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09화 (109/211)

* * *

[그대여! 너무 멋지다! 너무너무 멋지다!]

미트라가 신이 나서 외쳤다. 마치 에이젤처럼 폴짝폴짝 뛰고 있을 것 같았다.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었다.

카블라카사와 달리 눈앞의 대마법 쇼가 스크롤에 의한 것이란 걸 아는 그녀였지만, 단지 아는 것뿐이었으니까.

당장 천호의 눈앞에 당도했던 캐리어 안에만 스크롤이 스무 개 가까이 들어 있었다. 각각의 황금 신상도 그만큼 가지고 있다면 스크롤의 숫자만 이백여 개에 달하니, 이렇게 난사해도 될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많긴 많았지만, 당장 충원할 수 있는 물건이 아니었으니까. 그리고 천호는 스크롤 하나가 얼마쯤 하는지 대강이나마 알고 있었다.

‘아들아, 목숨보다 귀한 게 없다. 쓸 땐 써야 한다.’

그래서 대출혈을 감수했다. 삼천의 군세는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었다. 난전이 펼쳐지면 천호 자신은 몰라도 천사들이나 영웅들은 목숨을 잃거나 크게 다칠 가능성이 있었다.

‘아니, 나도 안심 못 하지.’

전쟁터에서 제일 무서운 게 눈 없는 화살이었으니까. 때문에 천호는 마법 난사를 선택했다. 마물들의 군세에 대혼란을 일으켜 개인과 군대의 싸움이라는 대전제 자체를 무너트렸다.

천호는 집중했다.

청각을 차단해 굉음을 막았다.

잠깐이지만 시각조차 차단해 버렸다.

신성 포식.

그 힘으로 분간했다. 수천 마물들 사이에 자리한 존재들을 찾아냈다.

이 정도 숫자의 마물들이 모였는데 악신이 없을 리가 없었다.

‘빙고.’

과연 존재했다. 여섯 개의 기운을 찾아낼 수 있었다. 그리고 천호는 주저 없이 가장 큰 기운을 향해 몸을 날렸다.

콰앙!

해방된 청각을 통해 굉음을 들었다.

해방된 시각을 통해 목표까지의 거리와 그 사이에 놓인 모든 것들을 인지했다.

여명의 검이란 이름 아래 하나 된 기예들 속에서 신속의 스칸다가 소리를 높였다. 천호의 발끝을 깃털보다 가볍게 만들었다.

쾅! 쾅! 쾅!

폭발 사이를 누볐다. 폭발로 일어난 바람을 이용했다. 그것들 모두와 하나 되어 질풍이 되었다.

[꺄아!]

미트라가 다시 외쳤다. 평소보다 훨씬 더 흥분한 것 같았다.

그리고 정말로 그러했다. 천호 어머니께 받은 옷 덕분에, 태어나 처음으로 받은 옷 선물에 대흥분 상태인 그녀였다.

루시엘이 질주하는 천호를 보았다. 네 장의 날개를 활짝 펴며 치유의 신의 깃발을 높이 세웠다. 순백의 용갑주가 그녀에게 반응했다. 루시엘의 힘을 거의 두 배 가까이 증폭시켜 주었다.

“치유의 검이여!”

루시엘이 크게 외치며 손을 뻗었다. 그러자 길이가 5미터는 됨직한 검들이 허공에 형성되었다. 붉고 거대한 그것들이 천호의 뒤를 따라 쏜살처럼 날았다.

목적은 천호의 호위였다. 질주하는 천호의 등 뒤를 지키는 용도였다.

몇 개인가는 천호를 앞지르기까지 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 천호와 카블라카사를 잇는 일종의 통로가 형성되었다.

“미친!”

카블라카사가 욕지거리를 토했다. 붉은 눈을 빛내며 신력을 개방했다.

붉은 머리칼의 인간 여인 형상을 하고 있던 그녀의 등 뒤로 거미의 다리가 솟구쳐 올랐다. 팔과 다리를 털 달린 외피가 뒤덮었다.

