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45화 (145/211)

* * *

군대의 신이 지금껏 수비 일변도로 나선 이유는 단순했다.

‘생산력이 다르다.’

단기전이라면 이길 수 있었다. 하지만 장기전이 되는 순간에 수렁에 빠져들 수밖에 없었다.

이곳은 대미궁 안이었다.

악신들과 마물들의 고향이었다.

강력한 마기 덕분에 마물들이 절로 태어났다. 악신들의 숫자 또한 일백을 우습게 헤아렸다.

15층이 특별한 것은 악신들도 마찬가지였다.

선신들이 15층에 강력한 병력을 집중해 놓은 것처럼 마신과 심층의 마왕 또한 15층을 허투루 방치하지 않았다.

순백의 군마 위에 탄 군대의 신은 정면을 보았다.

생산력의 차이를 증명하듯 급조했음에도 불구하고 수만을 우습게 헤아리는, 이쪽의 병력을 상회하는 마물의 군단이 목소리를 높이고 있었다.

하지만 군대의 신은 두려워하지 않았다. 걱정조차 하지 않았다.

탁 트인 평원에서 펼쳐지는 회전.

병력의 질은 이쪽이 더 우수했다. 카마엘과 카를로스, 무토가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리고 군대의 신 자신이 지휘를 맡고 있었다.

“보여 주마.”

군대의 신이 어떤 존재인지.

무엇을 할 수 있는 자인지.

군대의 신의 붉은 가호가 아군 전체를 뒤덮었다. 병사들의 사기를 하늘 높이 끌어 올렸다.

“마음껏 날뛰어라.”

군대의 신이 말했다. 벌써부터 몸이 달아올라 거친 숨을 토하는 카마엘을 향해서가 아니었다.

별동대가 되어 신기를 찾으러 갈 용사.

하지만 오늘은 아니었다. 오늘 용사가 해야 할 일은 악신들에게 자신의 존재감을 과시하는 것이었다.

이곳에 용사가 있다.

용사가 진군하고 있다.

용사의 존재감이 커지면 커질수록 추후의 작전이 성공할 가능성이 높아졌다.

천호는 정면을 보았다.

여섯 장 날개를 활짝 펴며 날아오르는 루시엘을 보았고, 칠흑의 기운을 전신에 휘감은 채 서서히 떠오르는 라구엘을 보았다.

크리스는 후방으로 물러섰다. 천호와 달리 그녀는 철저히 숨겨져야 할 사람이었다.

마키나는 크리스와 함께 후방에 있었다. 음악의 신과 회화의 신은 군대의 신 곁에 자리했다.

“먼저 가겠소.”

무토가 차분한 미소를 지은 채 앞을 향해 나아갔다. 두 발로 천천히 걷는 듯했지만, 옆에서 신나게 말을 달리는 카를로스나, 날개를 펼치고 날아가는 카마엘에 뒤지지 않았다.

[우리도 가자.]

미트라가 말했다.

하늘에서 루시엘이 이쪽을 돌아보았다.

“용사님.”

해가 높았다.

정오에 가까운 시간이었다.

“보여 드릴게요.”

낮의 변신을.

어머니의 피를.

아버지의 피와는 달랐다. 그 근원을 명확히 증명할 비급 같은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호는 이제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피가 무엇인지.

어머니의 정체가 무엇인지.

아버지는 야차신왕 쿠베라의 피를 이은 자였다.

하지만 어머니는 달랐다.

피를 이은 자가 아닌, 그 피의 시작이 되는 자였다.

태양의 신.

가짜 아버지와의 대화를 통해 겨우 기억해 낸,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 지나치듯 나왔던 파이엔의 정점.

태양의 용신왕.

파이엔에 존재하는 모든 용들의 왕인 동시에 세계의 기둥이 되는 태양의 탑의 주인.

그녀가 분명했다.

그녀야말로 어머니의 정체였다.

대체 어떻게 만난 것일까. 다른 존재도 아닌 신을, 파이엔의 최강자를 어떻게 꼬신 것일까.

