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장 - 수호의지
한 남자가 있었다.
평범한 인간으로 태어난 그는 놀라운 업적들을 세워 모든 사람들에게 기억되었다. 세계가 그를 기억하였고, 그는 특별한 존재가 되었다.
[미궁 세계가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세계는 남자를 선택하였다.
세계를 보살피고 관리할 자로, 세계에 있어 가장 특별한 의미를 가지게 된 종족인 인간을 올바른 길로 이끌 자로.
인간들은 자신들과 달라진 남자를 신이라 불렀다.
남자는 만족했다.
자신이 특별하다는 사실에, 신이라 불리운다는 사실에.
하지만 만족은 그리 길게 이어지지 않았다.
어느 날 남자는 생각했다.
인간들은 자신을 신이라 부르지만, 남자 자신은 진정 신이라 할 수 있을 것인가.
최초의 신성을 가진 존재.
그로 말미암아 수많은 이능과 기적을 일으킬 수 있는 존재.
하지만 한계가 있었다.
육신을 가진 인격신의 능력에는 그 한계선이 분명하였다.
늙지 않지만 죽지 않는 것은 아니었다.
인간들보다 훨씬 더 튼튼하고 병에도 잘 걸리지 않았지만, 완전무결은 아니었다. 다칠 수 있었고, 병에도 걸릴 수 있었다.
수많은 이능을 가졌지만 그것들 역시 하나하나만 놓고 보면 하찮았다. 진정 인간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을 해낼만한 이능은 없었다.
자연 남자는, 최초의 신은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이것도 신인가?
이걸 신이라 불러도 되는 것일까?
이건 그저 초인에 불과하지 않은가.
남자는 진정한 신이 되고 싶었다.
신이라는 호칭에, 칭호에, 단어에 어울리는 존재가 되고 싶었다.
그래서 남자는 방식을 바꾸었다.
보살피는 대신 착취했다.
그로 인해 생긴 힘으로 모형정원을 만들었다. 미궁 세계 자체를 먹어치워 자신의 힘을 키워나갔다.
남자는 어느 순간부터 마신이라 불리기 시작했다.
남자는 만족했다.
남자가 생각한 ‘진정한 신’에는 아직 미치지 못 했지만, 초인에 불과하던 시절과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힘을 부릴 수 있음에 기뻐했다.
하지만 그 만족 역시 그리 길지 않았다.
부족했기 때문이다.
조금 더.
조금 더 강한 힘을.
조금 더 전능에 가까운 힘을.
남자에게 인간은 더 이상 과거의 동족이 아니었다.
가꾸고 보살펴야 할 대상 역시 아니었다.
인간의 목숨은 남자에게 있어 숫자에 불과했다. 소모품이 줄어드는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니, 그것들 하나하나에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는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인간들로부터 더 강한 힘을 만들어낼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간들을 보다 효율적으로 착취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인간들만이 아닌, 미궁 세계의 모든 것들로부터 힘을 쥐어짜낼 수 있을까.
남자는 부의 감정에 주목했다.
인간들이 만들어내는 희노애락은 사실 거의 모두 공평한 힘을 만들어내었다.
하지만 기쁨과 행복을 유지하게 하는 것은 귀찮은 일이었다.
슬픔과 두려움, 공포, 절망.
부의 감정 쪽이 만들어내기 쉬웠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쪽이 훨씬 더 재미있었다.
서로 아끼고 사랑하는 모습을 보는 것보다 서로 악을 쓰며 맞찌르는 모습이 재미있었다.
행복한 미소를 짓는 것보다 두려움에 벌벌 떨며 우는 모습이 더 보기 좋았다.
사랑하는 연인이 모두의 축복을 받으며 맺어진다?
시시했다. 그보다는 연인 앞에서 다른 연인을 범하고 능욕해 양쪽 모두를 절망에 빠트리는 쪽이 재미있었다.
그래서 그렇게 하였다.
미궁 세계가 달라졌다.
여느 세계와 그리 다르지 않던 그곳은 인간들이 말하는 지옥과 가까운 장소로 변모하였다.
남자는 이제 인간들만을 쥐어짜내지 않았다.
미궁 세계에 거하는 온갖 생물들.
아직 자신들의 신을 가지지 못 한 그것들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인간들에게 했던 짓을 똑같이 하였다.
