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될놈될-4화 (4/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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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마나마스터

설탕대란이 일어난 이후 로엘을 지지하는 국왕파들이 극성을 부렸다.

국고가 넘칠 정도이니 군사력 증강을 해야 된다느니, 지속적인 무기 생산을 위해 철광산 개발 정책을 펼쳐야 한다느니, 국경 지대의 요충지에 성을 건설해야 한다느니 등등.

이전 생애 같으면 자금도 충분하겠다 통일 전쟁을 위한 준비를 했겠지만 지금은 아니다.

이 시간이 또 무의미해지길 막기 위해 통일 전쟁을 전지해야만 했다.

로엘은 왕가 전용 수련장에 홀로 들어서며 중얼거렸다.

“이리된 이상 이 달 말에 열리는 대륙회담에서 작업을 하는 수밖에.”

5왕국의 왕들이 모여서 회담을 나누는 대륙회담.

분명 올해의 논제는 군비 축소였던 걸로 기억한다.

킬더 왕국의 여왕이 제안했었고 로엘을 비롯한 나머지 4왕국의 왕들은 반대했었다. 왜냐하면 겉으로는 군비 축소 조약을 맺어도 몰래 군비 증강을 꾀할 테니까 말이다.

킬더 왕국의 여왕이 군비 축소를 제안한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킬더 왕국은 5왕국 중에서 가장 인구가 적고 군사력이 약하니 최소한 조약이라도 맺어 군사력 격차가 벌어지는 걸 막고 싶었을 거다.

‘군비 축소 조약을 통과시켜야겠어.’

군비 축소 조약을 통과시키고 몰래 군사력 증강을 못하도록 방책을 만들어놓을 생각이었다.

그러면 서로 전쟁을 일으키지 못할 테니까 통일 전쟁이 일어날 일도 없을 거다.

로엘은 느긋하게 수련장 바닥에 누워 이리저리 머리를 굴렸다.

‘그나저나 수련시간 끝나면 또 서류처리인가. 정말 쉴 틈이 없구만.’

남들이 보기엔 권력의 정점인 것처럼 보이지만 자유시간이라는 게 거의 없다시피한 자리다.

회의, 서류, 시찰, 회의, 서류, 시찰.

반복되는 업무 속에 간간이 껴있는 시시콜콜한 파티들.

정말 귀찮기 짝이 없다.

그런 의미에서 수련시간은 유일하게 마음 편히 누워 있을 수 있는 자유시간이나 마찬가지였다.

느긋하게 뒹굴거리던 차에 로엘은 한 가지 묘책을 떠올렸다.

“귀찮은데 꾀병이나 부릴까.”

///

왕궁의원들이 근무하는 의무부.

평소에는 왕족의 건강관리를 위해 의약품 제조와 의약품 연구를 하는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은 의무부에 비상이 걸렸다.

“전하께서 마나폭주에 휘말리셨다!”

“모든 의원은 왕가 수련장으로 이동해라!”

“챙길 수 있는 모든 비약은 모두 챙겨!”

마나폭주.

마나를 다룰 수 있는 마나유저 혹은 마법사가 마나호흡을 할 때 호흡이 엉키면 생기는 현상이었다.

마나폭주가 발생하면 몸 안에 있는 모든 마나회로가 꼬인다.

마나회로는 혈액순환과 일맥상통하기 때문에 마나회로가 꼬이는 건 혈관이 꼬이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혈관이 꼬여 피가 막히면 내상으로 이어지고 심하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왕궁의원들이 호들갑 떠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

“전하는... 전하는 괜찮으십니까!”

그란데 백작이 국왕 침실 앞까지 달려와선 다급히 물었다.

메이아는 그란데 백작을 진정시키려 했다.

“침착하세요. 지금 의원 분들이 전력을 다해 전하를 치료하고 계세요.”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없는가? 전하께서 돌아가시면 난... 나는......”

“어휴, 정말 전하바라기시네요. 정말 전하가 낫길 원하신다면 조용히 해주세요. 치료에 방해가 된다고요.”

메이아의 말에 그란데 백작이 자신의 불찰을 깨닫고 냉정을 되찾았다.

