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52화 (152/211)

“부탁해요.”

천호가 말했고, 미트라가 응답했다.

천호는 용검의 검신 위에 미트라의 검신을 겹쳤다.

빛이 일었다.

호화롭고 현란한 황금빛이 세상 전체를 뒤덮었다.

[아아, 아아아!]

미트라가 탄성을 토했다. 스스로의 어깨를 끌어안았고, 이해했다. 용검에 어울리는 것은 성검이 아니었다.

마검 미트라가 눈을 떴다. 용검의 힘을 고스란히 흡수해 스스로의 격을 높였다.

마검 미트라의 모습이 변모했다. 머리 위로 네 개의 뿔이 돋아났다. 마검에 용의 힘이 더해졌다. 소녀가 아닌 성숙한 여인의 모습으로 화했다.

용의 마검.

단순히 거기에 그치지 않았다.

천호와 함께 성장한 용검을 흡수함에 따라 미트라는 천호와 보다 가까운 존재가 되었다. 이전보다 훨씬 더 천호를 이해할 수 있었다.

마검 미트라가 미소 지었다. 교성을 흘리며 일어섰고, 이내 포효하듯 힘을 발했다.

하늘이 어두워졌다.

분지뿐만 아니라 주변 일대의 하늘에 검은 장막이 드리웠다.

밤 부르기.

신을 사냥하는 밤의 짐승을 부르기 위한 준비 단계.

저주의 신이 간신히 입을 벌렸다. 무어라 욕지거리를 토해 냈다.

치유의 신이 웃었다. 밤이 내린 하늘을 보았고, 다시 천호를 보았다.

[응, 밤이야.]

마검 미트라가 킥킥거리며 말했다.

천호가 야차신왕의 힘을 일깨웠다.

하지만 이전과는 달랐다.

야차신왕 쿠베라에 보다 가까워졌다.

마검 미트라의 힘이 온전히 더해진 결과였다.

“그럼, 갈까?”

치유의 신이 천호의 곁에 서며 말했고,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저주의 신을 향해 돌진했다.

분지를 향해 돌진해 오던 마물들의 칠할 이상이 소멸했다.

치유의 신이 강림했고, 군대의 신과 기병의 신, 창병의 신과 방패병의 신이 정예병들과 함께 참전했다.

그리고 밤이 찾아왔다.

신을 사냥하는 밤의 짐승이 눈을 떴다.

분명 이쪽이 먼저 준비해 둔 함정이었다.

그런데 상황이 역전되었다. 마치 이쪽이 함정에 빠진 것만 같은 기분이었다.

소악신들이 저주의 신을 바라보았다.

저주의 신은 정면을 노려보았다. 전력을 다해 펼친 방벽 너머에서 군대의 신이 웃고 있었다. 조금 더 먼 곳에서 치유의 신과 용사가 돌진해 오고 있었다.

어찌할 것인가.

어찌 싸워야 할 것인가.

저주의 신은 돌연 웃음을 터트렸다.

입가에서 흘러나온 것 같은 작은 웃음에서 시작해 폐부 끝에서부터 끌어올린 광소까지 이어졌다.

저주의 신은 인정했다.

당했다.

제대로 한 대 얻어맞고 말았다.

하지만 아직이었다.

아직 싸움은 끝나지 않았다. 이제 겨우 시작된 것에 불과했다.

“아직이다. 아직이야. 이쪽 역시 준비해 둔 것들이 끝나지 않았다.”

저주의 신이 말했다. 이성으로 감정을 억누르며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장 중요한 사실을 다시 한 번 되새겼다.

지금 자리한 장소.

이 땅.

치유의 신의 힘에 일순 정리되긴 하였지만, 본래 마기로 가득 차 있던 분지!

“잊지 마라. 현혹당하지도 마라.”

소악신들에게 명했다. 하늘과 땅으로부터 힘을 이끌어 냈다.

이곳은 대미궁이었다.

밖이 아니었다.

마기로 가득 찬, 악신들의 터전이었다.

“집어삼켜라. 휩쓸어 버려라!”

