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08화 (108/211)

[아아, 아아아!]

미트라가 돌연 소리쳤다.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뒤를 돌아보았다. 실리피안 고원의 하늘을, 황금색 보석 너머로 펼쳐져 있는 분지의 하늘을 바라보았다.

아직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천호는 알 수 있었다.

태양의 마력이 알려 주었다.

태양의 마력이 공명하고 있었다.

[어머님!]

미트라가 소리쳤다.

루시엘이 허공에서 멈추었다.

악신들이 저도 모르게 하늘을 올려다보았고, 지상에서 전투를 준비하던 천사들과 영웅들 역시 같은 곳을 보았다.

날아오고 있었다.

황금색 캐리어가.

커다란 그것이 섬광처럼 하늘을 가르고 있었다.

악신들은 저것이 무엇인지 몰랐다.

마키나도 몰랐고, 수색조에 속한 천사들과 영웅들 역시 몰랐다.

아우라엘을 필두로 하는 천사 3인방과 락 드워프들, 사스치엘과 동물형 전투 천사들은 캐리어에 대해 알았다.

하지만 그렇기에 희열의 순간이 짧았다.

분명 대단한 것들이 들어 있을 터였지만, 겨우 저것 하나로 전황을 뒤집을 수는 없었으니 말이다.

“용사님?

루시엘이 눈을 깜박였다.

저도 모르게 의문형으로 말한 것은 천호의 표정 때문이었다.

천호가 미소 짓고 있었다.

아예 시원한 웃음을 터트렸다.

왜, 어째서.

루시엘은 다시 하늘을 돌아보았다. 눈을 크게 떴고, 에이젤과 거의 동시에 소리쳤다.

“하나 더?!”

“또 와요!”

아니, 그 정도가 아니었다.

겨우 ‘하나 더’가 아니었다.

[맙소사, 어머님.]

미트라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그리할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캐리어가 천호 앞에 당도한 그때.

아홉 번째 캐리어가 하늘을 가로질렀다.

* * *

카블라카사는 중층의 악신이었다.

중층의 악신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그녀는 심층에 자리한 악신들과는 그 뿌리가 달랐다.

물론 그렇다 하여 대미궁의 섭리에서 벗어난 존재는 아니었다. 마신의 의지에 반하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중층의 악신들은 대부분 심층의 악신이 되기를 소망하였다. 존재의 승격이라는 본능적인 갈망 때문이었다.

카블라카사도 그리 다르지 않았다. 어차피 대미궁에 종속된 몸이었다. 하나하나가 독립된 군벌처럼 살아가는 중층의 악신들이었지만 실질적인 자유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중층의 악신들은 저마다 다른 방법으로 힘을 키워 나갔다.

베르가프의 경우처럼 미궁 세계의 존재와 하나가 되는 길을 택하는 자도 있었고, 소울 이터처럼 강력한 이의 영혼을 타락시켜 부리는 자도 있었다.

카블라카사는 양쪽 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다른 세계의 존재와 하나가 된다는 것은 온전한 자신을 버리는 것과 같았다. 의식의 주도권을 누가 잡든 간에 그렇게 만들어진 존재는 더 이상 카블라카사 자신이 아니었다.

소울 이터의 방식은 결국 기생충과 다를 바가 없었다. 카블라카사는 그런 식으로 스스로의 존재를 격하시키고 싶지 않았다.

때문에 카블라카사는 전통적인 방식을 따랐다.

수련과 격전을 통해 스스로를 성장시켰다. 자신을 좀 더 강하게 해 줄 강력한 무구들을 수집하였다.

태초의 대장간을 노린 이유는 단순하고 명확했다.

카블라카사 자신뿐만 아니라 군대까지 무장시킬 질 좋은 무구들의 확보.

준비는 충분했다.

카블라카사 자신과 수하인 소악신 다섯, 삼천에 달할 마물 군단.

계획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태초의 대장간의 까다로운 출입 조건은 완수되었고, 마침내 대장간으로 통하는 입구가 모습을 드러냈다.

승산은 차고 넘쳤다.

영웅들과 천사들이라고 해 봐야 그 숫자는 스물 남짓에 불과했다.

이쪽은 자그마치 백오십 배에 달하는 대병력이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카블라카사 자신과 다섯 악신들이 있었다. 5급 전투 천사 따위는 가볍게 꺾을 수 있었다.

