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52화 (52/219)

00052 3-2. 누가 누굴 꼬셔? =========================

여관으로 돌아온 로엘은 카넨을 불러다가 돌계단에서 있었던 일을 들려주었다. 거기에 오르비르 광산 내부의 정치문제가 아닐까 하는 가설을 덧붙였다.

카넨은 로엘의 말을 듣곤 고민하는 모양새를 취하였다.

“드워프가 정치다툼이라. 있을 수 없는 일이죠. 정치라고 해봤자 한 해에 맥주를 얼마나 매입할지, 얼마나 멋진 황금상을 제작할지 같은 거나 논하는 종족이거든요. 오르비르 산에 정착할 때도 모든 일을 브리튼 교가 대신 처리해줬다고 할 정도니까요.”

“지금으로선 그것 외에 다른 이유는 생각할 수 없어. 오르비르 광산에 들어가고 싶은데 다른 루트는 없을까?”

“흐음, 없는 건 아니에요. 드워프 성벽 안에 친한 드워프가 많거든요. 한 명 정도는 성벽으로 올라갈 수 있게 밧줄을 내려줄 거예요.”

드워프 성벽 안으로 들어갈 방법은 정해졌고 로엘과 카넨만 들어가기로 하였다.

밧줄을 타고 올라간다 하더라도 절벽에 준하는 높이와 가파름을 자랑하는 드워프 성벽을 타기 위해선 어느 정도 체력이 필요했다. 거기에 겐크 왕국 병사들이 알아차리지 못할 정도로 빨리 올라가려면 신체 능력이 뛰어나야 하는데 그에 부합하는 자는 로엘과 카넨밖에 없었다.

콘라드 남작은 문인이라 체력이 부족하고, 엘로나 역시 싸움과는 거리가 먼 여왕이니 인원에서 제외되었다.

로엘과 카넨이 로브를 입으며 나갈 채비를 할 때 엘로나가 걱정스레 말을 꺼냈다.

“카넨, 로엘과 단둘이 가는 거니까 긴장을 유지한 채로 임무를 행해주세요.”

10대에 결혼하여 어느덧 결혼 6년차의 유부녀인 카넨.

남편 일편단심인데다 엘로나에 대한 충성심이 강한 그녀조차도 홀릴 정도로 로엘의 멋쟁이 재밍은 강력한 편이었다.

이성 유혹이란 항목에 있어 최고봉을 자랑하는 서큐버스 퀸이 직접 부여해준 능력이니 말이다.

그래서 로엘과 카넨 두 사람 다 후회할 일이 없도록 신신당부하는 것이었다.

카넨은 엘로나를 안심시키기 위해 주머니에 손을 넣었다.

“안심하세요, 여왕님. 여차할 땐 이걸 쓸 테니까요.”

카넨이 꺼낸 물건은 바늘이었다.

남편과 떨어진 여인네가 욕구를 참을 때 자주 쓰는 방법이었다.

허벅지나 팔뚝을 찔러 고통으로 욕구를 상쇄하는 것이다.

엘로나는 과연 바늘이 효과가 있을까 걱정되었지만 거친 일을 하러 가는 두 사람을 두고 긴 말은 하지 않기로 했다.

“무사히 다녀오길 바랄게요. 브리튼의 가호가 두 사람을 지켜주길.”

“그럼 다녀올게.”

로엘은 엘로나의 이마에 가볍게 입을 맞추곤 카넨을 대동하여 드워프 성벽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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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르비르 산은 굉장히 넓은데다 저지대에도 험준한 지형이 많았다.

겐크 왕국이 상당한 숫자의 병사를 파견하여 드워프 성벽으로 가는 길목을 지키고 있다 하나 모든 길목을 지킬 순 없었다.

로엘과 카넨은 가파른 바위지대를 집 앞 계단 오르듯 가뿐하게 뛰어오르며 드워프 성벽으로 나아갔다.

로이스 백작도 설마 길도 없는 지형을 타고 오르는 자가 있겠냐고 생각했는지 바위지대엔 병력을 배치하지 않은 상태였다.

덕분에 로엘과 카넨은 무난하게 절벽에 가까운 지형 위에 세워진 드워프 성벽 서쪽에 도달했다.

