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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49화 (49/219)

00049 2-7. 방문 =========================

“처음에 받은 한 잔은 다 비웠어요.”

“흠, 다른 사람도 한 잔만 마신 사람은 많아. 술이 문제는 아닌 것 같아.”

또 다른 요소는 하나밖에 없었다.

일시적이든 지속적이든 이 마을에 거주한 경험이 있는가 없는가의 차이.

마을 여자들을 말할 것도 없고, 카넨도 도적 소탕 때문에 두어 달 정도 이곳에서 지냈다고 했었다.

마을에 거주하면서 지속적으로 섭취하게 되는 요소라면 한 가지밖에 없다.

바로 물이다.

로엘은 모든 원인이 하피의 우물에 있음을 직감했다.

“저 우물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알아야겠어.”

“그거라면 계곡 상류로 향해야 할 거예요. 산 속에 있는 마을의 수원은 대개 계곡 상류에 있으니까요.”

“갔다올 테니까 기다리고 있어.”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저도 같이 가야죠.”

“이 사태는 남자인 내가 표적인 거잖아. 넌 여기 있어도 되지 않겠어?”

“전 여왕이에요. 백성이 원인불명의 일을 겪고 있는데 넋놓고 가만히 있을 순 없죠.”

로엘은 지당한 말이라 여겨 아까와 같은 자세로 엘로나를 안아들었다.

당연히 엘로나로선 떨어지지 않게 로엘의 목에 팔을 둘렀는데 생각해보니 여태까지 중 가장 밀착한 자세인지라 얼굴을 붉혔다.

“저기, 꼭 이 자세로 안을 필요가 있나요?”

“제일 안전한 자세거든. 차라리 등에 업어줄까?”

“아뇨, 그냥 이대로 가죠.”

“네, 편안히 모시겠습니다, 여왕님.”

“푸훗, 편안히 모셔질 게요.”

두 사람은 현재 상황에 어울리지 않게 두 사람만의 달달한 분위기 속에 잠기며 지붕에서 지붕 사이를 뛰어다녔다.

마나를 최대한 활용하고 있는 로엘에게 평범한 여자들을 따돌리고 상류로 향하는 건 일도 아니었다.

///

쏴아아!

산을 타고 흐르는 물줄기를 따라 뛰다보니 높은 폭포 하나가 나타났다.

폭포 위가 산 정상으로 이어지는 걸 감안하면 사실상 폭포가 있는 넓은 연못이 이 산의 수원이나 마찬가지였다.

겉보기엔 다른 곳에 있는 연못과 다를 바 없었다.

물에 달이 비칠 정도로 물길이 잔잔한데다 바닥이 비쳐 보일 정도로 맑은 물이었다.

간간이 숨 쉬러 나오는 민물고기들이 물 밖으로 입을 뻐끔거리며 왜 왔냐고 묻는 것 같았다.

헛걸음을 했나 싶어 다른 가능성을 짚어보고 있는데 갑자기 엘로나가 연못에 발을 들였다.

그녀는 다른 사람이라도 된 양 공허한 눈빛으로 따라오란 손짓을 하였다.

“이쪽이에요. 따라오세요.”

그리곤 연못에 뛰어드는데 그 동작이 여린 엘로나라 생각되지 않을 정도로 거침없었다.

로엘은 엘로나도 무언가의 영향을 받았은 게 틀림없다 판단하여 그녀를 따라 연못에 몸을 던졌다.

물속에선 엘로나가 빠르게 자맥질을 하며 바닥으로 내려가고 있었다.

이윽고 물보라가 마구 피어오르고 있는 지점까지 가더니 바닥으로 쑤욱 들어갔다.

연못 아래에 통로가 있던 것이다.

낮에 잠수해도 보이지 않을 정도로 교묘한 구멍이었는데 엘로나는 알고 있었던 양 들어가버렸다.

로엘도 통로 안으로 따라들어갔는데 안쪽에 물이 빠지는 장소가 있는지 급류가 로엘의 몸을 빠르게 안쪽으로 밀어주었다.

2분도 채 되지 않아 통로 끝이 나타나면서 공기가 있는 수면 위로 솟아오를 수 있었다.

도착한 곳은 여명을 담은 듯 푸른빛이 가득한 동굴이었다.

푸른빛을 발하는 건 미스릴이었다.

야크트 마을 위쪽에 숨겨진 미스릴 동굴이 있었던 거다.

동굴 안에 가득 박혀 있는 미스릴은 미스릴 광산을 개발해도 될 정도로 많은 양이 숨 쉬고 있었다.

한편 먼저 물에서 빠져나와 동굴 바닥에 올라선 엘로나는 동굴 중앙에 있는 거대한 미스릴 옆에 섰다.

동굴 중앙에는 원기둥 모양의 거대한 미스릴 덩어리가 있었는데 미스릴 덩어리 안에 박쥐의 날개가 달린 황금비율 몸매의 여성이 갇혀 있었다.

