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3장 - 상봉(2)
마신이 준비한 형벌 속에서 아이테르와 테레시아, 이오스는 극한의 고통에 시달렸다.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이 끝도 없이 이어지는 가운데 테레시아와 이오스는 생각 자체를 할 수 없었다.
그저 고통 속에 울부짖고 괴로워하는 것이 그녀들이 할 수 있는 전부였다.
아이테르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다섯 여신의 수장인 그녀라 한들 신성을 거두어내고 보면 결국 가냘픈 인간 여인에 불과했으니 말이다.
육신이 찢어졌다. 영혼이 분쇄되었다. 사고를 허락하지 않는, 끝없이 이어지는 격심한 고통 속에서 아이테르는 부서지고 부서지고 또 부서져야만 했다.
하지만 그 모든 고통 속에서도 아이테르는 떠올렸다.
아니, 떠올린 것이 아니었다. 절로 떠오른 것에 가까웠다.
아이테르는 그것에 매달렸다. 마치 지옥 속에서 동아줄을 발견하기라도 한 것처럼, 미친 듯이 울부짖는 와중에도 머릿속에 떠오른 그것을 놓치지 않았다.
아이라의 목소리였다.
이제 와서 새삼 아이라와 나누었던 이야기들이 떠올랐다.
아이라.
다섯 번째 여신.
표면적인 수장은 아이테르 자신이었지만, 실질적으로 다섯 여신을 이끈 것은, 미궁 세계의 모두를 이끈 것은 바로 그녀.
죽여 달라는 말만 반복하던 테레시아는 이제 아무런 말도 하지 못 했다. 그저 울부짖을 따름이었다.
이오스도 같았다. 짐승처럼 발버둥 치며 괴로워하는 그녀에게서는 이성의 파편조차 찾아볼 수 없었다.
아이라가 이곳에 있었으면 어땠을까.
아이라도 우리와 같았을까?
우리처럼 그저 울부짖기만 했을까?
생각할 수 없었다. 생각이 이어지지 않았다. 그러기에는 영육의 고통이 너무나 격심했다.
아이테르는 엉엉 울었다. 그리고 그런 아이테르의 귓가에 아이라의 목소리가 머물렀다.
마신의 농간은 아닐까.
마신이 더 큰 고통을 주고자 아이라의 목소리를 내는 것은 아닐까.
의심할 수 없었다.
의심할 여력조차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테르는 아이라의 목소리에 매달렸다.
옛 기억인지, 마신의 속삭임인지, 그것도 아니면 다른 무언가인지 알 수 없는 그것에 귀를 기울여 조금이라도 고통을 잊고자 하였다.
옛날.
천하고 수백 년 전.
미궁 세계 전체가 마신의 모형정원이던 시절.
다섯 여신이 미숙한 신성을 얻어 천사와 비슷한 존재가 된 그때.
아이라는 말없이 밤하늘을 우러렀다.
저도 모르게 그런 아이라의 행동을 따라 밤하늘을 우러른 아이테르에게 말했다. 나머지 다섯 여신인 테레시아와 이오스, 이브나일에게도 그녀의 목소리는 닿았다.
“괴물이 되지는 말자.”
신성을 손에 넣었다 하여.
앞으로 오랜 시간이 흘러, 정말로 신성에 익숙해진다 해도.
괴물이 되지는 말자.
지상의 모두가 저마다의 삶을 가진 존재들이라는 것을 잊지 말자.
아이라가 자주 하던 말이었다.
그리고 그 말 덕분에 다섯 여신들은 마신처럼 타락하지 않을 수 있었다.
하지만 그날은 평소와 조금 달랐다.
괴물이 되지 말자는 이야기 외에도 다른 이야기가 있었다.
그날, 마치 지나가듯 꺼낸 아이라의 이야기.
언제나 밤하늘을 바라보던 그녀가 꺼낸 말.
“우리는 어째서… 미궁 세계에 오게 된 걸까?”
어째서.