역시 아버지는 대단했다.

그리고 어머니 또한 대단했다.

천호가 어머니의 피를 일깨웠다. 스스로를 격상시켰다.

바뀌었다. 천호의 깨달음을 증명하듯 물음표가 사라지고 새로운 글귀가 나타났다.

천호의 전신이 눈부신 빛에 휩싸였다. 태양처럼 빛을 발했다.

앞을 향해 진군하던 카마엘이 저도 모르게 멈춰 섰다.

카를로스와 무토가 뒤를 돌아보았고, 이미 야차신왕의 존재를 아는 라구엘과 음악의 신, 회화의 신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장의 모두가 멍한 얼굴로 천호를 보았다.

언제나 냉정침착한 군대의 신조차 당황했다.

그리고 그는 이내 통쾌한 웃음을 터트렸다.

어째서 치유의 신이 그토록 천호를 신뢰하는지 이해했다.

‘낮에도 이기고 밤에도 이겨라.’

가짜 아버지가 남겼던 말.

천호의 머리에 네 개의 뿔이 돋아났다. 등 뒤에 비행의 신의 날개가 아닌, 찬란한 황금으로 빛나는 태양의 날개가 펼쳐졌다.

태양의 신인神人.

용신왕의 피를 잇는 자.

천호가 정면을 보았다. 전장에 선 모두가 들을 수 있도록 하늘 높이 포효했다.

용의 포효가 전장을 뒤덮었다.

* * *

[엉큼한 Lv8의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엉큼한 Lv8의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의 피.]

[용신왕의 피.]

드래곤 피어.

환상의 수맥을 올곧이 이은 자들의 후예가 터트린 포효가 본능적인 공포를 야기했다.

피아를 가리지 않고 전장의 모두가 전율했다.

천호는 정면을 보았다. 본래 푸른색이던 어머니의 용갑주가 황금으로 빛났다. 용의 비늘로 뒤덮인 진정한 의미의 용갑주였다.

천호의 등 뒤로 열두 개의 캐리어들이 도열했다. 용의 머리를 가진 신상으로 화해 저마다 으르렁거렸다.

미트라는 마른침을 삼켰다. 천호의 말대로였다. 야차신왕만큼이나 태양의 신인이 마음에 드는 그녀였다.

[흐아아…….]

성검의 주인 스킬이 미트라의 현재 상태를 알려 주었다. 천호는 작게 웃으며 미트라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아버지의 이야기.

완전하지 않았다. 아버지의 이야기에는 어머니의 행적이 사실상 빠져 있다시피 했으니까.

하지만 그래도 알 수 있는 것들이 있었다.

어머니의 존재는 너무나 거대했으니까.

여느 소설이나 게임에서 세계관을 설명할 때 반드시 언급해야만 하는, 정작 본편에는 얼굴 한 번 비치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이야기 곳곳에 모습을 드러내는 그런 존재들과 같았으니까.

태양의 용신왕.

독존하는 자.

환상의 수맥을 올곧이 이은 용들의 왕.

선하지도 악하지도 않았다.

파이엔에서 태양의 용신왕이 상징하는 것은 혼돈이었다.

‘그 탑이 그 탑이었다 이거죠?’

아버지께서 어머니를 만나셨다는 탑.

마법사들이 모여 사는, 3층에서 보았던 마탑 같은 것이라 생각했었다.

하지만 아니었다.

태양의 탑.

파이엔을 지탱하는 기둥들 가운데 하나.

혼돈에 속한 온갖 마물들이 모여 있기에 결코 접근해서는 안 되는 금지禁地로 여겨지는 곳.

쉽게 생각하면 마왕성 가서 마왕을 꼬셨다는 이야기가 되었다.

어머니는 태양의 탑에 거하는 온갖 혼돈의 마물들의 우두머리인? 까놓고 말해 일종의 마왕이라 할 수 있는 존재였으니까.

