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6화 (6/219)

00006 5. 케시어로 가는 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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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엘이 아는 드리안 공작은 굉장히 호전전인 인물이었다.

지금 시점에서부터 수 년 전.

케이델 공작의 셋째 아들이 드리안 공작의 막내딸을 꼬시려 한 적이 있었다.

남자가 여자에게 대시하는 게 뭐냐 문제냐고?

그때의 경우엔 엄청난 문제가 될 수밖에 없었다.

당시 드리안 공작의 막내딸은 겨우 8살이었으니까!

그 사실을 안 드리안 공작은 분개하여 케이델 공작의 셋째 아들이 직접 자신의 성에 찾아와 사과할 것을 요구했다. 케이델 공작은 아들이 상처 받을 것을 염려하여 금은보화로서 사과를 대신하고자 했으나 드리안 공작은 보내져온 마차를 그 자리에서 부수면서 군대를 이끌고 케이델 공작령까지 진격하여 결국엔 사과를 받아내었었다.

그 외에 성질날 때마다 오른손으로 의자 팔걸이를 내리쳐대서 드리안 공작성의 모든 의자는 오른쪽 팔걸이만 금속으로 만들었다든지, 드리안 공작이 잠을 설치면 성질이 더 사나워지니 성 주변에서 새가 지저귀지 못하도록 새 사냥꾼을 따로 두었다는 등 여러 가지 소문들이 드리안 공작의 성질을 반영하고 있었다.

로엘도 1번째 삶과 2번째 삶에서 종종 그의 충동적인 성질머리를 경험해본 적 있기에 가급적이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다.

‘드리안 공작만 빼면 참 좋은 땅인데 말이야.’

성질 더러운 닭이 있다 해서 달걀 못 빼먹으랴.

드리안 공작의 성질머리와 달리 드리안 공작령 자체는 굉장히 풍요롭고 다채로운 놀거리를 가진 땅이었다.

드리안 공작 본인은 그리 다스림에 능한 자는 아니지만 그의 곁에 있는 ‘3인의 책사’가 매우 뛰어난 인재들이었다.

그 3인의 책사들도 딱히 좋아하진 않는다.

그들이야 말로 드리안 공작으로 하여금 왕위를 노리게 부추기는 작자들이니까.

2번째 삶에 때는 3인의 책사를 역으로 실컷 이용하다가 잘라내버렸지만 이번 삶에선 그냥 놔둘 속셈이었다.

‘열심히 해서 왕위를 뺏어주면 나야 만만세지.’

생각에 잠긴 사이 마차는 빌로스 왕국의 3대 유흥도시로 꼽히는 고르디에 도착했다.

도박과 음악으로 유명한 도시답게 시가지에 들어서자마자 곳곳에서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려왔다. 특정 간격을 두고 방랑시인 및 악단이 거리공연을 할 수 있는 간이무대가 설치되어 있어 서로의 음악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사람들에게 음악을 들려줄 수 있는 형태였다.

더불어 로엘의 마차가 거의 주목 받지 않을 수 있는 몇 안 되는 도시이기도 했다.

크고 작은 카지노가 수십 개나 되기 때문에 빌로스 왕국은 물론 타 왕국의 귀족 및 졸부들이 죄다 몰려들기 때문이었다. 특히 졸부들은 명예를 따질 수 없는 만큼 부를 과시하는 걸 좋아하기에 요란한 마차를 타고 다니기 마련이었다.

하도 이것저것 치렁치렁 달아놓은 마차가 많아서 로엘의 마차는 평범하게 보일 지경이었다.

로엘의 마차를 호위하던 더프는 차창에 얼굴을 가까이 대며 말했다.

“전하. 이대로 크쟝 자작에게 가면 그가 많이 당황할 것입니다. 지금이라도 기사 한 명을 보내어 전하가 들린다는 사실을 전하는 게 좋겠습니다.”

대대로 국왕이 캐시어로 갈 땐 길목에 있는 귀족들이 미리 연락을 받고 맞이하러 나오는 게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로엘은 이번 행보에서 귀족에게 미리 연락하지 말라 일렀다.

귀족들의 마중을 받게 되면 예의와 안전을 위해 호위를 겹겹이 붙여서 제대로 된 관광을 하기가 힘들다. 해당 지방에서 지내다 로엘에게 문제가 발생하면 해당 지방 영주는 국왕을 지키지 못한 책임을 져야 하기 때문에 그들의 명예를 생각하면 호위를 거절할 수가 없다.

