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15화 (115/211)

“화분 갈이를 해 줘야 할 것 같아요.”

[맞는 말이다만, 슬슬 화분이 필요하지 않을 것 같다.]

미트라의 말에 천호는 반사적으로 루시엘과 에이젤에게 말을 옮긴 뒤, 두 사람과 같은 얼굴이 되어 미트라를 바라보았다.

“화분이 필요 없다고요?”

[그래, 마목이를 처음 얻었던 상황을 떠올려 봐라. 그대와 싸웠던 마목이 뿌리를 내리고 있던가?]

“아.”

그랬다. 마목이의 모체라 할 수 있을 카사블론드는 두 다리로 빠르게 기동했었다.

[묘목일 때는 화분이 필요하지만… 이제는 괜찮을 거다. 물론 침대 같은 개념으로 몸에 맞는 화분이 있어서 나쁠 것은 없지만 말이다.]

미트라의 말을 그대로 전하자 에이젤이 눈을 크게 떴다.

“와, 그럼 이제 마목이 제 어깨에 태우고 다녀도 되는 거예요?”

에이젤이 말하자 루시엘이 헉하고 숨을 삼켰다. 자기도 하고 싶은 모양이었다.

모체인 카사블론드와 달리 무척 귀엽게 생긴 마목이었으니 말이다.

꾸이꾸이.

바로 그때 섭섭하다는 듯 잔불이가 목소리를 냈다. 마법 장비를 잔뜩 먹어 치워 전보다 몇 배는 더 강해진 잔불이였지만, 여전히 가장 좋아하는 장소는 천호나 루시엘의 주머니 안쪽이었다.

“응응, 미안미안. 잔불이도 귀여워.”

꾸이꾸이.

루시엘이 잔불이를 꺼내 쓰다듬자 잔불이가 애교를 부리듯 불꽃을 흔들었다. 언제 봐도 신기한 잔불이였다.

“미트라, 이대로 계속 자라면 처음 이야기했던 것처럼 될까요?”

[그럴 거다. 천사들 틈에서 자란 덕분에 신성력을 잔뜩 흡수했으니까. 주변에 착한 사람들밖에 없어서 그런지 성격도 선량해진 것 같고 말이다.]

이미 마목이라기보다는 신목이나 성목에 가까워진 마목이었다.

미트라 말마따나 성격도 좋은지 자길 보고 꺅꺅거리는 에이젤에게 짜증 한 번 내지 않고 애교를 부렸다. 하는 짓만 보면 마목이 아니라 강아지 같았다.

‘계속 성장의 물약을 주면…….’

사람 크기쯤 되면 충분한 전력이 될 것 같았다. 물론 천사들의 마음을 풍요롭게 해 주는 애완수로도 충분했고 말이다.

“말 나온 김에 미트라도 성장하는 게 어때요?”

[응?]

“아직 먹을 게 남아 있잖아요.”

천호는 루시엘을 돌아보았고, 루시엘은 눈치 빠르게 천호가 무엇을 말하는지 이해했다. 인벤토리에서 바로 물건을 꺼내 들었다.

레온이 만든 제국 수호검.

한때 두 동강 났던 검신이 하나로 이어졌다. 손잡이 역시 새로 달아 온전한 검의 형태를 하고 있었다.

좋은 검이었다. 레온이 미트라의 몸으로 삼기 위해 만든 검답게 강하고 아름다웠다.

지금까지 획득한 마검들 가운데 다섯 손가락 안에 들 명품이 분명했다.

하지만 따로 쓰는 것은 역시 낭비였다.

가장 좋은 사용처는 미트라였다.

[그래, 이쪽이 순리에 맞겠지.]

마키나에게는 이미 양해를 구한 천호였기에 미트라까지 허락한 지금 더 이상 지체할 이유가 없었다.