엘로나, 아니 엘로나에 빙의된 무언가가 미스릴 덩어리를 쓸어내리며 말했다.

“먼저 사과부터 드리겠습니다. 사정이 있어 당신 연인의 몸을 빌려 당신을 이리로 인도했습니다.”

“사과는 받아들이고 말고는 사정이 뭔지에 따라 다르겠지. 대답 여하에 따라 내 반응이 달라질 거야.”

“혈기 넘치는 분이시로군요. 다시 정식으로 소개하겠습니다. 저는 서큐버스 퀸 베르나트라고 합니다. 마족이라 하여 놀라지 말고 제 얘길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이전 같으면 놀랐겠지만 리뮬러란 리치와 맞닥뜨린 후인지라 크게 놀라진 않았다.

오히려 좀처럼 만나기 힘든 마족을 몇 달 새에 2번이나 마주친 것이 신기할 따름이었다.

“서큐버스 퀸이나 되는 마족이 왜 여기 갇혀 있는 거지?”

“사정을 다 설명하면 많이 깁니다. 짧게 요약하자면 수백 년 전 용마전쟁 때 드래곤 로드를 사랑하게 되어 인간계에 남았는데 정작 사랑하던 드래곤 로드는 수명이 다해 세상을 뜨고 말았죠. 그래서 하염없이 인간계를 돌아다니다가 한 마법사에 의해 봉인되었답니다. 여기 있는 미스릴들은 전부 제 봉인을 유지하기 위해 옮겨진 것들이죠.”

미스릴엔 마나를 보존하는 특성이 있다.

딱 봐도 광산급 매장량을 자랑하고 있는데 이 많은 미스릴에 마나를 꽉꽉 눌러 담아 봉인을 유지하고 있었단 말인가.

베르나트가 말하는 마법사가 누구인지는 몰라도 역사상 이만한 능력을 지닌 마법사가 있다는 건 들어보지 못했다.

마법사의 존재는 둘째 치고 현재 상황으로 보아 하피 전설의 진상을 알게 되었다.

“당신의 힘 때문에 야크트 마을에서 여자만 태어나게 된 거군.”

“네, 결과만 놓고 보면 그런 셈이죠. 봉인이 완벽하진 않아서 조금씩 제 힘이 물을 타고 흘러가더군요. 덕분에 제 힘을 받은 여성분들이 남자들과 관계를 맺을 때마다 정기가 흡수되고, 그 정기가 원래 능력의 주인이 제게 오게 되면서 서서히 봉인을 풀 힘을 되찾아가고 있었답니다.”

서큐버스는 남자의 정기를 흡수하여 힘을 보충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그녀의 힘이 작용한 야크트 마을은 미인들만 태어나는 마을이 되었고, 유달리 남자를 원하는 것도 정기를 원하는 서큐버스의 본능이 깃들었기 때문이었다.

여자들이 남자의 정기를 받아들이면 그게 베르나트에게까지 전달되는 모양이었다.

베르나트는 안타까운 듯 엘로나의 몸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후우, 이제 봉인을 풀기까지 얼마 남지 않았답니다. 우연히 이 아이와 파장이 잘 맞아 빙의하는데 성공하였으니 한 번만 관계를 맺어주시면 안 될까요? 직접 정기를 받아들인다면 한 번만으로도 충분히 힘을 되찾을 수 있을 겁니다.”

“결국 마족을 깨우는데 도우라 이거군.”

“전 마족이지만 마족보다 인간을 더 좋아한답니다. 사랑하는 그 분을 위해 마계의 직위마저도 버리고 왔는데 오해를 받아 봉인당한 처지죠. 풀려나면 바로 그 분의 레어에 들어가 남은 생을 보낼까 합니다.”

베르나트의 말에 거짓은 없어보였다.

게다가 야크트 마을을 그리 만든 것 또한 그녀가 의도한 게 아니니 그녀의 잘못이라 말하기 어려웠다.

그녀만 봉인에서 풀려난다면 야크트 마을은 평범한 마을이 될 거고, 이 미스릴 광산은 놔뒀다가 나중에 로엘이 필요할 때 개발하면 되는 비밀창고가 될 것이다.

더불어 베르나트가 로엘의 망설임을 지워주는 한 마디를 날려주었다.

“이 몸의 주인에게도 허락을 받았습니다. 레이? 레이아? 질 수 없다고 뭐라뭐라 말하시는데... 네? 그건 혼잣말이니 일일이 말하지 말라고요? 아무튼 의식은 이어져 있으니 첫 경험은 전부 기억하실 겁니다.”

의도치 않게 속마음 확성기가 되어버린 베르나트였다.

///

베르나트의 말대로 일이 끝나자 봉인이 완전히 풀렸다.

베르나트는 엘로나의 몸에서 빠져나와 원래 몸으로서 돌아간 후 감사의 말을 전했다.