“미안하네, 메이아 양. 자네의 말대로일세. 전하께서 위독하신 지금이야 말로 신하의 도리를 다 해야 할 터.”

“이제야 그란데 백작다워지셨네요. 조금 있으면 귀족 분들이 상황을 파악하려고 몰려들 테니 그들을 통제해주시겠어요?”

“그러겠네. 아참, 의원들에게 이걸 전해주게나. 그란데 백작 가의 비약일세. 혹시 도움이 될지도 몰라 가져왔다네.”

그란데 백작이 메이아에게 작은 목갑 하나를 건네주었다.

목갑 안에는 육각형 모양의 사탕 비스무리한 게 들어있었다.

그란데 백작 가에 전해져 내려오는 비약인 ‘레온의 내단’이었다.

집채만한 크기에 포효소리가 구름을 가른다는 전설의 사자, 레온의 몸 안에 있다 일컬어지는 내단인데 섭취하면 무려 60년치 마나가 늘어난다고 알려져 있다.

마나폭주로 꼬인 혈관을 풀기 위해선 대량의 마나를 주입하는 것이 가장 좋기에 가져온 것이었다.

메이아는 목갑을 받으며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고마워요. 백작님의 충의는 반드시 전하께 전해질 거예요.”

“말만 들어도 기쁘군. 전하께서 의식을 되찾으면 바로 내게 알려주게나.”

///

로엘은 현재 ‘살짝’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다.

‘조금 덜 심한 증상으로 할 걸 그랬나.’

꾀병 부리려고 마나폭주에 걸린 척을 했는데 왕궁 전체가 들썩이고 있었다.

사실 마나폭주라는 게 조금만 휴식을 취하면 되는 가벼운 내상을 입는 게 대부분이었다.

로엘이 스스로 마나폭주를 일으켜 입은 내상도 사나흘 정도 쉬면 금방 낫는 부상이었다.

그런데 문제는 국왕 주치의인 메델이었다.

“심장 부근에서 마나폭주가 일어난 건가! 현재 전하께선 매우 심각한 상태이시다! 창고에 있는 모든 비약이란 비약은 전부 가져와!”

왕국 내에서 손꼽히는 의원으로 실력에 있어선 두말할 것 없이 뛰어난 자였다.

하지만 국왕의 주치의로 뽑힌지 얼마 되지 않은 탓에 너무 긴장해서 환부를 착각하고 말았다.

로엘이 일부러 등 왼쪽 혈관을 꼬아놨는데 전후를 착각하여 심장 부근으로 착각한 것이다.

심장 부근은 무조건 많은 마나가 통하도록 하는 게 최선이었다.

그러다보니 좋은 약재를 가져오라는 말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로엘은 이 커다란 난리를 진정시키기 위해 게슴츠레 눈을 떴다.

“메델, 난 괜찮으니까 천천히 진찰해. 생각보다 내상이 심각한 것 같지는 않아.”

나름 멀쩡한 목소리를 냈는데 메델의 귀엔 각색되어 들어간 듯했다.

“전하. 애써 강한 모습 보이려 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아픈 것을 받아들이고 치료하는 것이 저희의 일입니다. 부디 저희를 믿고 마음 편히 계십시오. 반드시 완치해보이겠습니다.”

“아니... 진짜로 가벼운 내상인데......”

“크흑, 뭣들 하느냐! 전하께서 지금 우리를 염려하시느라 애써 괜찮으신 척하는 게 안 보이느냐?”

“메델. 진정하고 제대로 진찰해봐. 제발 좀 제대로 진찰하란 말이야.”

로엘의 애절한 목소리가 전해지기도 전에 문이 열리면서 왕궁의원들이 비약이 든 목갑을 들고왔다.

“메델 경. 마침 좋은 비약이 있었습니다.”

메델이 목갑 하나를 전해 받았다.

지금 가져온 목갑은 로엘도 아주 잘 아는 물건이었다.

얼마 전에 상인들에게서 받은 3색 비약 아니던가!

메델은 기뻐하며 즉석에서 3개의 비약을 빻아 끓는 물에 걸러 걸쭉한 탕약을 만들어냈다.