카넨은 달의 위치로 시간을 가늠한 후 주먹만 한 돌 하나를 주워들었다.

“지금쯤이면 이 근처를 지나고 있겠네요.”

카넨의 드워프 지인 중 한 명이 밤에 성벽을 순찰하는 드워프 전사이자 알아주는 술꾼인지라 이 시간만 되면 이 근처에 와서 몰래 맥주을 한 잔 한단다.

몇 년 동안 그래왔으니 오늘도 그러지 않을까 싶어 카넨이 돌을 던졌다.

그녀가 던진 돌은 크게 포물선을 그리며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 위, 보이지 않는 그곳에서 굵은 남자 목소리가 들려왔다.

“앗! 어떤 놈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곧 성벽 너머로 고개를 내밀었다.

넓적한 얼굴에 갈기처럼 덥수룩하게 기른 수염, 부리부리한 눈을 가진 드워프였다.

카넨은 자신의 지인임을 확인하며 손을 흔들었다.

“어이, 릴. 오랜만이야.”

“어? 카넨이잖아. 왜 이리로 와?”

“겐크 왕국 병사들 때문에 어쩔 수 없었어.”

“아차, 왕이 인간 놈들을 불렀다고 했었지.”

“사정은 올라가서 설명할 테니 아무 거나 좀 내려줘 봐.”

“카넨 부탁이면 어쩔 수 없지. 밧줄 가져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릴이라 불린 드워프가 성벽 너머로 사라졌다가 금방 다시 고개를 내밀었다.

릴이 가져온 밧줄을 내려주었고, 로엘과 카넨은 밧줄을 타고 성벽 위로 올라갔다.

성벽 위로 올라와서 본 릴의 모습은 드워프답게 짧은 팔다리와 어깨가 벌어진 체격, 떡갈나무로 만든 술통을 허리춤에 차고 있었다.

릴은 카넨과 함께 올라온 로엘을 보더니 로엘의 허벅지를 두드리며 엄지를 치켜 올렸다.

“말로만 듣던 신랑을 보게 되는구만. 네 성격치곤 좋은 남자를 잡았는걸?”

카넨은 릴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그의 말을 정정했다.

“말조심해. 내 남편이 아니라 빌로스 왕국의 로엘 국왕 전하셔.”

“아 그래? 실례했수다, 어디 나라의 국왕. 인간 예법은 잘 모르는데 불쾌하게 여기지 않을까 걱정이구만. 친구의 친구는 친구라고 했으니 괜찮으려나. 어이~ 친구~ 맥주 한 잔 하겠나?”

“아 정말. 내 친구가 아니니까 네 친구도 아니라고. 로엘 전하, 죄송합니다.”

로엘은 미소를 지으며 그가 내미는 떡갈나무 술통을 받아 크게 들이켰다.

같은 술꾼이라도 로이스 백작 같은 작자는 최악이지만 릴은 성격이 호탕하여 전혀 싫게 느껴지지 않았다.

이런 친구라면 환영이다.

“친구의 친구는 친구. 아주 틀린 말은 아니지. 호탕해서 좋은 걸? 맥주맛도 최고고.”

“하하, 이 친구 술 마실 줄 아는구만. 내 나중에 좋은 떡갈나무 술통을 선물해주지. 아차차, 사정을 듣는다 해놓고 술 얘기로 빠져버렸군. 여기서 얘기하긴 그러니까 장소를 옮기기로 하지. 따라오게나.”

로엘과 카넨은 릴의 안내를 받으며 드워프 성벽 안으로 들어섰다.

5겹의 성벽 중 첫 번째 성벽 안쪽에는 숲이 펼쳐져 있었다.

자연을 그대로 놔둔 채로 지은 성벽이라 가능한 지형이었다.

릴의 말에 따르면 첫 번째 성벽과 두 번째 성벽 안은 일반 드워프들의 주거지역으로 숲이 이어져 있다 한다.

릴은 모습을 가리려고 로브를 여미는 카넨을 보며 혀를 찼다.

“쯧쯧, 드워프도 아닌데 얼굴 가려서 뭐하게?”

드워프와 인간은 체형부터가 다르다.

