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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48화 (48/219)

00048 2-7. 방문 =========================

카넨은 같은 검사로서 감탄할 수밖에 없었다.

마나 익스퍼트라서 가능한 게 아니라 로엘이라서 가능한 일이었다.

투박한 검술을 지닌 이였다면 바위는 쉽게 잘라낼 수 있었을지언정 깔끔하게 공중분해 시키지는 못했으리라.

로엘이 터벅터벅 걸어 돌아오는 사이 카넨은 문득 중요한 사실을 떠올렸는지 마부석 창문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곤 로엘의 실력에 감탄하고 있는 엘로나에게 말을 붙였다.

“여왕님, 이 앞엔 야크트 마을이 있습니다.”

야크트 마을이란 말을 들은 엘로나가 고민하는 모양새를 취했다.

“야크트 마을이면 그......”

“네, 그 야크트 마을입니다. 어떻게 할까요? 정 신경 쓰이신다면 마차를 돌리겠습니다.”

“아뇨, 로엘은 제가 지키겠어요. 그리고 로엘이 기껏 길을 열어주었는데 이제 와서 돌아가면 미안하잖아요.”

“여왕님께서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마차로 복귀한 로엘은 엘로나가 다소 기합이 들어가 있음을 확인하였다.

그 와중에 카넨이 다시 고삐를 내리치면서 마차가 산길을 타고 능선에 있는 마을로 향하였다.

///

야크트 마을은 찻잎 생산지로 유명한 마을답게 산 능선 전체가 찻잎으로 쓸 수 있는 나무들로 이루어져 있었다.

올해는 이미 수확을 마쳐서 가지만 앙상하게 남은 나무 사이를 지나치니 마을이 나타났다.

산 속에 있는 마을치곤 제법 큰 마을인지라 마을로 들어서자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보였다.

마차 안에서 마을풍경을 지켜보던 로엘이 특이한 점을 발견했다.

“여긴 여자들만 보이네. 설마 여자들만 사는 마을이야?”

“네, 야크트 마을에선 여자들만 태어나요. 저기 공터에 있는 우물 보이죠?”

“어디? 아 저기 있네. 저 우물에 뭐라도 있어?”

“옛날에 저 우물에 하피가 빠져 죽었는데 그 이후로 저 물을 마시고 자란 여자는 여자만 낳게 된다 하더라고요. 실제로 수백 년 동안 여자아이만 낳고 있는 곳이니 아주 전설이라고만은 할 수 없겠죠.”

여자만 태어난다 해도 외부에서 남자가 이주해오는 경우도 있을 텐데 아무리 둘러봐도 남자는 코빼기도 보이지 않았다.

“외지에서 남성이 이주해오는 경우는 없는가봐?”

로엘의 질문에 엘로나가 시선을 딴 곳으로 돌리더니 얼버무리듯 말했다.

“가끔씩은 있다는 모양인데 못 버티고 도망간다나 봐요.”

“찻잎 재배가 못 버틸 정도는 아닐 텐데.”

“아뇨, 그게 아니라... 아무튼 지나가는 길이니까 깊이 신경 쓰진 마세요.”

기분 탓인지 아까부터 마차 속도가 더 빨라진 것 같았다.

마차가 빠르게 마을 중앙을 관통하여 지나가던 참이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멈춰서고 말았다.

이번에 멈추게 된 이유는 몇몇 늙은 여인들 때문이었다.

몇몇 여인들이 카넨을 알아보고 마차 옆으로 달려왔다.

약 1년 전, 카넨은 이 근처에 생겨난 도적무리를 소탕하기 위해 머무른 적이 있었다. 그 때 촌장의 집에 신세를 졌었는데 촌장 시앙이 카넨을 알아보고 달려온 것이었다.

카넨은 안전을 위해 마차 속도를 서서히 늦추면서 이내 곧 완전히 멈춰세웠다.

“카넨 경! 오랜만이네요. 들렀으면 들렀다고 말씀하시지.”

“오랜만에 뵙습니다, 시앙 촌장님. 지금 바쁜 일이 있어 지나가야 하니 물러서 주십시오.”

“아휴, 급한 일이 있으셨구나. 그런데 이를 어쩌나. 어제 북쪽길이 낙석으로 아예 무너져 내려서 마차로는 갈 수 없으신데.”

로엘이 온 길이 남쪽길이었는데 남쪽길뿐만 아니라 북쪽길까지 막혔다고 한다.

어떻게 하든 간에 돌아가야 할 수밖에 없었던 거다.

카넨은 급한대로 마차 머리를 돌리려 했다.

“그럼 되돌아가서 산 옆을 빙둘러가야겠군요.”

“아휴, 이제 와서 되돌아가다간 하산하기 전에 날이 어두워져요. 이왕 이리된 거 오늘은 여기서 쉬고 가세요. 잘 대접해드릴게요. 마차에 타고 계신 분은 높으신 귀족? 아니지, 카넨 경이 모시고 있는 분이라면 설마 엘로나 여왕님이신가요?”

“뭐 그렇긴 합니다만......”