“전하. 이걸 드시고 마나호흡을 해보십시오. 금방 나으실 겁니다.”

90년치 마나가 담겨 있는 3색 비약.

그 3색 비약으로 만든 탕약에서 김이 피어오르는데 김에서마저 상당한 기운이 넘실거리고 있었다.

로엘은 뭔가 많이 꼬였음을 직감했다.

‘꾀병 좀 부리려던 거였는데 이게 무슨 날벼락이냐. 이거 먹으면......’

지금 로엘은 마나유저 상급이니 약을 먹었다간 마나 익스퍼트가 될지도 몰랐다.

그 뒤에는 말할 것도 없다.

그란데 백작이 ‘전쟁! 전쟁! 전쟁!’하고 외치는 모습이 눈에 선하다.

로엘은 눈앞에 드리워진 탕약을 극구 거부했다.

“메델! 제대로 진찰하라고 했잖아! 어명이다! 다시 한 번 제대로 진찰하라고!”

“전하! 몸에 좋은 약입니다. 쓴 기운이 느껴진다고 해서 거절하시면 아니되옵니다!”

“누가 쓴 거 싫어서 안 먹는 줄 알아? 내 말 좀 들어!”

“모두 전하를 붙잡아라! 전하, 무례에 대한 처벌은 전하의 몸이 나은 후에 받겠습니다.”

왕궁의원들의 사명감이 쓸데없이 극에 치달았다.

왕궁의원들은 몸부림치는 로엘의 팔다리를 붙잡았고, 메델은 절규하는 로엘의 입에 비약을 들이부었다.

비약은 거침없이 로엘의 목을 타고 넘어갔다.

꿀꺽꿀꺽

타들어가는 듯한 감각이 식도를 타고 흐르더니 이내 곧 온몸에 퍼지기 시작했다.

위장을 중심으로 일반사람이 90년 동안 마나호흡을 해야 모을 수 있는 기운이 한 번에 퍼져나갔다.

로엘은 어쩔 수 없이 마나운용을 하여 새로 들어온 90년치 마나를 다스려야만 했다.

‘크윽, 이런 멍청이들아! 3색 비약을 먹는 게 더 위험하다고!’

혹 떼려다가 혹을 붙였다.

작은 모닥불을 끄기 위해 호수를 통째로 끌어다 쓰는 셈이었다.

오히려 마나폭주의 내상보다 3색 비약으로 인한 마나의 폭포가 더 위험할 지경이었다.

90년치 마나는 몸 안에 들어오자마자 제멋대로 날뛰려 하였다.

로엘은 흥분을 가라앉히고 침착하게 대응하기로 마음먹었다.

‘어쩔 수 없지. 이렇게 된 이상 전부 흡수하는 수밖에.’

지금도 마나유저 상급에 달하는데다 한때 마나 익스퍼트의 경지까지 올랐던 로엘이다.

마나에 대한 이해도는 왕국 3대 익스퍼트 못지않다.

로엘은 온몸으로 퍼지려는 마나를 가다듬어 심장으로 보냈다.

이미 뚫려 있는 마나회로를 통해 마나가 물밀 듯이 심장으로 향했다.

심장에는 마나회로가 복잡하게 얽혀있기 때문에 면적에 비해 길이가 긴 편이었다. 그래서 마나의 흐름을 늦추기엔 안성맞춤이었다.

심장의 마나회로를 이용해 90년치 마나를 진정시킬 수 있었다.

그 뒤, 로엘은 심장에서 빠져나온 마나를 곧장 어깨를 통해 등 뒤로 보냈다.

가장 먼저 할 일은 내상을 치료하는 것이었다.

마나가 내상을 입은 부위에 도달하면서 막혀 있던 혈관에 부딪쳤다.

마나의 양이 워낙 많다보니 꼬였던 혈관이 팽팽하게 당겨졌다.

막혔던 곳이 뚫리면서 내상이 빠르게 회복되었다.

문제는 다음이었다.

현재 로엘이 저장할 수 있는 허용량 보다 훨씬 많은 마나가 계속 몸을 맴돌았다.

그대로 배출시키는 방법도 있겠지만 로엘도 마나를 쓰는 인간인지라 그런 아까운 짓을 할 수가 없었다.