분지 밖에서 마기가 노도처럼 밀려들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먼 곳에서부터 마물들이 모여들기 시작했다.

변하지 않았다.

바뀐 것은 하나도 없었다.

이곳은 대미궁.

마기로 가득 찬 땅.

저들은 결국 이방인에 불과했다.

시간은 자신들의 편이었다.

“눈치 깠네.”

치유의 신이 칫 소리를 내며 말했지만 눈은 웃고 있었다.

다른 무엇도 아닌, 다섯 여신 가운데 하나인 전쟁의 여신 이브나일의 신기가 걸린 격전이었다.

이 정도 역경은 당연했다.

치유의 신이 높이 날아오르며 양팔을 벌렸다. 붉고 붉은 치유의 검 아홉 자루가 허공에 형성되었고, 다시 한 번 분열하였다. 순식간에 수백 자루로 늘어난 치유의 검들이 저주의 신이 펼친 장벽을 향해 돌진했다.

쾅! 쾅! 쾅!

검의 폭격이 장막을 강타했다.

동시에 군대의 신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방패병의 신에게 후방을 맡으라 소리친 뒤 기병의 신과 창병의 신을 양옆으로 보내 측방 수비를 담당케 했다.

“온다.”

군대의 신이 시선을 멀리했다.

시간은 분명 악신들의 편이었지만, 일방적이지 않았다.

조금만 더 버티면 캐리어들이 날아오게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캐리어들에는 카마엘과 무토, 카를로스가 타고 있었다.

“저주의 신!”

치유의 신이 일갈했다.

저주의 신이 마주 포효하며 더욱 힘을 크게 일으켜 장막을 보강했다.

소악신들이 장막 너머에서 손을 높이 들었다.

소리 높여 주문을 외웠다.

장막 너머이기에 들리지 않았다. 하지만 치유의 신은 불길함을 느꼈다. 다시 한 번 장막에 검의 폭격을 가하며 소리쳤다.

“용사!”

천호가 반응했다. 마검 미트라에 살신의 힘을 집중시켰다. 장막을 향해 참격을 가했다.

마검 미트라로부터 시작된 검고 검은 기운이 일자로 뻗어 나가 장막을 강타했다. 균열을 만드는 데 그치지 않고 장막의 힘 자체를 약화시켰다.

저주의 신이 장막 너머에서 신음을 삼켰다. 치유의 신만으로도 벅찬 이 와중에 용사까지 감당하는 것은 무리였다.

하지만 저주의 신은 힘을 쥐어짜 내며 웃었다.

처음 소리친 그대로였기 때문이다.

아직이었다.

아직 이쪽 역시 준비가 남아 있었다!

“너희뿐이 아니다. 너희만의 전유물이 아니란 말이다!”

저주의 신은 더 이상 장막을 유지하지 않았다. 오히려 장막을 폭발시켰다. 마기가 비산했고, 붉고 붉은 기운이 치유의 신과 천호뿐만 아니라 분지 내의 모두를 덮쳤다.

치유의 신이 급히 손을 놀려 치유의 검들을 흩뿌렸다. 검들로 방벽을 만들어 자신뿐만 아니라 주변의 모두를 지켰고, 천호는 마검 미트라를 회전시키며 거대한 물의 방벽을 만들어 냈다.

저주의 신은 치유의 신과 천호의 방어에 개의치 않았다. 어차피 시간을 벌기 위해 한 행동에 불과했다.

오래전부터 준비해 온 것.

신기를 방어하기 위해 설치해 둔 것.

소악신들은 주문은 그것을 발동시키기 위해 필요한 것이었다.

저주의 신이 양 주먹을 움켜쥐었다. 가슴 앞에 모았고, 다시 한 번 흩뿌리며 주문을 완성시켰다.

“오라! 이계의 존재여!”

하늘과 분지 사이.

마기로 뒤덮인 그곳에 거대한 마법진이 그려졌다.

붉은빛으로 빛나던 그것은 이내 검푸르게 변했고, 마법진 전체가 검은 구멍으로 화했다.

치유의 신이 급히 고개를 쳐들었다.