간혹 새로운 신들이 태어났지만 의미 없는 일이었다.
아니, 남자에게 있어서는 오히려 기꺼운 일이었다.
새로운 장난감이 늘어난 것이었으니까.
남자는 진정한 신에 가까워졌다.
신이라 불리울 뿐, 사실상 관리자에 불과한 수호의지를 초월한 존재가 되었다.
그랬기에 남자는, 마신은 더 이상 자신의 신명으로 불리지 않았다.
남자의 신명을 기억하는 이 자체가 미궁 세계에는 남지 않았다.
오직 하나.
미궁 세계 그 자체만이 마신의 신명을 기억했다.
* * *
마신은 천호를 보았다.
타락하여 괴물이 되었지만 마신의 근본은 미궁세계의 신- 수호의지였다. 그렇기에 알 수 있었다.
‘미궁 세계는 너를 원하지 않아.’
천호의 말대로였다.
눈앞의 존재는, 용사와 성검과 천사가 하나 된 존재는 단순한 수호의지가 아니었다.
미궁 세계의 의지를 대행하는 자.
굳이 이름을 붙여야 한다면 세계의 신.
마신은 아이라를 느꼈다.
저 다섯 번째 여신을 느꼈다. 그리고 알았다.
아이라는 세계와 하나가 되었다.
그녀의 자의식 자체는 소멸했을지 몰라도 그 마음만은, 영혼만은 여전히 세계 속에서 숨 쉬고 있었다.
마신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다시 한 번 눈앞에 선 천호를 보았다.
문자 그대로 기적의 존재.
파괴신의 신성과 신을 사냥하는 야차신왕의 신성을 동시에 이어받은 것만으로도 이미 기적이거늘, 그 와중에 미궁 세계의 용사가 되어 세계의 지원을 받기 시작한 존재.
미궁 세계 최강의 성검이 그와 하나가 되었다.
미궁 세계의 새로운 주신이 그와 하나가 되었다.
마신은 천호의 말을 실감했다.
정말이구나.
정말로 미궁 세계는 자신을 원하지 않는구나.
천호가 그 증거였다.
저런 기적의 존재가 단순히 우연만으로 탄생할 수는 없는 법이었다.
마신은 정면을 보았다.
파이엔의 파괴신이 보였다.
파이엔을 지켜낸 용사가 보였다.
이브나일이 숨겨두었던 미궁 세계의 초대 용사 역시 이쪽을 보고 있었다.
치유의 신으로 대표되는 미궁 세계의 신들. 마신이 떠나간 이후 태어난 새로운 신들.
“아아, 아아아.”
마신이 목소리를 내었다. 웃으며 하늘을 보았다.
밤이 어두웠다.
깊고 깊어 칠흑에 가까웠다.
저 너머로 아이라의 시선이 느껴졌다.
자신을 괴물이라 부르던 건방진 여신의 목소리가 새삼 떠올랐다.
마신은 웃음을 거뒀다. 그리고 생각했다.
아무 상관없다고.
미궁 세계가 자신을 원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미궁 세계가 불러낸 모든 이들이 자신의 앞을 가로막는다 할지라도.
“나는 신이다.”
초인 따위가 아니다.
신이라 불리지만 신 같지 않은, 육체의 한계에 붙들려 초인에 그치고 마는 어중이떠중이가 아니다.
파이엔의 파괴신.
분명 강력하다.
하지만 진정한 신은 아니다. 결국 수호의지에 불과하다. 더욱이 이곳은 파이엔이 아니었다.
야차신왕의 화신.
신성을 살라먹는 신 사냥꾼.
위협적이었다. 하지만 놈의 근원인 야차신왕의 사냥 대상은 신이라 불리울 뿐 실상은 초인인 수호의지들이었다. 진정한 신에 가까운 마신 자신의 상대는 아니었다.
“그래, 그런 것이지.”
남자는 천호를 보았다. 작업이란 말과 함께 돌진해오는 천호를 향해 마주 돌진하며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지고 있는 모든 힘을 하나로 집중시켰다.
“나는 신이다.”
미궁세계의 신.
전지전능에 한 없이 가까운 존재.
미궁 세계 전체가,
모형 정원이 요동치기 시작했다.
* * *
어느 날 다섯 여인이 나타났다.
다들 빼어난 재주를 가진 아름다운 여인들이었지만 결국 인간에 불과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특별했다.