로엘은 마음 편한 관광을 위해 영주의 저택이 아닌 따로 숙소를 잡아 묵기를 원했다.

“더프, 적당한 여관을 알아봐. 캐시어로 가는 동안엔 계속 여관에서 묵을 거야.”

“그건 절대 안 됩니다. 아무리 좋은 여관도 전하께서 지내시기엔 많이 부족할 겁니다. 그리고 영주들에게 대접 받는 건 전하께서 무사히 이동하고 있다는 지표이기도 합니다. 만약 숙소에서 지내신다면 나라 전체가 들썩일 겁니다.”

“그거라면 따로 생각해둔 방법이 있어. 더프 네가 내 옷을 입고 다시 북동쪽 루트로 이동하도록 해. 영주들에게 대접을 받으면서 그들에게 일러 둬. 국왕은 생각한 바가 있어 따로 움직이니까 비밀을 엄수하라고.”

더프는 속으로 로엘이 놀기 위해 이리로 온 게 아니었구나라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란데 백작님이 말씀하신대로구나! 일부러 이해할 수 없는 행동을 하시면서 아랫사람으로 하여금 스스로 생각하게 하신다더니... 흐음, 내 짧은 생각으론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구나. 전하께서 뭔가 뜻이 있어 시키시는 일이니 응당 따라야겠지만......’

“전하, 전하의 뜻을 따르고 싶습니다만 전하께서 백성의 시설을 감당하실 수 있을지 걱정입니다.”

항상 최상급 대우와 최고급 생활만 해온 로엘이다.

제 아무리 좋은 여관을 잡는다 하더라도 왕궁이나 영주의 저택에 비하면 새발의 피나 마찬가지였다. 음식 같은 경우는 말할 것도 없었다. 왕국에서 내노라 하는 요리사들이 만든 것만 먹다가 길거리 음식 같은 걸 먹고 탈이나 안 나면 다행이었다.

더프의 걱정을 읽은 로엘이 소탈하게 웃었다.

“하하, 걱정할 거 없어. 딱딱한 빵이랑 말라붙은 베이컨을 줘도 맛있게 먹을 자신이 있으니까.”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을 합쳐 수 년 동안 전쟁을 겪은 로엘이다.

지휘관도 병사도 같은 식사를 해야 한다는 지론 때문에 항상 병사들과 똑같은 음식을 먹었었다. 군량보급이 좋을 때는 병사들과 함께 좋은 식사를 했고, 사정이 나쁠 땐 솔선수범하여 풀뿌리를 캐내 씹어 먹기도 했었다.

로엘이 워낙에 자신만만하자 더프도 더 이상 걱정하지 않고 명령에 따르기고 하였다.

먼저 로엘과 메이아가 갈아입을 평민 옷 두 벌을 구해 갈아입었다.

돈의 경우 처음부터 따로 행동할 걸 염두에 둔 로엘이 왕궁에서 가져온 돈이 있어 문제 없었다.

왕궁에서 가져온 돈은 총 50골드.

평민 4인 가족의 한 달 생활비가 5골드인 걸 감안하면 상당히 많은 돈이었다.

그리하여 로엘과 메이아는 평민 차림으로 거리에 서게 되었고, 더프가 로엘의 복장을 대신 입은 채로 원래 케시어로 갈 때 이용하던 북동쪽 루트로 향했다.

고르디 거리에 로엘과 둘이서 함께하게 된 메이아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꼈다.

‘여행 중에 전하를 챙길 사람은 나밖에 없으니까 내가 잘 이끌어 드려야 해.’

그러나 메이아도 어렸을 때부터 왕궁에서 지낸 터라 바깥 사정에 빠삭한 편은 아니었다.

바깥 세상에 대한 이야기라곤 왕궁에 물건을 대러 오는 상인들이 궁녀들을 꼬시려고 읊던 바깥 이야기가 전부였다.

뭐부터 해야 할지 모르는 가운데 로엘이 자연스럽게 메이아의 손을 잡아끌었다.

“이제야 겨우 느긋하게 여행기분 낼 수 있겠네. 일단 느긋하게 시내를 돌아보자.”

“잠시만요. 적어도 목적지는 정하고 가야죠. 막 돌아다니다간 길 잃어버려요.”

