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87화 (187/211)

“쓸 수 있는 건 평소의 절반 이하. 솔직히 한 삼할 정도 밖에 안 되는 것 같아.”

미궁 세계 자체가 이계의 존재들을 곧잘 불러내는 세계인 터라 안심했는데, 도착해보니 아니었다.

미궁 세계는 신성을 가진 존재에게는 오히려 박한 세계였다.

신성이 강하면 강할수록 반발력 역시 강해졌다.

“자기는?”

여자의 물음에 남자 역시 미간을 좁히며 답했다.

“나도 파이엔이나 지구보다는 아래야. 칠 할에서 팔 할 정도?”

남자의 전력을 생각하면 팔 할도 충분히 강한 힘이라 할 수 있었지만 상대가 좋지 못 했다.

단순히 신성의 강함만을 논한다면, 마신은 파이엔의 파괴신으로 각성한 여자보다도 우위에 있었다.

하지만 싸움은 신성만으로 하는 것이 아니었다.

애당초 신성의 강대함만으로 모든 결과가 결정된다면, 밤이라 한들 남자가 여자를 이기는 것은 불가능할 터이니 말이다.

“천호에게 걸어야겠네.”

여자가 말했고, 남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남자와 여자는 천호에게 한 가지 거짓말을 했다.

지구는 마력의 밀도가 낮다.

때문에 마법을 사용하기 어렵다. 천호가 마법이나 무공을 사용하지 못 하는 것은 그것 때문이다.

아니었다.

지구에서도 충분히 기공사나 마법사가 나고 자랄 수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호가 마법과 무공을 사용하지 못 한 것은 사실 남자와 여자 때문이었다.

남자가 내공을 흩어버렸다.

여자가 마력의 흐름을 막아 마법을 사용하지 못 하게 하였다.

이유는 하나.

예언.

파이엔의 파괴신인 그녀가 천호고 낳고 얻은 예지.

예언답게 해석의 여지가 분분했지만 여자는 난해한 예언에서 다음과 같은 명제를 뽑아냈다.

하나, 천호를 파이엔에서 키우면 안 된다.

둘, 천호에게 계기가 오기 전까지는 마법이나 무공을 사용하지 못 하게 해야 한다.

셋, 그리한다면-

여자는 새삼 예언을 되풀이 말하는 대신 남자를 보았다. 눈빛만으로 서로의 뜻을 주고받았다.

결국 예언대로 되었다.

천화는 미궁 세계에서 마력과 내공을 손에 넣었다.

신성 또한 그 근원은 파이엔을 비롯한 이계에 있을지언정 발현 자체는 미궁 세계에서 하였다.

때문에 미궁 세계는 천호의 신성을 억누르지 않았다.

천호는 미궁 세계에서 온전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천호와 함께 싸워야 해.”

여자는 오지랖이 넓지 않았다.

남의 일 따위 여간해서는 끼어들지 않는 주의였다.

하지만 마신에게는 파이엔 침공이라는, 받아내야 할 빚이 있었다.

그리고 다시 하나.

여자는 파괴신인 동시에 남자의 아내이자 아들의 어머니였다.

오지랖이 우주급으로 넓은 남편과 아들을 나 몰라라 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남자는 훨씬 단순한 이유였다.

도움을 청하는 이들이 눈앞에 있다.

그러니 그들을 돕는다.

굳이 이유를 만들어야 한다면, 사람이 사람을 돕는 것에 이유를 붙여야만 한다면.

용사니까.

그것으로 족했다. 그것으로 충분했다.

“일단 천호와 합류하자.”

지금 자리한 곳은 모형정원으로 변하고 있는 미궁 세계 안이었다. 가득한 마기와 변모하는 세계 속에서 천호를 찾아내는 것은 너무나 어려운 일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대강의 위치 정도는 느낄 수 있었다. 세계가 요동치는 작금의 상황 속에서 공간 도약은 너무나 위험해 할 수 없었지만, 빠르게 기동하면 며칠 내로 만나는 것이 가능할 것 같았다.

“짐승이 두 마리면 어떻게든 되겠지.”

신을 사냥하는 밤의 짐승.

여자가 농담처럼 말하자 남자도 어깨를 으쓱였다.

“그러게, 태양의 용이 두 마리면 뭐가 되어도 되겠지.”

“빨리 만나고 싶다.”

“천호?”

“천호도 천호인데, 며느리 후보들.”

성검과 천사.

“둘 중에 누가 더 좋은데?”

“둘 다 좋아. 그냥 둘 다 데리고 살아도 좋고. 천호는 용사에 야차신왕에 태양의 신인인데 둘 정도야 뭐.”

“저기, 나도 용사이자 야차신왕인…….”

