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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26화 (26/219)

00026 2-1. 오크부족의 초대 =========================

하니온 왕국 서북쪽엔 바다가 있지만 서남쪽 너머는 황량한 평원이 펼쳐져 있었다.

사막에는 백만 마리의 오크가 살고 있는데 그들은 태생적으로 근육질의 탄탄한 육체를 지니고 태어나며 멧돼지의 것과 같은 송곳니를 가진데다 녹색 피부를 지닌 아인종이었다.

그들이 살고 있는 평원을 오크평원이라 하는데 백만 마리의 오크들이 수십 개의 부족으로 나뉘어져 살고 있었다.

늘 저희들끼리 치고 박고 싸우느라 인간들의 땅에는 관심조차 주지 않는데 어쩐 일로 빌로스 왕궁에 사절단을 보낸 것이다.

로엘로선 전생과 전전생에서 없던 일이라 심상치 않게 받아들였다.

바보 삼형제가 레이아를 노림으로서 조짐을 보이던 게 큰 틀로 나타나기 시작했다.

미래가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로엘은 이를 길조로 받아들이며 명령을 내렸다.

“오크들을 분수 앞으로 안내해라. 거기서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보겠다.”

아무리 아인종의 일종이라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오크를 몬스터나 다름없다고 인식하는 편이었다.

경사스러운 날에 몬스터가 왕궁에 들어온다는 것에 거부반응을 보일 수밖에 없었다.

“안 됩니다 전하! 오크와 같은 야만생물을 들였다간 무슨 짓을 할지 모릅니다!”

“오크가 원하는 건 식량과 생식을 할 땅뿐. 귀찮은 요구를 해올 게 분명합니다. 쫓아내는 게 현명합니다.”

신하들의 말 속에 적개심이 담겨 있었다.

무리도 아니었다.

선왕 시절에 오크와 여러 차례 소규모 전쟁을 벌였기 때문이다.

오크평원의 주식은 조릿대다. 조릿대가 자라는 지역은 한정되어 있어서 그 지역을 얼마나 보유하냐에 따라 부족의 규모가 달라졌다. 그런데 선왕 시절에 비정상적인 자연재해의 연속으로 오크평원을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그에 따라 조릿대 수확량이 급격하게 하락했고 굶주림을 참지 못한 오크들이 빌로스 서쪽 국경의 마을들을 약탈하기 시작했다.

당시에 서남쪽 국경을 아울러 다스리던 케이델 공작은 수차례 오크 토벌을 감행했고, 몇 번이나 피를 흘린 끝에야 겨우 그들을 몰아낼 수 있었다.

왕궁의 귀족들도 서쪽 국경에서 벌어진 참상에 대해 보고 받았었기에 오크를 부정하는 것이었다.

허나 로엘은 강하게 발을 구르며 일침을 가했다.

“그들은 목숨을 걸고 이곳을 찾아왔다! 그토록 절실히 찾아온 자를 쫓아내라 하는 건가! 박정함을 안은 채로 어찌 짐의 신하라 자처할 수 있단 말이냐!”

오크에 대한 인식이 안 좋은 만큼 대놓고 테헤란까지 올 순 없었을 거다.

정체를 숨기고, 길이 없는 곳을 헤치며 여기까지 온 자들을 사정도 듣지 않고 돌려보내는 건 돌아가는 길에 죽으라 말하는 거나 다름없었다.

로엘은 대륙통일을 거부함으로서 바뀐 미래의 일각을 확인하고 싶었다.

한편 연회장 안에 쩌렁쩌렁 울리는 소리는 신하들의 가슴에 종두처럼 강하게 내리꽂혔다.

신하들은 자신들이 모시는 왕이 현명한 왕임을 깨닫곤 스스로 시선을 낮추었다.

“전하의 뜻이 옳습니다. 저희를 꾸짖어주십시오.”

