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다시 만나니 좋구나.]
상황은 썩 좋지 못 했지만, 그래도 일행이 다시 만나니 절로 웃음이 번졌다.
“그럼, 오랜만에 작업 좀 해볼까요?”
천호가 말했고, 천사들 모두가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 * *
심층으로 떠날 준비는 빠르게 진행되었다.
이미 한 차례 원정을 다녀온 터라 심층으로 향할 원정대의 준비 자체는 딱히 더 할 게 없었다.
시간을 잡아먹은 것은 15층 정의의 성채에 쌓아두었던 보급 물자 전부를 운반할 준비를 갖추는 것이었다.
루시엘도 인벤토리 안에 보급 물자를 꽉꽉 채워 넣었다. 3급 천사가 된 루시엘의 인벤토리는 이제 무척이나 커다란 창고 세 채 분에 필적했다.
인벤토리 안에는 각종 물자 외에도 천호의 캐리어 열세 개와 옷장을 비롯한 각종 가구들이 완비되어 있어, 언제 어느 곳에 떨어져도 잘 먹고 잘 살 자신이 생길 정도였다.
그렇게 하루.
이동식 침대에 누워 잠든 시간의 신을 비롯해 15층에 거하고 있던 비전투 신들까지 모두 한 자리에 모였다.
애당초 선신들이 신체를 만들어 지상에 강림한 것은 대미궁의 마기로부터 미궁 세계의 주민들을 지키기 위함이었다.
비록 전투 능력이 없는 신들이었지만, 그 존재만으로도 심층의 마기로부터 일행을 지키는데 도움이 될 수 있었다.
‘공기청정기 같은 건가.’
속으로만 생각한 천호는 긴장한 얼굴로 선 루시엘의 손을 잡아주었다. 크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치유의 신의 소식이 끊긴 이후로 내내 불안해하고 있던 그녀였다.
“괜찮을 거예요.”
천호의 말에 루시엘은 바로 답하지 못 했지만, 이내 빙긋 미소지었다.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네, 용사님.”
시간이 되었다.
천호는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았다. 15층의 전 병령이 심층으로 통하는 계단 앞에 도열해 있었다.
수만에 달하는 대병력이었던 터라 도열해 있는 모습만 보아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옷장은 최종단계란다.’
은색 카드에 담겨있던 어머니의 말.
4층에서 첫 번째 캐리어와 마주했다.
10층에서 두 번째 캐리어들이 천호 자신을 찾아왔다.
그리고 15층.
옷장을 필두로 한 집안의 가구들.
이제 올만큼 왔다고 해도 좋았다.
더 이상의 캐리어나 가구들은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끝난 것이 아니었다.
아직 남아 있는 것이 있었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신 최종 단계 너머에 자리하는, 그야말로 마지막 한 수가 남아 있었다.
하지만 천호는 너무 의존하지 않았다. 루시엘의 손을 잡은 채 미트라의 황금빛 보석을 어루만졌다.
용사와 천사와 성검.
저도 모르게 씩 웃은 천호는 긴 숨을 토하였다.
“진군하다.”
군대의 신이 말했다.
군대의 신 남매를 필두로 하여 15층의 전 병력이 심층으로 향했다.
하나하나 무저갱 같은 어둠 속에 몸을 밀어 넣었다.
저층과 중층 사이의 기둥이 그러했듯이, 중층과 심층의 연결 또한 예사롭지 않았다.
저층에서처럼 일행이 여럿으로 갈라지진 않았지만, 코앞조차 분간하기 어려운 어둠이 끝도 없이 계속 되었다.
하지만 루시엘도 미트라도 두려워하지 않았다. 선신들의 신력이 15층으로 향하는 원정대 모두를 지켜주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몇 시간 혹은 며칠.
어쩌면 몇 달일지도 모를 시간.
천호는 중층과 심층 사이의 벽을 지났다. 마침내 심층에 당도했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호의 귓가에 들려오는 목소리가 있었다.
평소보다 훨씬 더 작고 가냘펐지만 결코 잊을 수 없는 목소리.
치유의 신의 목소리였다.
[심층에 왔구나.]
[여기는 23층··· 역병신의 기습으로···]
마치 고장 난 스피커에서 나는 소리처럼 목소리가 군데군데 끊겼다.
천호는 치유의 신의 목소리에 의식을 집중했다. 주변의 모든 감각을 차단하고 오직 치유의 신의 목소리에만 귀를 기울였다.
약해져 있었다.
중층에서의 부름에 응답하지 못 한 것은 심층의 벽을 넘을 정도의 힘을 그녀가 현재 보유하지 못 했기 때문이다.
역병신의 기습이 있었다.
전투 자체야 거의 매일 이어지는 23층이었지만, 그날의 공격은 특별했다.