천호가 미트라를 들었고, 루시엘이 제국 수호검을 들었다. 두 자루 검의 검신을 교차시키니 이내 익숙한 황금빛이 눈앞을 가득 채웠다.

미트라가 제국 수호검을 흡수했다. 지금까지 늘 그래 왔던 것처럼 검의 형태를 바꾸었다.

진은의 검.

천호와 처음 만났을 당시 취했던 모습.

[돌아…왔구나.]

미트라가 나직이 말했다. 사실 외부의 형태에는 그다지 구애받지 않는 미트라였지만, 그래도 수백 년에 걸쳐 사용했던 몸이었다. 감회가 남다를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간과할 수 없는 사실이 있었다.

[성장했다.]

한 단계 더 나아갔다. 스무 자루도 넘는 마법검들을 흡수했을 때조차 변하지 않았던 내부의 모습이 지금 이 순간 변하였다. 성검 스킬도 새로 개방되었다.

그리고 이 성장은 평소 이상의 의미를 지녔다.

선을 넘었다. 구간을 통과했다. 특이점이라 하기에는 과했지만, 특별한 지점을 통과한 것은 사실이었다. 게임으로 치자면 전직 레벨에 도달했다고 해야 할까?

“미트라 님한테서 신성한 힘이 느껴져요.”

에이젤이 약간은 멍한 눈으로 말했다. 본래도 신성한 힘을 내뿜던 미트라였지만, 그 정도와 수준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정화의 신.’

이름은 기억 안 나지만 아무튼 치유의 신의 막내 동생인 어린 신.

마치 그를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신성한 금속인 진은 덕분일 거다. 대장간에서 마법검을 많이 먹기도 하였고.]

기분 탓인지 목소리도 좀 더 신성하게 들렸다.

‘여기서 으앙 하면 어떨까.’

신성한 으앙이 되려나.

몹시 시켜 보고 싶었지만 보는 눈이 많았기에 천호는 일단 참기로 했다. 나중에 정신세계에서 들으면 되는 일이었으니까.

그러고 보니 정신세계 안쪽에선 어떻게 변했을까.

이번에야말로 본신인 황금빛 눈동자의 여인으로 돌아왔을까?

아니면 아직도 소녀의 모습인 것일까.

어느 쪽이든 기대가 되는 천호였다.

[후훗, 기대해도 좋다. 마음껏 기대해라.]

미트라가 은근한 목소리로 말했다. 무척이나 기분이 좋은 것 같았다.

“다섯 여신이시여, 감사하나이다.”

바로 그때 옆에서 루시엘이 미트라를 마주한 채 기도를 올렸다. 에이젤이 바로 따라 기도를 올렸고, 이내 전차 안에 있던 천사들 모두가 기도를 시작했다. 신상 앞에 모여든 신자들 같았다.

[음.]

이런 경험이라면 꽤나 많은 미트라였지만 천사들이 단체로 이러니 좀 색다른 기분이었다.

천호는 작게 웃은 뒤 루시엘을 흉내 내 기도를 올려 보았다.

‘지금처럼 만사가 잘 풀리기를.’

이번 대장간 방문에서는 얻은 것들이 참 많았다.

여명의 검을 만들었고, 태초의 대장간을 수중에 넣었다. 마키나가 새 동료가 되었고, 어머니의 캐리어들이 열두 대나 도착했다. 용갑주와 레온의 무구들이 합쳐져 더 좋은 무구들로 거듭났다. 그리고 지금 미트라가 한층 더 성장했다. 그야말로 겹경사의 연속이었다.

루시엘도 천호와 비슷한 생각을 했다. 성심껏 기도한 뒤 천호에게 살짝 어깨를 기댔고, 이내 작게 웃으며 말했다.

“중앙이 기대돼요.”

어떤 곳일까.

얼마나 크고 아름다운 곳일까.

루시엘은 지부에서 태어났다. 천호와 만나기 전까지는 지부에서만 생활했기에 밖을 몰랐다.