“알아들었다면 긴 말은 하지 않겠다. 붉은머리 부족의 사절단을 맞이할 준비를 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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빌로스 왕궁의 정원에 위치한 대분수.

가을이라 단수를 해서 물이 뿜어 나오고 있진 않았지만 대리석으로 만든 분수대의 천사상은 그 자체만으로도 고귀한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대분수 앞에서 로엘은 큼지막한 로브를 뒤집어쓴 일련의 무리를 맞이했다.

하나 같이 덩치가 큰 탓에 로브의 크기도 커져서 로브가 아니라 거적때기를 뒤집어 쓴 것 같았다.

로엘은 우두커니 서있는 자들을 향해 말했다.

“모습을 드러내라.”

방문자들은 각자 로브의 모자 부분을 뒤로 젖혔다.

그러자 녹색 피부에 납작한 돼지코를 지닌 얼굴이 드러났다.

몇 안 되는 머리카락을 한데 묶어 위로 올린 상태였는데 머리카락 색깔이 붉은색이라 붉은머리 부족인 것 같았다.

모습을 드러낸 이후에도 우두커니 서있는 오크들을 보고 그란데 백작이 으름장을 놓았다.

“전하 앞에서 멀쩡히 고개를 들고 있다니 무례하구나! 얼른 무릎을 꿇지 못할까!”

오크들은 서로를 쳐다보다게 엉거주춤한 자세로 한 쪽 무릎을 꿇었다.

무리의 선두에 있는 누런빛 송곳니를 가진 오크가 사과의 말을 전했다.

“미안하게 됐소. 인간들의 예법에 무지한지라 양해해주시오.”

로엘은 길길이 화를 내려는 그란데 백작에게 가만히 있으란 명령을 내리며 누런빛 송곳니의 오크에게 말을 걸었다.

“그대는 어디서 온 누구인가?”

“만나 뵙게 되어 영광이오, 현 빌로스의 국왕이여. 나는 붉은머리 부족을 이끌고 있는 길라운이라 하오. 그대를 찾아온 건 다름이 아니라 오크평원의 평화를 해치는 한 부족 때문이오. 빌로스 왕국에서 부디 힘을 빌려주었으면 하오.”

“부족 간의 일은 오크 내에서 처리한다. 그게 오크들의 규칙 아니었나?”

“물론 그건 사실이지만 만약 그들을 막지 못하면 빌로스 왕국까지 위험에 처할 게 분명하기 때문에 부끄러움을 무릅쓰고 이리 찾아왔소.”

이번에는 클라임 후작이 참다못해 열을 올렸다.

“듣고 있자니 망언을 지껄이는구나! 빌로스 왕국이 고작 오크따위에게 무너질 국가로 보였느냐!”

로엘은 이번에도 역시 클라임 후작을 손짓으로 제지하며 말을 꺼냈다.

“짐의 국가를 우롱하려는 게 아니라면 필시 그에 합당한 이유가 있을 터. 자세히 말해보아라.”

“사건의 원흉은 검은바위 부족의 디르크란 작자요. 원래는 평원 중앙에 있는 고원출신으로 제 아비의 뒤를 이어 부족을 이끌게 되었는데 어디서 배운 건진 몰라도 괴이한 기술을 쓰고 있소. 그 힘으로 주변 부족을 하나둘씩 정벌하여 수중에 세력을 모아 인간의 나라를 습격하겠다고 벼르는데 이미 30개의 부족 중 17군데가 검은바위의 수중에 떨어졌소.”

“괴이한 기술?”

“나도 자세히는 모르겠소. 다만 그들에게 쫓겨 우리 부족에 몸을 의탁한 자들의 말에 의하면 그의 세례를 받은 자는 지치지 않고 죽지 않는 몸이 된다 하오. 모든 오크에게 세례를 하지 않는 걸로 보아 제약이 있는 것 같소만 불사오크가 이미 1000마리 가까이 있어서 그들만으로도 한 부족을 능히 상대 가능하니 인간의 나라라고 어찌 안전하겠소.”