더욱이 신기 쪽에 정신을 팔고 있던 것이 화근이 되었다.
치유의 신은 이야기를 길게 하지 못 했다. 같은 심층 내에서도 목소리를 전하는 것이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릴게.]
[소원권도··· 기대하고 있어.]
이계의 영웅인 무토는 가부좌를 튼 채 공중부양 중이었고, 카를로스는 두 주먹을 움켜쥔 채 포효했다.
여러 사정으로 인해 15층에 발이 묶여 있던 그들이 마침내 16층에 도달함으로써 저마다의 벽을 넘고 있었다.
변화는 다른 곳에서도 일어났다.
루시엘에게서 넘쳐난 신력에 노출된 덕분인지 다들 평균 이상의 격의 상승을 경험하고 있었다.
라구엘과 아우라엘이 4급 천사가 되었다. 라구엘의 검은 날개와 아우라엘의 하얀 날개가 각각 세 쌍씩이 되어 활짝 펴졌다.
에이젤 역시 함께 성장해 5급 천사가 되었다. 이런저런 이유가 붙긴 했지만, 성장 속도만 따지면 루시엘 바로 다음이라 해도 과언이 아닌 그녀였다.
천호 일행이 너무 걱정할 것을 염려했는지, 마지막에는 장난스럽게 농담을 덧붙인 치유의 신은 작게 웃었다.
그리고 더 이상 목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천호는 감고 있던 눈을 떴다.
루시엘과 바로 눈이 마주쳤다. 바로 알 수 있었다. 루시엘 역시 천호 자신과 마찬가지로 치유의 신의 목소리를 들었다.
미트라 역시 그러했다.
“살아계세요.”
루시엘이 눈시울을 붉히며 말했다. 요 며칠 치유의 신에 대한 걱정으로 마음을 졸인 그녀이니 당연한 반응이었다.
금방이라도 울음을 터트릴 것 같은 루시엘을 품에 안아준 천호는 놀란 눈으로 이쪽을 돌아보는 이들에게 적당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일단은 루시엘을 달래는 게 우선이었다.
[그래도 상태가 좋은 것 같지는 않군. 역병신의 기습으로 치유의 신이 크게 상처를 입은 것 같다. 지금도 아마 쫓기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서둘러야겠다.]
정황상 23층과 22층을 잇는 기둥을 빼앗겼을 가능성이 높았다.
치유의 신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23층에 갇혀 오도가도 못 하는 처지가 된 셈이었다.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시엘의 머리를 몇 번 쓰다듬어준 뒤 이쪽으로 달려온 에이젤과 라구엘, 아우라엘에게 루시엘을 맡겼다.
군대의 신에게 치유의 신의 목소리를 전달하고자 선두로 나가려 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이었다.
[메인 퀘스트 ‘심층에 도달하라’를 완수했습니다.]
[심층에 도달했습니다. 중층 최고 레벨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심층에 도달했습니다. 중층 최고 레벨 최단 기간 달성 보상이 주어집니다.
빛의 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동시에 새하얀 빛이 천호의 전신을 휘감았다.
이미 한 번 경험한 일이었다.
중층에 처음 도달했을 때. 그리하여 저층에서의 최고 레벨 보상을 받았을 때.
[심층에 도달했습니다. 당신의 격이 상승합니다.]
[당신이 보유한 모든 스킬의 레벨이 1씩 상승합니다.]
[격의 상승으로 당신의 신성이 강해집니다.]
[신성의 강화로 당신의 피가 강해집니다.]
[용신왕의 피 Lv5가 되었습니다.]
[야차신왕의 피 Lv5가 되었습니다.]
[용사의 피 Lv5가 되었습니다.]
레벨 업을 알리는 빛의 창 수십 개가 동시에 떠오르니 주변 전체가 발광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실제로 천호에게서 빛이 나기 시작했다. 몸이 살짝 떠올랐고, 육신 안에서 두 개의 피가 각기 힘을 발했다.
천호의 우반신이 황금빛으로 빛났고, 좌반신이 붉은빛에 휩싸였다.
그리고 천호를 휘감은 채 마치 춤추듯 빛나는 새하얀 빛.
신력이 소용돌이 쳤다. 주변에 있던 이들이 모두 당황했고, 저만치서 이변을 눈치 챈 군대의 신과 기병의 신이 달려왔다.
“어떻게 된 것이냐?!”
“그, 그게······.”
군대의 신이 다급히 묻자 천호의 근처에 있던 천사가 눈을 껌벅이며 당황했다.
사실 천호뿐만 아니라 주변에 있던 천사들도 크든 작든 격의 상승을 경험하고 있는 중이었다.
중층에 거하던 이들이 심층에 왔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오라버니. 아무래도 격의 상승 같아요.”
