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될놈될-25화 (25/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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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오크부족의 초대

대륙회담이 끝나고 겐크 왕국으로 향하는 귀환길에서 아지스는 계속 이를 갈고 있었다.

“망할 연놈들 같으니. 이 몸은 왕중왕이란 말이다. 그런데 감히 이런 굴욕을......”

대륙회담 때 로엘에게 속수무책으로 당한 것이 너무나도 분해 감정을 추스를 수가 없었다.

킬더 왕국과 빌로스 왕국의 국력은 5왕국 중에서 4위와 5위에 달한다.

최하위의 두 국가가 화술로 덤벼오는데 제대로 대꾸조차 하지 못했다.

무엇보다 열 받는 건 로엘의 존재였다.

첫날 케시어 입장 때부터 굴욕을 주더니 회담에선 아주 아지스만 노리고 달려들었다.

당하고 있다는 걸 알면서도 아무 것도 하지 못했다.

무조건 공격적으로 나오는 게 아니라 일부러 빈틈을 보여 아지스가 제 무덤을 파게한 후 가차 없이 언변으로 파고드는데 이토록 무력감을 느낀 적은 처음이었다.

마치 아지스에 대해 아주 잘 아는 것처럼 로엘은 아지스를 가지고 놀았다.

하지만 아지스 스스로는 졌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군비축소조약 따윌 지킬까보더냐. 두고 봐라. 계획이 성공하면 로엘 그 놈의 목을 치고 킬더 왕국의 계집을 내 밑에 깔아주마.”

분을 삭이느라 무심코 손에 힘이 들어갔다.

그 탓에 쥐고 있는 난쟁이족의 궐련이 한껏 구겨졌다.

새로운 궐련을 꺼내려던 차에 아지스는 문득 자신을 바라보는 시선을 느꼈다.

시선은 먼 곳에서 오는 게 아니었다.

아지스 홀로 앉아 있는 마차 안.

바로 정면의 좌석에 검은 로브를 쓴 자가 앉아 있는 게 아닌가.

아지스는 화들짝 놀라 품 안에서 단검 한 자루를 꺼내었다.

기껏해야 팔뚝 길이만한 단검이지만 겐크 왕국의 최상급 철을 몇 번이나 담금질한 것이라 어중간한 장검이면 곧장 이빨이 나가버릴 정도의 강도를 지니고 있었다.

아지스 본인도 마나유저 상급에 이르기에 단검의 날 주위로 마나가 깃들었다.

“짐의 목숨을 노리고 온 자객이더냐!”

일부러 큰소리를 냈으나 마차를 호위하는 기사들은 듣지 못한 듯 미동도 하지 않았다.

소리가 새어나가지 않도록 마차 내부에 사일런트 마법이 펼쳐져 있는 게 분명했다.

아지스는 겉으론 분노를 드러내고 있었지만 그의 목줄기엔 식은땀이 흐르고 있었다.

아지스 직속 휘하의 기사들과 병사들에게 들키지 않고 마차에 잠입한데다 순식간에 마차 안을 외부와 단절시켰다.

검은 로브의 사내가 마음만 먹었다면 아지스의 목은 이미 날아갔으리라.

대체 어디서 솟아난 실력자인지, 배후가 누구인지 짐작조차 되지 않았다.

로브의 모자를 깊숙이 눌러쓴 탓에 얼굴조차도 확인할 수 없었다.

아지스의 위협에도 불구하고 검은 로브의 사내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아지스는 자신의 단검이 그에게 전혀 위협이 되지 않음을 알고 검을 거두었다.

“짐을 암살하러 온 게 아니라면 용건이 있을 터. 용건을 말해라.”

그제야 검은 로브의 사내가 반응하였다.

사내는 로브 사이로 팔을 꺼내더니 손에 쥐고 있는 물건을 내밀었다.

사내가 내민 물건은 손바닥 크기의 수정구슬이며 투명한 구슬 안에는 응축된 마나가 연기처럼 소용돌이 치고 있었다.

아지스는 단박에 물건의 정체를 알아보았다.

“마력의 결정! 어떻게 이 물건을......”

최초의 연금술사이자 전설적인 마법사인 산티누가 만든 마력의 결정.

인공 드래곤 하트라고도 불리기도 하는 희대의 마법물품 중 하나였다.

놀라는 아지스를 두고 검은 로브의 사내가 처음으로 말을 꺼냈다.