천호는 시원하게 웃었다.

시간의 문 너머에 존재하는 가짜 태양이 아닌, 진짜 태양 아래서 힘을 펼치니 이제야 진정한 태양의 신인을 사용한 느낌이었다.

“가자.”

천호가 말했다. 지면을 박차 날아올랐고, 황금빛 섬광으로 화하는 천호의 등 뒤로 열두 개의 섬광이 따라붙었다.

미트라의 검신에 푸른 번개가 어렸다.

태양의 신인과 야차신왕은 달랐다.

야차신왕에 어울리는 것이 마검이라면, 태양의 신인에는 성검이 어울렸다.

미트라의 검신이 자르르 떨렸다. 황금빛 궤적을 따라 하늘이 울부짖었다.

‘야차신왕은 무공과 어울리고, 태양의 신인은 용사 스킬과 어울린다.’

가짜 아버지의 말이었고, 천호도 동의했다.

천호의 심장으로부터, 약동하는 드래곤 하트로부터 태양의 마력이 끝없이 솟구쳐 올랐다.

천호가 미트라를 휘둘렀다.

위에서 아래로.

하늘에서 지상으로 강림하며.

콰가가가가가가강?!

무시무시한 낙뢰가, 번개의 폭풍이 미트라로부터 뻗어 나갔다. 열 개도 넘는 번개 줄기가 천호의 눈앞에 가로놓인 마물들을 문자 그대로 지워 버렸다.

번개의 길.

마물들의 대군 사이에 공백이 생겼다. 그 공백의 시작점에 선 천호가 다시 한 번 포효했다. 열두 개의 신상들이 함께 포효했고, 그 순간 군대의 신이 소리쳤다.

“돌진하라!”

본래는 좀 더 섬세한 작전을 펼칠 생각이었다. 놀라운 부대 운용으로 마물들을 포위 섬멸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생각을 바꾸었다.

돌진 앞으로.

쇄기 대형을 이룬 채 질주하라. 최고속도로 내달려 놈들을 찢어발겨라.

“츄?파?하!”

카마엘이 외쳤다. 가장 먼저 질주했고, 그 뒤를 카를로스가 이끄는 기병대가 뒤따랐다. 무토 역시 호탕한 웃음을 터트리며 경공을 펼쳤다.

“돌진하라!”

“돌진하라!”

골렘들이 기병들의 뒤를 따라 질주했다.

천사들이 날아올랐고, 이내 다시 지상을 향해 추락에 가까운 비행을 펼쳤다. 마치 먹이를 낚아채는 새매와 같았다.

콰가가가가강?!

다시 번개가 터졌다.

천호는 마물들 하나하나와 대적할 생각을 하는 대신 용사 스킬을 난사했다. 태양의 마력을 받은 연쇄 우레가 마물들의 눈과 귀를 멀게 했다.

쾅!

이번에는 번개가 아니었다.

충돌의 굉음이었다.

카마엘과 무토를 필두로 한 선신들의 군대가 마물들의 군대 정면을 두들겼다. 단숨에 놈들을 짓밟고 나아갔다.

“치유의 검이여!”

1만에 달하는 천사들이 있었지만, 루시엘의 모습을 한눈에 찾을 수 있었다.

무척이나 화려한 천사의 고리 아래 루시엘의 여섯 날개가 모두 활짝 펼쳐졌다. 순식간에 형성된 수십 자루의 붉은 검들이 지상을 향해 폭격처럼 쏟아져 내렸다.

천호는 그런 루시엘의 모습에서 치유의 신을 보았다. 쓰게 웃으며 시선을 돌렸고, 루시엘만큼은 아니지만, 역시나 눈에 띄는 라구엘의 모습을 발견했다.

사령술을 펼치기 위해서는 일단 죽은 자들이 필요했다.

최초의 충돌로 마물의 시체가 대량으로 발생했고, 라구엘은 비로소 활약할 순간을 포착했다.