천호 역시 하늘을 보았다.

저주의 신은 말했다.

너희만의 전유물이 아니라고.

그의 말대로였다.

이계의 힘을 빌릴 수 있는 것은 선신들만이 아니었다.

치유의 신은 순간적으로 이해했다.

군대의 신 또한 알아차렸다.

대미궁의 악신들은 대미궁 밖으로 함부로 나가지 못 했다. 대미궁 내에서도 강한 악신일수록 심층을 벗어나지 못 했다.

마기가 없는 대미궁 밖에서의 행동은 극히 제한되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그렇다면 어찌 된 것일까.

악신들은 무슨 수로 대미궁 밖에 존재하는 천사들의 지부를 파괴한 것일까.

악신들이 아니었다.

마물들 역시 아니었다.

대미궁을 공략하기 위해 이계의 영웅들을 소환한 선신들.

같았다. 다르지 않았다.

대미궁의 악신들 또한 대미궁 밖의 선신들을 공격하기 위해 외부의 존재들을 소환하였다.

치유의 신이 손을 떨었다.

치유의 신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몸의 주인인 루시엘이 느끼는 두려움이었다.

검고 검어 공허와도 같은 하늘의 구멍 너머.

넘어오는 존재가 있었다.

그 존재가 발산하는 기운이 루시엘을 겁먹게 만들었다.

처음이 아니었다.

과거에 분명 느껴 본 적이 있는 기운이었다.

지부를 파괴한 자.

지부장님을 살해하고, 지부의 천사들을 학살한 자.

그와 같았다.

그와 같은 기운을 풍기고 있었다.

치유의 신이 자신의 팔을 붙잡았다. 루시엘의 두려움을 진정시키며 하늘을 노려보았다.

구멍 너머로 빛나는 눈이 보였다.

구멍 너머에서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웃고 있었다.

하얗게 웃으며 모습을 드러냈다.

그것은 빛나고 있었다.

빛의 거인이라는 표현이 어울렸다.

십여 미터에 달하는 그것은 하나가 아닌 둘이었다. 구멍 밖으로 몸을 내민 그것들 사이로 다시 한 번 빛나는 자가 나타났다.

전신이 빛으로 감싸여 그 모습을 정확히 알아볼 수 없었다. 크기는 거인들과 달리 작아 2미터 남짓으로 보였다. 하지만 강대했다. 빛의 거인들보다 훨씬 더 강한 힘을 품고 있었다.

“이계의 신성.”

치유의 신이 반사적으로 말했다. 마른침을 삼켰다.

크게 보면 대미궁의 악신들과 다르지 않았다. 천호 또한 이계의 신성을 품고 있었다.

하지만 치유의 신은 격렬한 거부감을 느꼈다. 놈들이 발산하는 기운에 인상을 찡그렸다. 마치 독과 같은 기운이었다.

하늘의 구멍이 닫혔다.

저주의 신이 지상에서 숨을 헐떡이며 웃었다.

천계라 불리는 세계.

그 세계의 존재들.

신장神將과 신인神人.

비장의 수였다. 저들을 대미궁 밖이 아닌, 대미궁 내부에 불러내는 것은 악신들에게도 부담이 가는 행동이었다.

하지만 했다.

승리하기 위해.

치유의 신과 용사를 말살하기 위해!

“쳐라!”

저주의 신이 일갈했다. 분지의 경계에서 마물들과 정예병들 사이의 전투가 시작되었다. 소악신들이 군대의 신과 그 병력들을 상대로 전투를 시작했고, 저주의 신은 치유의 신을 향해 돌진했다.

“강신했다고는 하나 일부! 너의 오만을 벌하여 주마!”

대신의 경계에 한 발을 걸친 저주의 신이었다. 양손에 저주의 검을 들고 치유의 신을 공격하니, 그 기세가 하늘과 땅을 뒤집어 놓을 것만 같았다.

치유의 신이 욕지거리를 토하며 저주의 신에 맞섰다. 두 신의 검이 충돌할 때마다 분지를 넘어 15층 전체가 진감했다.

