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남자는 인내심이 강했다.
어떤 상황에서도 쉬이 이성을 잃지 않았다.
하지만 이번에는 경우가 조금 달랐다.
정말로 이성을 잃고 짐승이 될 뻔하였다.
여자가 남자를 보지 않았다면, 태양을 닮은 황금빛 눈동자로 진정시키지 않았다면 그리 되었으리라.
‘참아.’
지금은 밤이었다. 하지만 남자는 여자의 말을 거부하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받아들였다.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로 분노를 터트렸다.
쾅!
남자가 허공을 박찼다.
치유의 신을 폭행하던 마신의 분신을 베어낸 직후 마신을 향해 돌진했다.
천호도 같았다.
시간의 신의 도움까지 받아가며 시간을 단축한 결과 개문의식을 마친 천호는 이제까지와 달랐다.
야차신왕 쿠베라의 힘이 무엇인지 직감적으로 이해했다. 그리고 이해했기에 보다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두 마리 짐승이 각기 검고 푸른 궤적을 그렸다. 마신은 다급히 손을 놀려 남자와 천호의 시간을 정지시키려 했다. 한없이 느려진 시간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승리의 신과 같이 말이다.
효과는 있었다.
하지만 마신이 생각한 정도는 아니었다.
남자와 천호는 멈추지 않았다. 속도가 다소 느려졌지만, 이미 너무 빠른 둘이었다.
허공이 갈라졌다.
마신이 방금까지 서 있던 장소를 짐승의 발톱과 같은 날카로운 검격들이 베고 지났다.
급히 공간을 도약해 공격을 피한 마신은 눈을 부릅떴다.
성검을 들고 선 용사와 어느새 여자의 결박을 모두 풀어낸 남자를 보며 당황했다.
어떻게.
여자처럼 강대한 신성으로 마신의 권능에 저항한 것이 아니었다.
그러기에는 남자와 천호의 신성이 부족했다.
다른 방법이었다.
남자는 상처투성이인 여자를 품에 안았고, 여자는 웃으며 남자에게 키스했다. 성검을 움켜쥔 채 마신을 주시하는 아들을 보며 미소지었다.
남자와 천호가 가진 힘.
여자는 그것을 반신성이라 불렀다.
신성 포식 자체는 부수적인 것에 불과했다. 야차신왕 쿠베라의 진정한 힘은 신성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데 있었다.
여자는 남자와 함께 여러 세계를 다녀보았다.
여자의 고향인 파이엔.
남자의 고향인 지구.
천호의 고조부가 거하고 있는 무림의 세계.
천호를 소환한 미궁 세계.
모두 천차만별이었다. 서로 다른 문명을 일구고 있었다.
하지만 공통점들이 존재했다.
세계를 이루고 있는 세계의 시스템.
어째서인지 명확한 이유는 여자도 알 수 없었지만 기본이 비슷했다. PC로 치자면 각각의 버전이 다를 뿐 모두 같은 운영체계를 사용하고 있는 것과 같았다.
수호의지들은 각각의 세계- 운영체계 속에서 활동하는 프로그램들에 비할 수 있었다.
야차신왕 쿠베라는 바이러스였다.
프로그램을 오염시키고 파괴할 수 있는 힘을 가진 존재였다.
각각의 세계가 서로 비슷한 세계의 시스템을 가지고 있기에 야차신왕의 힘은 어느 세계에서고 통용될 수 있었다.
여자는 남자의 목을 끌어안았다. 이럴 때가 아니라는 것을 알았지만, 그래도 입술을 맞추었다. 마신과의 입맞춤을 지우듯 남자에게 열렬한 입맞춤을 선사한 뒤 미소지었다. 마신을 보며 소리쳤다.
“가서 물어!”
남자가 쓰게 웃었다. 천호가 약간은 바보같은 웃음을 흘린 뒤 지면을 박찼다. 다시 한 번 검고 푸른 궤적들이 허공에 그려졌다.