베르가프를 타락시킨 원인 중에 하나였던 사령술의 마도서가 보랏빛 기운에 휩싸였다. 라구엘의 두 눈에서도 보랏빛이 일었고, 그 순간 짓밟혀 뭉개졌던 마물들이 기괴한 신음과 함께 일어섰다.

라구엘은 최대한 간단한 명령을 내렸다. 좀비가 되어 다시 일어선 마물들은 아직 멀쩡한 마물들을 향해 마구잡이로 돌진했고, 그대로 폭발했다.

“꺄하하하하하!”

“허허허허허허!”

카마엘이 광희하며 천사의 검을 휘둘렀다. 그녀의 검 끝을 따라 피보라가 일었다.

무토는 장을 펼쳤다. 한 번 장을 내뻗을 때마다 무시무시한 굉음과 함께 마물들이 열댓 마리씩 터져 나갔다.

“둘 다 미쳤어.”

카를로스가 투구 속에서 웃었다. 미친놈들 사이에 선 정상인답게, 침착하고 냉정하게 기병대를 이끌었다.

카를로스를 필두로한 기병대의 랜스 차징이 몇 번이고 마물들의 본대를 꿰뚫었다.

군대의 신은 지휘하지 않았다. 이 전투는 지휘가 불필요한 전투였다.

“들불처럼 번져라! 휩쓸어 버려라!”

신의 말이었다.

군대의 신의 외침은 신의 가호와 명령이 되어 아군의 사기를 북돋았다.

군대의 신은 틀리지 않았다.

숫자는 마물들의 군대가 더 많음에도 불구하고 일방적으로 밀어붙이는 것은 선신들의 군대였다.

이미 전황이 기울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미트라가 흥분해서 소리쳤고, 천호는 그녀의 외침에 호응해 주는 대신 제자리에 멈춰 서서 숨을 골랐다.

미트라는 천호가 좀 더 활약하길 바라는 것 같았지만, 이 정도면 되었다. 이후는 다른 이들에게 맡기는 것이 맞았다.

[그, 그치만!]

천호는 작게 웃은 뒤 미트라의 황금색 보석을 어루만졌다.

태양의 신인은 그 출력이 엄청난 만큼 소진하는 힘도 엄청났다.

화려한 데뷔전을 위해 시작부터 번개폭풍을 연달아 일으켰더니 솔직히 말해 힘들었다.

천호는 두 팔을 늘어트린 채 숨을 골랐다. 어느새 주변에는 선신들의 군대만이 가득했다.

“이 정도가 딱 좋아요.”

이 전투에서 필요한 것은 천호 자신이 선신들의 군대와 함께하고 있음을 적들에게 각인시키는 것이었으니까.

[으으… 그렇긴 하다만…….]

그래도 미련이 남는지 미트라가 중얼거렸고, 천호는 다시 황금색 보석을 쓰다듬었다.

“용사님!”

머리 위에서 루시엘의 목소리가 들렸다. 천호는 태양의 신인을 해제한 뒤 비행의 신의 날개를 펼치고 루시엘의 곁으로 날아올랐다.

선신들의 군대가 마물들의 군대를 휩쓸었다.

15층에서의 첫 번째 전투는 오래가지 않았다.

개전으로부터 고작해야 30분 남짓.

마물들의 군대는 박살이 나 흩어졌고, 선신들의 군대는 병력을 온존했다.

누구도 부정 못 할 대승이었다.

* * *

연전연승이었다.

첫 번째 전투로부터 나흘.

두 번의 전투를 더 치러 닷새 사이에 무려 세 번이나 회전을 치렀음에도 불구하고 선신들의 군대에는 생기가 넘쳤다.

세 번 모두 대승을 거두었기 때문이다.

“이제 겨우 시작일 뿐이다.”

군대의 신의 생각은 틀리지 않았다.

지난 세 번의 전투 동안 마주한 것은 분명 마물의 대군이었지만, 부덕의 성채의 병력이라 하기에는 다소 어폐가 있었다. 정의의 성채 주변을 어슬렁거리는 악신들과 마물들을 한데 모아 만든, 문자 그대로 급조한 군대였기 때문이다.