로브를 뒤집어쓴다 해서 드워프처럼 보이는 것도 아니기에 던지는 말이었다.

카넨은 릴의 수염을 잡아당기며 툴툴거렸다.

“일일이 시비 걸지마. 가리고 안 가리고는 마음가짐의 차이를 드러낸다고.”

“거참 만날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인간은 참 안 해도 되는 걸 꼬박꼬박 하려든단 말이지.”

편의를 위해 기술을 닦아온 드워프에게 편의성이라곤 눈꼽 만큼도 없는 인간의 몸가짐은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이었다.

종족의 차이에서 오는 어쩔 수 없는 가치관 차이이기도 했다.

릴은 숲 사이에 있는 작은 오두막집으로 두 사람을 안내했다.

휘어진 통나무, 곧은 통나무를 퍼즐 맞추기식으로 빈틈없이 쌓아 올린 오두막집이었다.

보기에는 특이해보여도 인간의 오두막집보다 몇 배는 더 견고한 집이었다.

릴이 오두막집 문을 열며 두 사람을 먼저 안으로 들였다.

“조심스런 얘기를 할 땐 자기 집만한 곳이 없지. 조금 지저분하지만 들어와.”

“그런데 멋대로 순찰을 빠져도 괜찮아?”

“하루이틀 있는 일도 아닌데 뭘. 들켜봤자 또 술 마시고 퍼질러 자고 있다 생각하겠지. 그런 거 일일이 걱정하면 수염 빠진다고.”

걱정은 곧 손해라고 생각하는 타입인지 고민조차 하지 않고 시원시원하게 대답하는 릴이었다.

릴의 집 안은 의외로 깔끔했다.

선반에 술병이 잔뜩 늘어서 있고, 방구석마다 맥주통이 쌓여 있어 비좁다는 걸 빼면 상당히 깔끔하게 정돈된 편이었다.

카넨이 익숙한 양 술통 하나를 끌어다가 의자 대신 깔고 앉았다.

로엘도 이 집에선 술통이 가구인 게 룰인갑다 싶어 적당한 술통 위에 앉았다.

릴은 그새 맥주를 다 마셨는지 떡갈나무 술통에 맥주를 보충하며 침대에 걸터앉았다.

“이제 본론으로 넘어가보자고. 대충 예상은 되지만 말이야.”

로엘이 양쪽 무릎에 양쪽 팔꿈치를 댄 자세로 눈높이를 낮춰주며 말을 꺼냈다.

“예상하고 있겠지만 오르비르 광산에서 의뢰를 안 받는다길래 이유를 알아보려 하고 있어.”

“내게 이유를 물어본다면 모른다는 대답밖에 내놓을 게 없어. 애당초 광산에서 사는 드워프들 빼곤 광산의 일에 관심 없거든.”

인간의 의뢰를 받아들이는 드워프는 오르비르 광산에 사는 드워프 장인들밖에 없었다.

그 외의 드워프들은 숲이나 고원지대에서 나무나 돌, 술 빚기 등으로 세월을 보내는 편이었다.

그래도 로엘은 작은 단서라도 얻고자 했다.

“별 볼일 없는 일라도 상관없어. 최근 일, 예전 일 상관없이 루드르 왕에 대한 것이라면 모두 말해줘.”

“흐음, 안주거리로 치면 말라비틀어진 고구마 줄기라 할 수 있겠군. 재미있는 얘기는 아니지만 필요하다니 해줘야지.”

릴이 맥주를 벌컥벌컥 마신 후 수염에 거품을 묻힌 채로 이야기를 꺼냈다.

현 드워프 왕 루드르는 본래 욕심이 많은 인물로 특히 황금에 욕심이 많은 자였다. 그가 왕위를 물려받은 이후 인간들의 의뢰를 더욱 많이 받아들이게 되었다. 더불어 의뢰에 대한 보수는 모조리 황금으로 받았다.

식량이야 자급자족할 수 있을만큼 생산되고 있는데다 장인들도 오는 의뢰 막지 않는다는 주의인지라 그러려니 하고 지내왔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루드르가 광산 문을 닫더니 외부와의 연락을 아예 끊어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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