마신은 급히 손을 놀렸다. 조금 전보다 더 강한 힘을 발휘했다. 모형정원 안에서라면 자신은 무적의 존재임을 다시 한 번 떠올렸다.
마신의 권능이 남자를 속박했다. 얼어붙은 시간 속에 남자를 가두려 했다.
남자는 야차신왕의 힘을 발했다. 마신의 권능에 정면으로 맞섰다. 반신성으로 얼어붙는 시간을 깨트리며 생각했다.
‘과연.’
진정한 신이라며 나댈 만도 하였다.
여러 세계를 돌아다녔지만 마신과 같은 힘을 부리는 수호의지는 이제까지 본 적이 없었다.
남자는 인정했다.
야차신왕 쿠베라의 화신인 남자였지만 마신의 권능을 온전히 와해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신이 지금처럼 진심을 발휘하면 당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남자는 사나운 미소를 지우지 않았다.
지금의 남자는 혼자가 아니었으니까.
야차신왕의 화신이 아직 하나 더 남아 있었으니까!
[그대여!]
미트라가 소리쳤다. 검고 푸른 궤적이 하나로 합쳐졌다. 남자의 경로에 들어선 천호가 미트라를 휘둘렀고, 남자에게 힘을 보탰다. 함께 마신의 권능을 걷어냈다.
시간은 멈추지 않았다. 남자와 천호는 약속이라도 한 것처럼 동시에 같은 기술을 사용했다.
광속의 스칸다.
두 사람이 사라졌다. 적어도 마신의 눈에는 그렇게 보였다.
마신은 주변의 시간을 동결시켰다. 특정 대상이 아닌, 특정 공간 자체를 정지시켰다.
그리고 경악을 삼켰다. 그야말로 간발의 차였다. 남자와 천호가 휘두른 검의 궤적 끝에는 마신 자신이 있었다. 권능을 발휘하는 것이 조금만 늦었다면 일격을 허용했으리라.
마신은 급히 공간을 도약했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와 천호가 마신의 권능을 살라먹었다. 정지시킨 세상 속에서 움직이기 시작했다.
마신은 식은땀을 흘렸다.
느껴본지 너무나 오래되었기에, 오직 타인의 것만을 보아왔기에 너무나 낯설게 느껴지는 감정에 정도 이상으로 휘둘렸다.
공포와 두려움.
마신이 너무나 좋아하는 부의 감정들.
하지만 이번엔 본인의 것이었다. 마신은 발악하듯 크게 소리치며 양손을 휘둘렀다.
벽이 세워졌다. 땅이 솟구쳐 올라 남자와 천호의 진로를 방해했다. 비정상적으로 강해진 중력이 천호를 짓눌렀고, 남자의 후방이 돌연 진공이 되어 주변의 모든 것들을 빨아들였다.
하지만 남자와 천호는 멈추지 않았다. 마신이 진로를 방해할 때마다 그것을 극복해냈다. 마신에게 쫓기는 사냥감의 기분을 느끼게 만들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와 천호를 보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이대로는 못 이겨.’
남자와 천호가 마신을 밀어붙이고 있지만 오래가지 않을 터였다.
마신은 지금 당황한 상태였다. 때문에 힘을 너무 단순한 형태로 쓰고 있었다.
저대로 공포에 적응한다면, 다시 한 번 이성을 되찾아 전능에 가까운 힘을 제대로 부리기 시작한다면.
무리였다. 아무리 야차신왕의 힘을 가진 남자와 천호라 할지라도 마신을 이길 수는 없었다.
‘모형정원.’
여자는 이해했다.
마신은 자신이 미궁 세계의 진정한 신임을 강조하고 있었고, 어느 정도 사실이었지만, 여자는 속지 않았다.
오직 모형정원 안에서만 마신은 전능에 가까운 힘을 부릴 수 있었다.