“뭐라고?”

“자기 오늘따라 너무 예쁘다고.”

남자는 어색하게 웃었고, 여자는 입술로만 웃었다.

남자가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

“마신이 힘을 회복하면, 미궁 세계의 모형정원화가 더 진행되면 우리 위치나 정체도 발각될 거야.”

필사적인, 하지만 정말로 중요한 화제전환에 여자는 눈을 가늘게 떴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그 전에 합류해야겠네.”

“천호 위치는 그대로야?”

“잠깐만.”

여자는 눈을 감고 의식을 집중했다. 천호가 너무 먼 곳에 자리한데다가 마기까지 진해 한참을 집중하지 않으면 천호의 기운을 찾아낼 수 없었다.

그렇게 5분.

식은땀까지 흘린 여자는 숨을 헐떡이며 눈을 떴고, 그대로 미간을 찌푸렸다.

“이동하고 있어.”

“어디로?”

“모형 정원 안쪽으로.”

아직 마신의 힘이 닿지 않은 외부로 나가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파고들고 있다.

“서두르자.”

남자가 말했고, 여자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급히 이동하기 위해 아공간 주머니 안에 들어가 있는 천사들과 영웅들과 푸른 용들을 불러냈다.

그리고 그 순간, 남자는 돌아섰다. 숨어서 자신을 관찰하던 이와 시선을 맞추었다.

여자가 천호의 기운을 감지하기 한 시간 전.

이브나일이 천호를 보았다.

천호 또한 그리하였고, 이내 고개를 돌려 루시엘을 보았다.

다섯 여신을 제외한 모두에게 잊혔지만 분명히 존재하는 곳.

다섯 번째 여신 아이라의 성소.

루시엘은 여전히 조금이지만 불안해하고 있었다. 미트라가 마른침을 삼키는 소리가 들려왔다.

[루그에게 들은 적이 있다.]

레온과 미트라의 동료들 가운데 하나였던 성기사 루그.

대외적으로는 전쟁의 신 이브나일의 성기사인 그였지만, 사실 그는 다섯 번째 여신을 모시는 비밀교단의 성기사였다.

하지만 이브나일이 이미 이야기했듯이 다섯 번째 여신의 존재는 미궁 세계에서 잊힌 상태였다.

이브나일을 비롯한 다섯 여신들이 무진 애를 써 다섯 번째 여신의 비밀교단을 유지하고는 있었지만, 그들 중에서도 손에 꼽을 정도의 소수인원만이 다섯 번째 여신의 성소에 대해 알고 있었다.

루그가 이야기한 것은 다섯 번째 여신의 성소가 존재한다는 사실뿐이었다.

“이브 이모… 아니, 이브나일님. 다섯 번째 여신의… 아이라님의 성소에 가면 루시엘에게 다섯 번째 여신의 신위를 물려받게 할 수 있는 건가요?”

치유의 신의 물음에 이브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가능할 거야. 루시엘은 아이라의 아이니까.”

그리고 사실 한 가지 더 이유가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혼란스러워하는 루시엘을 더 동요시키는 결과가 될 것 같아 입을 다물고는 있었지만, 이브나일이 보았을 때 루시엘은 애당초 아이라가 자신의 신위를 잇게 하고자 만든 존재였다.

“잠시, 끼어들어도 되겠습니까?”

손을 들고 나선 것은 군대의 신이었다.

다섯 번째 여신과 미궁 세계 최고위 신인 치유의 신이 대화를 나누는 와중이니 대신의 영역에 한발을 걸쳤다고는 하나 아직 대신이 아닌 그가 끼어들기에는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것은 꽉 막힌 자들이 아니었다.

이브나일과 치유의 신 모두가 고개를 끄덕였다.

“무슨 일이지?”

치유의 신의 물음에 군대의 신이 조금은 어색한 미소를 짓더니 이내 진지한 얼굴이 되어 이브나일에게 말했다.

“무례한 말씀일수도 있지만, 루시엘이 다섯 번째 여신의 신위를 잇는 것 자체는 옳은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이라도 승산을 높일 수 있을 테니까요. 하지만…….”

“다섯 여신 가운데 넷이 함께하는데도 이길 수 없었던 상대를 둘이서 이길 수 있겠느냐는 이야기구나.”

“……그렇습니다.”

초를 치는 것이 아니었다. 누군가는 반드시 짚고 넘어가야 할 문제였다.

새로운 다섯 여신의 탄생.

좋았다. 반가운 일이었다. 이브나일의 말마따나 희망의 불씨였다.

하지만 그 희망이 승리를 약속하는 것은 아니었다.

