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31화 (131/211)

“창병의 신이다. 동생에게 이야기는 많이 들었다.”

“박천호입니다.”

기병의 신의 언니답게 녹색인 머리칼을 제하고는 여러모로 기병의 신과 닮은 창병의 신이었다.

“착석해 주십시오.”

만찬회장에는 동그랗고 하얀 테이블이 여럿 배치되어 있었는데, 각각의 자리에 이름표가 있었다.

천사들의 안내에 따라 자리에 착석하고 나니 맑은 종소리와 함께 요리의 신이 모습을 드러냈다.

“만찬회에 온 것을 환영한다.”

천호 일행과 창병의 신.

열댓 명쯤 되는 인원에게 눈인사를 한 그는 밝은 얼굴로 말을 이었다.

“오늘의 만찬회는 용사 박천호를 위해 준비했다. 그에게 특화된, 그를 위한 만찬회라 할 수 있지. 아무쪼록 즐겨 주었으면 한다.”

천호에게 특화된 만찬회.

아주 듣기 좋은 말이었지만 루시엘은 어쩐지 모를 불길함을 느꼈다.

“루시엘?”

“아뇨, 그냥.”

에헤헤 웃은 루시엘은 애써 마음을 진정시켰고, 첫 요리가 나오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잠시 후.

마침내 첫 요리가 나왔을 때.

“첫 번째 요리는 벌레 볶음이다. 무척 인상적인 요리였지.”

요리의 신이 웃으며 설명했고, 일행의 얼굴이 살짝 경직되었다.

이름 그대로 벌레 볶음.

접시 위에는 잘 볶아진 벌레들이 쌓여 있었다.

음악의 신과 회화의 신이 당황했다.

비교적 살림살이(?)가 나아진 뒤 천호 일행에 합류한 천사 3인방 또한 마찬가지였다.

“먹죠.”

천호는 1층의 추억을 떠올리며 벌레 볶음을 먹었고, 루시엘은 1층의 아픔을 떠올리며 포크를 들었다.

“마, 맛있어!”

“왜 맛있는 거야!”

“먹기 싫은데 먹고 싶어!”

사방에서 탄식 섞인 감탄이 터져 나왔다.

그리고 이어진 메뉴.

“자이언트 랫 스테이크다.”

혹시나가 역시나였다.

이후에 이어진 메뉴들도 대부분 대동소이했다.

코카트리스 스켈레톤의 사골국, 정체 모를 뱀의 통구이, 굳이 원형을 유지했어야 했냐고 묻고 싶은 벌레 요리들.

하지만 하나같이 맛있었기에 일행은 포크질을 멈추지 못했다.

“하, 자괴감이 들어.”

“근데 너무 맛있어서 괜찮은 기분이야.”

음악의 신과 회화의 신의 감상이 모두의 기분을 대변했다.

두 시간여에 걸친 만찬회가 끝나자 일행은 간단한 차를 즐기며 담소를 나누었다.

그리고 예정이라도 된 것처럼 요리의 신이 천호에게 다가섰다.

“요리는 마음에 들었나?”

“네, 무척이나. 정말 감사합니다.”

“그대의 요리들을 내 나름대로 변형해 본 것들이라네.”

“나중에 꼭 배우고 싶네요.”

“얼마든지.”

흐뭇하게 웃은 요리의 신은 거기서 말을 한 번 끊고 숨을 고르더니 조금 진지한 표정이 되어 말했다.

“용사여, 잠시 시간을 내어 줄 수 있겠나?”

“시간이요?”

“단둘이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네.”

단둘이라는 말에 천호는 순간 루시엘을 돌아보았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상대가 요리의 신이었기에 루시엘 역시 천호를 붙잡지 않았다.

“이쪽으로 오게나.”

요리의 신과 천호가 함께 만찬회장을 나서니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지만 요리의 신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다.

천호는 습관처럼 미트라의 황금색 보석을 쓰다듬으며 그런 요리의 신의 뒤를 따랐다.

그렇게 몇 분.

아무도 없는 조용하고 큰 방에 당도한 요리의 신은 숨을 길게 내쉬더니 두 팔을 벌리며 말했다.

“이곳이 내 성소라네.”

하얗고 깨끗한 부엌.

각종 조리도구가 갖춰진 그곳에서 요리의 신이 천호를 마주했다.

“그대를 위해 만찬회를 준비했지만, 사실 내가 진짜로 주고 싶은 건 따로 있다네.”

요리의 신은 치유의 신과 거의 비슷한 시기부터 천호를 관찰해 온 신이었다.

때문에 그는 확신하고 있었다.

천호야말로 대미궁을 공략해 낼 영웅이 분명하다고.

만찬회는 마물식의 전파를 도운 천호에게 주는 작은 감사의 표시일 뿐이었다.

요리의 신은 천호의 대미궁 공략에 직접적인 도움을 주고 싶었다.

