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07화 (107/211)

‘너만의 검을 만들어라.’

오직 천호 자신만의 검을.

새로운 용사의 검을.

[그대여?]

미트라가 저도 모르게 목소리를 내었다.

천호와 능력 공유를 통해 감각을 공유하고 있는 그녀는 느낄 수 있었다.

크게 달라진 것은 없었다.

태양의 마력을 처음 각성했을 때처럼 눈부신 빛이 일거나 뿔이 돋아난 것도 아니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지금 이 순간, 더 없이 큰 변화가 천호에게 일어났다.

마키나의 검이 흔들렸다.

천호가 그렇게 만들었다.

천호는 자신을 보았다.

이상의 자신이 펼치는 검을 보았다.

제국검법이 아니었다.

달 세뇨 왕국검법이 아니었다.

호세사천왕은 물론이고 미트라와 레온의 검 역시 아니었다.

하지만 그 모두이기도 하였다.

마키나의 동작이 흐트러졌다. 검 끝이 흔들리는 데 그치지 않고 자세 자체가 무너졌다.

천호는 더 이상 자신을 보지 않았다.

자신과 하나가 되었다. 이상의 검을 보는 것에 그치지 않고 펼쳐 보였다.

꽃이 피었다.

만개하여 그 모습을 드러냈다.

지켜보던 이들이 저도 모르게 감탄을 토했다.

미트라가 마치 신음처럼 탄성을 흘렸다.

마키나가 검을 놓쳤다. 몇 걸음이나 뒤로 물러섰다.

“페이즈2에 돌입합니다.”

마키나가 말했다.

두 손을 펼쳤고, 지면에 꽂혀 있던 검 두 자루가 절로 날아 그의 손에 잡혔다.

마키나의 검기가 보다 날카롭게 변했다.

하지만 천호는 개의치 않았다.

오히려 환영했다.

지금의 순간을 이어 가고 싶었다.

검무를 추기 위해선 상대가 필요했다.

마키나가 지면을 박찼다. 두 자루 검으로 이적을 일으켰다. 마치 밤을 도래시키는 것처럼 천호의 정면을 공세로 가득 채웠다. 어둠에 비유해도 좋을 숨 막히는 검이었다.

에이젤이 비명을 삼켰다. 지켜보던 천사들 역시 신음을 토했다.

하지만 루시엘은 달랐다. 그녀는 천호의 천사였다. 그렇기에 느낄 수 있었다.

미트라가 느끼고 있는 것을 그녀 또한 감지했다.

[여명의 검.]

천호의 검이었다.

레온이 그러했던 것처럼, 천호가 찾아낸 새로운 용사의 검이었다.

더 이상 흉내 내기 따위가 아니었다.

미숙하다 한들 그것은 분명 용사의 검이었다.

마키나는 빨라졌다.

그의 공격은 이전보다 훨씬 강해졌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더 이상 그는 검으로 천호의 상대가 될 수 없었다.

밤을 거두어 아침의 영광을 이끌 지어니.

천호가 태양의 마력을 더했다.

여명의 검을 펼쳐 보였다.

레온은 말했다.

용사의 검은 단순히 검을 휘두르는 기술이 아니라고, 용사의 모든 것을 함축한 무언가라고.

그의 말은 옳았다.

여명의 검은 ‘현재’의 천호를 상징하고 있었다.

여명의 검에 태양의 마력이 더해졌다. 그것으로 여명의 검은 천호만의 것이 되었다. 다른 누군가가 흉내는 낼지언정 온전히 같은 것은 펼칠 수 없는, 천호만의 검이었다.

두 자루 검의 얽힘이 세 자루 검의 얽힘으로 변하였다.

마키나가 그려 내는 검의 궤적은 한 자루가 두 자루가 되며 배는 더 복잡해졌다.

하지만 오히려 천호에게 밀렸다. 천호를 몰아붙이기는커녕 두 자루 검이 만들어 내는 검의 막에 구멍이 뚫렸다.

눈부시게 빠른 공방 속에서 천호는 읽어 냈다.

마키나의 검이 그리는 궤적.

검이 나아갈 길과 물러날 길.

보는 순간 분석했다. 결과를 도출해 냈고, 천호 자신이 가지고 있는 수많은 기예들 가운데서 가장 적합한 것을 꺼내 들었다.

아니, 그런 것이 아니었다.

분석의 과정 따위는 존재하지 않았다.

보는 순간 직감했다.

복잡한 연산 과정을 거치지 않고 본질을 꿰뚫었다.

‘넌 눈이 좋다.’

언젠가 아버지께서 하신 말씀이었다.

천호가 아버지에게 수많은 기예들을 단시간 내에 배울 수 있었던 것도 좋은 눈의 덕분이 컸다.

보고 직감한다.

무엇인지 깨닫는다.

물론 그것만으로는 부족했다.

보는 것만으로는 검을 움직일 수 없었다.

몸이 쫓아가지 못하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이야기였다.

지금까지는 쫓아가지 못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었다.

보는 순간 반응했다.

손과 발이 눈에 뒤처지지 않았다.

초인적인 육체와 태양의 마력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

그리고 한 가지 더.

그것을 가능케 하는 것이 있었다.

정신세계 속에서 미트라는 주저앉아 있었다. 입을 크게 벌린 채, 양손으로 그렇게 벌린 입을 가린 채 그저 멍하니 바라보았다.