아이테르의 귓가에 머물렀던 아이라의 목소리가 사라졌다. 아이테르는 다시 끝없는 고통 속에 추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그 찰나의 순간 아이테르는 생각했다.
어째서.
정말로 어찌하여.
그리고 그녀는 알아냈을까.
모두를 위해 희생한 그녀는, 마지막 순간이 오기 전에 그 이유를 알아냈을까.
찰나가 지났다.
생각은 끊어졌다.
아이테르는 울부짖었다.
* * *
경계를 향해 나아가는 전차 위에서 이브나일은 하늘을 보았다.
밤이었다.
점점 더 깊어가는, 검고 푸른 어둠의 시간이었다.
하늘에는 별이 많았다. 금방이라도 쏟아져 내릴 것처럼 넓고 넓은 별의 바다가 밤하늘에 펼쳐져 있었다.
아름다웠다.
마신이 돌아왔음에도, 벌써 세계의 절반이 마신의 지배하에 들어갔음에도 밤하늘은 여전히 아름답고 신비했다.
이브나일은 몸을 웅크렸다. 스스로의 어깨를 끌어안으며 이를 악물었다.
아이테르와 테레시아와 이오스.
셋에 대한 걱정과 고민, 생각을 억지로 끊어냈다.
그 반동인지, 아니면 지금 향하고 있는 장소 때문인지 자꾸만 아이라 생각이 났다.
아이라.
모두를 구하고 모두에게 잊힌 여신.
이브나일은 아이라를 좋아했다. 다섯 여신들 모두가 그녀를 사랑했다. 아이테르조차도 겉으로는 흥흥거렸지만, 사실 속으로는 누구보다도 아이라를 좋아했다. 대놓고 아이라에게 엉겨 붙을 수 있는 테레시아를 보며 아이테르가 묘한 질투심을 불태우던 모습을 이브나일은 잊지 않았다.
웃음이 새어나왔다.
천하고도 수백 년 전.
정말로 멀고 먼 옛날.
하지만 마치 어제 일처럼 떠올릴 수 있었다. 지금도 눈을 감으면 아이라의 얼굴이 보였다. 그녀의 목소리가 들릴 것만 같았다.
‘무서워. 너무 무서워, 아이라.’
마신이 정말로 돌아왔어. 모두와 함께 열심히 싸웠지만 결국 이기지 못 했어.
아이테르와 테레시아와 이오스가 붙잡혔어. 이제는 정말 나 혼자 남았어.
나 대신 차라리 아이테르가 도망치는 게 낫지 않았을까?
아니면 이오스라든가.
이브나일은 고개를 숙였다. 몸을 조금 더 웅크렸다. 다섯 여신 중 유일하게 남은 마지막 여신은 남이 볼까 두렵다는 듯이 몸을 숨겼다.
보여줄 수 없었다.
이렇게 두려워하는 모습은, 무서워하는 모습은.
전쟁의 여신이었다.
다섯 여신 가운데 마지막으로 남은 여신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두려웠다. 무서운 것은 무서운 것이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마지막 싸움이 시작될 터였다.
여기서 패하면 정말로 끝이었다. 더 이상 뒤가 존재하지 않았다.
‘아이라, 무서워. 내가 다 망치면 어떡하지? 내가, 내가 다 망쳐버리면…….’
아이테르가 자신을 도망치게 해주었다.
아이라가 남긴 안배들이 마지막 희망이 되어주었다.
그러니 이제는 이브나일 자신이 해야만 했다. 다섯 여신 가운데 마지막 남은 이로서 해내야만 했다.
‘아이라.’
이브나일은 다시 한 번 이를 악물었다.
저도 모르게 새어나온 눈물을 닦고 다시 밤하늘을 보았다.
‘아이라, 지켜봐 줘.’
네가 남긴 마지막 아이를.
네 신위를 이어받을 아이를.
루시엘.
잠깐 밖에 볼 수 없었지만, 알 수 있었다. 아이라의 아이다웠다. 참으로 맑고 순수한, 그러면서도 강단 있는 아이였다.
그리고 성검 미트라.
