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46화 (46/219)

00046 2-7. 방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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킬더 왕국의 남쪽 국경에 위치한 대도시 샹데르.

킬더 왕국 인터 공작의 영지에 속한 도시였으나 연방국가의 새로운 수도로 삼기 위한 준비가 한창이었다.

길의 도시라 불리는 만큼 도로와 운하가 대륙 최고 수준으로 잘 정비되어 있었다.

이미 수도 건설 정보를 들은 각 상단과 여러 분야의 길드들이 샹데르에 본부를 마련하려고 몰려들어 연일 호황을 이루고 있었다. 샹데르의 빈 땅은 대부분이 인터 공작의 소유였고, 인터 공작이 결혼 축하선물이라며 적정가격에 땅을 넘겨주었다.

킬더 왕국의 여귀족들은 원래 가격보다 10배나 더 오른 땅을 팔기보단 실제가격보다 약간 비싼 정도로 임대하는 방책을 내놓았다. 샹데르에 입주하고 싶은 전문직 종사자들은 부담 없이 땅을 빌려 건물을 세웠다.

이전에도 충분히 번성한 도시였지만 사람이 몰리고 새 건물이 더더욱 많이 생기면서 미래의 수도다운 면모를 갖추기 시작했다.

반면 킬더 왕궁에선 벌어들인 임대료로 원래 인터 공작이 쓰던 저택을 왕궁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막대한 수입을 이용해 건물을 올릴 자재를 구입하고, 원래 대륙 곳곳을 떠도는 유랑건축집단인 하프 드워프들을 고용하였다.

드워프의 기술 중에서도 건축기술만 고스란히 물려받은 하프 드워프들은 인간보다 5배는 빠른 시간 안에 건물을 완공할 수 있었다.

건축현장을 직접 보고자 샹데르에 온 엘로나는 인터 공작의 저택을 개조하여 만든 본궁을 보곤 감탄을 금치 못했다.

“대단하네요. 이만한 궁전이라면 그를 맞이하기에 부족함이 없겠어요.”

본궁의 크기는 킬더 왕국의 수도에 있는 현재의 본궁보다 2배는 더 컸으며 빌로스 왕국의 것과 비교해도 1.5배는 더 컸다.

본궁을 중심으로 각 모서리에 지어지고 있는 별궁들은 북쪽의 것은 사선 방향에 맞춰 비스듬한 단일건물을, 남쪽의 것은 첨탑형식의 세쌍둥이 건물을 지어 독수리를 상징하도록 만들었다.

더불어 본궁을 중심으로 동서남북에 봄, 여름, 가을, 겨울에 피는 꽃으로 이루어진 정원 4개를 만들어놓아 계절마다 다른 방향에서 다른 꽃들이 만개하도록 구성했다.

빌로스 왕국의 상징인 독수리 문양과 킬더 왕국의 상징인 꽃 문양을 모티브로 삼아 설계한 것이었다.

엘로나의 곁에는 드리안 공작이 서있었다.

그 또한 석 달만에 윤곽을 드러내고 있는 공사현장을 보며 놀라워했다.

“역시 하프 드워프들은 빠르군요. 내년 결혼식은 여기서 올려서 되겠습니다.”

킬더 왕국과 인접한 곳에 있어 빌로스를 대표해 개발을 돕고 있던 드리안 공작이었다.

드리안 공작을 따라 온 3인의 책사 중 한 명인 나단이 주판을 튕기며 말했다.

“예산은 충분할 것 같습니다. 로엘 전하께서 보내주신 지원금만으로도 본궁 건설을 끝내고도 남을 지경입니다. 게다가 하니온 왕국에서도 지원금을 보낸다고 하더군요. 혼수비용 치고는 과한 감이 있지만 덕분에 샹데르 외곽 개발도 문제없이 진행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대륙회담 이후로 완전히 로엘의 사람이 된 드리안 공작은 로엘이 보다 가까운 곳에 위치하게 됨을 기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기뻐하는 드리안 공작과 달리 엘로나는 걱정에 잠겨 있었다.

어젯밤에 로엘의 생활에 대한 보고서를 전해 받았기 때문이다.

레이아가 한 발 앞서 로엘의 옆에 정착한데다 루엔이라는 아이까지 받아들였다고 한다.

여왕의 업무는 전부 물 흐르듯 순탄하게 흘러가고 있었으나 정작 엘로나 내부에선 조급함의 급류가 몰아치고 있었다.

대륙회담 이후로 로엘과 가끔씩 편지를 주고는 있으나 종이쪼가리에 적힌 글씨만으로는 성이 차지 않았다.

편지로는 자세한 사정을 알 수 없으니 사람을 파견하여 몰래 로엘의 일상을 알아오게 하는 데까지 이르게 된 것이다.

‘나 이렇게 느긋하게 있어도 될까.’