마나 한 방울 한 방울이 얼마나 귀한 건지 잘 알기에.

이 상황을 타개하려면 한 가지 방법밖에 없었다.

‘마나 익스퍼트로 가는 수밖에 없나.’

마나 익스퍼트로 올라간다면 마나허용량이 높아지니 90년치 마나를 고스란히 흡수할 수 있었다.

마나 익스퍼트로 올라가는 방법은 이미 알고 있었다.

마나만 많으면 자동적으로 단계를 끌어올릴 수 있는 마나유저와 달리 마나 익스퍼트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했다.

그것은 바로 물과 같은 이미지를 가진 마나를 기체로 인식하는 것.

몸 안에 가스가 찬다는 느낌으로 마나를 운용하는 것이다.

마나 자체를 피와 같이 여기는 것과는 다르다.

몸에 기체가 들어찬다는 건 생각만 해도 거북하다.

그 거북함을 친숙하게 여길 수 있을 때.

마나는 인간의 의지에 반응해 무게는 더 가벼워지되 밀도는 더욱 짙어지는 역설적인 형태가 된다.

로엘이 마나를 기체처럼 인식하기 시작하자 마나에 변화가 왔다.

기체화 된 마나는 산소처럼 알알이 근육에 스며들었다.

그에 따라 근육에 남아있던 불필요한 요소들이 모두 모공을 통해 배출되었다.

숨죽여 로엘을 지켜보던 왕궁의원들은 전원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 이 현상은!”

모공을 통해 노폐물이 배출되는 현상.

마나 익스퍼트가 되고 있다는 걸 반증하는 현상이었다.

왕궁의원들은 로엘의 몸에서 피어오르는 누런 연기들을 보며 감격에 겨워했다.

“전하께서 마나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려 하시는구나!”

“왕국에 네 번째 익스퍼트가 탄생하는 건가!”

호들갑 떠는 왕궁의원들을 향해 메델이 매서운 눈빛을 쏘아 보냈다.

“모두 입을 다물어라. 마나호흡 중에 정신이 흐트러지면 어떻게 되는지 알면서 그따위로 행동하는 것이더냐.”

자신들의 실수를 깨달은 왕궁의원들이 두 손으로 자신의 입을 틀어막았다.

소란을 가라앉힌 메델은 로엘의 상태를 자세히 살폈다.

“분명 익스퍼트에 오르려는 자들이 보이는 현상이긴 하군. 하지만 쉽지 않아 보여.”

“메델 경.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보통 마나 익스퍼트들은 150년치의 마나를 가지고 있다고 하지. 전하는 원래 마나유저 상급이셨으니 60년치 마나를 가지고 계셨을 터.”

“그렇다면 지금 90년치 마나를 섭취하셨으니 딱 들어맞는 거 아닙니까?”

“아니지. 전하께선 수련 중에 쓰러지셨단 말이다. 전하의 성실, 근면함을 생각하면 수련도 실전처럼 하셨을 테니 마나 한 줌 안 남아있으셨을 게 분명해.”

“헉! 그렇다면......”

“그래. 60년치 마나가 부족한 셈이지. 깨달음을 얻으셨다 하더라도 마나가 부족하면 도달할 수 없어.”

로엘을 성실하고 노력하는 성격으로 알고 있기 때문에 마나가 모자를 것이라고 여기는 것이었다.

그래서 60년치 마나가 모자랄 것이라고 계산했다.

마침 문 쪽에 서있던 왕궁의원이 문밖으로 고개를 내밀더니 작은 목갑 하나를 전해 받았다.

“좋은 소식입니다, 메델 경. 메이야 양이 이걸 전해주었습니다.”

목갑을 받아든 메델은 안에 든 물건을 보고 화색을 띠었다.

“이건 레온의 내단이로군. 그란데 백작님이 가져다주신 거로구나.”

“그란데 백작 가의 비약이군요. 60년치 마나를 담고 있는 걸로 압니다.”

“그 말대로라네. 전하에게 드려야겠군.”

“하지만 지금은 마나호흡 중이십니다. 어떻게 전하실 생각이십니까?”