다섯 여신을 제한 그 누구도 알지 못 하는 사실이었지만, 사실 미트라의 모습은 아이라의 모습을 본 뜬 것이었다.
‘네 아이가 있어. 성검이 있어. 그리고… 용사가 있어.’
박천호.
다섯 여신들이 그러했던 것처럼 다른 세계에서 온 용사.
미궁 세계의 모두를 위해 앞장서서 싸우는 자.
다섯 여신들이 걸었던 길을 걷고 있는 자.
‘아이라.’
이브나일은 두 손을 모았다. 저도 모르게 기도했다.
아이라에게 자신의 소망을 속삭였다.
‘나는 어찌되어도 좋아.’
미궁 세계를 구해줘. 다시 한 번 이 세계가 마신의 지옥이 되는 것을 막아줘.
이브나일은 두 손을 모아 쥔 채 눈을 떴다. 정면을 바라보았다.
경계를 넘었다. 마신의 모형정원 안에 들어섰다.
그리고 그 순간 이브나일은 느낄 수 있었다.
먼 곳에서부터 바라보는 마신의 시선을.
이브나일은 숨을 토했다. 더 이상 웅크리는 대신 어깨와 가슴을 폈다. 엉엉 우는 대신 정면을 똑바로 노려보았다.
마신이 이쪽을 보았다.
내려다보았다.
홀로 남아 애써 저항하는 이브나일이 같잖다는 듯 비웃었다.
간다.
마신이 말했다. 모형정원 전체가 이브나일을 억누르듯 말했다.
이브나일은 억지로 웃었다. 아직 남은 힘을 발해 마신의 시선을 떨쳐냈다.
“가자.”
이브나일이 말했다. 주신의 목소리는 선신들과 천사들, 영웅들 모두에게 전달되었다.
모형정원의 초입.
곳곳에서 솟아오르고 있는 벽과 기둥.
세계 전체가 미궁으로 변해가는 와중임을 보여주는, 미완성된 미궁.
치유의 신이 숨을 가다듬었다.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먼 곳에서부터 마물들이 밀려오고 있었다.
거대한 해일이 되어 선신들과 천사들을, 영웅들을 집어삼키려 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가야만 했다.
이브나일의 목소리에 이어 치유의 신 역시 한 마디를 보태었다.
“가자.”
이기기 위해.
막판 역전극을 위하여.
그 옛날 아이테르가 그러했던 것처럼 치유의 신이 앞장섰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곁을 용사와 성검과 천사가 함께하였다.
[그대여, 이번 싸움이 끝나면-]
미트라가 돌연 작은 목소리를 내었고, 천호는 플래그 세우지 말라고 타박하는 대신 그녀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미트라가 작게 말했다.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루시엘이 천호의 손을 힘주어 잡았다.
치유의 신은 쓰게 웃었다. 허공에 손을 놀려 두 자루 붉고 붉은 치유의 검을 거머쥐었다.
천호도 같았다.
루시엘이 미트라와 하나가 되었다. 그리고 천호가 그런 미트라와 다시 하나가 되었다.
신검합일.
하나 된 용사와 성검과 천사.
“가자.”
천호도 말했다.
하늘과 땅을 뒤덮을 기세로 몰려드는 마물들의 기운을 감지하며 정면을 보았다.
밤하늘 너머 악신들의 기운이 느껴졌다. 다시 그 너머 마신의 시선이 느껴졌다.
마신이 천호를 보았다.
천호 또한 마신을 보았다.
발걸음을 내디뎠다.
* * *
마신은 옥좌 위에 있었다.
자신이 만든 거대한 미궁 속에 자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는 미궁 세계의 진정한 신이었다.
그렇기에 내려다보았다.
신의 시선으로 지상을 굽어보았다.
이브나일이 선을 넘었다.
치유의 신과 용사가 선봉에 나섰다.
그런 둘의 뒤에는 천사들과 영웅들이 있었다. 대부분이 심층 공략대에 속해 있던 강력하고 노련한 전사들이었다.
하지만 숫자가 너무 적었다.