마키나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애당초 무기술로 제압해야 한다는 조건이 더러웠을 뿐, 대련이 아닌 진짜 싸움이라면 카블라카사 자신이 훨씬 더 강했다.

마키나를 검술로 쓰러트린 자.

솔직히 신경 쓰였다. 난적이었다. 하지만 놈은 지쳤다. 마키나와 세 시간이나 대련을 했으니 지금은 평상시 기량의 반의반도 발휘하지 못하리라.

승률은 압도적이었다.

승리 조건은 모두 갖추어졌다.

하지만 카블라카사는 저도 모르게 돌진하던 발걸음을 멈추었다. 애병인 장창을 늘어트린 채 멍하니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섯 소악신도 마찬가지였다. 돌진하던 마물들도 약간의 시간 차가 있을 뿐 결국엔 다들 멈춰 서서 하늘을 쳐다보았다.

하늘을 가르는 아홉 개의 섬광.

황금으로 빛나는 그것들이 강림하고 있었다.

* * *

아홉 개.

하나가 아닌 아홉 개.

한 번에 날아오지 않았다. 순차적으로, 마치 앞서가는 녀석의 뒤를 좇듯이 차례차례 허공에 나타났다.

루실리아는 몇 번이나 하늘과 땅과 옆을 번갈아 보았다.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던 에이젤이 멍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하지만 실리키엘과 나머지 천사들- 그러니까 이곳에 와서 새로 합류한 이들과는 표정이 달랐다.

멍한 건 똑같았지만 에이젤의 멍함에는 감출 수 없는 희열이 어려 있었다.

그래서 루실리아는 물어봤다.

“저거, 우리 편이야?”

우리 편.

단순 명료한 그 말에 실리키엘이 숨조차 멈춘 채 에이젤을 돌아보았다. 중층의 천사들과 영웅들 또한 마찬가지였다.

에이젤은 눈을 깜박였다. 루실리아의 물음을 생각했고, 함박웃음을 지어 보였다. 제자리에서 번쩍 뛰어오르며 날개를 펼쳤다. 양팔과 다리를 활짝 벌리며 소리쳤다.

“우리 편이야!”

* * *

루시엘은 눈을 깜박였다.

황금빛 캐리어의 등장과, 캐리어의 숫자가 아홉 개라는 사실 때문이 아니었다.

‘너, 너무 커요?’

천호를 향해 똑바로 날아오는 캐리어가 너무 컸다.

이전에 날아온 캐리어가 이름 그대로 여행 가방 수준이었다면, 이번에는 아니었다. 거의 레온의 석관만 한? 아니, 그것보다 더 큰 수준이었다.

“어, 어머님?”

저 안에 대체 무엇이 들어 있을까.

뭐가 들어 있길래 저렇게 큰 것일까.

루시엘이 저도 모르게 말한 그때, 미트라는 천호와 같은 곳을 보았다. 마침내 당도한, 천호 앞에 기둥처럼 우뚝 선 캐리어를 바라보았다.

‘우리 아들, 힘내!’

캐리어 전면에 대문짝만 하게 붙어 있는 글씨는 낯익었다.

천호는 실실 웃었고, 미트라 역시 그러했다. 기쁜 것도 기쁜 것이었지만, 눈앞의 상황에 그저 웃음만이 나왔기 때문이다.

쿵! 쿵! 쿵! 쿵! 쿵!

굉음이 이어졌다.

하늘에서 쏟아져 내린 아홉 개의 궤적이 줄을 이어 지상에 강림했다.

아홉 개의 캐리어는 아홉 개의 기둥이 되었다.

뭔가 있다.

뭔지는 몰라도 뭔가가 있다.

악신들과 그 군대는 분지 중턱에 완전히 정지했다. 분지 안의 모두가 숨을 멈추고 분지의 중심을, 아홉 개의 기둥들을 바라보았다.

빛이 일었다.

천호 앞에 자리한 첫 번째 기둥에서 한 줄기 빛이 방사되더니 확장되어 여인의 모습을 갖추었다.

눈부시게 아름다운 여인이었다.

천사들조차 입을 벌리고 멍하니 바라볼 수밖에 없는, 지고의 미라 해도 좋을 존재였다.