거미의 신.

대미궁에서 그녀가 차지한 신위였다. 동시에 그녀의 본질을 드러내는 단어이기도 하였다.

그녀는 대미궁에서 태어나지 않았다.

미궁 세계의 존재 또한 아니었다.

다른 세계. 대미궁에 침식된 여러 세계 가운데 하나.

카블라카사가 비명 같은 울부짖음을 토했다. 그녀의 전신에서부터 붉은 신력이 불꽃처럼 일어났다.

천호는 그것을 보았다. 그럼에도 멈추지 않았다.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태양은 이제 자신의 편이라고.

비유적인 표현이 아니었다. 사실 그대로를 드러낸 말이었다.

눈앞의 악신은 결코 약하지 않았다.

겨울왕보다는 한 수 아래였지만, 결코 무시할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아이테리움의 방문하기 이전의 천호 자신이라면- 아니, 당장 마키나와 대련을 펼치기 이전의 천호 자신이었다면 사투를 각오해야 할 대상이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달라졌다.

달라져 버리고 말았다.

용갑주가 포효했다.

천호가 가진 태양의 마력에 반응했다. 그리고 그 순간 천호가 가진 신성이 발동했다. 저 하늘에 존재하는 태양으로부터 힘을 이끌어 냈다.

여자가 말했다.

녹화된 영상이었지만 지금의 상황을 예견했기에, 언젠가 지금 같은 날이 올 거라 믿어 왔기에 마음에 두었던 말을 읊조렸다.

“저 하늘에 태양이 존재하는 한, 그대는 결코 쓰러지지 않으리.”

그것은 태양의 가호.

태양의 신성을 가졌기에 써 내려갈 수 있는 신화.

태양의 힘이 천호와 함께했다. 용갑주가 태양의 힘을 증폭시켰다.

그리고 그것이 갈무리되었다. 천호는 그 힘을 어찌해야 할지 알았다. 새가 날갯짓을 하듯 자연스럽게 미트라를 들어 올렸다.

[아아! 아아아!]

미트라가 탄성을 토했다. 태양의 힘이 미트라의 전신을 뒤덮었다. 미트라와 하나가 되었다.

카블라카사는 숨을 헐떡였다. 자신에게 쇄도하는 눈부신 황금의 검에 눈이 멀어 버릴 것만 같았다.

‘안 돼, 안 돼, 안 돼!’

말조차 만들지 못 했다. 그저 악을 쓰며 신력을 모조리 쏟아 냈다.

천호의 평은 옳았다.

카블라카사는 결코 약하지 않았다. 그녀의 신성은 겨울왕을 위협할 수준이 되었다.

하지만 통제되지 못한 힘이었다. 겁에 질려 그저 내뻗은 힘에 불과했다.

천호는 눈앞에서 펼쳐지는 신성의 파도를 보았다. 노도처럼 덮쳐 오는 그것을 향해 미트라를 휘둘렀다.

일수.

레온의 것과 같았다.

미트라의 것과 같았다.

용사의 검.

흉내 내기 따위가 아닌, 설사 미숙하다 할지라도 인정하지 않을 수 없는 진정한 용사의 검.

[여명의 검이여.]

미트라가 달뜬 목소리로 말했다. 뜨거운 숨과 함께 토해 냈다.

일검이 노도를 갈랐다.

신성을 베어 냈다.

* * *

전장 전체가 정지했다.

황금 신상들은 더 이상 마법을 난사하지 않았다. 굉음은 멎었고, 마물들의 비명과 울부짖음도 사라졌다.

“미친.”

실리키엘이 말했다. 루실리아에게 늘 고운 말 예쁜 말만 써야 한다며 욕을 하지 못하게 하는 그녀였지만, 어쩔 수 없었다. 눈앞의 광경을 예쁘게 표현할 말이 그녀에게는 없었다.