빛의 거인- 신인들이 지상에 강림했다. 정예병들과 마물들을 가리지 않고 공격했다. 평범하게 육탄전을 펼치는 놈들이었지만, 두르고 있는 천계의 기운이 특별했다. 독과 같은 그것이 정예병들과 마물들의 목숨을 함께 앗아 갔다.

“막아!”

창병의 신과 기병의 신이 각각 신인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천호는 미트라를 움켜쥐고 비행의 신의 날개를 펼쳤다. 하늘에서 도도히 선 채 지상을 굽어 보는 신장을 향해 돌진했다.

신장이 웃었다.

빛으로 뒤덮여 표정 하나 살필 수 없는 놈이었지만 천호는 느낄 수 있었다.

[조져 버려!]

마검 미트라가 일갈했다. 천호가 칠흑으로 휘감긴 그녀를 휘둘렀고, 신장이 빛의 검을 꺼내 들어 천호에 맞섰다.

하늘에서 격렬한 충돌이 일어났다.

신장의 검은 투박했다. 하지만 빠르고 강했다. 마치 본능만으로 싸우는 야수를 상대하는 기분이었다.

그래서 천호 또한 야수가 되었다.

밤의 짐승인 야차신왕의 호전성을 더욱 일깨워 놈을 몰아붙였다.

서로가 서로의 검로를 막았다.

한 수, 한 수에 모두 전력을 다하니, 한 번 충돌할 때마다 하늘이 무너질 것처럼 뒤흔들렸다.

[으아아아!]

마검 미트라가 비명처럼 외치며 힘을 발산했다. 신장이 두르고 있는 독과 같은 천계의 기운을 밀어내기 위함이었다.

천호는 오른손으로 검투를 펼치며 왼손을 휘둘렀다. 보이는 손과 함께 호세사천왕을 펼쳤다.

드리타라슈트라의 장, 하늘 받치기.

장의 노도가 신장을 덮쳤고, 신장은 그 공격을 강기를 품은 일권으로 막아 냈다.

마치 방파제에 부딪친 노도처럼 천호의 공세가 흩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그칠 천호가 아니었다. 양측 모두 자세가 무너진 상황이었고, 지금 자리한 곳은 지상이 아닌 하늘이었다. 비행의 신의 날개를 조종해 신장과의 거리를 단숨에 벌렸다. 화려한 궤적을 그려 놈의 눈을 속이는가 싶더니 단숨에 근접해 일각을 날렸다.

신장이 그것을 막아 냈다. 하지만 묵직한 일격에 다시 자세가 무너졌다. 천호가 그런 신장을 향해 마검을 미트라를 휘둘렀다.

쾅! 쾅! 쾅!

신장은 단단했다. 일격은 몸으로 견뎌 냈고, 두 번째부터는 빛의 검으로 막아 냈다.

격전이었다.

하늘에서는 천호와 신장이 맞붙었고, 지상에서는 치유의 신과 저주의 신이 격돌했다.

그것만으로 부족해 분지 전체가 난전으로 혼란했다.

저주의 신의 의도가 통했다.

그의 바람대로 일방적인 싸움이 난전이 되었다.

설사 압도하지 못한다 해도, 이대로 시간을 끌면 악신들의 승리는 약속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시간은 우리 편이다.”

치유의 신의 강림 상태를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용사는 만들어 낸 밤을 얼마나 더 유지할 수 있을까.

마물들은 계속해서 모여들고 있었다.

주변에 가득 찬 마기는 선신들의 힘을 깎고 악신들의 힘을 더해 주고 있었다.

치유의 신은 대답하는 대신 욕지거리를 토했다. 양손으로 두 자루 검을 다루는 데 그치지 않고 치유의 검 다섯 자루를 더 소환해 원격으로 조작했다. 일곱 자루의 검으로 저주의 검을 공격했다.

저주의 신은 웃으며 그런 치유의 신에 맞섰다. 그는 치유의 신보다 훨씬 더 오랜 삶을 살아온 신이었다. 싸움의 기예를 갈고 닦아 온 시간은 비교조차 되지 않았다. 신력에 의존하지 않고 검투로 승부를 가린다면, 치유의 신을 압도하진 못할지언정, 결코 패할 일은 없는 그였다.