황금빛 머리칼과 그 사이에 돋아난 네 개의 뿔.

천호의 것과 같은 황금빛 눈동자.

순백의 드레스를 입은 그녀가 천호에게 미소 지었다.

“안녕, 아들. 밥은 잘 챙겨 먹고 있지?”

통신이 아니었다. 기록된 영상이었다.

하지만 천호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네, 엄마.”

“뭐라고요?”

등 뒤에서 들린 멍한 목소리는 마키나의 것이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아무도 마키나의 말에 집중하지 않았다. 다들 귀를 쫑긋 세우고 황금빛 머리칼의 여인만을 바라볼 뿐이었다.

그녀가 말했다.

“열두 개 모두 도착했는지 모르겠구나. 그래도 여섯 개 이상이면 성공이겠지.”

천호와 루시엘은 반사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다른 이들도 그러하였고, 덩달아 악신들과 마물들도 하늘을 보았다.

저 먼 곳에서 황금이 빛났다. 새로운 궤적 세 개가 하늘에 그려지고 있었다.

“한 부대는 맞춰야 하니까.”

의미를 알 수 없는 말을 하며 생긋 미소 지은 여자는 애교 있게 어깨를 으쓱였다.

“아들, 그쪽 상황은 잘 몰라. 어쩌면 절체절명의 위기 상황일지도 모르고. 만약 정말로 위기 상황이라면 붉은색 버튼을 누르고, 평온한 상황이면 녹색 버튼을 누르렴.”

말을 마친 순간 덜컹 소리와 함께 캐리어 뚜껑 일부가 열렸다.

천호는 주저 없이 붉은색 버튼을 눌렀고, 여자는 바로 반응했다. 마치 주문을 외우듯 빠르게 말했다.

“자율 기동 용갑주 기동.”

말을 마친 그 순간 여덟 개의 캐리어가 동시에 움직였다. 사각형인 몸체에서 팔과 다리뿐만 아니라 머리까지 솟구쳐 올랐다.

용의 머리를 가진 여덟 개의 황금 신상.

그것들이 주변을 파악하였다. 어느 순간 발걸음을 내디뎠고, 저들끼리 원을 그리고 섰다. 천호 일행은 물론이고 태초의 대장간의 입구까지 안에 넣을 정도로 큰 원이었다.

여덟 신상이 동시에 땅을 밟았다. 그것으로 땅 위에 마법진이 그려졌다. 새하얀 눈밭 위로 황금빛 선이 빛났고, 여덟 신상 사이를 연결했다. 순식간에 황금색 장벽이 펼쳐졌다.

“어떤 상황에 처해 있든, 시간을 벌어 줄 거란다. 그러니 그사이에 준비를 하자꾸나.”

여자가 말했다. 홀로 남은 첫 번째 캐리어의 뚜껑이 절로 열렸다. 옷 가방이라기보다는 냉장고 문이 열리는 기분이었다.

그리고 그 순간 카블라카사가 크게 소리쳤다. 악신이기 이전에 노련한 전사인 그녀는 더 이상 현혹되지 않았다.

빛의 장벽이 펼쳐졌고, 그 안에는 대장간의 입구가 있었다. 여기서 시간을 지체하면 대장간의 입구가 다시 닫힐 수 있었다.

정체 모를 캐리어가 날아왔다.

여덟 개의 신상에서 느껴지는 힘은 강대했다.

하지만 주저할 때가 아니었다.

“돌진하라!”

카블라카사가 명하였다. 소악신 다섯이 함께 외쳤고, 마물들은 공포를 잊었다. 악신들의 명에 따라 다시 노도가 되어 돌진했다.

하늘과 땅이 울렸다.

문자 그대로 대지를 질타하는 맹진이었다.

하지만 천호는 그들을 보지 않았다.

나머지 일행 역시 마찬가지였다. 심지어 마키나조차 캐리어 안을 바라보기 바빴다.

“힘 좀 썼단다.”

파이엔의 최강대국인 성왕국의 국고를 탕진시키고, 태양의 탑의 뿌리가 살짝 뽑힐 정도로만.

캐리어 안은 실로 화려했다.

황금빛으로 번쩍번쩍이는 내부는 삼단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최상단에는 각종 포션이 가득했다. 얼핏 세어도 수십 병은 되는 것 같았다.