루실리아가 커다란 눈을 깜박이며 보았다. 눈앞의 광경에서 옛 기억을 떠올렸다. 미궁 세계에 소환되기 전에 보았던 것. 갓난쟁이라 해도 좋을 시절의 기억이었지만 너무나 인상적이었기에 뇌리에 남아 있던 기억.

‘마왕님?’

한번 휘둘러 천지를 불태우나니.

마왕님의 일격을 떠올렸다. 전혀 다른 힘임에도 불구하고 그리한 것은 똑같이 인상적이었기 때문이다.

마키나가 여섯 자루의 검을 모두 늘어트렸다.

사스치엘이 바보 같은 웃음을 흘렸고, 엘리엘 역시 그러했다.

아우라엘이 잠시 자신의 창을 돌아보았다. 라구엘이 어깨를 늘어트렸고, 에이젤이 제자리에서 폴짝 뛰어올랐다.

“용사님.”

루시엘이 말했다. 잘려 나간 분지를 보았다. 대지에 생긴 거대한 상처에 옛 기억을 떠올렸다.

사실 그렇게 오래된 기억도 아니었다.

불과 몇 달 전.

대미궁 1층에서 천호를 처음 만났던 날.

랫 오거를 거침없이 쓰러트리는 천호를 보며 놀랐던 자신. 동시에 대박이라며 희망을 불태우던 자신.

저도 모르게 눈시울을 붉혔다. 소환의 돌을 손에 쥐어 주며 도망치라 말씀하셨던 지부장님의 얼굴이 떠올랐다.

“용사님.”

루시엘이 다시 말했다. 입술을 깨물었고, 더 이상 참지 못해 천호를 향해 쏜살같이 날았다.

“우와아아아!”

에이젤이 폴짝 뛰며 소리쳤다. 락 드워프들이 호응했고, 천사들과 영웅들 역시 목소리를 높였다.

마물들도 다시 소리를 내었다.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달리기 시작했다. 오직 분지를 벗어나기 위해 저들끼리 짓밟으며 도망치고 또 도망쳤다.

천호는 서 있었다.

카블라카사는 쓰러져 있었다. 분지를 가르는 거대한 검의 궤적 위에 나자빠져 움직이지 못 했다.

여명의 검이 카블라카사의 신성을 잘라 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분지를 파헤쳤다. 길이만 수십 미터에 달할 거대한 검의 상흔을 지면에 남겨 놓았다.

[아, 아, 아!]

[그대여! 그대여! 그대여!]

잠시 멍해 있던 미트라가 환호했다. 환희에 찬 목소리를 연신 토하며 무척이나 기뻐했다.

천호가 강해졌다.

정말로 강해졌다.

[멋지다 그대여, 정말정말 멋지다. 그대여, 뭔가 바라는 것이 있나? 뭐든지 해 주겠다. 으앙은 어떤가? 으앙!]

대흥분에 대흥분이 겹쳐 살짝이지만 정신 줄을 놓은 미트라였다.

천호는 그런 미트라에게 으앙을 요구하거나 언제나처럼 황금색 보석을 쓰다듬는 대신 긴 숨을 토했다.

그리고 속으로 생각했다.

‘너무 무리했다.’

그야말로 전력을 다했다. 그 결과 10층의 악신을 일격에 쓰러트리는 쾌거를 이룩하긴 했지만 당장은 손가락 하나 까딱할 힘이 없었다.

카블라카사가 조금만 더 강했다면.

아니, 겁에 질려 쫓기듯 힘을 쓰는 것이 아니라 제대로 힘을 발하였다면.

결과가 달라졌을지도 몰랐다.

치명상까지는 몰라도 일격에 쓰러트리지는 못 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그러니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할 정도로 전력을 다해서는 안 되었다.

아버지께서 아셨다면 불호령을 내리실 일이었고, 평소의 천호였다면 결코 하지 않았을 일이었다.

하지만 후회되진 않았다. 눈앞의 결과에 천호 또한 만족하였다.

여명의 검.

천호 자신의 용사의 검.

가슴이 벅차올랐다.

아직 미트라는 물론이고 레온의 것에도 미치지 못했지만, 그렇다 해도 가슴이 두근거렸다.