지부도 작지는 않았다. 수백 명의 천사들이 함께 살아갈 수 있는 장소였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중앙에는- 저 정의의 성채에는 미치지 못 할 것이 분명했다.

수많은 선신들과 천사들이 머무는 곳.

대미궁 안에 세워진 선신들의 천국.

“분명, 굉장할 거예요.”

에이젤이 눈을 빛내며 말했다. 천사 네트워크에서 본 사진들만 해도 이미 대단했으니까. 실물은 정말 엄청나리라.

구석에 있던 마키나 역시 대장간 밖을 나오는 것은 처음인 터라 루시엘과 비슷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 긴장과 기대에 불안이 뒤섞인 오묘한 표정 말이다.

[나도 기대가 되는군. 다만… 중앙 전체가, 그러니까 모든 층이 그리 화려할 것 같지는 않다.]

미트라의 말대로였다. 모든 층의 구성이 같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제국도 전역이 아름답고 화려하지는 않았다.

천호가 미트라의 말을 전하자 에이젤이 다시 눈을 빛내며 말했다.

“그래도 우리가 가는 곳은 중층에서도 특별한 지역인 14층이랑 15층이니까 분명 대단할 거예요. 루실리아도 대단하다 그랬어요.”

10층 중앙에서 14층까지 내려간다. 10층에서 14층까지 이어지는 계단들 모두가 정의의 성채 안쪽에 위치하고 있으니 일단 정의의 성채에 도달만 하면 이후 일정은 순조로울 터였다.

‘보상도 기대가 되고.’

딱히 보상 때문에 움직이는 천호가 아니긴 했지만, 그렇다고 물욕이 없는 건 아니었다.

치유의 신의 약속.

중앙에 도착하면 충분한 보상을 해 주겠다고 했던 그녀.

치유의 신의 화통한 성격을 생각한다면, 정말 기대해도 좋을 것 같았다.

“중앙에 거의 도달했습니다!”

바로 그때 비공정의 조종을 맡고 있는 오레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태초의 대장간으로부터 사흘.

마침내 도착한 중앙이었다.

루시엘과 에이젤이 동시에 안절부절못했다. 그녀들뿐만 아니라 아우라엘과 라구엘도 그러했고, 사스치엘과 전투 천사들 역시 그러했다.

다들 중앙은 처음이었으니까.

중앙에 간다는 것이 기대가 되었으니까.

“창밖이라도 볼까요?”

천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말하자 천사들이 동시에 반응했다.

“네!”

“네!”

“네♥”

사방에서 들려오는 미성을 들으며 천호는 용갑주에 마력을 살짝 불어넣었다. 비공정을 이루고 있는 캐리어들 가운데 하나를 변신시키기 위함이었다.

“루시엘, 장벽을 부탁할게요. 투명한 걸로.”

“네, 용사님.”

얼른 답한 루시엘이 투명한 장벽을 한쪽 벽에 펼쳤다. 직후 캐리어가 변신해 장벽 너머를 훤히 드러냈다.

가장 먼저 하늘과 땅을 잇는 기둥이 보였다.

그리고 그 아래 펼쳐진 요새 도시.

거대한 성곽과 수백, 수천 채에 달할 건물들.

규모만 따지면 아이테리움보다 작았다. 플로렌 왕국의 왕도보다 조금 더 큰 수준이었다.

하지만 달랐다.

규모가 중요한 것이 아니었다.

살아 있었다.

앞의 두 도시와 달리 눈앞의 요새 도시는, 정의의 성채는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왕성한 생명력을 내뿜고 있었다.

루시엘이 입을 벌렸다.

그녀뿐만 아니라 천사들 모두가 그러했다. 이미 정의의 성채를 방문해 본 적 있는 릴리엘 역시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정의의 성채가 달라졌으니까.

평소에 없던 것이 새로 생긴 정의의 성채였으니까.

수백 미터 상공이기에 제대로 볼 수 있는 것.

