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82화 (182/211)

* * *

태양의 절반이 검게 물드는 흉사는 대미궁 전체에 걸쳐 일어났다.

하늘이 무너지고 망자들의 귀곡성이 울려 퍼지는 것 또한 그리하였다.

용의 무녀 레나는 어린 용을 보았다.

아직 너무나 작아 엘리의 품에 쏙 들어가는 어린 포레스트 드래곤이 말했다.

“포레스트 엘프들을 모아라. 충격에 대비해야 한다.”

충격.

그리 말했지만 사실 포레스트 드래곤도 정확히 어떤 일이 일어날지 알지 못 했다.

일단 한 자리에 모인다.

다 같이 힘을 모아 난국을 헤쳐나간다.

교과서적인 이야기였다. 하지만 포레스트 드래곤은 다시 소리쳤다. 레나는 용의 거처를 급히 뛰어나가 뿔피리를 불었다. 트리언트들과 포레스트 엘프들을 포레스트 드래곤의 성지에 집결시켰다.

하지만 너무 늦었다.

시간이 부족했다.

포레스트 드래곤을 안고 있던 엘리는 발아래를 보았다. 점점 더 강해지는 지진 때문이 아니었다.

2층 아래.

중층을 넘어, 어쩌면 심층에 도달하셨을지도 모를 용사님.

“온다.”

포레스트 드래곤이 말했다.

엘리는 고개를 번쩍 들어 숲의 가지 너머 하늘을 보았다.

레나 역시 뿔피리 불기를 멈추었다. 저도 모르게 말하였다.

“용사님.”

포레스트 드래곤의 말대로였다.

마기의 소용돌이가 하늘과 땅을 휩쓸었다. 레나와 엘리와 포레스트 드래곤을 포함한 모두를, 숲 전체를 집어삼켰다.

* * *

대미궁이 해체되었다.

와르르 무너져 미궁 세계를 뒤덮었다.

가장 먼저 저층이 녹아내렸다.

융기한 중층이 그 뒤를 따랐고, 심층 역시 뒤섞이려 하였다.

23층.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해도 그리 불러야 할 곳에서 정화의 신은 깨달았다.

치유의 신이 말해주지 않았지만, 그는 정화의 신으로서 이해했다.

정화였다.

대미궁의 마기가 미궁 세계를 뒤덮는 것은.

침식하여 변질시키는 것은.

정화는 본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부정하고 더러운 것을 제거하고, 오염된 부분을 씻어내어.

대미궁의 세계 침식은 정화였다. 미궁 세계를 본래의 모습으로 되돌리는 것이었다.

“아아, 아아아.”

정화의 신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토했다.

그리고 이해했다.

정화의 신의 존재감이 옅은 이유는 단순했다. 모든 것을 본래 있어야 할 모습으로 되돌리는 정화의 힘이 스스로의 존재감조차 정화해버렸기 때문이다.

어린 시절부터 잘 알고 있던 사실이었다.

하지만 대미궁에 들어온 이후 그 이상이 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대미궁의 마기는 정화의 힘 그 자체였으니까.

세계를 정화하는 거대한 힘에 정화의 신 자신이 동화되었으니까.

역병신의 말도 이해가 되었다.

그가 어째서 자신을 보며 그런 말을 했는지 알 것 같았다.

‘너의 존재가 우리를 긍정한다.’

정화의 신이 대미궁의 마기에 동화되었다는 사실은 곧 대미궁의 세계 침식이 세계를 정화하는 행위라는 것과 같았다.

그러니 긍정하는 것이었다.

악신들의 행동이 틀리지 않았음을.

마신의 바람이 잘못되지 않았음을.

미궁 세계는 말하고 있었다.

너희야말로 잘못된 존재들이라고.

“정신차려요!”

크리스가 소리쳤다. 정화의 신을 와락 끌어안으며 다시 소리쳤다. 어떻게든 정신을 유지하고자 했다. 거친 숨을 토하며 주변을 돌아보았다.

선신들이 혼란에 빠져 있었다. 다들 제정신을 차리지 못 했다.

