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28 2-1. 오크부족의 초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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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기마대를 삼키려던 검은바위 부족의 병력은 별안간 좌측에서 200기의 기마대에게 습격을 당하게 되었다.
로엘이 거느리고 있는 로얄 기사단의 전 병력이었다.
12일 전, 로엘은 3천 명의 수도군을 이끌고 오크평원을 향해 진군하는 중이었다.
병사들을 다독이며 평균 진군속도의 두 배에 가까운 속도로 움직인 덕에 일주일만에 케이델 공작령에 도착하였다.
로엘은 막 철갑기마대를 따라가기 위해 출격하려던 케이델 공작령의 본대 3000명을 앞두고 모든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케이델 공작이 고작 500기의 철갑기마대만으로 오크들을 토벌 중이다!
케이델 공작과 역대 최강의 철갑기마대라면 오크들을 능히 토벌하고도 남았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통상적인 상황에서나 통하는 얘기였다.
불사의 오크를 상대로는 고전을 면치 못할 게 분명했다.
그래서 로엘은 수도군 보병 2800명과 케이델 공작령 보병 3000명을 합친 5800명을 그란데 백작에게 맡기고 본인은 로얄 기사단 200명만 거느린 채 케이델 공작을 쫓았다.
케이델 공작이 남긴 전투의 흔적을 더듬어 추격하는 사이 아슬아슬하게 합류한 것이었다.
로엘은 케이델 공작이 자세를 정비할 수 있게 주변의 불사오크들을 베어 넘겼다.
쉬익! 서걱!
케이델 공작과 마찬가지로 마나 블레이드를 사용하는 로엘이기에 오크들을 종잇장처럼 베어 넘겼다.
그러나 문제는 그 뒤였다.
몸에 얼룩이 남아있는 오크들은 검에 베여 허리가 절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되러 태생적으로 강한 팔 힘만으로 자신의 절단된 상체를 튕겨 로엘에게 달려들었다.
자세를 정비하던 케이델 공작은 어느새 로엘을 얕보던 생각따윈 잊고 진심으로 고함을 질렀다.
“전하! 위험합니다!”
로엘은 달려드는 불사오크들의 송곳니를 보고도 무덤덤하게 검을 휘둘렀다.
몸의 절반이 베였는데도 움직이는 오크들을 보고 몸이 움츠러들 법도 하건만 그런 기색 하나 없이 휘두름에 있어 망설임 한 점 없었다.
아까 로엘의 공격이 긴 곡선을 그렸다면 이번엔 한 지점을 거미줄치듯 여러 번 그었다.
상하좌우의 베기가 한순간에 이루어진 양 동시에 행해졌다.
송곳니를 드러내며 달려들던 불사오크 한 마리가 날아들다 말고 멈짓하였다. 그런가 싶더니 오크의 몸뚱이에 여러 개의 금이 그이면서 몸뚱이가 조각났다.
주먹 크기로 동강난 오크 조각은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되어 그 자리에서 가루가 되어 소멸하였다.
로엘은 소멸하는 오크의 잔해들을 무심히 내려다보며 중얼거렸다.
“불사라 하더니 그것도 아니군. 조각내면 그만인 건가.”
로엘의 중얼거림을 들은 자는 가까이 있던 케이델 공작뿐이었다.
케이델 공작은 로엘의 말을 듣곤 놀랄 수밖에 없었다.
‘이게 정녕 전투 한 번 겪어보지 않은 젊은이란 말인가!’
백전노장의 케이델 공작조차 사전에 불사오크의 존재에 대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괴이함에 대처하지 못해 낙마하고 말았다.
제아무리 기습을 통해 기선제압을 했다지만 젊은 국왕이, 그것도 전쟁경험 한 번 없는 자가 괴이한 존재를 앞에 두고 과감히 대처하는 게 과연 가능할까?
케이델 공작의 눈에 비치는 로엘의 모습은 흡사 수백 번의 전장을 거쳐 온 전사와 겹쳐보였다.
한편 로엘은 현 상황을 수습할 생각으로 가득 차 있었다.
‘기습은 성공했지만 여전히 상황은 최악이야. 한 번 물러나서 태세를 정비하는 게 좋겠어.’
오크 진형의 옆구리를 뚫고 들어왔다곤 하나 그래봤자 병력은 200기에 불과하다.
철갑기마대를 포위하기 위해 측면으로 돌아나갔던 놀 라이더들이 머리를 돌려 배후를 노리는 중이었다.