그리고 제일 아래, 하단에는 원기둥 형태의 가죽 통들이 잔뜩 꽂혀 있었다.

일회용 스크롤들이 분명했다.

숫자는 어림 세어 스물.

그리고 중단.

상단과 하단을 합친 것보다 더 큰 공간.

아버지의 것과 흡사하게 생긴 갑옷이 있었다.

그리고 그 갑옷은 한 벌이 아니었다.

남성용 갑옷이 하나, 여성용 갑옷이 둘.

가운데 놓인 푸른 남성용 갑옷은 천호의 것이었다.

양옆에 놓인 여성용 갑옷 둘은 미트라와 루시엘의 것이 분명했다.

“어느 쪽인지 모르겠으니까. 일단 둘 다 준비했단다.”

약간은 영문 모를 이야기를 하며 여자는 우아하게 웃었고, 루시엘은 눈을 깜박였다. 정신세계 속에서 미트라는 저도 모르게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시동어는 같단다.”

여자가 윙크하며 말했다. 그 순간 장벽 너머에서 굉음이 터졌다. 여덟 신상들이 마물들을 향해 일회용 스크롤들을 난사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무시무시한 폭발음 속에서 천호는 다시 한 번 웃었다. 자신을 돌아보는 루시엘에게 고개를 끄덕여 준 뒤 크게 소리쳤다.

“아머드!”

천호의 옷이 해체되었다. 동시에 눈앞에 자리하고 있던 푸른 갑옷이 빛으로 변했다. 갑옷에 박혀 있던 일곱 개의 보석들이 천호의 몸 곳곳에 자리했고, 다시 한 번 갑옷을 형상화시켰다.

착용한 순간 천호는 직감했다.

아버지의 것과 같았다.

동일한 성능을 가진 용갑주였다. 더욱이 천호가 가진 태양의 마력에 호응하고 있었다.

천호는 고개를 돌렸다. 루시엘을 보았고, 루시엘은 입술을 움츠렸다.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이내 크게 소리쳤다.

“아머드!”

루시엘의 옷이 해체되었다. 빛이 루시엘의 몸을 뒤덮었고, 일곱 개의 보석이 그녀의 몸 곳곳에 자리했다. 갑옷이라기보다는 드레스에 가까운, 여자가 입고 있는 것과 비슷한 형태의 새하얀 용갑주를 형성하였다.

스스로를 돌아본 루시엘이 환하게 미소 지었다. 변신 과정을 지켜보기 위해 눈 한 번 깜박이지 않았던 천호는 그런 루시엘에게 똑같이 미소로 화답했다.

그리고 천호는 미트라를 돌아보았다. 황금색 보석을 어루만지며 말했다.

“미트라도 해 봐요.”

하나는 미트라의 몫이 분명했으니까.

어머니께서 다른 누군가를 보고 두 번째 여성용 용갑주를 준비하시지는 않았을 테니까.

[아, 아머드!]

미트라가 외쳤고, 용갑주가 변모했다. 아름다운 순백의 검집이 되어 미트라를 감싸 안았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현실의 미트라는 검이었으니까.

하지만 미트라는 실망하지 않았다. 오히려 숨이 멎을 만치 기뻐했다.

바뀐 것은 현실의 옷인 검집만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무슨 원리인지, 대체 어떤 힘을 사용한 것인지 까지는 알 수 없었다. 정신세계 속 미트라의 옷이 바뀌었다. 루시엘의 것과 비슷하면서도 다른 형태의 새하얀 용갑주. 갑옷이나 드레스라기보다는 평소 입는 것과 흡사한 정복 형태의.

미트라가 여자를 보았다. 여자는 마치 그런 미트라와 눈이 마주치기라도 한 것처럼 살짝 윙크했다.

“내게는 다 보인단다.”

작게 말한 여자는 어깨를 폈다. 다시 한 번 천호를 보았다.

“힘내, 아들. 언제 어디서든 응원하고 있으니까.”

언제나 네 편이니까.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숨을 크게 고른 뒤 감각을 확장시켰다. 장벽 너머의 싸움에 귀를 기울여 보았다.

신상들이 노도를 막는 방파제가 되고 있었다. 하지만 저들에게만 맡길 수 없었다. 악신들이 있으니, 천호 자신이 직접 나서야만 했다.