언제 어느 때고 항상 발랄한 미소를 잃지 않았던 음악의 신과 회화의 신이 서로를 끌어안은 채 울음을 터트렸다.

어린아이같이 엉엉 울며 바닥에 주저앉았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계의 영웅인 크리스는 알 수 없었지만, 선신들은 알았기 때문이다. 본능적으로 자각했기 때문이다.

다섯 여신.

미궁 세계를 가꾸어온 선신들의 어머니들.

대지와 바다, 하늘의 여신 테레시아의 기운이 사라졌다.

하늘이 무너지기 시작했다.

죽음과 어둠, 새벽의 여신 이오스의 기운이 사라졌다.

망자들의 귀곡성이 먼 곳에서부터 울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태양이 변하였다. 그 절반이 검게 물들었다.

“어머니.”

치유의 신이 말했다.

비틀거렸고, 마침내 무너지고 말았다.

제자리에 주저앉은 채, 망연자실한 얼굴로 눈물을 쏟아내며 인정했다.

사라졌다.

생명과 열정의, 태양의 여신 아이테르의 기운이 더 이상 느껴지지 않았다.

[마기가 밀려온다. 정신 차려라. 일단 이 자리를 피해야 한다!]

미트라가 빠르게 말했다. 늘 그랬듯이 옳은 주장이었다. 하늘과 땅이 뒤섞이고, 마기의 소용돌이가 밀려오는 지금, 이 자리에 버티고 서 있는 것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대미궁 전체가 요동치는 지금 대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용사님!]

루시엘이 소리쳤다.

그저 아무 생각 없이 지른 외침이 아니었다.

미트라와 마찬가지로 천호와 하나된 상태인 루시엘이었다. 천호는 루시엘이 감지한 것이 무엇인지 바로 이해했다.

쾅!

굉음과 함께 공간이 비틀렸다.

신검 미트라와 닮은 여인이 허공에서 나타나 추락했다.

선신들은 바로 반응하지 못 했다.

하지만 천호는 아니었다. 즉시 날아올라 추락하는 여인을 허공에서 낚아챘다.

전쟁의 여신 이브나일.

다섯 여신 가운데 하나.

실신한 듯 미동조차 않는 그녀에게서 아이테르의 힘이 느껴졌다. 태양의 여신이 남긴 마지막 의지가 잔영처럼 남아 있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루시엘이 다섯 여신의 힘을 이끌어냈다. 미트라가 다시 소리쳤다.

[온다!]

천호도 이해했다. 무어라 소리치는 대신 이브나일을 안고 치유의 신에게 향했다.

망연자실한 얼굴로 이쪽을 바라보는 그녀의 앞에 안착한 직후 미트라를 높이 들어올렸다. 다섯 번째 여신의 화신으로서 그녀의 힘을 사용했다.

황금빛 섬광이 천호를 중심으로 일었다. 이내 치유의 신을 시작으로 선신들과 천사들을 뒤덮었다.

그리고 직후.

천호로부터 시작된 빛이 선신들의 군대 모두를 채 뒤덮기도 전에.

무너진 하늘과 땅이 하나가 되었다.

마기의 소용돌이가 모든 것을 집어삼켰다.

* * *

더 이상 저층도 중층도 심층도 존재하지 않았다.

마기의 소용돌이가 대미궁의 모든 것을 휩쓴 뒤 흩어놓았다.

완전히 해체된 대미궁은 미궁 세계와 하나가 되었다.

하지만 아직 온전한 하나는 아니었다.

미궁 세계의 절반 정도는 정화가 되었지만, 나머지 절반은 아직도 오염된 상태였다. 다섯 여신에 의해 왜곡된 그대로였다.

마신은 오롯이 서 있었다.

어둠을 사람의 형태로 빗은 것처럼, 불타는 칠흑과 같은 그가 녹색으로 빛나는 눈을 들어 먼 곳을 바라보았다.

다섯 여신들과의 싸움이 끝나고 이제 겨우 한 시간 남짓.

온통 회색인 하늘과 땅 사이에 선 그는 앞으로 해야 할 일들을 생각했다.

미궁 세계를 본래 모습으로 되돌린다.