“어머나 세상에! 미리 말씀해주셨으면 환영했을 텐데. 아참,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니지. 아가들아! 여왕님께서 오셨어! 여왕님이 오셨다고!”

마을 곳곳에 퍼져 있던 여인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여인들만 사는 곳이라 그런지 다들 속옷을 입지 않아 무브먼트가 생생하게 살아있었고, 그 중 일부는 춥지도 않은지 옷 앞섬을 완전히 풀어헤쳐 봉분 두 개가 훤히 드러난 모습이었다.

산의 밤은 빨리 찾아오기에 하산하기에는 이미 늦었고, 마을 사람들이 엘로나를 영접하려고 하던 일도 놔두고 몰려들고 있어서 이제 와서 나 몰라라 할 순 없게 되었다.

엘로나는 하는 수 없이 마차 문을 열고 백성들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반가워요, 여러분.”

엘로나의 미모를 직접 목격하게 된 야크트 마을 사람들은 탄성을 내질렀다.

“와! 정말 너무 아름다우시다. 어쩜 저리 피부가 고우실까.”

“소문대로 엄청 미인이시구나. 저렇게 예쁜 사람이 존재하긴 하는구나.”

미의 화신이니, 살아있는 여신이니 하는 찬사가 들려오는 와중에 엘로나가 팔을 휘저었다.

그녀의 몸짓에 맞춰 웅성거림이 가라앉았다.

엘로나는 기다란 속눈썹을 깜빡이며 주의를 주듯 말을 꺼냈다.

“여러분, 피치 못하게 이 마을에서 하루 머무르게 될 것 같네요. 그래서 여러분에게 미리 당부드리고 싶은 게 있어요. 저는 지금 제 미래의 남편이랑 같이 있답니다. 이 마을의 관습은 알고 있지만 여왕인 저를 배려해서 오늘만은 관습을 접어주셨으면 해요.”

마차 안에 있던 로엘은 그녀가 말하는 관습이 무슨 관습인지 모른 채로 일단 몸을 바깥으로 빼내었다.

로엘이 마차 바깥으로 나가자 마을 사람들이 일제히 넋이 나갔다.

방금 엘로나를 보며 내지르던 탄성이 무색할 정도였다.

몇 초 동안 말이 없던 여인들이 잠시 후 이성을 잃은 듯 군침을 흘리며 로엘을 쳐다보았다.

“남자가 왔어. 이 마을에 남자가 왔다고.”

“후후, 얼굴이 제법 반반한 걸?”

“몸도 아주 다부져. 남자라니 대체 얼마만이야?”

더 이상 마을 사람들은 여인이라 불릴만한 것이 아니게 되었다.

로엘을 본 순간 그녀들은 모두 굶주린 맹수라도 된 양 앞섬을 풀어헤치고 치마를 끌어올렸다.

준비땅이라도 외치면 일제히 로엘에게 달려들 기세였다.

마부석에 앉아 있던 카넨이 이 사태를 예견한 듯 시앙 촌장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촌장님. 아가들한테 말 좀 해주세요. 여왕님의 예비신랑이자 빌로스 왕국의 국왕 전하라고요.”

“이거 우리 아가들이 변변찮은 모습을 보였군요. 죄송합니다, 최근 몇 년 동안 남자라곤 한 명도 찾아오지 않아서 그만. 아가들아! 정신들 차리거라! 여왕님의 남자란 소릴 못 들었느냐!”

시앙 촌장의 날카로운 목소리에 여인들이 겨우 제정신을 되찾았다.

로엘은 도저히 상황파악이 안 되어 엘로나의 귀에 대고 속삭였다.

“아까 관습이라고 했었잖아. 그게 대체 뭐야?”

“에휴, 사실 이 마을에 들어온 남자는 여자들의 공동 소유물이 된다는 규칙이 있어요. 그래서 남자들이 못 버티고 나가는 거죠.”

엘로나의 상대라는 말에 모두가 자제하는 것 같았지만 눈빛을 보니 전혀 그렇지 않았다.

더불어 엘로나도 로엘을 지키고자 가슴을 당당하게 편 상태였다.

로엘은 사마귀 소굴에라도 들어온 양 몸서리를 칠 수밖에 없었다.

///

마을에 행사가 있을 때마다 사용하는 우물공터.

마을의 유일한 우물인 하피의 우물을 중심에 두고 파티가 벌어졌다.

찻잎의 마을인지라 파티에 차 향기가 그득할 줄 알았는데 오히려 산 아래의 마을보다 더 기름지고 술 냄새가 그득한 파티였다.

발효시킨 찻잎과 누룩을 섞어 만든 차향주와 각종 찻잎과 약초를 이용해 누린내를 제거한 산짐승 고기요리가 상다리가 휘어질 정도로 차려졌다.

여자들은 엘로나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근슬쩍 로엘을 유혹하였다.

“로엘 전하, 제가 술 따라드릴게요.”

“어머, 여자보다 더 피부가 고우시네요.”

“이거 제가 만든 음식인데 드셔보실래요? 아앙~.”

술을 따르면서 은근슬쩍 자신의 가슴을 로엘의 팔에 밀착시킨다던지, 피부가 곱다면서 로엘의 팔뚝을 쓰다듬는다던지, 포크로 음식을 찍어 내민다던지.

