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0007 6. 하니온의 공주 =========================
6. 하니온의 공주
다크 던지기 결과 로엘의 손엔 드라고라의 혈청과 블루 오션, 코스모스 모양 브로치 하나, 사탕 몇 개가 들어왔다.
마음만 먹으면 노점상의 마법물품을 전부 털어올 수 있었지만 그랬다간 상인이 울까봐 배려를 해주었다.
드라고라의 혈청은 지니고 있으면 어지간한 독은 모두 해독해주는 귀한 물품이었다. 반면 1등 상품인 블루 오션은 주머니에 넣어주면 몸을 시원하게 해주고 청결을 유지하게 해주는 귀족 부인들의 애용품 정도였다.
첫 번째 삶 때 가졌던 취미 중 하나가 마법물품 수집이었기에 어지간한 건 다 알아볼 수 있었다.
메이아는 싱글벙글 웃고 있는 로엘을 신기하다는 듯 쳐다보았다.
“다트는 언제 또 그리 배우셨어요?”
“배웠다기보단 질리도록 했었지?”
“네?”
“그냥 해본 소리야. 그 왜 다트랑 화살은 일맥상통하는데가 있다잖아?”
“아~.”
로엘의 경우 검 이외에도 궁술, 창술, 왕국체술, 방패호신술 모두에 능하기 때문에 다트라고 못 던질까 싶어 쉽게 납득하는 메이아였다.
사실은 이전 삶 때 전쟁에서 질리도록 다트 내기를 했기 때문이지만 말이다.
수 년간 전쟁을 하다보면 의외로 쉬는 날이 많이 생긴다.
행군 중에 비가 와서 쉰다던가, 브리튼 교가 지정한 기념일에도 쉬고, 해당 지역의 명사가 죽거나 하면 추모의 의미로 전투를 하지 않기도 하였다. 그 외에 하루 틈틈이 쉬는 시간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든 놀려고 발악을 하는 게 군인이기 때문에 별의별 놀이를 다 해봤었다.
그 중 지휘부는 트럼프와 다트, 체스 등을 많이 했었기에 그 실력이 여전히 남아있는 것이었다.
로엘은 거리를 둘러보다가 포션그림이 새겨져 있는 간판을 발견했다.
마법물품과 각종 재료를 구입, 판매하는 마법상점이었다.
로엘이 드라고라의 혈청을 얻은 건 자신이 사용하기 위해서가 아니었다.
이왕 도박의 도시에 왔으니 도박을 해주는 게 도리 아니겠는가.
지금 가지고 있는 100골드는 여행비용이니까 아껴둬야 한다. 그래서 따로 도박에 쓸 자금을 만들 생각이었다.
로엘은 메이아와 함께 마법상점 안으로 들어갔다.
마법상점 안은 선반과 진열대가 규칙적으로 설치되어 있었고 진열대마다 기이한 형태의 물건과 보존액에 담긴 각종 몬스터 부위가 늘어서 있었다.
뭔지 모를 약품냄새가 진동하는 가운데 계산대에 앉아 있던 늙은 노인이 두 사람을 맞이했다.
“어서 오십시오. 무슨 물건을 보러오셨습니까?”
“다른 건 아니고 드라고라의 혈청을 팔고 싶은데 감정해주겠어?”
로엘과 메이아의 차림을 보고 C급 용병정도라 생각하여 시큰둥하게 있던 노인이었다.
그런데 드라고라의 혈청이란 말에 자세를 고쳐 앉으며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지금 무슨 물건을 팔러 오셨다 하셨죠?”
“드라고라의 혈청. 혹시 들어본 적 없어? 더 큰 마법상점을 찾아야 하나.”
로엘이 다른 곳으로 나가려 하자 노인이 냅다 계산대 바깥으로 뛰쳐나와 손을 허우적거렸다.
“이, 일단 물건부터 보겠습니다. 워낙에 구하기 힘든 물건을 언급하셔서 저도 모르게 되묻고 말았군요.”
“자, 여기. 제대로 감정해줘.”
정말로 드라고라의 혈청이라면 부르는 게 값이었다.
노인은 로엘에게서 드라고라의 혈청을 받아들곤 마법 돋보기로 드라고라의 혈청을 낱낱이 살펴보았다.
그러나 노인은 직접 보고 있으면서도 제대로 감별해내지 못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단순한 폭죽 아티팩트 같습니다만......”
드라고라의 비늘 흠집은 워낙에 불규칙하여 실제로 사용해본 적이 없는 자라면 구별해내기 힘들었다.
로엘은 그것을 알기에 가장 정확하게 알 수 있는 감별법을 알려주었다.