‘아버지.’

조금이지만 가까워졌다. 아버지가 보시는 광경을 공유할 그 날이 이제는 정말 올 것만 같았다.

“용사님!”

반가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루시엘의 것이 분명했다.

[오늘은 봐주겠다.]

미트라가 말했고, 천호는 마지막 힘을 다해 양팔을 벌렸다.

루시엘이 천호를 와락 끌어안았다. 간신히 서 있던 천호는 당연히 버티지 못했고, 루시엘과 함께 눈밭을 뒹굴었다.

그리고 시작된 빛의 창의 향연.

천호는 눈을 감았다. 루시엘과 함께 승리를 만끽했다.

* * *

“어, 음… 손속에 사정을 두셔서 감사합니다.”

대략 삼십여 분 뒤.

천호가 카블라카사의 신성을 포식하는 동안 나머지 일행은 분지에서 마물들을 완전히 몰아냈다.

여전히 숫자로는 일행을 압도하는 마물들이었지만, 아예 싸울 엄두조차 내지 못 했기에 어려울 것이 없었다.

에이젤만 봐도 경기를 일으키며 도망치는 놈들이었다.

어찌 되었든 그렇게 모든 일이 마무리되었을 때.

마키나가 어색한 얼굴로 말했다.

아무래도 천호가 자신을 완전히 봐준 걸로 착각한 모양이었다.

“아뇨, 덕분에 많은 것들을 배웠는걸요. 저야말로 감사합니다.”

실제로 마키나와의 대련이 없었다면 여명의 검을 만들어 내지 못 했을 테니까.

[그래도 정말 대단하다. 세 시간여의 대련만으로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니까.]

[그대는 대단하다. 정말정말 대단하다.]

[헤헤, 헤헤헤.]

미트라가 헤실헤실 웃으며 말했다. 아직도 정신 줄을 살짝 놓은 상태인 모양이었다. 나중에 얼마나 이불킥을 하려고 저러는 것일까.

그래도 귀여웠기에, 그리고 천호 자신이 강해졌다는 사실에 저리 기뻐하는 모습이 고마웠기에 천호는 무어라 하지 않았다.

‘나중에 놀려야지.’

민망해할 때 놀려야 제 맛이었으니까.

[뭔가 음흉한 생각을 하는 것 같지만 오늘은 괜찮다.]

[오늘은 너무너무 기분이 좋다.]

귀여우셔라.

천호는 황금색 보석을 몇 번 쓰다듬은 뒤 다시 마키나를 보았다.

천호의 말을 겸양으로 해석했는지, 존경의 눈빛을 보내는 녀석이었다.

“일단 안으로 드시지요.”

빨리 끝나기는 했지만 전투를 했다.

더욱이 황금 신상들의 상태도 점검해야 했다. 첫 번째 말고 나머지 황금 신상들에는 뭐가 들어 있는지, 이전에 온 캐리어처럼 뭔가 다른 메시지나 통신 장비가 들어 있지는 않은지.

물론 대장간을 찾은 가장 큰 이유인 신기 탐색도 해야만 했고.

“용사님, 가요.”

루시엘이 천호의 팔을 끌어안으며 배시시 웃었다. 미트라만큼이나 기분이 좋아 보이는 그녀였다.

태초의 대장간.

다섯 여신들의 신기와 미트라가 만들어진 장소.

천호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엉큼한 Lv7이 되었습니다.]

[미궁 세계가 당신의 놀라운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제13장?이브나일의 신기

태양의 탑.

파이엔의 현존하는 건축물들 중에서 가장 오래된 그곳은 태양과 가장 가까운 장소이기도 했다.

그 최상층.

여자의 방에서 남자와 여자는 한 침대에 누워 같은 곳을 보고 있었다.

“하나는 예쁘고, 다른 하나는 귀여워.”

“귀…여워?”

전자는 적극 동의했지만, 후자는 살짝 힘들었다.