군대의 신의 막사 안.

15층의 지도가 그려진 빛의 창을 바라보던 천호는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지난 닷새 동안의 진군 결과, 선신들의 군대는 부덕의 성채와 정의의 성채 사이에 존재하는 중간 지점을 넘어섰다.

이제 슬슬 부덕의 성채의 진짜 군대가 모습을 드러낼 때가 되었다.

군대의 신의 말마따나 제대로 된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이었다.

‘앞으로 한 번에서 두 번.’

천호의 역할은 이대로 쭉 선신들의 군대와 함께하는 것이 아니었다.

홀로 별동대로 활동해 이브나일의 신기를 확보하는 것이었다.

지금의 기동 속도를 유지한다면 이틀 뒤에는 별동대 활동을 시작해야 하니, 앞으로 한 번에서 두 번 정도만 더 싸움에 참여할 수 있었다.

천호의 시선이 지도를 떠나 근처에 앉아 있던 라구엘에게 향하자 미트라가 작게 말했다.

[걱정하지 마라, 그대여. 다들 그대의 생각 이상으로 강하니.]

별동대에 함께하는 것은 루시엘과 음악의 신, 치유의 신뿐이었다.

라구엘과 크리스, 마키나는 함께하지 않았다.

그리고 셋뿐만이 아니었다.

요 닷새간 함께 싸운 덕에 부쩍 친해진 카마엘과 카를로스, 무토 역시 걱정이 되었다.

하지만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미트라의 말마따나 다들 결코 약하지 않았다.

아마 천호가 이런 걱정을 한다는 것을 알면 카마엘은 화까지 내리라.

천호의 시선에 라구엘이 조용히 미소 지었다. 미트라의 목소리는 들리지 않는 그녀였지만, 천호의 눈빛만으로도 무슨 생각을 하는지 읽어 내기에는 충분했기 때문이다.

루시엘이 라구엘의 손을 잡았다. 그리고 때를 맞추듯 막사 입구 너머에서 천사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정찰병이 돌아왔습니다! 적을 발견했습니다!”

앞으로 한 번에서 두 번.

군대의 신이 정찰병의 입장을 허락했다.

* * *

다가오고 있는 병력은 어림잡아 3만이었지만, 병력의 구성이 지금까지와 달랐다. 키가 5미터는 족히 되는 거인족들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악신들도 결코 적지 않았다. 소악신들까지 포함하면 적어도 아홉은 되었다.

지금까지의 회전에서는 악신들이 거의 보이지 않았으니, 병력의 질이 갑자기 높아진 셈이었다.

군대의 신은 침착하게 병력을 배치했다. 이제 슬슬 회전에서의 전술이라는 것을 보여 줄 때가 되었다.

‘아마도 이번이 마지막.’

부덕의 성채라 하여 언제까지 이렇게 찔끔찔끔 군대를 보내진 않을 터였다.

이번 전투 다음부터는 병력을 다수 모아 단번에 몰아치거나 부덕의 성채에서의 수비를 생각하리라.

어느 쪽이든 좋았다. 놈들의 시선을 본대에 붙잡아 두는 것 자체가 이번 전쟁의 목적이었으니 말이다.

군대의 신은 자신의 권능을 발해 실제 전장을 마치 지도처럼 내려다보았다.

악신들의 군대는 예상대로 거인들을 전면에 세웠다. 악신들 역시 처음부터 본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온다.”

군대의 신이 낮게 말한 그 순간, 저 멀리서부터 거인들이 돌진을 개시했다. 놈들의 머리 너머에서 각종 마법들이 발동되었다.

군대의 신은 손을 놀렸다. 천사들이 뿔피리와 깃발로 군대의 신의 뜻을 전파했다.

측방을 향해 질주하기 시작한 카를로스의 기병대의 질주와 함께, 회전이 시작되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