군대의 신의 말에 달아올랐던 선신들의 분위기가 가라앉았다. 하지만 군대의 신처럼 입을 열어 말하지 않았을 뿐, 다들 무의식중에는 느끼고 있던 사실이었다.

천호는 루시엘의 손을 조금 더 단단히 잡았다. 불안해하는 그녀를 보듬으며 이브나일의 답을 기다렸다.

‘기적은 그렇게 자주 일어나는 게 아니다.’

아버지도 그러셨다.

혹자는 아예 기적은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기적이란 말을 하기도 하였다.

기적에 기대는 싸움은 지양한다.

충분한 승산 없이 싸우는 것은 결국 자살행위에 불과하다.

“승산이라면.”

이브나일은 어깨를 늘어트렸다. 그리고 조금은 편안한 표정이 되어 말을 이었다.

“존재해. 루시엘이 아이라의 신위를 물려받는다면… 루시엘은 지금까지의 다섯 여신을 초월한 존재가 될 테니까.”

마지막에는 작지만 미소까지 곁들였다.

다섯 번째 여신을 초월한 존재.

치유의 신은 이해했다. 그렇기에 입밖에 내놓았다.

“미궁 세계의 존재. 애당초 미궁 세계에서 태어난 루시엘.”

너희는 우리와 다르니까.

어머니 아이테르가 하셨던 말씀.

이브나일이 고개를 끄덕였다. 이해하지 못 하는 모두에게 말해주었다.

“우리 다섯 여신은 결국 이계의 존재들이니까. 그리고…….”

말끝을 잠시 흐리던 이브나일은 입술을 움츠렸다. 주먹을 꽉 쥐며 목소리를 쥐어짜냈다.

“우리에게 신성을 준 것은…… 마신이었으니까.”

인간들에게 새로운 희망을 주기 위해.

다시 한 번 더 큰 절망을 낳게 하기 위해.

마신은 다섯 여신들을 선택했다.

물론 거저 신성을 준 것은 아니었다. 다섯 여신이 신성을 손에 넣은 것은 그들이 미궁 세계로부터 인정받았을 뿐만 아니라, 많은 인간들이 그녀들을 추앙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당시의 미궁 세계는 온전히 마신의 것이었다. 그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근본 자체가 뒤틀린 탓인지, 우리는 주신이되 온전한 주신이 될 수 없었어.”

하지만 지금의 선신들은 달랐다.

마신의 영향력이 사라진 미궁 세계에서 태어난 존재들이었다.

“루시엘이 아이라의 신성과 신위를 물려받는다면, 루시엘은 미궁 세계의 진정한 주신이 될 수 있어. 지금은 우리 때와는 사정이 많이 다르니까.”

마신은 아직 미궁 세계 전체를 장악한 것이 아니었다. 절반이 조금 넘는 영역을 차지하고 있을 따름이었다.

나머지 절반.

그 절반의 힘을 루시엘이 손에 넣는다면.

“물론 마신이 차지하고 있는 영역이 더 넓어. 그리고 마신은 천년의 세월동안 여러 이계를 먹어 치워 그 힘을 키웠어.”

루시엘이 다섯 번째 여신으로 각성한다 할지라도 마신이 더 강하다.

하지만 더 이상 절대적인 격차가 아니었다. 충분히 해볼 만한 싸움이 될 수 있었다.

“용사와 성검이 있어. 선신들도… 미궁 세계의 진정한 신들도 구경만하고 있지는 않겠지.”

용사와 성검과 천사는 하나가 될 수 있었다.

치유의 신을 비롯한 신들은 구경꾼 따위가 아니었다.

이길 수 있다.

승산은 분명 존재한다.

군대의 신의 얼굴에 조금이지만 환희가 어렸다. 선신들에게도 희망이 번졌다.

이브나일은 그런 선신들을 자식들처럼 어여삐 바라보다 말을 이었다.

“하지만… 매사가 그렇듯이 쉽지는 않을 거야. 일단 아이라의 성소부터가 좀 난처한 곳에 있으니까.”

“적진…인가요?”

치유의 신의 물음에 이브나일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게까지 깊은 곳은 아니야. 하지만 분명 마신의 영역이지.”

지금도 야금야금 그 세를 넓혀나가는 마신의 영역 가장자리에서 조금 안쪽으로 들어간 장소.

“지금 이 순간에도 모형정원화가 이루어지고 있을 거야. 그러니 최대한 서둘러야 해. 모형정원이 완성되기 전에 성소를 차지한 뒤 계승 의식을 시작해야 해.”

마신과 직접 싸운 이브나일은 알 수 있었다.

마신도 현재 정상은 아니었다. 악신들을 먹어 치우며 힘을 회복하고는 있지만 온전히 회복하기 위해서는 시간이 필요했다.