이미 절망과 공포에 짓눌려 인간이라기보다는 그저 짐승에 가까워진 미궁 세계의 인간들에게는 신과 같은 존재들이었다.
다섯 여인들은 착했다.
단순한 말이었지만, 정말로 그러했다.
그녀들은 미궁 세계의 인간들을 불쌍히 여겼다. 어떻게든 미궁 세계의 인간들을 돕기 위해 노력하고 또 노력하였다.
짐승이나 다름없는 미궁 세계의 인간들이었기에 다섯 여인들은 자신들이 돕고자 하는 인간들에게 몇 번이나 위해를 당했다.
하지만 그녀들은 초지일관이었다. 인간들을 보살피는 것을 멈추지 않았다.
우연히 그 광경을 목격한 마신은 실험을 해보았다.
인간들의 폭력성을 보다 증대시켜 다섯 여인들에게 끔찍한 짓을 저지르게 하였다.
하지만 다섯 여인들은 변하지 않았다. 다섯 가운데 실제로 피해자가 나왔음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을 용서했다. 이브나일은 인간들을 때려눕힐 뿐, 누구 하나 죽이지 않았다.
마신은 감탄했다.
절망과 공포로 얼룩진 미궁 세계인 터라 다섯 여인들과 같이 고결한 인간들을 보는 것이 너무나 오랜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좀 더 내버려 두기로 하였다.
다섯 여인들이라면 인간들에게 희망이 될 것 같았으니까. 깊고 깊은 절망을 낳을 촉발제가 될 것 같았으니까.
다섯 여인들이 신성을 획득했다.
처음에는 신성이라 하기에도 미약한, 마신이 처음으로 얻었던 신성보다도 훨씬 작고 작은 것이었지만, 다섯 여인들은 다섯 여신이 되었다.
태양의 여신 아이테르.
전쟁의 여신 이브나일.
새벽의 여신 이오스.
하늘의 여신 테레시아.
그리고 마지막 하나.
다섯 여신들의 수장이자 미궁 세계의 모두로부터 사랑받는 고결한 여인.
희망의 신 아이라.
아이라의 신명을 알았을 때 마신은 유쾌한 기분을 어찌할 수 없었다.
희망의 신.
희망.
절망을 낳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존재.
“아아, 아아아.”
너희는 나의 먹이가 되기 위해 미궁 세계에 온 것이 맞구나.
그리 될 운명이구나.
마신은 희망이 무르익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때가 되었다. 다섯 여신들이 마침내 마신과 맞서고자 인간들과 함께 일어섰다.
마신에게 있어서는 예정된 수순이었다.
그랬기에 자연스럽게, 지금까지 몇 번이나 해온 것처럼 인간들을 제압하고 다섯 여신들을 멸하고자 하였다.
그들의 희망을 꺾어 매우 순도 높은 절망을 양산하고자 하였다.
그런데 기적이 일어났다.
마신 자신이 다섯 여신들에게 패했다.
아니, 다섯 여신이 아닌 아이라에 의해 미궁 세계에서 추방되었다.
세계의 일부를 잘라낸다.
잘라낸 일부와 마신을 함께 추방해버린다.
아이라답다고 밖에 할 수 없는 과감하면서도 놀라운 계책이었다.
하지만 아이라가 생각했듯이, 아이테르가 우려했듯이 후환이 남을 수 있는 방법이었다.
마신은 일부라고는 하나 미궁 세계와 함께했다. 여전히 모형정원을 다룰 수 있었다.
세계의 틈바구니를 헤매며 마신은 미궁 세계의 일부와 모형정원을 수습해 대미궁을 만들었다. 일단의 안전을 확보한 뒤에는 새로운 정보와 지식들을 습득하였다.
“재미있구나.”
여러 세계들이 있었다.
그리고 각각의 세계들은 모두 같지 않았다.
강한 세계가 있었다.
약한 세계가 있었다.
처음부터 10의 힘을 가진 세계가 있는가 하면 1의 힘을 가진 세계도 있었다.
마신이 보았을 때 미궁 세계는 강한 세계였다.
그랬기에 그 일부인 대미궁조차도 여간한 약한 세계 이상의 힘을 가지고 있었다.
남자는 대미궁에서 태어난 악신들을 먹어치우는 대신 수하로 삼은 뒤 생각했다.