다섯 번째 여신의 성소나 모형정원 밖- 아직 마신의 수중에 떨어지지 않은 미궁 세계의 나머지 반쪽 위에서는 지금 같은 힘을 부릴 수 없었다.
모형정원 자체가 마신의 성소인 셈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모형정원 밖에서 싸우는 것은 불가능했다. 마신은 무슨 일이 있어도 모형정원을 나서지 않으리라.
여자는 마른침을 삼켰다. 눈앞에서 우려한 사태가 벌어지기 시작했다. 마신이 상황에 적응하고 있었다. 여전히 밀리는 모양새이긴 했지만, 남자와 천호의 돌진을 효율적으로 차단하기 시작했다. 무작정 시간을 멈추는 대신 찰나의 틈을 만들었다. 공간과 공간 사이를 벌려 남자와 천호의 거리감을 흩어놓았다.
여자는 이해했다.
다섯 여신들은 과거 마신과의 싸움에서 마신을 어찌하는 것을 포기했다. 대신 그녀들은 미궁 세계의 일부를 잘라내 모형정원 채로 마신을 추방했다.
그 결과 마신이 더 강해져서 돌아오고 말았지만, 당시의 그녀들로서는 그것이 최선이었으리라.
여자는 물약을 마셨다. 바닥난 체력이나마 회복시킨 뒤 숨을 골랐다.
마신이 남자의 공격을 막아냈다. 이브나일의 검술을 고스란히 발휘해 천호의 공격 역시 받아내고 있었다.
여자는 하늘을 보았다. 신성의 충돌과 마신의 권능에 의해 지상의 어둠은 걷힌 상태였지만 하늘은 여전히 밤이었다.
낮이었다면, 그리하여 여자의 힘이 보다 강해진 상태였다면 이야기가 달라졌을까?
아니었다.
똑같았으리라. 낮이었으면 남자와 천호가 지금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없었을 테니까.
설사 낮이라 한들 이곳은 파이엔이 아니었으니까.
이대로는 이길 수 없다.
결국에는 패배하고 만다.
하지만 여자는 미소를 잃지 않았다.
웃으며 밤하늘을 향해 속삭이듯 말했다.
“시간 끌기 정말 힘들었어.”
정말로 진짜.
너무나 작은 목소리였지만 분명히 전달되었다.
그렇기에 밤하늘 너머로부터 대답 역시 돌아왔다.
여자는 다시 한 번 웃었다. 다시 한 번 속삭였다.
“그러니까 보여줘.”
미궁 세계의 진정한 수호의지의 힘을.
“네, 어머님.”
등 뒤에서부터 들려온 대답에 여자는 만족했다.
눈앞에서 일어나는 기적을 흐뭇한 얼굴로 지켜보았다.
* * *
마신은 자신감을 되찾았다. 더 이상 공포에 짓눌리지도 않았다.
분명 남자와 천호는 위협적인 존재들이었다.
신성을 오염시키고 파괴하는 반신성의 힘은 끔찍하기 짝이 없었다.
하지만 이곳은 모형정원 안이었다.
마신 자신에게는 전능에 가까운 힘이 있었다.
그러니 이길 수 있다.
그러니 지지 않는다.
반신성이라 해도 결국 자신 앞에 무릎 꿇고 마리라!
마신이 오른발로 땅을 찍었다. 강한 충격파를 일으키는데 그치지 않고 공간을 조작해 남자와 천호를 자신 곁에서 밀어냈다. 주먹을 움켜쥐는 것으로 땅을 조종해 남자와 천호를 집어삼키려 했다.
남자와 천호가 각기 호세사천왕의 기술을 펼쳤다. 엉망진창으로 작용하는 중력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고 참원으로 마신의 권능을 베어냈다. 연달아 펼친 하늘 부수기로 솟구쳐 오른 지면을 밀어냈다.