대신들의 숫자도 부족했다.
마신은 이브나일을 비웃었다. 하지만 결코 방심하지 않았다.
이브나일의 진로를 보며 생각했다.
그녀는 어째서 남하를 시작했을까.
마신 자신이 힘을 모두 회복하기 전에 공격하고자?
수단이 너무 좋지 못 했다.
그러기에는 너무 대놓고 쳐들어오고 있었다.
물론 자포자기한 것일지도 몰랐다.
선을 넘는 순간 마신 자신이 알아차릴 것이 분명하니까.
전력의 차이가 너무 막대하니까.
어차피 안 될 거 정면으로 부딪혀 보자며 무작정 달려든 것일 수도 있었다.
“아니, 그럴 리가.”
이브나일은 바보가 아니었다.
치유의 신 역시 어리석지 않았다.
다른 무언가.
놈들에게 희망이 될 무언가.
“아아, 아아아.”
마신은 불완전하게나마 이해했다. 집중하고 또 집중한 끝에 알아차렸다.
모형정원 안.
마신의 지배하에 놓이지 않은 공간이 하나 있었다.
모형전원 전체로 보자면 너무나 작고 작은 부분이었기에 미처 눈치 채지 못 한 장소였다.
마신은 생각했다.
어째서 모형정원 안에 저런 장소가 존재하는 것일까.
어째서 대미궁을 해체하고 모형정원을 다시 세운 지금에도 저 장소가 남아있는 것일까.
무엇이 그것을 가능케 한 것일까.
“아이라.”
부지불식간에 떠올린 이름이었다.
논리는 없었다. 하지만 마신은 확신했다.
그렇기에 이브나일의 목적지 역시 그곳이라 단정지었다.
아이라가 준비한 저 장소에서 이브나일이 무엇을 할 것인가.
아직 알 수 없었다. 하지만 그것이야말로 이브나일이 가진 마지막 희망이리라.
마신은 손을 놀렸다. 중층에서 방목하던 소악신들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하지만 포식을 멈추지 않았다. 오히려 포식의 속도를 높였다.
만약의 경우를 대비하기 위하여.
마신은 명령했다.
신의 시점으로 내려다보며 손을 놀렸다.
“쳐라.”
놈들이 목표로 한 곳에 결코 닿지 못 하게 하라.
악신들이 마신의 명을 받들었다.
모형정원 곳곳에서 백만을 우습게 헤아리는 마물들이 성난 노도처럼 돌진했다.
이브나일이 이끌고 있는 천사들과 영웅들은 모두 합해봐야 수천 남짓.
어찌할 것이냐.
어떻게 할 것이냐.
마신은 방심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렇다하여 즐기지 않는 것도 아니었다.
모형정원의 모든 것들은 마신의 장난감이었으니까. 지금 이 순간 이브나일은 재미있게 가지고 놀 수 있는 놀이상대였으니까.
마신은 지켜보았다.
대미궁에 남은 악신들 가운데 대신의 힘을 가진 것은 여섯이었다.
24층부터 29층까지 각 층을 지배하는 악신들 가운데 역병신을 제외한 나머지 다섯.
23층에서의 싸움에서 몸을 빼낸 폭력의 신.
그들도 혼란의 신과 같았다. 대미궁이 해체되고, 진정한 모형정원에 서게 됨에 따라 각성하였다.
한 꺼풀을 벗었다.
혼란의 신처럼 과거를 떠올리고 마신의 본질을 깨닫지는 못 하였지만, 신으로서의 격은 분명 한층 더 높아졌다.
이성을 상실한 상태로 그저 돌진할 뿐인 마물들 사이를 폭력의 신이 느긋하게 걸었다.
격투의 신은 아직 회복하지 못 한 상태였다.
하지만 괜찮았다. 격투의 신 말고도 무자비한 폭력을 퍼부어주고 싶은 대상은 얼마든지 있었으니까.
치유의 신.
도도하기 짝이 없는 그년에게 공포라는 것을 가르치고 싶었으니까.