지금은 포위망을 뚫고나가 재정비를 할 수 있는 곳까지 퇴각하는 게 현명한 판단이었다.
로엘이 선두에 서면 빠져나가는 건 어렵지 않을 터이나 적의 추격을 받으면 상당한 피해를 입게 될 것이다.
그러나 전생과 전전생에서 수도 없이 겪어본 상황이다.
로엘의 적들은 항상 로엘을 고립시키려 했고 이보다 더 극한의 상황에서도 로엘은 살아남았었다.
적의 추격을 막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추격명령을 내릴 우두머리를 처리한 후 포위망을 뚫으면 그만일 뿐이다.
로엘은 아수라장이 된 전장을 훑으며 단숨에 적장을 발견해냈다.
막 복귀한 놀 라이더 부대에 유달리 피부가 검은 오크 한 마리가 있었다.
원래 피부색깔이 검은색이 아니었을까 싶을 정도로 얼룩이 그득했으며, 팔뚝만한 철뭉치를 나무에 엮어 만든 무쇠망치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로엘은 말고삐를 쥐어 방향을 그쪽으로 돌렸다. 그리곤 앞으로 쏘아나가며 케이델 공작에게 할 일을 일러주었다.
“적장의 목이 떨어지면 그 즉시 대열을 이끌고 우측으로 빠져나가도록. 한 치의 실수도 있어선 안 된다. 알겠나?”
“아, 네! 분부대로 하겠습니다!”
놀에 올라탄 오크들이 난장판에 끼어들면서 곳곳에서 기사들의 비명소리가 들려왔다.
근접전에서 더욱 위력을 발휘하는 놀 라이더들은 놀을 부려 말을 물어뜯게 하였다. 말을 잃어 낙마한 기사들은 대처를 할 틈도 없이 돌도끼에 맞아 투구 사이로 피를 뿜었다.
검은바위 부족의 돌격대장을 맡고 있는 즈카란 오크는 신명나게 무쇠망치를 휘두르는 중이었다.
후웅!
30~40kg에 달하는 쇳덩이가 허공을 가를 때마다 강렬한 바람이 일었다.
무쇠망치의 궤적에 걸쳐져 있는 자들은 어김없이 투구나 갑옷이 찌그려서 나가떨어졌다.
공격할 때마다 나가떨어지는 기사들을 보며 즈카는 광소를 터뜨렸다.
“크하하! 더욱 비명을 질러라! 더욱 피를 뿜어라! 나를 더 즐겁게 해보란 말이다!”
베여도 피가 흐르지 않게 된 이후부터 남이 피를 뿜는 것을 즐기게 된 그는 무차별 살육에서 희열을 느끼고 있었다. 그의 흉폭함과 무식하기 짝이 없는 살육방식은 적으로 하여금 공포심을 심어주기에 충분했고 그의 성향을 충분히 고려하여 돌격대장의 임무를 맡게 되었다.
그런 그에게 있어 인간은 사냥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몇몇 기사들을 쓰러뜨린 즈카는 다음 사냥감을 찾아 눈을 휘번뜩였다.
광기에 젖은 즈카의 눈에 겁도 없이 자신에게 달려드는 한 청년이 비쳤다.
즈카는 청년이 피투성이가 되는 광경을 상상하며 메마른 혀로 입술을 연신 핥아댔다.
“고놈 참 예쁘장하게도 생겼구나. 죽으러 오는 노력을 가상히 여겨 하나하나 차근차근 뭉개주도록 하마.”
즈카의 광기 섞인 목소리에도 불구하고 청년은, 아니 로엘은 한 손만으로 말을 조종하며 마나 블레이드가 맺힌 검을 옆으로 늘어뜨렸다.
즈카의 무쇠망치가 더 긴 만큼 로엘이 먼저 그의 사정거리에 들어서게 되었다.
즈카는 망설일 것 없이 로엘의 어깨에 무쇠망치를 떨어뜨렸다.
그러나 즈카의 의도는 성립되지 못했다.
로엘이 마나 블레이드로 무쇠망치의 장대부분을 베어냈기 때문이다.
소금 먹인 작대인지라 쇠에 버금가는 강도를 지니고 있었지만 마나 블레이드 앞에선 식칼 앞의 당근이나 마찬가지였다.
장대가 잘려나가며 무쇠망치의 쇠뭉치 부분이 허공에서 팽팽 돌며 떨어져 나왔고, 로엘은 고개를 살짝 옆으로 돌림으로서 쇠뭉치를 피해냈다. 그리곤 물 흐르듯 검을 사선으로 그었다.