지상에서라면 제대로 알아보지 못 했을 그것.

정의의 성채를 가로지르는 거대한 빛의 글자들.

민망함이 가득 묻어나는 하트 섞인 문구.

[과연, 과연 치유의 신…….]

미트라가 멍한 목소리를 흘렸고, 루시엘이 얼굴을 붉혔다. 다른 천사들도 마찬가지였다.

민망함은 어째서 우리의 몫인 것일까.

“음.”

하지만 천호는 포커페이스를 잃지 않았다.

다시 한 번 빛의 문자를 읽었고, 마음속으로나마 미소를 그려 보였다.

무척이나 흡족한 미소였다.

* * *

정의의 성채에 어서 오세요!

환영합니다, 용사님♥

정의의 성채가 가까워지면 가까워질수록 천사들의 얼굴은 점점 더 붉어져 갔다.

그도 그럴 것이 민망함이 점점 커졌기 때문이다.

정의의 성채 한가운데 위치한 커다란 건물의 옥상.

플로렌 왕국의 왕도처럼 사실상 공중 정원이라 해도 좋을 곳에 근 일백에 달하는 천사들이 질서 정연하게 서 있었다. 그리고 그들이 노래하고 있었다.

오오, 용사님.

우리들의 용사님.

잘생기고 멋지고 강하신 우리우리 용사님.

일백 명의 천사들이 소리 높여 불렀다. 참으로 웅장하고 아름다운 음률이었다. 그래서 더 민망했다. 가사가 너무 튀었기 때문이다.

“으아아.”

참다못한 에이젤이 양손으로 얼굴을 가렸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노래는 귀로 듣는 거지 눈으로 보는 게 아니었으니 말이다.

[으음, 으으음.]

미트라도 신음을 흘렸다. 루시엘은 애써 괜찮은 척하려 했지만 이미 얼굴이 새빨개진 지 오래였다.

이 와중에 오직 천호만이 평소의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다.

“음.”

좋군.

가사가 마음에 들어.

아버지도 저런 노래 몇 개 가지고 있다 하셨는데.

인터넷이나 TV가 없는 파이엔이었으니, 소문은 음유시인들의 노래를 타고 퍼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고, 자연 용사를 찬양하는 노래는 많고 많았다.

[으으음, 음.]

다른 이들은 천호가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있다 생각했지만 천호와 연결되어 있는 미트라는 천호의 진심을 읽을 수 있었다. 때문에 참으로 미묘한 신음을 연신 흘려 댔다.

그리고 마침내 비공정이 옥상에 안착했다.

마치 타이밍이라도 잰 듯 두 번째 노래가 시작되었고, 어린 천사들이 돌돌 말린 붉은 카펫을 풀며 비공정에 다가섰다.

“으아.”

결국엔 루시엘도 신음을 흘렸다. 천사 네트워크에서만 보던 레드 카펫에 직접 오른다니 기쁘긴 했지만, 어째 지금은 좀 아닌 기분이었다.

백 명이 넘는 천사들이 민망한 노래를 부르는 와중에, 그들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나아가야 한다니.

“으으.”

그래도 루시엘 자신은 천호의 천사였다. 천호의 곁에 언제나 함께해야 했다.

‘힘내자, 힘내!’

용사님도 민망하실 텐데 애써 평정을 유지하고 계시잖아!

주먹을 꽉 쥐며 마음을 다잡은 루시엘은 침까지 한 번 꿀꺽 삼킨 뒤 천호의 곁에 섰다.

“가요, 용사님.”

“네, 루시엘.”

천호와 루시엘이 나란히 앞장서기 시작하자 나머지 천사들도 쭈뼛쭈뼛대긴 했지만 그 뒤를 따르기 시작했다.

“환영합니다!”

“환영해요!”