다섯 여신들이 만들고 가꾸어온 모든 것들을 지워버린다.

도망치 이브나일은 용서할 수 없다.

이계에서 온 다섯 여신에게 빌붙어 자신을 배신한 인간들 역시 용납할 수 없다.

하지만 선신들은 다르다.

그들은 이계에서 온 다섯 여신들과 달랐다. 비록 오염되었다고는 하나 미궁 세계에서 태어난 이들이었다.

그러니 지우는 대신 정화한다. 미궁 세계에 어울리는 신으로 다시 태어나게 한다.

마신은 미궁 세계의 주인이었다. 절반뿐이지만 본래의 모습을 되찾은 미궁 세계가 그에게 속삭여주었다.

마신이 다섯 여신과의 싸움에 들어간 이후 대미궁에서 일어난 모든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알려주었다.

그리고 심층의 마왕이 그것을 거들었다.

마신이 다섯 여신들과의 싸움에 임하기 전에 대미궁에 남긴 분신인 심층의 마왕은 이제 용도를 다하였다. 그는 순리에 따르듯 다시 마신과 하나가 되었다. 그간 쌓아온 모든 기억들을 넘기고 소멸하였다.

치유의 신.

용사.

성검.

이계에서 온 영웅들.

다섯 번째 여신의 유산.

세계를 뒤덮은 빛의 그물.

마신은 웃음을 흘렸다.

기꺼움이 아니었다. 인간들의 말로 하자면 어처구니가 없었기 때문이다.

다섯 번째 여신.

다섯 여신들의 수장. 마신을 미궁 세계에서 몰아낸 장본인.

이계에서 온 존재.

간악한 인간들에게 빌붙어 신성을 도둑질한 암캐.

아직도구나.

아직도 네 년은 미궁 세계의 해악이 되고 있구나.

전부 정리해야 했다.

깨끗이 지워 온전한 상태로 되돌려야 했다.

마신은 손을 놀렸다.

황폐한 대지 위에 옥좌를 만들었다. 그 위에 걸터앉은 뒤 발밑을 내려다보았다.

신성을 박탈당해 모든 힘을 잃은 다섯 여신들 가운데 셋이 쇠사슬로 된 목줄을 찬 채 바닥에 널브러져 있었다.

마신은 그녀들을 쉬이 용서할 마음이 없었다. 죽음은 그들이 지은 죄에 비해 너무나 자비로운 형벌이었다.

악신들이 모여들었다.

마신은 그들을 보았다. 아이테르의 쇠사슬을 가볍게 잡아당기며 명령했다.

멸절해라.

모조리 지워버려라.

마신의 대미궁 해체로 말미암아 대미궁 안에 자리하고 있던 모든 존재들이 미궁 세계 곳곳에 흩어졌다.

온전히 마신의 것이 된 세계의 절반.

아직 다섯 여신에게 오염된 상태인 나머지 절반.

악신들이 마신의 명에 따랐다. 저마다 마물들을 이끌고 마기와 함께 움직였다. 남은 절반 또한 정화하기 위해 진군했다.

마신은 눈을 감았다.

다섯 여신들과의 싸움과 대미궁 해체로 지친 몸을 쉬게 하며 기다렸다.

조금씩, 하지만 분명하게.

미궁 세계는 본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있었다.

제31장 - 강림

[미궁 세계가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 * *

대미궁과 미궁 세계가 뒤섞였다.

대미궁 안에 존재하던 30개 층 모두가 해방되었다.

심층과 중층과 저층이 아무렇게나 뒤섞였다.

대미궁 안에 있던 이들 역시 함께 흩어졌다.

섞인 것은 세계의 절반이었다. 나머지 절반이 남아 있었다.

하지만 모두 섞이는 것은 시간문제에 불과했다.

마신의 보랏빛 마기가 거침없이 뻗어나갔다.

뒤섞인 안쪽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마기와 함께 마물들이 진군했다. 눈에 보이는 모든 이들을 범하고 고문하고 죽였다.

저층에 살던 이들에게 있어 심층의 마물들은 재앙이었다.

이렇다 할 저항조차 하지 못 하고 수많은 이들이 죽어나갔다.