“그래서 생각했다네. 내가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인지.”

고민은 의외로 길지 않았다.

천호의 여정을 지켜봐 온 그였기 때문이다.

“나의 검과, 그 검을 쓰는 법.”

요리의 신이 품에서 꺼내 내민 것은 한 자루의 식칼이었다.

하지만 평범하지 않았다.

요리의 신의 신물.

신검이라 해도 과언이 아닐 식칼.

“내 식칼과, 식칼 다루는 법을 전수해 주겠네.”

요리의 신이 말했고,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요리의 신과 뜨거운 눈빛을 교환했다.

[자, 잠깐. 이 흐름대로면······.]

식칼을 먹는 미트라.

앞으로 식칼 역할도 하는 미트라.

[이, 이것도 운명인가······.]

하긴, 이제 와서 식칼 하나 추가된다고 크게 달라질 것도 없고.

으앙 대신 장탄식을 토한 미트라는 주어진 운명을 순순히 받아들였고, 요리의 신은 식칼을 들어 올렸다.

극의의 전수를 시작했다.

* * *

그것이 검술이 되었든, 요리가 되었든 기술의 전수라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하물며 그것이 극의 혹은 오의라 부를 만한 것이라면 말이다.

배우는 이는 어떻게 배울 것인가.

가르치는 이는 어떻게 가르칠 것인가.

가장 일반적인 방법은 설명과 시연이었다.

기술의 요체와 원리, 사용방법 등을 설명한 뒤 실제로 보여 준다.

크리스의 호세사천왕 전수가 이러한 경우에 속했다.

천호는 의식을 집중시켰다.

사실 호세사천왕의 경우 이미 비급을 가지고 홀로 연구한 것이 있기에, 그리고 이미 익히고 있는 것들이 있기에 크리스의 설명과 시연만으로도 빠르게 습득이 가능한 것이었다.

아무리 천호가 배우는 게 빠른 편이라고는 해도 한 기술의 극의라고 할 만한 것을 몇 번 시연하는 것만 보고 습득하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천호의 집중이 무색하게도, 요리의 신은 시연조차 보이지 않았다.

“전수했다.”

눈앞에 떠오른 빛의 창에 천호는 저도 모르게 눈을 껌벅였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어, 음, 예.”

스킬.

생각해 보면 1층에서 처음 메시지를 받았을 때도 스킬을 받았으니까.

신이니까 뭐, 스킬을 줄 수도 있겠지.

‘아니, 아무리 그래도 극의인데.’

뭔가 기쁘면서도 황당한, 조금 애매한 기분이었다.

“뭔가 문제라도 있나?”

“아, 아뇨. 음, 괜찮습니다.”

아무튼 익힌 것이 중요하니까.

“그럼 받게나.”

요리의 신이 식칼을 내밀었다.

그래도 신검인지라 평범한 식칼과는 겉모습부터가 달랐다.

검고 검어 묵빛인 칼날 위에 새하얀 빛으로 그림이 그려져 있었다. 용의 머리가 분명했다.

칼날과 반대로 새하얀 손잡이는 자체적으로 은은한 빛을 발했다.

“용의 이빨과 뼈로 만들어진 물건이네. 일종의 드래곤 슬레이어라 할 수 있지.”

용을 죽이기 위해 용을 재료로 만든 무기.

드래곤 슬레이어.

새삼 마른침을 삼킨 천호는 식칼을 받아 들었다. 이유 모를 불길함과, 뛰어난 무기를 손에 넣었다는 기쁨이 동시에 가슴을 채웠다.

“요리의 신님.”

“알고 있다. 성검에게, 미트라에게 먹여도 되는지 묻는 것이겠지? 괜찮다. 허락한다.”

천호의 여정을 지켜봐 온 요리의 신이었다.

애당초 식칼을 내줄 때부터 각오한 바였다.

“감사합니다. 미트라, 부탁할게요.”

요리의 신에게 짧게나마 인사한 천호는 허리춤에서 미트라를 뽑아 들었다.

미트라는 크게 숨을 고르더니 마른침까지 꿀꺽 삼킨 뒤 말했다.

[좋다, 준비되었다.]

이미 사악한 마검이나 악신도 몇 자루나 흡수한 몸이었다.

식칼 정도는 문제도 아니었다.

더욱이 천호가 기뻐한다면, 천호를 위해서라면 더한 것도 흡수할 수 있는 미트라였다.

“그럼 갑니다.”

[와라!]

천호가 미트라와 식칼을 겹쳤다. 그 순간 찬란한 황금빛이 일었고, 미트라가 언제나처럼 요리의 신의 식칼을 흡수했다.

[아아, 아아아!]

미트라가 탄성을 토했다. 요 근래 사악한 마검 계열만 흡수하다가 간만에 성스러운 신검을 흡수해서인지 목소리에 숨길 수 없는 쾌감이 섞여 있었다.

그리고 직후였다.