어떤 술수를 부렸는지는 모르겠지만 길라운의 말에서 거짓은 느껴지지 않았다.

신하들은 길라운의 말을 믿지 않는 눈치지만 로엘은 모든 게 사실이라는 가정 하에 움직이기로 마음먹었다.

“그대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일은 그냥 넘어갈 수 없겠군. 라이너리 백작!”

“네, 라이너리 백작 전하의 명을 받을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말씀하십시오.”

“지금 당장 케이델 공작에게 전보를 날려 검은바위 부족과 접촉하여 그들에게 싸움을 그만둘 것을 권유하되 선공은 삼가라고 전해라.”

“검은바위 부족이 케이델 공작의 권유를 거절할 경우엔 어떻게 하라고 전할까요?”

“그땐 철갑기마단을 선봉 삼아 진격하라고 해라. 제 욕심이 과해 끝까지 인간의 땅을 넘본다면 짐이 직접 나서서 검을 휘두르겠다.”

먼저 케이델 공작으로 하여금 오크평원에 진격하라 한 후 추후상황을 봐서 로엘이 직접 나설 생각이었다.

라이너리 백작이 전보를 작성하기 위해 물러났고 로엘은 다시 길라운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붉은머리 부족의 족장이여. 그대를 손님으로 받아들이겠다. 케이델 공작의 보고가 올 때까지 왕궁에서 기다려주겠나?”

“손님으로 인정해주는 건 고맙소만 우리가 있으면 그대의 신하들이 불편해할 것 같소. 먼저 평원으로 돌아갈 테니 좋은 소식이 오길 기대하겠소.”

“그렇다면 돌아가는 길이 평안토록 각 관문에 왕명을 내려둘 테니 닦아놓은 길로 가게.”

“빌로스 국왕의 배려에 깊은 감사를 전하오.”

로엘은 오크와의 전쟁이 통일전쟁으로 이어지지 않을까하는 불길한 예감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가만히 방치해둘 순 없는 노릇이었다.

인간과의 전쟁이 아닌 만큼 전후처리를 잘한다면 문제없을 거라 여기며 길라운을 돌려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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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라운이 돌아간 직후에 빌로스 왕궁 위로 매 한 마리가 날아올랐다.

급한 일을 전할 때 쓰이는 통신용 매였다.

매는 발목에 쪽지를 묶은 채로 빠르게 서남쪽으로 날아갔다.

답장이 오기까지 걸리는 시간은 약 사흘.

사흘 동안 빌로스 왕궁에선 앞으로 발생할 상황을 상정하여 대응책을 논하였고, 국왕 직속 3천명의 수도군이 언제든지 움직일 수 있도록 조치를 취하였으며 각 영지에 병력을 차출하여 올려 보내라는 공지를 내렸다.

모두가 잠잘 시간을 쪼개가며 바쁘게 움직이는 가운데 케이델 공작의 답장이 돌아왔다.

되돌아온 답변은 로엘이 원하는 대답과 한참 거리가 멀었다.

[전하. 미개한 종족 따위에게 인정이 웬 말입니까. 저 케이델 공작이 직접 나서 검은바위 부족의 졸개 500마리를 베었습니다. 이 기세를 이어 감히 빌로스 왕국을 넘본 미물들을 처단하겠사오니 전하께선 염려 말고 승전보를 기다려주십시오.]

쪽지를 본 로엘은 손에 힘을 주어 쪽지를 구겼다.

공격 이전에 권유부터 하라했거늘 명령을 듣지 않고 멋대로 공격을 해버린 것이다.

이제 검은바위 부족과의 전쟁은 막을 수 없게 되었다.

로엘은 왕좌를 박차고 일어나며 신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국왕 직속 수도군을 준비시켜라! 짐이 직접 오크평원으로 가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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