“그쪽이 진행하고 있는 골렘연구에 도움이 될 겁니다.”

마법병기 골렘.

사람의 모양을 본떠서 만든 3미터 거구의 철골무기이다.

500년 전에 마탑의 꼭대기에 위치한 마법사가 만들었다가 유출되어 단 50구만으로 일국을 멸망 직전까지 몰아넣었다는 괴물 같은 병기였다.

골렘의 위험성 때문에 개발자 본인이 직접 골렘을 정지시켜 회수한 후 폐기하였고 설계도를 없애버렸다.

그 후로 아무도 골렘 개발은커녕 골렘에 대해 신경도 쓰지 않았는데 겐크 왕국이 골렘 연구를 다시 시작한 것이다.

겐크 왕국 내에서도 극소수만 아는 비밀 계획인데 그것을 검은 로브의 사내가 알고 있었다.

아지스는 굉장한 위협을 느낌과 동시에 함부로 대할 인물이 아님을 깨달았다.

“네가 누구인지는 묻지 않겠다. 내게 이것을 주는 이유를 설명해다오.”

“필요한 것을 필요한 사람에게 주러 온 것입니다.”

“이유가 그것뿐이라면 석연치 않아 마음 놓고 쓸 수가 없다.”

“생각보다 귀찮은 성격이시군요. 굳이 이유를 붙이자면 이 미적지근한 평화가 마음에 안 들기 때문일까요. 꾀하고 있는 계획이 성공하길 바라겠습니다.”

그 말을 끝으로 검은 로브의 사내가 연기처럼 흐려지더니 자취를 감추었다.

나타나고 사라짐이 너무나도 신출귀몰하여 아지스로선 헛것을 본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허나 꿈이 아니었다.

아지스의 손에 남아 있는 마력의 결정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증명해주고 있었다.

///

로엘 일행은 대륙회담 일정을 모두 소화한 후 열흘만에 테헤란으로 복귀하였다.

이미 엘로나와 레이아를 얻은 소문이 퍼졌는지 테헤란 백성들이 열렬하게 로엘을 맞이해주었다.

로엘을 태운 마차가 테헤란 거리에 들어서자마자 환호성과 헝겊을 매달아 만든 환영깃발이 마구 나부꼈다.

마차가 빌로스 왕궁의 해자에 다가가자 교두보가 내려오면서 길이 이어졌다.

왕궁 입구에선 신하들이 양쪽으로 늘어서 로엘을 맞이하였다.

왕궁 안으로 들어선 마차가 멈추면서 로엘이 내렸고 그와 동시에 신하들이 우렁찬 목소리로 로엘의 성과를 축하해주었다.

“전하! 감축 드리옵니다!”

“감축 드리옵니다!”

천계에 다녀와도 자기집만 못하다 했던가.

케시어에서 극진한 대접을 받았지만 왕궁에 돌아오니 공기부터가 달랐다.

로엘은 숨을 크게 들이쉬며 긴장을 풀었다.

“역시 집이 최고구만. 여러 모로 피곤한 여행이었어. 나 없는 동안 다들 잘 지냈지?”

누구보다 로엘의 귀환을 기다려왔던 그란데 백작이 한 쪽 무릎을 꿇으며 울먹이듯 말했다.

“전하께서 없으시니 하루가 백년 같고 살아도 산 게 아닌 것 같았습니다. 전하께서 무사히 돌아오신 것만으로도 소신 감개무량하여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딱히 문제는 없었다는 거군. 숙부님, 제가 없는 동안 고생하셨습니다.”

가감 없는 칭찬에 클라임 후작이 헛기침을 하며 솔직하지 못한 반응을 보였다.

“크흠, 제가 한 게 뭐 있겠습니까. 전하의 업무를 대신 소화했을 뿐입니다.”

클라임 후작의 반응이 썩 마음에 안 드는지 그란데 백작이 불쑥 끼어들었다.

“전하께서 계실 때보다 여러 모로 잡음이 많았지요. 전하께서 오셨으니 이제 모든 게 순탄하게 처리되겠군요.”

“그란데 백작이 그리 말할 처지가 되는지 모르겠군. 하는 일마다 발목을 붙잡는 탓에 얼마나 방해가 되던지 원.”

두 사람이 서로 으르렁대든 말든 로엘은 풍겨져 오는 음식냄새를 맡으며 연회장 쪽으로 향했다.