선신들의 수장인 그녀가 울부짖으며 애원하는 모습을 보고 싶었으니까.
하지만 섣불리 나서지 않았다. 느긋하게 나아가며 때를 기다렸다.
미궁 세계의 선신들은 전부 육신을 가진 존재들이었다.
때문에 신성을 발휘할 때마다 체력 또한 함께 소모하였다.
기다리면 되는 일이었다.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마물들을 상대하던 선신들이 지쳐버리는 때를.
제대로 된 저항조차 할 수 없게 되는 때를.
나머지 다섯 악신들도 비슷한 생각들인 것 같았다.
24층의 주인인 비탄의 신.
26층의 주인인 고통의 신.
27층의 주인인 능욕의 신.
28층의 주인인 살인의 신.
29층의 주인인 멸망의 신.
모두 같았다.
마물들 사이에 자리한 채 선신들의 싸움을 지켜보았다.
제법 볼만한 싸움이었다.
화려하고 또 화려했다.
선신들의 신력이 주변을 휩쓸었다. 검의 신이 검을 한 번 휘두르고 승리의 신이 주먹을 한 번 내지를 때마다 마물들이 뭉텅이로 소멸되었다.
질서의 신이 전투력이 없는 선신들을 이끌었다. 그들의 힘을 하나로 모아 방출하여 모형정원의 마기를 밀어냈다.
천사들이 고군분투했다.
영웅들이 끝도 없이 밀려드는 마물들에 뭉개지기는커녕 그들을 밀어내며 조금씩 앞으로 나아갔다.
그리고 용사가 있었다.
다섯 번째 여신의 힘을 발하는 그가 네 자루 검의 호위를 받으며 선신들의 길을 열었다. 치유의 신과 함께 무수히 많은 마물들을 분쇄하며 발걸음을 내디뎠다.
이미 저층에 거하던 마물들 따위는 끼는 것조차 불가능한 전장이었다. 막강한 선신들의 신력에 증발하듯 소멸할 따름이었다.
모형정원이 뒤틀렸다.
선신들이 죽음을 각오하고 힘을 쥐어짜낸 결과였다.
하지만 치유의 신은 생각했다.
눈앞에서 밀려드는 중층의 마물들을 과잉회복으로 자멸하게 만들며 인정했다.
이대로는 힘들었다.
폭력의 신의 생각대로였다. 지금의 싸움은 지나칠 정도의 소모전이었다. 애당초 이리 될 것을 알고는 있었지만, 적들의 규모가 상상을 초월했다.
마신 측의 대신들은 아직 나서지 않았다.
그들이 나서면 상황이 더 악화될 터였다.
어찌해야 하는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
이브나일도 같은 생각이었다. 다섯 여신 가운데 하나로서 선신들과 천사들, 영웅들 모두의 힘을 증폭시키고자 끝도 없이 자신을 쥐어짜내던 그녀는 다시 한 번 마신의 시선을 느꼈다.
천하고 수백 년 전과 같은 시선이었다.
재미있는 장난감을 보는 아이와 같은 시선.
저마다의 삶을 가진 존재들을 그저 희롱과 능욕의 대상으로만 보는 시선.
이브나일은 다시 한 번 힘을 쥐어짜냈다. 이를 악물고 신성을 발해 천사들과 영웅들에게 새로운 힘을 더해주었다.
아이라의 성소가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앞으로 정말 조금만 더 나아가면 되었다.
하지만 그 조금이 어려웠다.
사방에서 밀려드는 마물들의 숫자가 점점 더 늘어났다.
폭력의 신을 비롯한 악신들이 참전의 때를 가늠하였다. 그리고 마침내 움직이기 시작했다. 저마다 목표로 한 선신 측의 대신들을 향해 발걸음을 놀렸다.
악신이 선신을 막는다.
그 전력을 봉한다.
결과적으로 천사들과 영웅들이 더욱 더 마물들에게 밀리기 시작한다.
폭력의 신과 치유의 신이 격돌했다.
살인의 신이 검의 신을 급습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