기병의 신이 군대의 신을 말리듯 손을 잡으며 말했다.
대신의 경지에 한 발을 거친 군대의 신은 심층에 도달했다 하여 딱히 변하는 것이 없었지만, 기병의 신은 아니었다. 그녀 또한 주변의 천사들처럼 소소하게나마 격의 상승을 경험하고 있었다.
“격의 상승이라고? 저게?”
군대의 신이 저도 모르게 되물었다. 격의 상승에 대해서는 이미 알고 있는 그였지만, 그래도 저런 식의 격의 상승은 처음 보았다.
저건 숫제 진화에 가깝지 않은가.
“그··· 용사니까?”
용사니까 뭐가 달라도 다르겠지.
기병의 신의 다소 무책임한 대답에 군대의 신은 순간 미간을 좁혔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근거가 부족하긴 했지만, 그래도 어쩐지 마음 깊은 곳에서 납득이 되었기 때문이다.
용사니까.
애당초 특별한 녀석이니까.
이계라고는 하나 어찌되었든 초월자들의 피를 이은 자였으니까.
‘과연.’
새삼 다시 납득한 군대의 신은 천호에게서 눈을 뗀 뒤 허공으로 솟구쳐 올랐다. 그대로 주변을 내려다보니 과연 다들 격의 상승을 경험하고 있었다.
“아아, 아아아!”
오래전부터 심층행을 갈망해 오던 카마엘이 날개를 활짝 펼친 채 포효하고 있었다.
3급 천사들 가운데서도 최상위에 속해 있던 그녀는 지금 2급 천사가 되기 직전이었다. 문턱 위에 발을 올린 채 다음 단계로 넘어가고자 전력을 다하고 있었다.
무토와 카를로스도 마찬가지였다.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붉은 빛이 용사와 그리 멀지 않은 곳에서 피어올랐다.
“또··· 인가.”
저도 모르게 말한 기병의 신은 붉은 빛의 중심을 바라보았다.
천사들의 품에 안긴, 분홍색 머리칼의 천사가 보였다.
카마엘과 같았다. 그녀는 지금 2급 천사로 승급하고 있었다.
3급 천사가 된 것이 바로 며칠 전이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말도 안 되는 일이었지만, 군대의 신은 이번에도 납득했다.
‘이브나일의 신기.’
전쟁의 여신의 힘을 성검 미트라와 나눠가진 그녀였다.
이 정도 성장을 해주지 않으면 오히려 곤란했다.
루시엘의 날개가 세 쌍에서 네 쌍으로 늘어났다. 빛의 고리 역시 더욱 화려하게 변했다.
심지어 루시엘을 둘러싼 천사들도 영향을 받았다.
군대의 신은 다시 천호에게 시선을 돌렸다. 일행의 성장은 반길만한 일이었다.
조금이라도 더 강해진다면, 승리의 가능성 역시 높일 수 있었다.
“군대의 신!”
등 뒤에서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렸다.
실로 오랜만에 듣는 목소리였다.
“보급의 신.”
오랫동안 마주하지 못 한 군대의 신 자신의 단짝.
깐깐한 인상의 여신이 이쪽을 향해 성큼성큼 다가왔다. 수만에 달하는 천사들과 골렘들이 옆으로 쫙 갈라지며 길을 여니, 신화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붉은 색 머리는 틀어 올렸고, 사무직 느낌이 나는 군복을 입고 있었다.
기병의 신은 일단 양팔을 벌렸다.
“우선 해후를 감사하지.”
“야, 잠깐! 야!”
군대의 신은 보급의 신을 꽉 끌어안았다. 문자 그대로 으스러지듯 끌어안았기에 보급의 신이 비명을 질렀다.
“갑옷 입고 껴안지 말라고!”
아프다. 그냥 아프다. 갑옷이라 따뜻한 체온이고 나발이고 아무 것도 없다.
보급의 신의 타박에 군대의 신은 껄껄 웃었고, 보급의 신은 그런 군대의 신의 뺨을 한 대 올려붙였다.
하지만 그것조차 반갑다는 듯 껄껄 웃기만 하는 군대의 신이었다.
“어떻게 된 거야? 15층은? 왜 갑자기 전력을 이끌고 내려온 건데?”
16층에서 15층으로 물자나 사람을 보내긴 어려웠지만, 반대는 쉬운 편에 속했기에 주기적으로 보급 물자를 내려 보내던 군대의 신이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달랐다.
군대의 신 본인이 내려왔을 뿐만 아니라 수만에 달하는 병력까지 함께하고 있었다. 15층의 전력이 전부 심층행을 택한 것이 분명했다.
“언니, 오랜만에 뵈어요.”
“기병의 신? 뭐야, 창병의 신도 있어?”