“나 온다고 거하게도 차려놨다 보구만. 차려뒀으니 먹어줘야지. 얼마나 준비해뒀나 볼까?”

로엘의 귀환과 대륙회담의 성과, 그리고 두 여인과 혼담이 오가게 된 것을 축하하기 위해 며칠 전부터 준비한 연회였다.

신하들이 심혈을 기울여 준비한 연회답게 빌로스 동서남북에서 올라온 각종 산해진미가 즐비했고, 궁중악단은 결혼축가를 편곡한 음악을 회장 가득 흘려 넣었으며 오늘만큼은 취하고 죽자는 의미인지 와인을 담은 오크통이 회장 바깥에 준비되어 있었다.

여행 후의 연회는 여독을 풀라는 의미에서 편안한 분위기로 진행하기 마련이지만 그러기엔 귀족들의 궁금증이 너무 증폭되어 있었다.

엘로나와 레이아.

두 여인을 어떻게 취하게 되었는지 듣고 싶어서 안달이 나있었다.

귀족들은 잡담을 삼가며 오로지 로엘만을 쳐다보았다.

누가 먼저 활시위를 놓을 것인지 눈치만 보았다.

결국 질문을 던진 사람은 그란데 백작이었다.

“전하. 소문에 따르면 킬더 왕국의 엘로나 여왕과 하니온 왕국의 레이아 공주와 혼담이 오가는 중이라 들었습니다. 사실입니까?”

어차피 숨길 일도 아닌 터라 로엘은 속시원하게 선언해주었다.

“내년에 합동결혼식을 올리기로 했다!”

“우오오!”

“전하 만세! 빌로스 만세!”

“축하드립니다!”

“경사일세! 빌로스에 겹경사가 일어나는구나!”

연회장 전체가 크게 들썩였고 로엘이 잔을 높게 치켜들자 귀족들이 그를 따라 잔을 높게 들었다.

첫 잔은 원샷으로 한 명도 빠짐없이 단번에 잔을 비웠다.

원하는 대답을 얻은 귀족들은 삼삼오오 모여 로엘의 혼사에 대한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반면 그란데 백작과 라이너리 백작은 로엘의 오른쪽과 왼쪽 양쪽에 서서 자세한 대화를 나누었다.

“엘로나 여왕이 여왕의 직위를 포기할 리는 없고 설마 연방국가를 설립할 생각이십니까?”

“그리 될 것 같아.”

“흐음, 대륙통일에 한 걸음 더 가까워졌군요. 킬더 왕국이 최약체라지만 저희와 합치면 대륙최강국이라 할 수 있겠죠.”

“자꾸 오해하는데 난 전쟁할 생각 없데도. 이번에 군비축소조약 통과시킨 게 나라는 거 몰라?”

로엘의 혼사 때문에 군비축소조약은 생각도 못하고 있었는지 그란데 백작은 허망한 표정을 지었다.

여태껏 로엘의 말을 어떤 방식으로든 전쟁과 연결시키던 그이지만 이번만큼은 다르게 생각할 수가 없었다.

“정말로 전쟁에 뜻이 없으시군요.”

“야망 없는 국왕이라 실망했어?”

“그럴 리가요. 전하의 뜻이 곧 저의 뜻. 전하께서 어떤 판단을 하시든 저는 그 길이 최선임을 믿어 의심치 않고 있습니다.”

“고마워. 그란데 백작 같은 충신을 둔 나는 정말 행복한 왕이야.”

그란데 백작에게 있어 여태까지 들어본 말 중 최고의 찬사였다.

그란데 백작은 감정이 북받쳐 올라 눈시울을 글썽거리며 코를 먹었다.

“훌쩍, 전하야 말로 제 인생 최고의 영광입니다. 감사합니다.”

“다 큰 어른이 훌쩍거리는. 낯간지러운 모습 보이지 말고 잔이나 채워줘.”

“기꺼이 그리하겠습니다.”

로엘이 전쟁에 뜻이 없음이 밝혀졌지만 연회의 분위기는 식을 줄 몰랐다.

그러나 달구어진 분위기는 오래 가지 못했다.

경사스러운 날에 어울리지 않게 로얄 기사단 기사 한 명이 급히 연회장을 가로질러 로엘에게 달려오더니 심상치 않은 소식을 전하였다.

“전하! 서쪽 오크평원의 붉은머리 부족 소속 오크들이 전하를 뵙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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