“여기 독버섯 같은 거 없어? 햐안얼룩버섯 같은 게 있으면 감별하기 쉬울 텐데.”
“아, 있습니다. 그런데 드라고라의 혈청은 중독된 사람에게만 효과가 있는 거 아닙니까?”
“전혀 아니야. 독물에게 가져다 대면 독성분 자체가 완전히 사라져. 그러니까 해독 아티팩트 중에서 최고봉으로 꼽히는 거겠지.”
로엘에게는 필요 없는 물건이지만 말이다.
마나 익스퍼트만 되어도 몸안의 마나를 이용해 독성분을 분해하는 게 가능하여 독 공격은 거의 통하지 않는 편이었다. 마나의 움직임 자체를 막는 마나독을 제외하면 사실상 독 공격은 무의미하다는 거다.
그런데 마나마스터쯤 되면 마나독을 포함하여 모든 독물에 면역이 되어버린다.
체질 자체가 면역체질이 되어버려서 해독 마법물품은 거추장스러울 뿐이었다.
하지만 로엘이 마나마스터인 것을 모르는 노인의 생각은 이랬다.
‘도박에서 심하게 털렸나보군. 이 귀한 물건을 팔아야 할 정도로 도박에 빠지다니. 매년 이런 사람은 넘쳐나지만 볼 때마다 안타깝군.’
분명 어느 귀족 집안의 자제인데 도박에 빠져들어 가문의 보물을 팔러온 것이라 여겼다.
노인은 하얀얼룩버섯을 이용해 드라고라의 혈청임을 알아내곤 가격을 책정해주었따.
“흐음, 매물이 거의 없다보니 5년 전 시세를 적용해야할 것 같군요.”
“상관없어.”
“그럼 2천 골드를 지불하겠습니다. 사실 저희 가게에서 모두 지불할 수 없는 금액이라 현금은 100골드만 드리고 1900골드는 상단의 어음으로 써드리려 하는데 괜찮으시겠습니까?”
“어디 상단 어음이지?”
“라벤더 상단입니다.”
라벤더 상단은 빌로스 왕국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상단이었다.
뿐만 아니라 이전 설탕사태 때 로엘의 도움을 받은 상인들의 대부분이 라벤더 상단 소속이었다.
신용을 중시할 뿐만 아니라 상당한 자금력을 자랑하는 곳인지라 그곳의 어음이라면 믿을만 했다.
“1900골드는 어음으로 써줘.”
노인은 금고에서 라벤더 상단의 인장이 찍힌 어음 몇 장을 꺼내어 100골드 단위로 어음을 썼다.
라벤더 상단의 어음은 빌로스 왕국 내에서 현금처럼 쓸 수 있는 몇 안 되는 대체현금이기도 했기 때문에 나눠서 써주는 것이었다.
로엘로서도 그 편이 더 쓰기 편하기에 아무런 이의 없이 받아들였다.
로엘은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100골드가 든 가죽자루와 어음뭉치를 로브 안쪽에 매달았다.
“도박하기에는 좀 많은 감이 있지만 꽁돈이니까 상관없겠지. 전부 써버린다는 생각으로 놀다가자.”
‘돈을 낭비하면 안 돼요!’라는 메이아다운 모범대답이 돌아오길 바랐으나 메이아에게선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그저 멍하니 로엘을 바라만 보고 있을 뿐이었다.
로엘은 그녀답지 않은 태도에 의아해하며 그녀와 똑같이 빤히 바라봐주었다.
“할 말이 있는 것 같은데 사양하지 말고 하는 게 어때?”
“아뇨, 별 건 아니고 그냥 신기해서요. 궁전에서만 지내시던 분이 너무 이런 상황에 익숙하달까... 설마 저 몰래 계속 왕궁 바깥으로 나가셨던 건 아니죠?”
평민들의 거리에 익숙한 양 고개를 두리번거리지도 않고, 노점상을 자주 이용한 듯 자연스럽게 노점상을 이용하며, 돈이 필요할 땐 물건을 팔면 된다는 것과 어음의 편리함을 인지하고 있는 것까지.
모두 왕궁에서만 지낸 사람의 행동이 아니었기에 하는 말이었다.
로엘은 노점상에서 받은 머리핀을 메이아의 머리에 꽂아주며 싱긋 웃었다.
“잘 어울리네.”
“말 돌리지 마세요. 몰래 왕궁 바깥으로 나다니신 거 맞죠? 그렇죠?”
“그렇다면 그럴 수도 있고 아니라면 아닐 수도 있지.”