메델은 레온의 내단을 자신의 입에 넣으며 말했다.

“나도 일단은 5써클 마법사일세. 마나전이 정도는 쓸 줄 안다네.”

5써클 마법사는 용병으로 따지면 골드급, 기사단으로 따지면 백작급 기사단 단장쯤 되는 수준이다.

타인에게 마나를 전해주는 마나전이를 사용할 수 있는 경지라는 것이다.

물론 마나전이 자체는 굉장히 위험하다.

자신의 체질에 맞춰 정제한 마나와 상대의 체질에 맞춰 정제된 마나가 반발하여 새로운 마나폭주를 일으킬 수도 있었다.

메델은 각오를 단단히 굳혔다.

“만약 전하께서 익스퍼트의 경지에 오르신다면 왕국은 탄탄대로를 걷게 될 터. 그것을 위해서라면 기꺼이 이 한 몸 바치겠네.”

로엘이 들었다면 펄쩍 뛰고도 남을 말이었지만 현재 로엘은 마나호흡을 하느라 바빴다.

메델은 레온의 내단을 흡수하여 자신의 마나로 만든 후 로엘의 등에 손을 대었다.

“전하. 부디 아낌없이 흡수하십시오.”

반면 90년치 마나를 겨우 흡수해낸 로엘은 자신이 마나 익스퍼트 유저에 올랐다는 걸 실감하고 있었다.

‘휴우, 겨우 다 흡수했네. 그나저나 마나 익스퍼트가 되었으니 또 그란데 백작이 난리치겠군.’

한 왕국이 마나 익스퍼트가 네 명이나 소유하게 되었다.

마나 익스퍼트를 네 명이나 소유한 왕국은 아무데도 없었다.

기껏해야 북쪽의 겐크 왕국이 빌로스 왕국과 마찬가지로 마나 익스퍼트 3명을 소유하고 있었을 뿐이었다.

그런데 균형이 깨지면서 빌로스 왕국이 최대 마나 익스퍼트를 보유하게 되었으니 전쟁하자고 난리칠 게 분명했다.

속으로 한숨을 쉬며 마나호흡을 끝내려던 순간.

등을 통해 새로운 마나가 물밀 듯이 흘러들어왔다.

로엘으로선 당황스러울 따름이었다.

‘뭐야? 왜 또 마나가 들어와?’

등을 통해 들어오는 걸로 보아 누군가가 마나를 전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현재 왕궁의원 중에서 마나전이가 가능한 사람은 메델 뿐이었다.

대체 왜!

어째서!

무슨 이유로!

마나를 전해주는 거지?

로엘으로선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또 뭔가 엉뚱한 오해가 생긴 건 아니겠지?’

아니라고 생각하고 싶지만 그것 외엔 생각할 수 없었다.

골치 아픈 건 마나전이가 시작된 이상 들어오는 마나를 전부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이었다.

지금 로엘이 마나를 거부하면 마나가 역류하여 메델이 다치게 된다.

마나전이를 통해 들어오는 마나도 흡수해야만 했다.

‘설마 자기 마나 전부를 소모하려는 거려나. 메델이 5써클이니까 40년치 정도 되겠군.’

40년치 마나라면 충분히 흡수할 수 있다.

마나 익스퍼트가 되어 저장량이 많아진 지금이라면 200년치 마나까진 충분히 저장할 수 있었다.

메델이 전해주는 마나를 차곡차곡 저장하고 있는데 뭔가 이상한 점이 느껴졌다.

‘음? 마나가 계속 들어오네. 40년치는 한참 넘었는데......’

40년치 마나를 넘어 60년치, 80년치를 넘어가는 마나가 들어왔다.

최종적으론 100년치 마나가 새로 들어오게 되었다.

그 중 50년치는 이미 저장했는데 나머지 50년치가 문제였다.

‘더 이상 저장할 곳도 없다고! 대체 이만한 마나를 왜 가지고 있는 거야!’

몸 밖으로 배출해야 하나?

그러던 차에 유일하게 마나가 닿지 않은 부위를 떠올려냈다.

머리에는 한 번도 마나를 보낸 적이 없었다.

