생산되고 있는데다 장인들도 오는 의뢰 막지 않는다는 주의인지라 그러려니 하고 지내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루드르가 광산 문을 닫더니 외부와의 연락을 아예 끊어버렸다.

그 이유는 드워프 백성들도 몰랐고, 그 뒤에 겐크 왕국의 병사들이 와서 성벽 앞에 진을 치게 되었다.

릴이 아는 건 이게 전부였다.

얘기를 마치려던 릴은 문득 한 가지 사실을 더 떠올리곤 입 밖으로 내었다.

“그러고 보니 한 가지 이상한 게 있긴 하군.”

“그런 게 듣고 싶었어.”

“한 1년 전이었나? 아니지 반 년 전인가. 광산 일엔 관심이 없어서 언제 일인지 가물가물하군. 아무튼 딱 한 번 겐크 왕국에서 황금 대신 딴 걸 줬었지. 미리 말해두는데 나도 어떤 걸 줬는진 몰라. 오래 전 일이라 이번 일과 관련이 있는 건지 확신할 수도 없고.”

“1년 이내라면 충분히 확인해볼 가치가 있어. 겐크 왕국에 병사를 요청한 것과 연관 지어 생각해보면 겐크 왕국이 뭔가 수작을 부리고 있다고 볼 수밖에.”

명확한 정보는 아니었지만 그래도 아무런 단서가 없는 것보단 나았다.

원인이 겐크 왕국과 루드르 왕에게 있다는 걸 알았으니 다음 행선지는 저절로 정해졌다.

광산 안으로 들어가서 루드르 왕에게 접근해야 한다.

로엘은 광산 안으로 들어가는 루트를 알고자 했다.

“광산에 들어가고 싶어. 조용히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알려줘.”

“그건 무리야. 광산에 빈틈 같은 건 없거든. 들어가는 길은 산 남쪽의 정문, 산 북쪽의 뒷문밖에 없는데 안쪽에서만 열 수 있어.”

“벽이 얇은 곳이라도 좋아. 검으로 잘라내면 그만이니까.”

“오호, 자신만만하게 말하는 걸 보니 한 실력 하나보구먼. 그래도 힘들걸? 가장 얇은 곳도 단단히 보강되어 있어서 마나 익스퍼트라도 소란 없이 잘라내는 건 무리지. 마나 마스터라도 되는 게 아니라면 말이야.”

마나 마스터를 언급하는 부분에서 로엘의 입가가 씨익 올라갔다.

로엘의 실력을 직접 본 적 없어 아직 마나 익스퍼트라 여기고 있던 카넨, 그리고 전설의 경지에 오른 자가 눈앞에 있다는 사실에 놀란 릴.

두 사람이 놀라 되물으려 했으나 그 전에 로엘이 검지를 입에 대며 나지막이 말했다.

“아직은 헛소문 정도로 충분하니까 떠들고 다니진 말아줘.”

///

흔들다리가 거미줄처럼 얽혀 있는 거대한 광산 안.

365일 24시간 내내 고온의 불이 꺼지지 않던 오르비르 광산이었으나 용광로에 불이 들어오지 않은지 어언 한 달이나 되었다.

광산 안을 밝히기 위한 최소한의 횃불만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던 차에 광산 안의 가장 구석진 곳, 횃불의 불빛조차 닿지 않는 곳에 동그란 균열이 생겨났다.

서걱!

동그랗게 잘린 원통형 바위가 빠져나가면서 구멍이 생겼고 그를 통해 로엘과 카넨이 광산 안에 들어왔다.

릴은 안내까지만 해주기로 했기 때문에 따라 들어오지 않았다.

로엘은 오르비르 광산의 웅장함을 눈으로 확인하며 짧은 탄성을 내었다.

“대륙 최고의 광산이라고 자부할만하군.”

산 안쪽을 파내 통째로 광산을 건설한 터라 안쪽은 매우 넓으면서도 깊었다. 원통 형태로 깊고 넓게 파인 공간을 중심으로 셀 수 없을 만큼 많은 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산 아래에서부터 세워져 산을 떠받치고 있는 기둥은 어떻게 만들었고, 어떻게 세웠는지 짐작조차 가지 않았다.

게다가 벽에서 기둥으로, 기둥에서 기둥으로, 기둥에서 다시 벽으로 얼기설기 이어져 있는 흔들다리는 마치 시가지의 도로를 연상케 하였다.

광산 하나가 마을 하나라 봐도 무방할 정도였다.

벽 곳곳에는 개미굴처럼 구멍이 숭숭 뚫려 있었는데 구멍 하나가 광산에 사는 드워프 장인들의 집임은 묻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흔들다리에는 도끼를 든 루드르 휘하의 드워프 전사들이 돌아다니는 중이었다.

벽을 따라 내려갈 수 있도록 설계된 나선형 계단이 있어 그를 이용하는 게 바람직해보였다.