황금빛 섬광이 보다 강해졌다. 순백의 빛으로 변하여 요리의 신의 성소를 가득 채웠다.

[아아!]

정신세계 속에서 미트라가 자신의 양어깨를 끌어안았다. 그대로 무릎 꿇으며 다시 한 번 탄성을 토했다.

격의 상승은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과거의 경지를 되찾았다.

레온과 함께하던 시절의, 그 당시의 힘에 온전히 도달하였다.

빛의 창이 떠올랐다. 천호는 순백이 가신 미트라를 보았다. 식칼을 흡수하기 전과 똑같은 모양이었지만, 겉모습이 아닌, 다른 무언가가 변했다는 것을 직감할 수 있었다.

“미트라?”

[도달했다. 이제는 가능하다.]

하필 식칼을 흡수한 뒤에 가능해졌다는 것이 좀 그렇긴 했지만, 어찌 되었든 기쁜 일이었다.

[만검만화… 지금까지 흡수한 검들로의 변화.]

황금빛 눈동자의 여인은 무척이나 가늘고 긴 검으로 용사의 검을 펼쳤다.

레온은 거대한 클레이모어로 용사의 검을 펼쳤다.

서로 다른 형태의 검.

검이라면 어떤 형태도 취할 수 있는 미트라.

“식칼… 가능해요?”

[으음, 가능하다.]

미트라의 전신에서 황금빛이 일었다. 밖으로 방출하는 강한 빛이 아니라, 미트라의 전신만을 뒤덮는 은은한 빛이었다.

미트라의 형태가 변하였다. 요리의 신의 식칼과 거의 동일한 형태였다.

하지만 외장은 훨씬 더 화려했다.

손잡이와 검신이 연결된 부분에는 언제나와 같이 황금색 보석이 자리했고, 검신도 묵빛이 아닌 순백이었다.

“오오, 오오오!”

식칼로 변신한 미트라를 본 요리의 신이 감탄을 토했다.

단순히 변신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었다.

완벽.

그야말로 완벽한 식칼.

요리의 신의 식칼은 기존에도 이미 대단하다는 수식어가 어울리는 신물이었다.

그런데 눈앞의 식칼은? 미트라는 기존의 식칼을 초월했다.

당연한 일이었다.

미트라의 힘이 더해졌으니까. 그 덕분에 신물로서의 수준이 몇 단계나 상승했으니까.

“놀랍군, 놀라워. 그야말로 지상 최고의 식칼……!”

[으으음.]

요리의 신의 감탄에 미트라가 끙끙 앓는 소리를 냈고, 천호는 미소 지었다. 미트라를 고쳐 쥔 뒤 요리의 신에게 물었다.

“한 번, 시연해 볼 수 있을까요?”

식칼로 변신한 미트라를.

이제 막 배운 요리의 신의 극의를.

“무, 물론이지! 이걸 사용하게나!”

요리의 신이 도마 위에 커다란 고기를 올렸다.

어제 사냥한 와일드 티라노이드의 특수부위였다. 하루 동안 숙성했기에 딱 좋은 상태였다.

“육회인가요?”

“그렇다네.”

척이면 척이었다.

요리의 신은 뒤로 한 걸음 물러섰고, 천호는 도마 앞에 서서 정신을 집중했다.

손에 쥔 것은 미궁 세계 최고최강의 식칼.

펼치는 것은 요리의 신의 극의.

[으음.]

천호를 위해서이긴 했지만, 어째 자꾸 앓는 소리를 내고 싶은 미트라였다.

그리고 마침내 천호가 극의를 펼쳤다.

첫 칼질이 이루어졌다.

특수부위를 파고드는 칼날.

특수부위를 가르는 식칼.

단순하지 않았다. 결코 평범치 않았다.

요리의 신의 극의에 호세사천왕 참원의 묘가 더해졌다.

특수부위가 빛났다. 찬란한 황금빛에 뒤덮였다.

“아아, 아…….”

요리의 신이 신음을 흘렸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와일드 티라노이드의 특수부위가, 식재가 격의 상승을 이루고 있었다.

성스러운 식칼과 위대한 극의가 만들어 낸 기적이었다.

그리고 기적은 거기서 그치지 않았다.

한 수.

고기를 가른 그때 천호의 안에서 합치가 이루어졌다.

여명의 검에 요리의 신의 극의가 더해지면서 천호의 검술 자체가 더 높을 곳을 향해 나아갔다.

깨달음.

그로 말미암은 성장.

요리의 신의 극의가 그간 부족했던 한 부분을 채워 준 결과였다.

천호가 황홀한 표정을 지었다. 요리의 신 또한 마찬가지였다.

불편한 것은 오직 미트라뿐이었다.

[으음, 으으음.]

천호가 강해진 것은 좋았다. 검술이 진일보한 것은 무척이나 기꺼웠다.

하지만 하필 식칼로 칼질하는 와중에 성장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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