마나호흡에 대해 배울 때 머리에는 마나를 보내지 말라고 했었다.

머리는 사람의 몸에서 가장 많은 열이 배출되는 곳.

그래서 머리에 마나회로를 깔면 닫지 못하는 배출구를 만드는 셈이나 다름없어 머리만큼은 마나회로를 깔지 않는 걸로 알려져 있었다.

로엘은 금기가 이 상황을 모면하게 해줄 탈출구가 되어 주리라 믿었다.

‘머리에 마나회로를 깔아보자. 그러면 마나를 쌓지 못하는 몸이 되니까 아무도 내게 전쟁을 강요하지 못할 거야.’

생각은 그리 해도 쉽사리 실행하질 못했다.

마나가 너무 아깝다.

첫 번째 생애, 두 번째 생애를 합쳐 근 30년 동안 마나를 아끼면서 살아왔는데 모두 버린다고 생각하니 아까워 죽을 것 같았다.

고민은 방심을 불러일으켰다.

로엘이 잠깐 마나에 대한 통제력을 잃은 틈을 타 50년치 마나가 멋대로 머리를 향해 올라갔다.

로엘은 당황하며 50년치 마나를 통제하려고 애썼다.

‘이것들아 진정해! 평소에는 멋대로 날뛰면서 이번에는 왜 머리로 가냐고!’

로엘의 의지와 관계없이 마나는 목줄기를 타고 올라가며 지나간 자리마다 마나회로를 깔아두었다.

원래 마나회로를 깔려면 혈관을 따라 이동하도록 조절을 해야 하는데 마나가 제멋대로 뛰는 루트가 우연히도 혈관 안이었다.

순식간에 머리에 마나회로가 깔리면서 마나가 머리를 타고 정수리로 향하려 했다.

그때까지 로엘은 마나를 통제하려고 애쓰는 중이었다.

마나회로가 정수리에 배출회로를 만들기 직전.

아슬아슬하게 로엘이 마나 통제에 성공했다.

‘후우, 겨우 멈췄네. 하여간 제대로 혈관을 타서 다행이지 멋대로 날뛰었으면 식물인간이 될 뻔했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로엘이었다.

마나가 머릿속을 파괴할까봐 다급하게 막긴 막았는데 정신을 차리고 보니 뭔가 이상했다.

이미 머릿속에 마나회로가 깔렸다.

그걸 정수리 바로 앞에서 막은 탓에 마나회로가 다시 목줄기로 향하여 원형을 그리게 된 것이다.

마나회로가 심장에서 원형을 이루고 있는 것처럼 머리에도 원형 마나회로가 생겼다.

마나가 머릿속에서 원형으로 돌면서 머리 곳곳에 스며들기 시작했다.

그와 동시에 커다란 굉음이 울려퍼졌다.

콰앙!

굉음과 함께 말도 안 되는 충격이 로엘에게 엄습하였다.

로엘은 이를 악물며 충격을 버텨냈다.

충격이 가라앉을 즈음, 물이라도 뿌린 듯 온몸이 시원해졌고 몸 안에 여태까지와 다른 청량한 느낌이 가득 채워졌다.

그뿐만 아니라 로엘의 몸에도 변화가 찾아왔다.

노폐물이 모두 배출되면서 피부가 새로 태어난 양 뽀송뽀송해졌고, 골격이 벌어지면서 최적의 형태로 재형성되었다.

로엘이 눈을 떴을 때.

눈앞에는 기진맥진하여 의자에 걸터앉은 메델과 무릎을 꿇고 있는 왕궁의원들이 보였다.

왕궁의원들은 로엘이 정신을 차린 걸 보고 소리 높여 말했다.

“마나 익스퍼트에 오르신 걸 축하드립니다, 전하!”

눈을 끔뻑거리던 로엘은 자신이 처한 상황을 깨닫곤 머리를 감싸 안았다.

“아! 마나 익스퍼트가 되어버렸어.”

“축하드립니다!”

“축하는 개뿔! 메델! 감히 어명을 무시하고 멋대로......”

제대로 진찰하지 못한 메델을 꾸짖고 싶었으나 그럴 수가 없었다.