심지어 얼마 전에 로엘이 빌로스 왕궁에서 나와 오르보르 산으로 향한다는 소식을 듣게 되었다.

오르보르 산이 킬더 왕국 북동쪽에 있는 걸 감안하면 킬더 왕국을 지나쳐야 하는데 연락 한 통 없다.

‘아무리 잡아놓은 물고기라지만 너무 방치해두는 거 아냐?’

마음 같아선 휴가내고 로엘이 있는 곳으로 달려가고 싶다.

레이아랑 루엔이란 아이와는 계속 시간을 보내놓고 자신은 보내지 못한다니.

이번에는 로엘 혼자 다니고 있다하니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어디 있겠는가.

당장 급한 나랏일은 없어서 인터 공작에게 전권을 맡기고 따라가도 무방하지만 명분이 따라주지 않았다.

여왕의 입장에서 남자 만나러 가야하니 일 좀 대신 해달라는 말을 꺼내는 건 쉽지 않은 일이었다.

가고는 싶은데 말은 못 하겠고, 답답한 마음은 점점 더 깊어져 갔다.

‘차라리 로엘 보고 데리러 와달라고 할까.’

로엘에게 서신 한 통을 쓴다면 북쪽 가는 길에 들러서 엘로나를 데려가줄지도 모른다.

그런데 그러면 로엘이 엘로나를 대신해 명분을 만들어야 하니 민폐 같아서 선뜻 보내기가 힘들었다.

같이 있고는 싶고, 그러자니 폐가 되지 않을까 싶고.

사춘기 소녀가 좋아하는 사람에게 연락할까 말까 고민하듯 혼자 속이 타들어가는 엘로나였다.

그런 엘로나의 고민을 아는지 모르는지 카넨이 다가와 다음 스케줄을 알렸다.

“여왕님, 이제 슬슬 연방준비위원회와의 만찬회에 참석하실 시간입니다.”

“네, 그리로 가도록 하죠.”

“기운이 없으신 것 같은데 혹시 무슨 문제라도 있으십니까?”

“아뇨, 아무 것도 아녜요. 마차를 준비시켜 놓으세요. 바로 출발하도록 하죠. 드리안 공작님은 출발 안하시나요?”

드리안 공작도 연준위의 일원인지라 만찬회에 참석해야했다.

드리안 공작은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뒤늦게 반응하였다.

“아, 전 할 일이 있어서 나중에 합류하겠습니다. 먼저 가십시오.”

“알겠어요. 나중에 뵐게요.”

“네, 조심해서 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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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하루 일정을 모두 소화하였다.

엘로나는 샹데르 동쪽에 있는 인터 공작의 저택에서 머물게 되었다.

엘로나를 위해 마련된 호화스런 방 안에서 엘로나는 침대에 엎어지듯 누웠다.

그녀는 베개에 얼굴을 파묻곤 서글피 중얼중얼거렸다.

“훌쩍, 외로워. 외로워 죽겠어. 나만 이게 뭐야.”

외로움에 사무쳐 베개만 적시고 있던 와중에 바깥에서 카넨이 엘로나를 불렀다.

“여왕님, 빌로스 왕국의 귀족이 찾아왔습니다. 여왕님께 전해야 할 말이 있다고 합니다.”

엘로나는 베개에 얼굴을 비벼 눈물을 대충 닦아내곤 목을 가다듬은 후 여왕버전 목소리를 내었다.

“오늘은 늦었으니 내일 듣겠다고 전하세요.”

“오늘 반드시 전해야할 이야기라고 합니다. 번거로우시더라도 꼭 들어주셨으면 합니다.”

카넨은 웬만하면 저녁시간이 지난 후에 찾아오는 손님에겐 돌아가라 말해주는 편이었다.

그런 그녀가 부탁할 정도의 사안이라면 중요한 일인 게 분명했다.

엘로나로선 외로워하는 상황에서도 일이나 해야 하는 자신이 비참하게 느껴졌다.

차라리 결혼 예정이 없던 때가 그리웠다.

그때는 차라리 외로움을 느낄 건덕지조차 없었는데 말이다.

엘로나가 문을 열고 나서자 챙이 넓은 모자를 쓴 평복차림의 사내가 서있었다.

정작 그녀를 부른 카넨은 온데간데없는 상태였다.

엘로나는 의아함을 느끼며 사내를 응시했다.

“그대가 꼭 할 말이 있다고 찾아온 사람인가요?”

보통 여왕이 질문을 날리면 알아서 자기 이름을 밝히는 게 예의인데 어찌 된 게 눈앞의 사내는 소개 한 마디 없이 불쑥 말을 던졌다.

“엘로나 여왕이시여. 궁녀에게 접근해 정보를 빼갔다고 들었습니다. 로엘 국왕께서 그 일을 알고 크게 노하셨으니 혼날 준비하시는 게 좋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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