대미궁과 미궁 세계가 뒤섞이고 겨우 한 시간 남짓 하는 사이에 참으로 많은 이들이 목숨을 잃었다. 그들이 지르는 비명과 고통 섞인 울부짖음이 미궁 세계에 기록되었다. 마신의 얼굴에 만족스런 미소가 지어졌다.

혼란의 신이 혼란에서 힘을 취하듯, 마신은 미궁 세계로부터, 정확히는 미궁 세계를 거하는 모든 이들의 희노애락에서 힘을 얻었다. 그들이 토해내는 강한 감정이 마신의 양식이 되었다.

미궁 세계에서 분리된 대미궁에서 악신들만 줄줄이 태어난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마신이 그것을 바라였으니까.

마신이 부정적인 감정을 원하였으니까.

혼란의 특성상 선과 악이 혼재된 혼란의 신 정도를 제외하면 하나같이 모두 마신의 바람대로 태어난 부정적인 감정의 악신들이었다.

파멸의 신.

분쟁의 신.

저주의 신.

대미궁에 편입된 다른 세계의 존재들이나 신들 역시 이러한 마신의 성향을 따랐다. 대미궁에 집어삼켜진 여러 용들 가운데 하필 악룡 슈라드포마가 살아남아 악신으로 승급한 것은 그가 마신과 대미궁의 바람에 부합하는 자였기 때문이다.

마신은 너무 서두르지 않았다.

정리할 생각을 버린 것은 아니었지만, 시간을 두고 진행할 생각이었다.

아이테르를 죽이지 않은 것과 같은 이치였다.

죽음은 너무 짧았다.

죽음이 만들어내는 감정은 강렬했지만 찰나에 불과했다.

황폐한 땅 위에서 마신은 정면을 보았다.

이계에서 온 다섯 여신- 아니, 처음에는 신조차 아니었던 다섯 계집 중 셋이 비명을 지르며 울부짖고 있었다. 한꺼풀 벗겨내자 거짓된 고결함과 오만함을 내려놓고 그저 애원할 따름이었다.

쇠사슬에 결박된 그녀들은 정신 세계 속에서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고통을 당하고 있었다.

마신은 그녀들이 만들어내는 감정을 맛보았다.

달콤한 그것을 삼키며 다시 한 번 기억을 검토하였다.

그가 다섯 여신들과 아공간에서 힘을 겨루고 있는 와중에 일어난 모든 일들.

치유의 신이 대미궁을 공략하기 위해 모은 힘들.

하나하나보면 보잘 것 없었다.

용사 하나를 제외하면 전부 치유의 신보다 못 한 것들뿐이었다.

하지만 마신은 방심하지 않았다.

이미 이계에서 온 것들에 의해 한 번 패배한 자신이지 않은가.

마신이 서두르지 않는 것은 방심하지 않기 위함이기도 하였다.

현존하는 모든 변수를 점검하였다.

치유의 신을 비롯한 선신들.

용사와 성검.

다섯 번째 여신의 유산.

이계의 영웅들.

도망친 이브나일.

그리하여 결론을 내렸다.

저들은 자신을 이길 수 없다.

절대적인 우위는 변하지 않는다.

그러니 남은 것은 찾아내는 것뿐.

마신은 다시 정면을 보았다. 아이테르의 비명을 들으며 기다렸다. 만전을 기하기 위해 과거의 이야기를, 참담한 패배의 기록을 다시 한 번 읽어내렸다.

* * *

황금빛 섬광이 사라졌다.

천호는 참았던 숨을 토하며 정면을 보았다.

황폐한 땅이었다.

1층에서 보았던 것처럼 곳곳에 유적으로 보이는 옛 건물의 흔적들이 남아 있었다.

선신들과 천사들이 보였다.

하지만 일부였다.

전부가 아니었다.

천호가 일으킨 다섯 번째 여신의 빛이 모두를 뒤덮기도 전에 대미궁의 격변이 시작된 탓이었다.

천호는 자신의 품에 안긴 여인을 보았다.

전쟁의 여신 이브나일.