“이런 큰 도시는 길목마다 이정표가 있어서 괜찮아. 저거 봐.”

로엘은 블록 너머에 위치한 사거리를 가리켰다.

마차와 인파가 섞인 길목 사이에 높은 기둥이 세워져 있었고 기둥 위에 매달린 금속판에 거리의 이름이 새겨져 있었다.

고르디 시를 관할하는 크쟝 자작 가의 이름을 딴 크쟝 거리였다.

크쟝 거리 곳곳에선 관광객을 상대로 한 노점상들이 가득 있었다.

먹을거리를 파는 건 물론 경품이 걸린 놀이거리가 많이 보였다.

상인들은 손님을 끌기 위해 손으로 나팔을 만들어 호객행위를 하였다.

“드리안 공작령의 명물 초콜릿을 바른 과일입니다! 세 개를 사시면 한 개를 더 드립니다!”

“초콜릿 깎아내기 어떠세요? 녹기 전에 특정모양을 만들면 상품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기념품 보고 가세요~! 애인과 친구에게 선물하기 좋은 악기 모형이 있습니다!”

테헤란의 시내 못지않게 사람이 북적거리는데다 활기만 따지면 테헤란 이상이었다.

사람들의 얼굴에는 근심 보단 웃음이 가득했으며 골목에선 아이들이 마음 놓고 뛰어다니는 중이었다.

평화로운 거리를 보고 있자니 빌로스 귀족들이 백성을 다스리는 능력 하나만큼은 다들 뛰어나단 걸 알 수 있었다. 워낙에 권력욕이 강한 귀족들이 많아서 그렇지 그 외의 능력들은 흠 잡을 곳이 없다.

로엘은 노점상을 둘러보다가 다트 노점상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이거 재밌어 보이네. 하고 가자.”

넓직한 나무판자에 다트판 세 개가 매달려 있는 노점상이었다.

세 개의 다트판은 각각 크기가 달랐는데 하나는 사람 몸집만한 대신 다트판에 사탕이나 초콜릿과 같은 경품이 적혀 있었고, 두 번째는 사람 머리만한 대신 인형과 각종 기념품, 세 번째는 손바닥만한 대신 각종 마법물품이 적혀 있었다.

난이도에 따라 좋은 경품을 받을 수 있는 구조인 것이었다.

로엘의 눈길이 노점상 안쪽에 진열된 경품들에게 닿았다.

세 번째 다트판 밑에 마법물품이 있었는데 그 중 하나를 단번에 알아보았다.

겉만 번지르르한 마법물품 사이에 놓여 있는 빨간색 구슬 한 개.

겉보기엔 시중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폭죽 아티팩트 같았지만 미세한 흠집이 마구 나있었다.

로엘은 그게 흠집이 아니라 비늘로 인해 생겨난 흠인 것을 알아보았다.

‘저거 드라고라의 혈청이잖아! SS급 아티팩트가 노점상 경품으로 걸려 있는 거냐!’

다른 사람은 물론 노점상 상인도 모르고 있는 듯했다.

무리도 아니었다.

드라고라의 혈청은 매물도 없을뿐더러 마법감정으로도 알 수 없는 물건이니까.

두 번째 삶 때 사용한 적이 있던 물건이 아니었다면 로엘도 알아보지 못했을 거다.

로엘은 골드 하나를 꺼내 상인에게 넘겼다.

“아저씨. 1골드로 얼마나 할 수 있어?”

“어이쿠, 이 총각 통도 크네. 100번이나 던지려고? 그렇게 던졌다간 다트판 다 헐어버리겠어.”

“한 번 던지는데 10쿠퍼인 거네. 10번 던질 테니까 9실버 거슬러줘.”

상인은 로엘에게 다트 10개와 은화 9개를 주면서 실실 웃었다.

“형씨 처음인 것 같은데 저쪽 큰 거부터 맞추는 게 어때? 사탕 하나 정도는 받아가야 하지 않겠어?”

상인이 익살스러운 농담을 날리며 웃었으나 로엘은 무덤덤하게 다크를 집어 가장 작은 다트판의 정중앙을 맞췄다.

단번에 최고 경품을 타낸 로엘을 보며 상인이 입을 쩌억 벌렸으나 정작 로엘 본인은 아쉬움을 토해냈다.

“아~ 아까워라. 바깥 부분에 맞추려고 했는데 나도 모르게 중앙으로 던졌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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