여인들 특유의 향긋한 향냄새와 야릇한 몸짓이 로엘을 유혹하였다.

옆에서 보고 있는 엘로나로선 화가 날 수밖에 없었다.

로엘에게 과한 유혹은 삼가라고 명령을 내렸는데 평범한 대접을 가장하여 여인의 매력을 뽐내고 있으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그러나 엘로나가 나서기 전에 로엘이 스스로 여인들의 접근을 차단했다.

“대접해주려는 마음은 고맙지만 자제해줬으면 하군. 굶주린 건 알겠지만 내겐 엘로나가 있어.”

안 그래도 루엔을 받아들이면서 3명이나 곁에 두게 되었다.

레이아, 루엔, 엘로나의 매력은 충분히 대륙 최고 수준인지라 다른 여자에게 눈 돌릴 생각은 추호도 없었다.

로엘이란 남자는 책임질 사람도 아닌데 아무나 품는 성격이 아니었다.

무엇보다 더 이상 늘렸다간 굉장히 피곤해질 터이기에 여자들이 들러붙는 건 사양이었다.

마나 마스터가 되면서 안 그래도 준수한 외모가 더욱 잘나졌긴 했는데 그게 꼭 좋은 것만은 아니었다.

너무 여자가 꼬여도 피곤한 법이다.

로엘이 단칼에 여자들의 접근을 잘라내자 여자들이 살짝 거리를 두었다.

그러나 거리를 두는 것도 잠시뿐이었다.

술이 조금 들어가면서 취기가 오르자 다시 로엘에게 들러붙기 시작했다.

“전하, 너무 하시네요. 이렇게 아름다운 미녀들이 가득 있는데 매정하게 그러시기예요?”

“마을을 위해서 하룻밤만 같이 있어주면 안 되실까요?”

“책임지라는 말은 하지 않을 테니 부디 부탁드려요.”

로엘은 아까 보다 여자들이 더 옷을 풀어헤친 상태라는 것을 깨달았다.

둥글둥글, 매끈매끈.

심지어 엘로나에 비하면 평범하기 그지없던 외모마저도 경국지색으로 보일 지경이었다.

로엘은 저도 모르게 욕정이 샘솟는 것을 느낌과 동시에 이질감을 느꼈다.

감정은 하나도 느껴지지 않고 오로지 욕정만 해결하기 위해 다가오는 듯했다.

전생과 전전생에서 점령한 지방의 영주가 바친 여자들이 꼭 이런 모습이었다.

여자들의 의지와 관계없이 뒤에 있는 자만 만족하게 되는 그런 모양새로 느껴졌다.

지금은 전쟁 중인 것도 아니고 이 여자들은 평범한 마을주민으로서 누군가의 명령으로 움직이는 것도 아닌데 왜 이런 느낌이 드는 걸까.

심지어 카넨조차도 뒤에서 로엘을 안으며 엉겨 붙었다.

“로엘 전하, 몸이 뜨거운데 식혀주시지 않으실래요?”

남편 일편단심인데다 엘로나와 로엘의 사이를 적극 밀어주는 입장인 카넨까지 이상하게 될 정도였다.

이쯤 되면 사람이 문제가 아니라 다른 요소가 섞여 있다 여길 수밖에 없었다.

로엘의 옆에서 엘로나가 다른 여자들의 행동에 당황하여 호통을 쳤다.

“모두들 그만두세요! 더 이상의 무례는 용서치 않을 겁니다!”

다행히 엘로나는 정상인 것 같았다.

로엘은 엘로나에게 손을 뻗어 그녀의 등과 무릎 뒤에 손을 받치곤 그녀를 안아들었다.

“지금 말이 통하는 상태가 아닌 것 같아. 일단 지붕 위로 올라가자.”

지붕 위라면 쫓아오지 못할 거라 여겨 엘로나를 안고 힘껏 뛰었다.

테이블, 건물의 난간, 지붕 끝자락을 차례로 도움대 삼아 뛰어오른 로엘은 가뿐하게 3층짜리 건물 지붕에 올라섰다.

아래에선 여자들이 로엘을 쫓으려고 건물 안으로 들어오는 중이었다.

건물 안으로 들어온다 해도 지붕으로 올라오는 길이 있는 건물이 아니라서 당분간은 안전할 것 같았다.

유일하게 로엘을 따라올 수 있는 카넨은 이성이 잠겨 마나를 제대로 쓸 수 없는지 다른 여자들과 마찬가지로 올라오지 못하고 있었다.

로엘은 여자들이 격하게 남자를 원하는 상황을 두고 혀를 내둘렀다.

“이래서야 남자가 버텨낼 수 없을만도 하구만.”

“카넨까지 이상해졌어요. 어떻게 된 걸까요?”

“뭔가 이유가 있겠지.”

욕망에 사로잡힌 여자들과 멀쩡한 엘로나의 차이점.

그 차이점을 짚어가다보면 이 상황을 해명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로엘은 술이 문제인가 싶어 엘로나가 마신 술의 양을 물었다.

“너 술 마셨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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