“어려운 부탁을 들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예전 드래곤 로드의 레어로 간다했었나?”

“네, 인간의 도시로 들어가봤자 또 사고만 생길 뿐이니까요. 가만히 있어도 주변 사람의 성욕을 자극하는 몸이니 산 속에 들어가야죠.”

“여기 있는 미스릴은 내가 써도 되겠지?”

“원하는대로 하세요. 어차피 원래 제 것도 아니거든요. 원래 주인도 지금쯤이면 죽었을 거고요.”

베르나트가 날개를 펼치며 동굴 바깥으로 이어진 통로를 향해 날아갈 준비를 하였다.

로엘은 그녀에게 손을 흔들면서 생각했다.

‘베르나트의 영향이 아니라 본인 성욕이었다니......’

늦바람이 강풍이라고 앞으로 엘로나를 감당할 생각을 하니 앞날이 걱정되었다.

지금 당장 레이아만 하더라도 점점 더 기술이 늘어나고 있는데다 언젠가는 루엔과도 관계를 가지게 될 것이다.

거기에 가장 성욕이 들끓을 시기인 엘로나까지 맛을 알아버렸으니 이 이상 감당할 여자가 늘어나는 건 곤란했다.

지금으로도 충분하다.

그런데 베르나트가 떠나기 직전에 검지를 치켜 올려 로엘의 이마에 대었다.

“절 풀어주셨으니 개인적으로 보답을 해야겠군요. 이성을 설레게 하는 능력과 정력 강화 능력을 부여해드릴게요. 제가 서큐버스 퀸이라서 해드릴 수 있는 게 이것밖에 없네요.”

남자라면 누구나 원하는 능력일 거라 여겨 로엘의 대답도 듣지 않고 바로 능력을 새겨주는 베르나트였다.

머릿속에 청량한 기운이 스며드는 걸 느낀 로엘이 뒤늦게 이마를 뒤로 빼내었다.

“잠깐! 나는......”

그러나 때는 이미 늦어 능력이 부여된 후였다.

베르나트는 제대로 된 보답을 해줬다는 생각에 후련한 표정을 지으며 날개를 펄럭였다.

“그럼 전 이만 가볼게요. 앞으로 원하시는 대로 일이 잘 풀리시길.”

베르나트의 몸이 공중에 뜨더니 바람을 타고 동굴 바깥을 향해 날아가 버렸다.

로엘은 멍하니 이마를 문지르다가 절규하듯 외쳤다.

“원하는 대로 되기는 개뿔!”

///

엘로나가 깨어난 건 몇 시간 후였다.

로엘은 허리가 아파 걷지 못하겠다는 엘로나를 업고 마을로 돌아왔다.

간밤에 술에 취해, 아니 베르나트의 능력에 취해 이성을 잃었던 카넨이 석고대죄하며 스스로의 목에 검을 대는 사태가 발생하긴 했지만 엘로나는 산뜻하게 용서해주었다.

어젯밤의 일로 기분이 좋아진 것도 용서에 한 몫 하였다.

카넨은 로엘에게서 야크트 마을이 유달리 성욕이 강했던 이유를 들려주었다.

간밤에 벌어진 일을 들은 카넨은 납득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랬었군요. 이제 서큐버스 퀸이 사라졌으니 마을에 여자만 태어나거나 비정상적으로 성욕이 강해지는 일은 없어지겠네요.”

“잘 된 일이지.”

“여왕님께서 허리가 아프시다면 하루 더 쉬다 갈까요?”

“그러는 게 좋을 것 같아.”

마을 여자들도 베르나트의 영향에서 풀려나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갔으니 오늘은 편안히 쉴 수 있을 거라 여겼다.

그러나 그건 로엘의 착각이었다.

이미 베르나트의 선물(?)은 작용 중이었다.

하룻밤 자고 집에서 나온 마을 여자들은 로엘을 보면서 소녀처럼 가슴을 부여잡았다.

“로엘 전하, 너무 멋있으시다.”

“저 늠름한 모습을 봐. 보기만 해도 가슴이 뛰네.”

“어쩜 좋아. 역시 나 반했나봐.”

베르나트의 영향에서 벗어났지만 이번에는 로엘의 영향을 받아 자석에 이끌리듯 모여들고 있었다.

로엘은 지쳐 있는 엘로나를 대신해 카넨에게 명령을 내렸다.

“카넨, 얼른 마차 몰고 와. 바로 떠나는 게 낫겠어. 카넨? 카넨!”

홀린 듯 멍하니 로엘을 보고 있던 카넨이 겨우 정신을 차렸다.

“네? 아, 네! 얼른 몰고 올게요.”

어제처럼 성욕에 물들어 미쳐 날뛰는 사태는 벌어지지 않았지만 이성을 설레게 하는 힘으로 마을 전체에 상사병의 조짐이 일렁였다.

로엘은 쏟아지는 선망의 시선을 부담스럽게 여기며 기나긴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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