즈카도 괜히 돌격대장 명함을 달고 있는 건 아닌지 몸을 횡으로 기울여 다릿심만으로 놀에 매달렸다.
그로 인해 원래 목이 베였어야 하는데 팔 하나만 떨어져나가게 되었다.
한 차례의 경합 후 로엘과 즈카는 서로를 지나쳤고, 즈카는 피가 흐르지 않는 팔 단면을 매만졌다.
불사의 힘을 얻은 뒤로 질 리 없다 여기고 있던 자존심이 무너지면서 즈카의 표정이 분노로 물들었다.
즈카는 자세를 바로 잡으며 설욕을 위해 등에 매달려 있는 예비 망치를 뽑으려 했다.
한 번 일격을 먹었으니 곧바로 후속공격이 올 거라 여겨 바삐 움직였다.
그러나 후속공격은 오지 않았다.
경합을 마친 로엘이 뒤도 안 돌아보고 그대로 나아가는 게 아닌가.
이제 즈카 따위에겐 볼일 없다는 듯 말이다.
“어디서 도망을 가느냐! 아직 나는 죽지 않았단 말이다!”
로엘을 쫓기 위해 놀을 부리는데 이상하게도 시야가 옆으로 기울었다.
“어어? 어째서 하늘이 기우는......”
시야가 기울어지면서 목이 떨어진 자신의 몸이 보였다.
즈카는 자신의 몸이 따로 놀고 있다는 것을 깨닫곤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얼마나 정교하게 베었는지 뒤늦게 즈카의 머리와 목에 금이 그이며 산산조각 나버렸다.
로엘은 두꺼운 건틀릿으로 귓바퀴를 문지르며 능청스레 중얼거렸다.
“아까부터 뭐라고 꽥꽥거리는 건지 모르겠네.”
돌격대장을 잃은 검은바위 부족의 돌격부대는 삽시간에 혼란으로 뒤덮였다.
그 틈을 타서 케이델 공작이 부대를 이끌고 활로를 뚫었다.
방심이 걷힌 그는 마나 익스퍼트답게 불사오크, 일반오크할 것 없이 마구 베어 넘기며 길을 만들었다.
그 뒤를 따라 로얄 기사단이 철갑기마대를 엄호하여 무사히 포위망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로엘 역시 최후방에 붙어 함께 포위망에서 벗어났다.
검은바위 부족 돌격부대에게서 추격의 낌새는 느껴지지 않았다.
추격 명령을 내릴 대장이 없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대장이 없으면 부대장이 지휘권을 물려받게 되나 그 정도까지 체계를 갖추고 있진 않은지 결국 오크 무리도 물러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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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갑기마대를 구출한 로엘은 만약을 위해 동쪽으로 2시간 거리만큼 이동하였다.
마침 깨끗한 물이 흐르는 강가가 나타나준 덕에 목을 축일 겸 휴식을 취하였다.
로엘은 더프로 하여금 피해상황을 파악하고 부상자와 주인 잃은 말을 케이델 공작령으로 돌려보내라 명했다.
이제야 살아났다는 걸 실감했는지 진영 곳곳에서 이완된 분위기가 흘렀다.
하지만 아직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었다.
케이델 공작은 쉴 시간조차 없이 곧장 로엘의 앞에 두 무릎을 꿇게 되었다.
로엘은 먼지투성이의 케이델 공작을 차갑게 내려다보았다.
“케이델 공작. 난 신하들이 제멋대로 구는 것에 이골이 나있어. 그래도 굳이 그들을 벌하지 않아. 왜냐하면 나를 위해서, 빌로스를 위해서 궁리 끝에 행한 행동이라는 걸 아니까. 그런데 내가 한 가지 용납 못하는 게 있어.”
로엘이 검을 케이델 공작의 바로 앞에 꽂으며 그를 지팡이 삼아 허리를 꼿꼿히 세웠다.
고고한 기품이 흘러나오는 가운데 로엘이 이어말하길.
“왕국의 평화를 해치는 것. 그것만큼은 용납하지 못해. 나는 분명 그대에게 대화부터 시도하라 일렀는데 그대는 말을 듣지 않았지. 인정하나?”
케이델 공작의 입술이 움직이려던 찰나.
기사들 사이에 서있던 로스트가 앞으로 나와 로엘 앞에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전하! 감히 무례한 줄 아오나 공작님을 벌하기 앞서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