“말 돌리는 거 보니까 딱 맞췄나보네요. 그럼 그렇지. 어쩐지 바깥 사정에 너무 빠삭하다했네. 전하께선 말이죠......”
전하란 호칭을 언급하자마자 로엘이 자신의 입술에 검지를 가져다대며 주의를 주었다.
“쉿, 지금은 로엘이면 충분해.”
“네? 아무리 그래도 그건 좀 아니죠.”
“여기서 내가 왕인 걸 들키면 퍽이나 좋겠다. 지금 우리 모습에 맞는 호칭으로 부르자고.”
“호칭이요?”
“남녀가 의심 받지 않게 돌아다니기 딱 좋은 호칭이 있잖아.”
메이아는 로엘과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보며 얼굴을 붉혔다.
젊은 남녀가 비슷한 복장을 입고 돌아다니는 것에서 연상되는 호칭은 몇 없지 않은가.
편안한 여행을 위한 위장이라고는 하나 메이아는 쉽게 부를 수가 없었다.
“그냥 이름으로 부를게요. 아무래도 전하께서 생각하시는 호칭은 제게 너무 과분해요.”
“뭐 어때. 나는 예전부터 널 그렇게 생각해왔는데 뭘.”
“예, 예전부터요?”
“그래, 예전부터 남매 같은 사이였잖아. 여행 중엔 날 오빠라 불러.”
쓸데없는(?) 기대를 했던 메이아는 구멍 뚫린 풍선마냥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헷갈리게 하지마세요.”
“응? 뭐가?”
“아뇨, 아무 것도 아녜요. 그럼 오라버니, 지금부터 도박에 돈을 다 쓴다고 하셨죠? 아무리 놀러 나왔다지만......”
평소대로 잔소리를 하기 시작한 메이아의 머리 위로 활짝 웃듯 만개한 코스모스 머리핀이 반짝였다.
///
로엘과 메이아가 떠난 후.
노인의 마법상점에 풀 플레이트를 입은 기사들이 들어섰다.
기사 중 한 명이 투구를 벗으며 노인에게 말을 붙였다.
“노인장. 방어마법과 알람마법이 걸린 물품을 볼 수 있겠습니까?”
준귀족이라 불리는 기사들이기에 상인들에겐 평대를 하는 게 기본인데 나이가 많은 노인을 예우해주고 있었다.
가게 안에 들어오면서 투구를 벗어주는 것에서 기사의 인품을 느낀 노인이 정중하게 기사의 요구에 응해주었다.
“방어계열과 알람계열은 맨 오른쪽 선반에 있습니다. 사용처를 알려주신다면 더 상세히 추천해드리겠습니다.”
“왕국을 대표하는 귀인을 모시고 있습니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해서 방어마법용품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오는 길에 모두 써버려서 보충하고자 합니다.”
“여태까진 어떤 물품을 써오셨습니까?”
“2써클 알람마법 늑대알람과 3써클 방어마법 수호의 양을 써왔었습니다.”
“그거라면 재고가 조금 남아있을지도 모르겠군요.”
“그럼 있는대로 전부 부탁드립니다. 그 외에도 쓸만한 물건이 있다면 추천 부탁드립니다.”
늑대알람과 수호의 양은 가끔씩 귀족들이 딸을 시집보낼 때 불미스러운 일을 피하기 위해 쓰는 물건들이기도 했다.
그만큼 가격이 제법 비싼데도 재고를 몽땅 내달라고 한다.
노인은 왕국을 대표하는 귀인이라는 점에서 귀족보다 훨씬 중요한 인물을 임을 알고 방금 들여놓은 물건을 추천했다.
“방금 드라고라의 혈청이 들어왔는데 귀인께 권해드리는 게 어떻겠습니까?”
“드라고라의 혈청이라면 만독을 해독한다는 그 보물을 말씀하시는 겁니까?”
“네, 가격이 조금 세긴 하지만......”
절그럭
기사는 종자에게 눈짓을 하였고, 노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종자가 쪼르르 달려와 돈자루 3개를 계산대 위에 놓았다.
돈자루 표면에 울룩불룩 튀어나온 금화자국과 묵직한 중량감으로 보건데 3천 골드는 족히 될 정도의 양이었다.
노인은 돈자루 하나를 풀어 안에 있는 금화를 확인해보았다.
금화에는 하니온 왕가의 상징인 검과 방패 문양이 찍혀 있었다.
대륙회담과 하니온 왕국의 금화, 왕국을 대표하는 귀인.
노인은 기사가 모시는 인물의 정체를 떠올리곤 고개를 숙여 드라고라의 혈청을 담은 유리상자를 내밀었다.
“목적지까지 무사히 도달하시길 바라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