노래 사이로 어린 천사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울렸고, 하늘에서는 반짝반짝이는 빛가루가 쏟아져 내렸다. 고개를 살짝 들어 보니 바구니를 한 손에 든 어린 천사들이 하늘에서 빛가루를 뿌리고 있었다.

그리고 절정.

최선을 다해 발걸음을 내딛던 루시엘이었지만 순간 비틀거리며 넘어질 뻔했다.

정면에 밀집해 있던 천사들이 길을 열 듯 쫙 갈라지더니, 그들 사이에 숨겨져 있던 물건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커다란 그림이었다.

천호와 루시엘이 그려져 있었다. 보다 정확히 묘사하자면, 성검을 든 천호가 영웅소설에 나오는 주인공처럼 멋지게 서 있었고, 루시엘이 그런 천호의 품에 안겨 있었다.

그리고 배경에 자리한 수많은 마물들.

멋진 그림이었다. 실사를 방불케 할 정도로 생생했다. 아니, 실사와 닮았지만, 실사에는 담아낼 수 없는 완벽함이 더해진 터라 실사를 초월한 무언가였다.

그렇기에 더 민망했다. 더욱이 그림은 한 장이 아니었다.

치부만 겨우 가린 가죽옷을 입고 포효하는 천호와, 바로 옆에서 전위적인 자세를 하고 있는 루시엘.

겨울왕으로 추정되는 거대한 악신과 검을 겨루고 있는 천호와 멀리서 그 모습을 안타깝게 바라보는 루시엘.

미트라로 추정되는 성검을 뽑아 들며 포효하는 천호와 바로 옆에서 다시 전위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는 루시엘.

캐리어를 열며 포효하는 천호와 함께 울부짖는 루시엘.

야릇한 표정으로 사령술을 펼치고 있는 라구엘.

거대한 빛의 검으로 역병신의 팔을 베어 내는 천호.

천호도 더 이상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기 힘들었다. 입꼬리가 자꾸만 살살 올라갔고, 루시엘은 너무 민망해서 눈물이 새어 나올 지경이 되었다.

‘아니, 난 왜 끼는데! 그리고 왜 저런 모습인데!’

라구엘이 속으로 절규하는 가운데 일행은 마침내 레드카펫을 모두 지났다. 그림 바로 아래 당도하니 이번엔 아름다운 하프 소리가 들려왔다.

“반가워, 정의의 성채에 온 걸 환영하는 바이야.”

노래하듯 들려온 목소리는 무척이나 듣기 좋았다. 단순히 아름답기만 한 것이 아니라 듣는 이의 마음을 평온하게 하는 힘이 담겨 있었다.

“음악의 신이란다. 널 위해 만든 노래는 마음에 들었니?”

하프를 연주하며 나타난 푸른 머리칼의 여인이 웃으며 말했다. 청량한 가을 하늘을 연상시키는 푸른 머리칼이 무척이나 인상적인 미인이었는데, 몸매가 실로 대단했다.

“내 그림도 마음에 들고?”

다시 명랑한 목소리와 함께 새로운 여인이 나타났다. 옷은 음악의 신과 마찬가지로 하얀, 천사들이 곧잘 입는 하늘하늘한 드레스였지만 머리색은 음악의 신과 정반대였다. 피처럼 붉은 머리칼이 풍성하게 자라 여인의 어깨는 물론이고 허리까지 뒤덮고 있었다. 어찌나 긴지 엉덩이 골에까지 머리칼이 닿을 지경이었다.

“나는 회화의 신이란다.”

눈인사를 하며 나타난 회화의 신은 음악의 신의 곁에 섰다. 체형은 달랐지만 얼굴은 꼭 닮은 두 사람이었다.

“쌍둥이 자매거든.”

[두 사람 모두 예술의 신의 영애들이다.]

음악의 신이 먼저 웃으며 말하자 미트라가 작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음악의 신과 회화의 신.

정화의 신과 마찬가지로 전투에는 능하지 않아 보였지만,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신력이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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