신검 미트라와 닮은 모습이었다. 백발에 가까운 은발을 하나로 묶어 길게 늘어트린 그녀는 치유의 신과도 닮아 있었다.

[이브나일님이세요, 아직 살아계세요.]

루시엘이 말했다. 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주변을 둘러보았다.

혼절한 치유의 신이 쓰러져 있었다. 그녀뿐만 아니라 다섯 번째 여신의 빛으로 보호한 이들 대부분이 정신을 차리지 못 하고 있었다.

[대미궁 밖이다. 더 이상··· 대미궁이 아니다.]

미트라가 나직이 말했다. 주변에 대미궁의 마기가 가득했지만 더 이상 대미궁은 아니었다. 천호는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미트라의 말을 이해했다.

하나뿐인 하늘과 땅.

대미궁의 것이 아닌, 미궁 세계의 진정한 모습.

하늘의 태양은 죽어가고 있었다.

절반이 검게 물들었고, 나머지 절반 역시 점점 변해가고 있었다.

본능적인 직감이었지만, 저 태양이 모두 검게 물드는 그때야말로 모든 것이 끝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천호는 숨을 골랐다. 오랜만에 기감을 퍼트려 주변 모든 것들을 인식했다.

골렘들은 거의 데려오지 못 했다.

일만에 육박하던 천사들 가운데서 데려온 것은 일천 남짓.

영웅들 역시 절반인 스무 명 남짓 뿐이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선신들을 거의 다 데려왔다는 사실이었다.

크리스가 정화의 신을 끌어안은 채 쓰러져 있었다. 그런 두 사람 곁에 음악의 신과 회화의 신이 어깨를 맞댄 채 기절해 있었고, 저만치에 검의 신과 승리의 신이 보였다.

군대의 신은 보급의 신을 위에서 덮친 형태로 기절해 있었다. 아마 반사적으로 그녀를 보호하려 한 모양이었다.

“용사.”

기병의 신이었다.

선신들 가운데 가장 먼저 깨어난 그녀가 비틀거리며 다가왔다. 천호의 품에 안긴 여인을 보고 깜짝 놀라 눈을 부릅떴다.

“이브나일님?”

미궁 세계를 가꾸고 수호하는 다섯 여신 가운데 하나.

하지만 지금은 그렇게 보이지 않았다. 지치고 약해진 인간 여인으로 보일 따름이었다.

천호는 마지막으로 천사 3인방과 마키나, 엘리엘과 사스치엘까지 확인한 뒤 기병의 신에게 다가갔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이브나일이 눈을 떴다. 동시에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쳤고, 순간 그녀를 떨어트릴 뻔 한 천호는 급히 그녀를 꽉 끌어안았다. 몸부림치지 못 하게 하며 미트라와 루시엘을 불렀다.

“괜찮습니다, 이곳은 안전합니다.”

“괜찮아요.”

현신한 황금빛 눈동자의 여인- 미트라와 루시엘이 동시에 말했다.

패닉 상태에 빠진 것처럼 울부짖던 이브나일이 두 사람의 목소리에 반응했다. 한참이나 숨을 헐떡이다 말했다.

“미트라?”

다섯 번째 여신의 마지막 유산.

이브나일 자신이 직접 벼린 미궁 세계 최강의 성검.

미트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브나일에게 웃어주었고, 정말로 안심했는지 이브나일의 얼굴이 한결 나아졌다.

하지만 잠깐뿐이었다.

이브나일은 루시엘을 보았고, 다시 한 번 숨을 멈추었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이브···나일님?”

루시엘이 조심스럽게 불렀고, 이브나일은 겨우 다시 숨을 쉬었다.

보고 있는 천호도 혼란스러웠지만, 이브나일 역시 그러했다.

마신의 승리.

아이테르의 희생.

대미궁과 하나되어버린 미궁 세계.

과거의 지옥 같은 광경으로 돌아가기 시작한 모든 것들.

지치고 약해졌지만 이브나일은 다섯 여신 가운데 하나였다.

비록 이계에서 왔다고는 하나 지금은 미궁 세계의 주신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렇기에 한 순간에 모든 것을 이해했다.

그리고 눈앞의 여인 또한 알아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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