마신이 다시 손을 놀렸다. 마치 지휘를 하듯 연달아 세상을 움직이려 하였다.
남자가 그것을 보았다. 천호 또한 그러했다. 하지만 두 사람은 반응하지 않았다. 다시 한 번 호세사천왕을 펼치는 대신 그저 지켜보았다.
마신의 권능에 이상은 없었다. 마신은 여전히 모형정원을 조종할 수 있었다. 남자와 천호를 향해 정신을 붕괴시키다 못 해 소멸시키고도 남을 무지막지한 정보들이 쏟아져 내린 것도 사실이었다.
하지만 그것을 걷어내는 손길이 있었다.
쏟아지는 정보를 자연스럽게 흘려보내는 신성이 있었다.
성검 미트라가 미소지었다.
마검 미트라가 환호성을 질렀다.
마신은 다시 한 번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놀란 얼굴로 남자와 천호 사이에 나타난 이를 보았다.
여덟 장의 날개와 찬란하게 빛나는 빛의 고리를 가진 분홍빛 머리칼의 여신.
루시엘.
새로운 다섯 번째 여신.
다섯 번째 여신 아이라의 신위를 물려받은 존재.
아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겨우 그 정도가 아니었다.
다섯 여신 중에 하나가 된 것 정도로는 지금 같은 힘을 발휘할 수 없었다.
어떻게.
의문을 표한 순간 마신은 이해했다. 그랬기에 다시 한 번 경악했다. 노성을 터트렸다.
“아이라!”
다섯 번째 여신.
마신 자신을 추방하기 위해 스스로를 희생한 존재.
아니었다.
희생한 것 자체는 사실이었지만, 아이라는 소멸하지 않았다.
여자가 웃었다. 미궁 세계 밖에서 빛의 그물을 관찰했기에 그녀는 이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브나일은 루시엘이 기존의 다섯 여신과 달리 온전한 미궁 세계의 존재이기 때문에 보다 강한 힘을 부릴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리고 그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하지만 겨우 그게 다가 아니었다.
천하고도 수백 년 전, 아이라는 스스로를 희생했다.
스스로의 인격과 자아를 버리고 미궁 세계와 하나가 되었다.
그리하여 그 힘으로 마신을 추방했다.
세계를 감싸는 빛의 그물을 만들었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마음은 지금도 미궁 세계에 남아 있었다. 새로이 다섯 번째 여신으로 거듭난 루시엘에게 자신과 힘의 의지를 전해주었다.
그 결과 루시엘은 될 수 있었다.
다섯 여신 전부를 합친 것과 같은 존재가.
미궁 세계에서 나고 자란 진정한 주신이.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하나.
“용사님.”
루시엘이 천호를 불렀다.
남자는 어쩐지 모를 흐뭇함에 코밑을 슥 닦았고, 여자는 까르르 웃었다. 마검 미트라는 묘한 질투심에 입술을 삐쭉였다.
천호가 이해했다. 루시엘에게 손을 내밀었고, 루시엘은 천호의 손을 다소곳이 잡았다.
마신은 눈을 껌벅였다.
루시엘과 천호가 무엇을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리고 그 순간 이해했다.
용사와 성검과 천사.
루시엘이 눈을 감았다. 천호와 하나가 되었다. 미트라와 하나가 되었다.
새하얀 빛이 일었다.
소용돌이치는 그것이 모형정원의 일부를 소멸시켰다. 다섯 번째 여신의 힘으로- 미궁 세계의 힘으로 마신의 모형정원을 일부나마 걷어냈다.
천호가 긴 숨을 토했다.
루시엘과 하나 되었기에 이해할 수 있었다.
비로소 깨닫게 되었다.
치유의 신도 이해했다.
얼어붙은 시간 속을 빠져나온 승리의 신도 직감했다. 마침내 지면을 뚫고 올라온 검의 신 역시 깨달았다.
그녀들만이 아니었다.