어떻게 하면 미궁 세계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인가.
돌아가기 위해서는 무엇을 해야 하는가.
단순히 돌아가기만 하면 되는 것인가.
“먹어치우자.”
다른 세계들을.
약한 세계들부터 차근차근.
대신의 영역에 들어선 악신들을 마왕으로 개조했다. 대신이니 수호의지니 해봐야 마신에게 있어서는 결국 도구에 불과했다.
주변의 약한 세계들에 마왕들을 파견했다.
처음부터 마신 자신이 대미궁과 함께 쳐들어가면 아무리 자의식이 없는 세계라 할지라도 강하게 반발할 우려가 있었기에 일단 마왕들과 마물들만을 보냈다.
최초의 사냥감은 어리고 약한 세계였다.
이제 막 문명이라는 것을 시작한 그 세계의 인간들은 마왕군에 맞설 방도가 없었다. 수호의지들 또한 너무나 어리고 약해 대신의 힘을 지닌 마왕들에게 속수무책으로 밀려날 따름이었다.
어린 세계의 인간들이 멸망했다. 그로 말미암아 수호의지들의 힘은 약해졌고, 세계 그 자체도 약해졌다.
자신의 임무를 마친 마왕은 마신을 기다렸고, 마신은 대미궁과 함께 나타나 세계 그 자체를 먹어치웠다.
마신은 같은 행동을 반복했다.
마왕들을 파견해 미궁 세계를 찾는 동시에 만만한 세계들을 골라 흡수했다.
파이엔처럼 마왕을 격퇴한 세상에는 쳐들어가지 않았다.
패배할 가능성이 있으니까.
아직 마신 자신은 진정한 신이 아니었으니까.
몇 개나 되는 세계를 멸망시킨 마신은 생각했다.
다섯 여신들이, 아이라가 지금의 상황을 알면 어떻게 반응할까.
자신들로 인해 몇 개나 되는 세계가 멸망해버렸다는 사실을 알면 고결한 그녀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마침내 미궁 세계를 찾아냈다.
파견한 마왕이 패배한 터라, 미궁 세계의 모습이 워낙에 크게 변한 터라 처음에는 눈치 채지 못 했다.
아이라가 펼쳐놓은 빛의 그물 때문에 미궁 세계라는 것을 눈치 챈 이후에도 대미궁을 착륙시키기가 쉽지 않았다.
하지만 마신은 결국 해냈다.
아이라가 없는, 이제 넷 밖에 남지 않은 다섯 여신들과 마주하였다.
“조금 아쉽지만 어쩔 수 없지.”
아이라가 없어도 아이테르가 있으니까. 이브나일과 이오스와 테레시아가 있으니까.
대미궁이 미궁 세계를 침식했고, 마신과 다섯 여신의 힘겨루기가 시작되었다.
* * *
천호와 마신이 정면에서 충돌했다.
황금빛 섬광과 검붉은 빛이 굉음과 함께 폭발했다.
세계가 요동쳤다. 그리고 치유의 신은 느낄 수 있었다.
모형정원이 변모하고 있었다. 모형정원 안에서 수많은 죽음들이 양산되고 있었다.
“마물들.”
치유의 신이 말했다. 저도 모르게 여자를 돌아보았고, 여자는 노여움 가득한 얼굴로 마신을 노려보았다.
마신이 모형정원에 속박된 마물들을 제물로 바치고 있었다.
수십만을 넘어, 수백만에 달할 마물들의 목숨을 희생시켜 힘으로 치환하였다. 그것들 모두를 자신에게 집중시키고 있었다.
신이 아니었다.
저런 것은 신이라 부를 수 없었다.
괴물.
영락하고 타락해버린 괴물 그 자체.
치유의 신은 깨달았다.
어째서 최종결전이 펼쳐지고 있는 와중임에도 대신격을 가진 악신들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지.
이미 모두 희생당했다.
마신에게 신성을 회복할 도구로 소모되었다.
치유의 신은 두려움에 빠졌다.
이 싸움에서 마신이 이기면 어찌 될 것인가.
미궁 세계의 모두는 어떤 운명에 처하고 말 것인가.
마신에게 집중되는 힘이 너무나 거대했다. 마신이 자신을 진정한 신이라 표현하는 것도 과언이 아니었다.
‘어머니.’
아이테르가 보고 싶었다. 저도 모르게 눈물이 새어나왔다.