마신이 본격적으로 나서기 전에 루시엘을 각성시킨다.

천호는 이브나일의 설명과 함께 떠오른 빛의 지도를 바라보았다.

이브나일의 설명대로 마신의 세력 안쪽이었다. 저곳을 지키기 위해서는 사방에서 밀려드는 적들과 싸워야만 했다.

[다시 한 번 결사대인가.]

최심층으로 향하기 위해 뒤를 돌아보지 않았던 심층에서의 질주.

미트라의 말대로였다. 뒤를 돌아볼 여유도, 차근차근 흩어진 모두를 불러 모을 시간도 없었다.

“하지만 정비는 반드시 필요해.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괜히 있는 것이 아니니까.”

비록 무척이나 지치고 약해졌다지만 이브나일은 다섯 여신 가운데 하나이자 전쟁의 여신이었다.

그녀의 말에 모두가 집중했다.

“이미 말했지만, 이번 싸움은 정말로 뒤를 돌아볼 수 없어. 그러니 떠나기 전에 정리할 수 있는 건 모두 정리해야 해.”

단순히 미련을 버리라는 말이 아니었다.

이브나일은 치유의 신을 보았고, 치유의 신은 이해했다.

그녀는 돌아서서 이쪽의 이야기를 경청하고 있는 영웅들을 보았다.

심층까지 함께한 자들이었다.

23층에서 있었던 배신자들의 역습 속에서도 선신들 곁에 남아준 이들이었다.

그들에게 참으로 많은 은혜를 입었다.

그들에게 나름대로 보상한다 보상했지만, 언제나 부족하다고 느꼈다.

그리고 지금.

다시 한 번 결사의 여정을 나서려 하는 때.

‘마지막 기회일지도 몰라.’

지금은 미궁 세계 밖이었다.

약해졌다고는 하나 이브나일도 곁에 있었다.

그러니 영웅들을 돌려보낼 수 있다.

시간과 힘이 소진되기는 하겠지만, 다섯 여신이 모두 존재할 때처럼 깔끔하진 않겠지만, 어찌되었든 역소환을 통해 돌려보내는 것이 가능했다.

물론 미궁 세계의 입장에서만 보면 미친 짓이었다.

전력을 늘리는 것도 아니고 깎기 위해 시간과 힘을 소모하는 것이었으니까.

전력 하나하나가 아쉬운 가운데 오히려 그들을 떠내 보내는 짓이었으니까.

하지만 설사 그렇다 할지라도.

치유의 신은 마음을 굳혔다. 숨을 길게 내쉬었다. 마지막으로 천호를 보았고, 이내 영웅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스무 명 남짓.

선두에 선 칼리드가 치유의 신을 보았다. 그는 치유의 신이 무슨 말을 하려는지 알았다. 하지만 입을 열어 그녀를 제지하지는 못 했다. 칼리드 자신은 지옥 끝까지라도 치유의 신을 따라갈 생각이었지만 다른 이들까지 어떠한지는 알 수 없었으니까.

이미 23층에서 영웅들의 배신을 경험한 후였다. 영웅들 개인의 의사에 맡겨야만 했다.

치유의 신은 입술을 움츠렸고, 이내 활짝 웃었다. 영웅들과 시선을 맞추며 입을 열었다.

“그냥 대놓고 말할게. 본래의 세계로 돌아갈 수 있어. 조금 힘이 들긴 하겠지만, 돌려보내는 게 불가능한 건 아니야.”

치유의 신 자신이 저들을 강제할 수는 없었다.

이미 그들에게 너무 많은 은혜를 입었다.

치유의 신 자신이 할 수 있는 것은 구걸과 애원이었다. 함께 싸워 달라고 비는 것이 그녀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아마 지금까지 중에 제일 힘든 싸움이 될 거야. 아무도 안 죽고 다 같이 살아 돌아오면 최고지만, 어려울 거야. 분명 죽거나 다치는 이들도 많이 생길 거야. 무조건 이긴다고 장담할 수도 없어.”

그야말로 사지였다. 미궁 세계를 공략하던 시절과 같으면서도 달랐다. 당시에는 마신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치유의 신을 아득히 압도하는 적이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그러니까… 그러니까 정말 심사숙고해서 결정해줘. 당장 결정하라고도 하지 않을게. 어차피 당장은 출발하지 못 하니까. 한 시간 뒤에 다시 물을테니… 그때 대답을 들려줘.”

사실은 이렇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애원하고 간청하고 싶었다.

지금 당장 정하라고 말하고 싶었다.

하지만 하면 안 될 행동이었다. 여기까지 와서, 간절한 처지에 객기 부린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지켜야 할 선이라는 것이 있는 법이었다.

그리고 칼리드가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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