시간이 흘렀다.

몇 초가 몇 분 같았다.

기병의 신의 창이 신인의 목을 찔렀고, 창병의 신이 신인에게 내동댕이쳐졌다.

군대의 신이 소악신 다섯을 동시에 상대하며 분투했다.

천호는 허공에서 거친 숨을 토했다. 신장과 싸우던 와중에 잠시나마 시선을 다른 곳으로 분산했다.

느낄 수 있었다. 멀리서 캐리어들이 날아오고 있었다. 앞으로 십여 분이면 도착할 터였다.

치유의 신은 조급해하고 있었다.

기병의 신은 신인의 숨통을 끊기 위해 창을 비틀며 힘을 쥐어짜 냈고, 창병의 신은 바닥을 뒹굴어 벼락처럼 쏟아지는 신인의 주먹을 피했다.

방패병의 신이 홀로 빛의 장벽을 세워 수백에 달하는 마물들을 막아 내고 있었다. 각 신들의 정예병들이 치열하게 싸웠고, 음악의 신과 회화의 신이 치유의 신의 깃발에 전력을 쏟아부었다.

그래서 천호는 미소 지었다.

신장의 검을 막아 내며, 마검 미트라 너머로 놈을 노려보며 미소 지었다.

저주의 신의 말대로였다.

아직이었다.

아직 이쪽에는 준비된 수가 남아 있었다.

애당초 지금의 싸움 자체가 그 수를 위한 시간 벌이였다.

“아버지께서 말씀하셨지.”

동료를 소중히 여기라고.

남녀를 구분하지 말라고.

신장은 천호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다. 아니, 애당초 말이 통하는지조차 의문이었다.

하지만 천호는 개의치 않았다.

야차신왕의 힘을 발해 신장을 순간적으로 밀어붙였다. 계속해서 신장에게 공격을 퍼붓는 대신 하늘과 땅을 진감시킬 포효를 내질렀다.

모두의 시선이 일순 천호에게 향했다.

치유의 신과 저주의 신조차 그러했다.

오직 하나.

싸움이 시작된 순간 몸을 빼내었던, 유일한 예외를 제외한 모두가.

그래서 천호는 말했다.

“믿고 있었어.”

[거짓말.]

마검 미트라가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천호는 부정하는 대신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바로 그 순간.

분지의 중심.

싸움에 정신이 팔린 모두가 잊고만, 가장 중요한 것이 자리한 장소에서.

“우오오오오오오오!”

정화의 신이 포효했다.

이브나일의 신기를 뽑아 들었다.

다섯 여신의 신기들은 저마다 다른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태양의 여신 아이테르의 지팡이.

하늘의 여신 테레시아의 방패.

새벽의 여신 이오스의 창.

전쟁의 여신 이브나일의 신기는 검이었다.

화려하고 아름답지만 동시에 날카롭고 위험한 그것은 분지의 한가운데 꽂혀 오랜 시간 침묵하고 있었다.

정화의 신이 그런 이브나일의 신기를 해방했다. 지면에서 뽑아내 높이 쳐들었다.

이브나일의 신기가 빛을 발했다.

회색으로 물들었던 검신이 은색으로 반짝였고, 손잡이에 박혀 있던 보석들이 저마다의 색을 되찾았다.

저주의 신은 숨을 멈췄다. 분지의 중심을, 이브나일의 신기를 높이 든 정화의 신을 보며 경악을 터트렸다.

“어떻게?!”

이브나일의 신기는 방치되지 않았다.

단순히 지면에 꽂혀 있던 상황이 아니었다.

두터운 마기가 이브나일의 신기를 감싸고 있었다.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마치 금고처럼 이브나일의 신기를 봉하고 있었다.

아무나 접근해서 뽑아 들 수 있는 물건이 아니란 소리였다.

저주의 신의 경악에 치유의 신이 웃었다. 루시엘의 얼굴로 조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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