두려웠기 때문이다.
무서웠기 때문이다.
엄마가 보고 싶다며 우는 아이처럼 엉엉 울고 싶은 기분에 사로잡혔기 때문이다.
“괜찮아. 괜찮을 거야.”
다정하면서도 자신감 넘치는 목소리가 그런 치유의 신을 어루만졌다. 따듯한 손이 치유의 신을 손을 잡아주었다.
여자였다.
상처투성이였고, 몹시도 지쳐있었다.
하지만 그녀는 여전히 아름다웠다. 정면을 바라보는 두 눈에는 두려움이나 공포가 없었다.
황금빛 눈동자는 진정 태양과도 같았다.
여자는 강한 수호의지였다.
미궁 세계가 아닌 파이엔의 신성이었지만, 마신의 권능에 저항할 정도의 힘을 가진 주신격의 신성이었고, 그렇기에 지금 미궁 세계 전체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눈앞의 마신에게 집중되는 힘을 모두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두려워하지 않았다.
당당히 서서 마신과 천호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아니, 겨우 그 정도에 그치지 않았다.
싸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저 싸움에 합류해 천호를 돕고자 했다.
치유의 신은 진심으로 감탄했다. 단순히 천호의 어머니라서가 아니라, 여자 그 자체가 발하는 태양과 같은 힘에 매료되었다.
여자가 치유의 신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어느새 공포에서 벗어난 그녀의 곁에 남자 또한 다가섰다.
남자도 같았다.
여자와 마찬가지로 마신을 주시하고 있었다. 엄청난 힘의 격차에 두려워 떠는 대신 한 칼을 찌르기 위해 마신을 노려보았다.
그리고 그런 자가 하나 더 있었다.
레온하르트.
미궁 세계의 용사. 그 어떤 절망 속에서도 결코 포기하지 않는 이. 그렇기에 용사인 그 남자.
치유의 신 역시 정신을 차렸다. 주저앉아 무서워 할 때가 아니었다. 천호에게 모든 것을 맡겨서도 아니 되었다.
미궁 세계였으니까.
치유의 신 자신도 미궁 세계의 수호의지였으니까.
천호와 마신이 계속해서 격돌했다.
지금의 싸움은 전초전이었다. 서로의 권능과 권능을 맞부딪히는 힘겨루기였다.
마신의 힘이 점점 더 강해졌다.
힘의 저울이 점점 더 마신 쪽으로 기울었다.
허락할 수 없었다.
치유의 신은 의식을 집중하였다. 그리고 그 순간 알 수 있었다.
아이테르.
치유의 신 자신의 어머니.
마신이 모형정원의 모든 힘을 쥐어짜낸 결과 마신의 감옥에서 해방된 그녀가 말하고 있었다. 치유의 신 자신에게 속삭이고 있었다.
너도 할 수 있단다.
너 역시 가능하단다.
어쩌면 환청일수 있었다. 치유의 신 자신이 만들어낸 망상일지도 몰랐다.
하지만 치유의 신은 손을 들어올렸다. 어머니 아이테르로부터, 저 태양의 신으로부터 다섯 여신의 자리를 물려받았다.
급격한 변화는 없었다.
갑자기 신성이 폭증하는 일 역시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충분했다. 치유의 신이 주먹을 움켜쥐었다. 선신들의 수장으로서, 미궁 세계를 지키고자 하는 선신들의 힘을 하나로 모았다. 그 힘 모두를 천호에게 전달해주었다.
하늘에 두 개의 선이 그어졌다.
하나는 마물들의 목숨을 대가로 만들어진 붉고 붉은 마신의 힘이었다.
다른 하나는 성소에 모인 선신들의 힘을 집중시킨 푸르고 푸른 선이었다.
붉은 선이 마신과 이어졌다.
푸른 선이 천호와 이어졌다.
천호와 마신의 힘겨루기가 다시 백중세를 이루었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그것을 지켜보았다.
어느 순간.
서로가 서로의 힘을 상쇄하리라. 마신과 다섯 여신들이 아공간에서 펼쳤던 서로의 권능을 겨루는 싸움에서 벗어나 서로를 직접 멸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싸움으로 돌아서리라.
자신들이 나서야 하는 것은 바로 그 순간.
남자가 여자의 어깨를 안았다. 함께 천호의 싸움을 바라보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