“왕궁은 광산 가장 아래쪽에 있다 했었지?”

“네.”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게 좋겠군.”

로엘은 드워프 전사들의 움직임에 주의하며 횃불이 닿는 구간과 닿지 않는 구간을 번갈아 주파하였다.

나선형 계단을 타고 내려가다 보니 어쩔 수 없이 드워프 장인의 집을 지나칠 수밖에 없었다.

드워프 장인들은 딱히 사생활이랄 게 없는 모양인지 문을 달아두지 않아 구멍 안이 휑하니 보였다. 반대로 말하면 안쪽에서도 지나가는 사람을 볼 수 있다는 거였다.

‘전부 자고 있으면 좋으련만.’

가장 가까이에 있는 구멍 하나를 지나치기 위해 빠르게 움직이던 차.

로엘은 경계심을 드세우며 구멍 안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런데 염려했던 것과 달리 구멍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최소 며칠 이상 방치된 걸로 보이는 가구들만 보일 뿐이었다.

로엘은 혹시나 싶어 나선형 계단을 빠르게 내려가 다른 구멍도 살펴보았다.

다른 구멍에도 마찬가지로 드워프 장인들이 없었다.

“없어. 아무도 없어. 어디로 간 거지?”

카넨도 이상하다는 걸 눈치 챘는지 몇몇 구멍을 더 살펴보곤 보고를 올렸다.

“로엘 전하, 다른 곳에도 장인들이 없어요. 납치라도 당한 걸까요?”

“납치는 아니야. 그런 일이 벌어졌는데 문을 걸어 잠글 리 없잖아. 납치보단 감금 쪽이 더 신빙성 있어.”

로엘은 루드르 왕이 말한 우환이라는 게 장인들과의 분쟁임을 깨달았다.

루드르 왕과 드워프 장인 사이에 무언가 언쟁이 벌어져 죄다 감금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다.

드워프 광산 안에 따로 감금시설이 있고, 거기에 드워프 장인들이 갇혀 있는 게 분명했다.

문제는 감금시설이 어디 있냐는 것이었다.

로엘은 금방 수상쩍은 장소를 발견해냈다.

광산 북쪽 최상층에 유달리 많은 병사들이 늘어서 있는 게 아닌가.

심지어 드워프 전사도 아니었다.

겐크 왕국의 병사들이었다.

성벽 바깥에만 진을 치고 있는 줄 알았는데 남몰래 광산 안에도 병력을 주둔시켜 놓은 것이다.

유달리 커다란 구멍 앞에 약 30명의 병사가 서있는 게 보였다.

세간의 시선을 속이고 주둔 중인 겐크 병사들, 그리고 그들이 모여 지키고 있는 구멍 하나.

어찌 의심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

로엘은 검을 뽑아들며 북쪽으로 이동할 수 있는 흔들다리 위에 발을 올렸다.

“먼저 저기부터 확인하는 게 좋겠군.”

///

낮에 한껏 굴욕을 맛본 로이스 백작은 씩씩거리며 남몰래 조용히 열린 광산 문을 통과하였다.

그가 들어오자마자 광산 문이 닫혔다.

로이스 백작은 짜증이 치밀어 오르는 나머지 쥐고 있던 양피지를 구겨져라 강하게 쥐었다.

“젠장, 그 빌어먹을 자식 때문에 이 내가 그런 꼴을... 빌로스 같은 쓰레기 국가의 국왕 주제에......”

저 혼자 화가 북받쳐 올라 성질을 내며 광산 아래로 향하는 로이스 백작이었다.

숨을 몰아쉬며 최하층까지 내려간 로이스 백작은 웅장하기 짝이 없는 드워프 왕궁으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허억허억, 쓸데없이 깊은 곳에 만들어서 괜히 더 짜증나게 하는군. 미개한 종족 같으니.”

듣는 이가 없다고 실컷 짜증내던 로이스 백작은 홀을 지나 루드르의 왕에 이르는 복도로 들어갔다.

복도 끝에는 높이 3미터의 미닫이 석문이 설치되어 있었는데 석문 앞에 서있던 드워프 전사들이 도끼를 십자모양으로 겹쳤다.

“로이스 백작. 찾아온 용건을 말해라.”

“공문에 허점이 있어 수정을 요구하기 위해 왔다. 드워프 왕께 내가 왔다는 사실을 알려라.”

“지금 왕께선 바쁘시다. 그 정도 용건이라면 장로들에게 말하도록.”

“그 외에도 전달할 사실이 있으니 잔말 말고 전하라면 전하란 말이다. 아둔한 것들! 내가 지금 누구의 요청으로 와있는지 모르는 것이냐?”

로이스 백작의 목소리가 안쪽에 닿았는지 문 안쪽에서 알현을 허가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런데 들려오는 목소리는 루드르의 목소리가 아니라 어떤 여자의 목소리였다.

“여러분, 로이스 백작을 들여보내도록 하세요.”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