미궁 세계의 모든 신들이 이해했다.
마신이 미궁 세계의 주인이라는 사실을 깨달은 이래, 자신이 대미궁의 정화에 순응했다는 사실을 직시한 직후 절망에 빠졌던 정화의 신 역시 진실을 목도했다. 그랬기에 미소지었다. 크리스의 가슴에 머리를 묻고 기쁨을 눈물을 흘렸다.
혼란의 신과 미혹의 신도 알 수 있었다.
마신에 의해 악신으로 오염되고 말았지만, 그녀들도 결국엔 수호의지였다. 미궁 세계의 신이기에 미궁 세계를 이해할 수 있었다.
[미궁 세계가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천호의 머릿속에 목소리가 들려왔다.
반복되었다.
그리고 그것은 미궁 세계의 목소리였다.
이제는 천사들도 이해할 수 있었다.
영웅들과 마물들 역시 깨달았다.
미궁 세계가 이계의 존재들을 불러낸 이유.
다섯 여신들이 신성을 얻어 주신의 자리에까지 올라설 수 있었던 이유.
계속해서 이계의 영웅들이 소환된 이유.
“미궁 세계는 너를 원하지 않아.”
천호가 말했다.
마신이 눈을 깜박였다. 저도 모르게 뒷걸음쳤고, 제대로 숨을 쉬지 못 했다.
인간으로 태어나 신의 자리에 올랐지만 괴물이 되어버린 존재.
수호의지로서의 본분을 망각하고 그저 세계를 지배하려고만 든 폭군.
세상은 인격을 가진 존재가 아니었다.
때문에 마신의 존재를 부정하거나 그 힘을 거두지는 않았다.
하지만 보호본능이 존재했다.
그것이 이계의 존재들을 불러들였다. 이미 세계의 주인이 된 마신을 몰아내고자, 그를 끌어내리고자 이계의 존재들을 청하였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천호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다시 한 번 세계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루시엘과 처음 만났을 때 들었던 이야기를 떠올렸다.
‘많은 업적을 쌓으면 미궁 세계의 인정을 받아 신이 될 수도 있어요!’
루시엘의 말대로였다.
그녀는 틀리지 않았다.
[미궁 세계가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이계의 신성이 아니었다.
아버지나 어머니께 물려받은 신성 역시 아니었다.
미궁 세계의 신성.
미궁 세계로부터 인정받은 신위.
[미궁 세계가 당신을 세계의 신으로 인정합니다.]
마신에 대적할 자.
세계의 의지를 이어 극악무도한 폭군을 끌어내릴 존재.
이브나일은 미소지었다.
성소 가장 깊은 곳에 위치한 제단에서 엉엉 울며 하늘을 향해 손을 뻗었다.
아이라.
우리는 틀리지 않았어.
우리가 미궁 세계를 위해 한 행동들은 잘못되지 않았어.
루시엘이 아이라의 신위를 이어받았다.
다섯 여신을 제외한 모두가 잊고 만 아이라의 신위.
하지만 미궁 세계는 기억하고 있었다.
“희망의 신.”
그것이 다섯 번째 여신 아이라의 신위.
루시엘이 물려받은 이름.
용사와 성검과 천사가 하나 되어 탄생한 세계의 신.
천호가 성검을- 미궁 세계의 힘과 의지를 대행하는 세계의 검을 거머쥐었다. 야차신왕의 반신성의 힘을 미트라의 검신 위에 두른 채 황금빛 눈동자로 마신을 마주하였다.
“작업을, 시작하자.”
천호가 말했다. 세계신의 목소리가 전장 전체에 전파되었다.
루시엘과 미트라가 미소지었다. 선신들과 천사들이 행복한 얼굴이 되었다. 에이젤이 폴짝폴짝 뛰어오르며 좋아했고, 루실리아와 실리키엘이 환호성을 질렀다. 기병의 신이 호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작업.
천호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작업을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