자신에게 다가온 기병의 신과 눈인사를 나눈 보급의 신이 다시 한 번 깜짝 놀랐다.
15층뿐만 아니라 12층과 13층의 전력까지 함께하고 있다니.
중층에 뭔가 큰일이라도 터진 것일까?
“빨리 말해. 정의의 신은? 14층은 왜 안 내려온 건데? 설마 정의의 신만 전사했다거나-”
“아니, 그런 건 아니다. 지금부터 설명하지.”
군대의 신은 허리를 숙여 자기보다 머리 두 개는 작은 보급의 신과 이마를 맞댔다.
기억을 전송하자 보급의 신이 눈을 크게 떴다.
“이런 미친, 내가 어쩐지 수상하다 했어.”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신기를 손에 넣은 지금, 선신들의 전력을 모아 최심층까지 단번에 돌파해야 한다.
용사와 천사와 성검.
전쟁의 여신 이브나일의 신기.
보급의 여신은 아까부터 계속 빛을 발하고 있는 천호와 루시엘 쪽을 돌아본 뒤 다시 군대의 신을 보았다.
“그래서 다 끌고 내려온 거야?”
“16층의 전력도 다 끌고 내려갈 거다.”
“안 돼, 네가 아직 16층의 상황을 몰라서 그래. 내가 빠지면 슈라드포마가 바로 득달처럼 달려들 거야.”
16층의 악룡 슈라드포마.
악신이기도 한 그는 집요하고 흉악한 자였다. 더욱이 보급의 신에게 집착하는 면이 있어 매일 같이 16층 정의의 성채에 싸움을 걸고 있었다.
“일단 놈을 격퇴해야겠군.”
애당초 16층을 정리할 마음을 품고 있던 군대의 신이었다. 17층에 가기 전에 큰 싸움을 펼칠 요량이었다.
하지만 바로 그때였다.
“그러지 말고 그냥 무시하죠.”
“용사?”
목소리를 낸 것은 보급의 신이었다. 천호는 그녀에게 고개를 숙이는 것으로 짤막하게 예를 표한 뒤 다시 군대의 신을 보았다.
군대의 신이 미간을 좁혔다. 척 보기에도 이전과 달라진 천호의 상태를 점검하고 싶었지만, 그보다는 우선 해결해야 할 이야기가 있었다.
“16층의 적들을 무시하자는 건가?”
“네, 그냥 내버려두고 내려가죠.”
보급의 신이 군대의 신을 돌아보았다. 저거 믿어도 되냐는 눈빛에 군대의 신은 신음을 삼킨 뒤 다시 천호를 보았다.
“계획이라도 있나?”
“예, 그리고 일단 서두르기도 해야 하니까요.”
천호는 치유의 신에게서 들려온 목소리를 군대의 신과 보급의 신에게 전했다.
미트라의 말대로 위급한 상황에 처해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 최대한 빨리 23층에 도달해야만 했다.
그리고 보급의 신이 이야기한 것들.
악룡 슈라드포마에 대한 정보.
“단순한 계획입니다.”
천호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 * *
악룡 슈라드포마는 16층의 악신이었다.
저주의 신과 마찬가지로 대신의 경지에 한 발을 걸치고 있는 그는 휘하에 붉은 용 군단을 거느리고 있었다.
자식들로 이루어진 군단을 만들 정도로 수많은 여인들을 거느린 그였지만, 그는 결코 만족하지 않았다. 그가 16층에서의 싸움을 선택한 이유는 오직 하나, 보급의 신 때문이었다.
보급의 신을 손에 넣는다. 그녀로 하여금 자신의 자식을 몇이고 낳게 만든다. 그리하여 붉은 용 군단을 더욱 강하게 만든다.
보급의 신은 절벽 위의 꽃이었다. 벌써 몇 년이나 매일 같이 싸우고 있었지만, 여전히 그녀를 손에 넣지 못 하고 있었다.
그렇기에 더욱 갈망했다.
그렇기에 더욱 집착했다.
“보급의 신!”
꿈에도 그리던 정의의 성채 안쪽에서 인간의 모습을 취한 슈라드포마가 포효했다. 노성으로 정의의 성채 전체를 뒤흔들었다.
정의의 성채가 비어 있었다.
하루아침에 텅텅 비고 말았다. 보급의 신은 당연히 없었다.
어떻게 된 것일까. 어디로 간 것일까.
“아버지!”
부름에 슈라드포마가 힘을 발했다.
짜증 섞인 강렬한 드래곤 피어에 달려오던 자식 놈들이 거품을 물며 쓰러졌지만 슈라드포마는 신경 쓰지 않았다.
애당초 이 정도 드래곤 피어에 쓰러지는 놈들 따위, 자식으로 인정하고 싶지도 않은 그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