천호는 캐리어 안에 비치된 엘릭서 세 병 중에 하나를 꺼내 마셨다. 단번에 대련으로 소진된 체력과 마력을 회복시킨 뒤 바로 전투 준비를 개시했다.

천호는 일단 가죽 통을 열었다. 인식 장치를 해제한 뒤 천사들과 영웅들에게 스크롤들을 나눠 주었다.

마키나가 반쯤 열렸던 대장간의 문을 닫았다. 수성을 위해 손에서 놓았던 검들을 다시 잡았다.

루실리아는 스크롤을 손에 쥐는 대신 두 주먹을 움켜쥐었다.

남두무영각과 북두무영권이 그녀의 무기였다. 그 외의 것은 필요하지 않았다.

라구엘이 마도서를 펼쳤다. 아우라엘이 창을 쥐었고, 에이젤은 잠시 주변을 둘러보다 라구엘 옆에 자리를 잡았다.

천호는 숨을 길게 토했다. 누가 알려주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용갑주를 착용한 순간 여덟 신상들과 연결되었다. 아니, 열두 개의 캐리어 모두와 이어졌다. 수족처럼 신상들을 부릴 수 있었다.

장벽을 해제한다. 악신들과 정면 대결을 시작한다.

하지만 그에 앞서 마지막으로 해야 할 일이 있었다.

여자가 천호를 보았다.

어머니가 아들에게 보일 수 있는 최고의 미소를 그려 보이며 말했다.

“태양은 이제, 너의 편이란다.”

그것이 의미하는 말.

아버지조차도 낮에는 어머니를 이길 수 없는 이유.

천호는 이해했다.

통신이 아니기에 전해질 수 없음을 알면서도 어머니께 말하였다.

“다녀올게요.”

여자는 손을 흔들었다.

천호는 그런 여자를 등지고 돌아섰다.

[그대여.]

“용사님.”

용갑주를 갖춰 입은 두 사람이 천호의 양옆에서 말했다. 루시엘이 네 장의 날개를 활짝 펴며 천사의 고리를 활성화시켰고, 미트라가 검신 위로 은은한 황금빛을 발산했다.

천호는 마지막으로 모두를 돌아보았다. 모두가 천호의 시선에 화답했다.

“준비됐어요.”

“용사님과 함께하겠습니다.”

“다섯 여신의 가호가 함께하기를.”

목소리들이 이어졌다. 천호는 미트라를 뽑아 들며 명령했다. 신상들이 유지하고 있던 장벽을 해체시킴과 동시에 지면을 박차 올랐다.

태양의 힘을 강림시켰다.

카블라카사는 당황하고 있었다.

계획에 문제는 없었다.

실제로 불과 몇 분 전까지만 하더라도 모든 것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천사들과 영웅들은 자신들의 존재를 눈치채지 못 했고, 대장간의 수호자인 마키나는 정상적인 방법에 따라 패배했다. 마키나와 싸운 영웅은 세 시간 여의 대련으로 힘이 다 빠져 약해져 있었다.

그리고 대장간의 입구가 나타났다.

모든 것이 생각대로였다. 이제 놈들을 쓸어 버리고 지키는 이 없어진 대장간을 손에 넣기만 하면 되는 순간이었다.

콰쾅!

쿠오!

콰가강!

분지 전체에 굉음이 가득했다.

무지막지한 마법의 포화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저게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

갑자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용의 머리를 가진 황금 신상들의 양손에서 강대한 마법들이 무슨 폭죽 터지듯 연사되었다.

어떤 것은 수십 미터에 달하는 불기둥을 일으켰다. 또 어떤 것은 반경 수십 미터 안에 있는 모든 것들을 깨끗이 지워 버렸다.

카블라카사는 이해할 수 없었다. 이해를 초월한 상황에 그저 멍하니 바라보기만 하였다.

저 황금 신상 하나하나가 최소 5급 전투 천사 이상의- 아니, 3급 전투 천사 이상의 마법사들이란 말인가?

아니었다. 그냥 열심히 일회용 스크롤들을 찢어 대고 있는 것뿐이었다.

아마 성왕국의 재상이 지금 광경을 보았다면 국고가 터지고 있다며 눈물을 쏟아 낼 터였다.

스크롤 하나당 못해도 중소 규모의 도시 하나 예산은 우습게 나왔으니 말이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