여자의 기억에서 추출한 영상 속에는 아들과 천사와 성검이 있었다. 예쁘다는 건 천사였고, 귀엽다는 건 성검이었다.

여자는 생명의 본질이라 할 수 있을 영혼을 꿰뚫어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 때문에 평범한 사람들처럼 성검을 단지 검으로만 보지 않았다.

그런 여자가 본 것을 그대로 형상화시킨 영상답게 성검 위에는 여인의 형상이 약간 흐릿한 형태로 자리하고 있었다.

검푸른 머리칼과 황금빛 눈동자를 가진 여인.

성검의 검령이 분명했다.

예뻤다. 아니, 여자와 마찬가지로 예쁘다는 표현보다는 아름답다는 표현이 어울리는 여인이었다.

때문에 남자는 고개를 살짝 기울였다.

척 보기에도 고고하고 도도하고 아무튼 쿨하면서도 시크한 느낌이 드는 미녀인데 귀엽다니.

“귀여운 게 맞아. 보면 알 수 있어. 괴롭히고 싶다. 괴롭히면 더 귀여워질 상이야. 분명해.”

“어, 음, 그래.”

눈을 반짝반짝 빛내는 여자의 말에 남자는 일단 동의해 주었다.

마지못해 한 동의에 가까웠지만 여자는 크게 신경 쓰지 않았다. 남자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며 우히히 웃음을 흘렸다.

“우리 아들 인기 많다. 그치?”

“흠.”

여자의 주장에 따르면 둘 다 아들을 무척 좋아한다는 모양이었다.

“그래서 두 벌을 준비한 건가?”

“응응, 이런 건 공평해야 하니까.”

여자는 꽤나 기분이 좋아 보였다.

아들이 없어진 이후 늘 저기압이었는데, 그래도 무사히 잘 있는 모습을 보고 나니 안심한 모양이었다.

“역시 당신 아들이야. 천사랑 성검도 데리고 다니고. 자세한 사정은 모르지만 꽤 잘나가고 있는 게 분명해.”

“흠.”

포커페이스의 원조답게 멋진 표정을 짓는 남자였지만 속으로는 여자와 비슷한 웃음을 흘렸다.

이런 사태를 대비해 어릴 때부터 온갖 것들을 다 가르쳐 왔으니까.

교육의 성과가 있다는 사실에 뿌듯함을 느꼈다.

“캐리어들은 잘 도착했을까?”

“잘 도착했을 거야. 도착해야만 해.”

헤실헤실 웃던 여자의 표정이 조금이지만 딱딱해졌다.

남자는 몸을 살짝 움츠리며 동의했다.

“그래, 잘 도착했을 거야.”

그리고 정말 그래야만 했다. 한 번만 더 캐리어 준비를 했다가는 성왕국은 물론이고 인근의 동맹국들이 줄줄이 파산할 터였다.

“아무튼 다행이야. 태양의 마력을 깨우쳐서.”

여자가 긴 숨을 토하며 그리 말했다. 사실 안심하게 된 가장 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태양의 마력.

아들이 여자의 피를 온전히 이어받았다는 증거.

여자가 남자의 손을 깍지 껴 잡았다. 남자는 그런 여자의 손을 거부하는 대신 마주 손에 힘을 주었다.

티를 내지 않았을 뿐 여자는 그간 많이 불안해했었다.

아들은 누가 봐도 인간이었으니까.

여자의 위대한 피를 물려받은 증거가 조금도 드러나지 않았으니까.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아들은 태양의 마력을 각성함으로써 여자의 아들임을, 위대한 피를 이어받은 존재라는 것을 입증하였다.

여자가 안도하는 이유는 두 가지였다.

하나, 미궁 세계라는 곳이 어떤 곳이든 이제 아들의 생존 가능성은 수직 상승했다. 태양의 마력에는 그 정도의 힘이 있었다.

둘, 아들은 이제 태양의 탑의 정당한 상속권자였다. 탑의 누구도 시비를 걸 수 없었다. 여자 자신이 가진 것들을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껏 물려줄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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