로엘을 위해 모든 걸 새하얗게 불타버렸는데 어찌 꾸짖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고 꾀병이었다는 걸 말할 수도 없었다.

왕궁 안에 가득 퍼지는 찬양의 소리 속에서 로엘은 화병이 돋아 다시 드러눕고 말았다.

///

밤이 되고 모두가 물러났을 때.

침대에 누워 있던 로엘이 몸을 일으켰다.

“후우, 꾀병 하나 때문에 이게 뭔 고생이람.”

꾀병이 마나 익스퍼트로 발전하다니 뭐 이런 개 같은 경우가 다 있단 말인가.

오늘 밤, 그란데 백작 가에선 로엘의 익스퍼트 등극 소식을 들은 누군가가 설레서 밤잠을 설치는 중일 거다.

로엘은 뒷머리를 긁적거리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성질 내봤자 뭐하겠어. 이미 마나 익스퍼트가 되버렸는데.”

무력을 약화시키는 방법이 여러 개 있긴 했다.

하지만 시도할 엄두조차 나지 않았다.

꾀병이 마나 익스퍼트로 발전했는데 더한 일을 했다간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냉정하게 생각해보면 힘이 생긴 게 꼭 나쁜 일은 아니었다.

힘은 전쟁을 일으키기 위한 필수조건이기도 하지만 전쟁을 막기 위한 억제력으로도 활용할 수 있다.

로엘이 현명하게 다룬다면 분명 통일전쟁을 막을 수단이 되어줄 것이다.

로엘은 차분함을 되찾으며 벽에 걸린 검을 쥐었다.

“어디 보자. 마나 블레이드를 생성하는 방법이... 흠, 이런 느낌이었나?”

마나유저는 검 주변에 마나를 둘러 마나소드를 만들어낸다.

반면 마나 익스퍼트는 검을 심지 삼아 마나의 검을 덧씌워 마나소드보다 훨씬 강력한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마나 블레이드를 만든다는 감각으로 마나를 부여해보았다.

머리와 심장의 원형 마나회로가 동시에 회전하면서 상상 이상으로 마나가 많이, 농도 짙게 뿜어져 나왔다.

로엘의 마나는 검을 둘러싸서 2미터에 달하는 마나 블레이드를 만들어냈다.

그런데 기존의 마나 블레이드와는 많이 달랐다.

마나 블레이드 주변에 연기와 같은 오오라가 피어나는 게 아닌가.

오오라의 끝자락에 닿은 침대의 이불 끝자락이 종이처럼 깔끔하게 잘려나갔다.

로엘은 경악할 수밖에 없었다.

“이거 마나 오러잖아!”

역사상 단 2명밖에 도달한 적이 없다는 마나마스터만이 쓸 수 있는 기술.

마나 오러가 형성된 것이다.

머리에 원형 마나회로를 만든 것이 마나 익스퍼트를 넘어 마나마스터의 경지에 이르도록 만들었다.

거기에 몸이 싸우기 위한 최적의 골격으로 바뀌면서 근력이며 유연성이 극한까지 끌어올려졌다.

피부가 말끔해지고 이목구비가 더욱 뚜렷해지면서 준수했던 외모가 더욱 뛰어나진 것은 덤이었다.

모든 게 플러스 요소이건만 로엘은 검을 놓으며 침대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이불을 마구 걷어차며 짜증을 토해냈다.

“크아! 마나 익스퍼트만으로도 충분하다고. 왜 마나마스터냐고!”

마나 익스퍼트만으로도 억제력을 발휘하기엔 충분했다.

만약 마나마스터가 된 게 알려져 봐라.

싫어도 4왕국 전부가 빌로스 왕국을 견제하며 갖은 수작을 부릴 게 분명했다.

그리되면 빌로스 왕국을 지키기 위해 싸울 수밖에 없었다.

로엘은 머리 위로 이불을 끌어올리며 다짐했다.

마나마스터의 힘만큼은 쓰지 않겠다고.

힘을 숨겨야지만 통일전쟁의 전철을 밟지 않을 수 있다.

그리 다짐하면서 로엘은 넝마가 된 이불 속에서 연신 한숨을 내쉬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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