성검인 그녀는 알 수 있었다.

천호의 검은 여명의 검이었다.

어둠을 사르고 빛을 이끄는 태양의 검이었다.

그러니 마기에 강할 터였다. 어둠의 마력에도 상성상 우위일 터였다.

하지만 검술에 적용하기에는 지나치게 추상적인 이야기였다.

마키나와의 대결에서 여명의 검의 마력적 특성은, 어둠을 몰아내고 빛을 인도하는 파사의 힘은 발휘될 일이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호가 마키나를 밀어붙이는 것은 여명의 검을 만들어 냄으로 말미암아 천호 자신이 각성했기 때문이다.

천변만화.

그 안에 갖고 있는 수많은 기예들을 남김없이 발휘한다.

보는 것에 맞추어 최적의 것을 꺼내 든다.

놀라운 일이었다. 어쩌면 천호의 아버지는 이러한 천호의 특성을 알기에 천호에게 한 가지만을 집중적으로 가르치는 대신 온갖 것들을 다양하게 가르쳤는지도 모를 일이었다.

하지만 미트라가 입을 벌릴 만치 놀란 것은 그 때문이 아니었다.

태양의 마력이 천호의 마력적 중심이 되었듯이, 여명의 검에도 중심이 존재했다. 그리고 그 중심은 천호 아버지의 호세사천왕도, 달 세뇨 왕국 검법도, 레온의 검이나 겨울왕의 제국검법도 아니었다.

중심에 미트라 자신이 있었다.

황금빛 눈동자의 여인의 검이 여명의 검의 중심에 자리했다.

여기에 성검 스킬 능력 공유가 작용했다.

천호는 스펀지가 물을 흡수하듯 능력 공유로 말미암아 미트라의 검술을 흡수했다.

지금 이 순간에도, 마키나와 검을 한차례 나눌 때마다 눈부신 속도로 미트라의 검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미트라는 저도 모르게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온몸이 자르르 떨릴 만치 짜릿한 희열을 느꼈다. 몸이 뜨겁게 달아올랐다.

겨울왕과의 대결이 단초가 되었다.

레온이 체험케 해 준 진정한 용사의 검이 동력이 되었다.

그리고 지금, 마키나와의 대결이 기폭제가 되었다.

[여명의 검…….]

천호의 검.

미트라가 소리 내어 말했다. 거친 숨을 토하며 눈을 빛냈다.

실리피안 고원의 바람을 따라 미트라의 머리칼이 흩날렸다.

[미안, 레온.]

이런 생각을 해서, 이런 비교를 해서.

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아름답다고 해도 좋을 천호의 검이 그렇게 만들었다.

천호는 레온보다 훨씬 더 강해질 터였다. 레온이 바라만 보았을 뿐, 닿지 못했던 경지에 도달할 터였다.

아직은 무리였다. 지금 당장은 레온이 천호보다 훨씬 더 강했다.

하지만 언젠가는.

아니, 그리 멀지 않은 미래에는.

[헤헤, 헤헤헤.]

미트라가 저도 모르게 바보처럼 웃었다.

성검으로서, 자신의 용사를 바라보았다.

* * *

검무가 이어졌다.

두 자루로 시작했던 마키나의 검은 어느새 여섯 자루로 늘어나 있었다. 삼두육비의 귀신 아수라처럼 여섯 개의 팔로 여섯 개의 검을 동시에 펼쳤다. 그리하여 만병의 이해자라고까지 불린 태초의 대장장이의 검로를 절반이나마 재현해 냈다.

숨 막히듯 덮쳐 오는 검의 노도 앞에서 천호는 미소 지었다. 짜릿함을 억누르지 못해 아예 소리 내어 웃기까지 하였다.

시간의 흐름을 느끼기 어려웠다.

고작 몇 분이 지났는지, 아니면 몇 시간이 지났는지 알 수 없었다.

힘들었다.

땀을 비처럼 흘려 온몸이 축축했다.

이 정도면 몸이 무거워 꼼짝도 하지 못해야 정상이었다.

하지만 손발이 가벼웠다.

이상할 정도로 몸이 가볍게 느껴졌다.

재미있었다. 즐거웠다.

미트라의 검을 자신의 것으로 바꾸는 과정이.

지금까지 익혀 온 모든 것들을 하나로 조합해 천호 자신의 검으로 만드는 일이.

아니, 그냥 톡 까놓고 말해 훨씬 더 단순한 것에 즐거움을 느끼고 있었다.

강해진다.

강해지고 있다.

검을 한 번 휘두를 때마다 앞으로 나아가고 있다.

미트라의 영향도 있었다. 능력 공유로 인해 감각과 감정까지도 일부 공유하고 있는 천호와 미트라였다.

두 사람 모두가 희열을 느끼고 있으니, 서로가 서로에게 상승 작용을 해 희열의 폭주를 일으켰다.

세 시간하고 다시 삼십칠 분.

천호와 마키나가 대결로 보낸 시간이었다.

천호와 미트라는 희열 때문에 시간을 잊었다.

루시엘은 미트라처럼 감정을 공유할 수 없었지만, 천호의 천사로서 처음부터 끝까지 한 장면도 놓치지 않으려 했다. 양손을 꼭 모아 쥐고 열심히 천호의 모습을 눈에 담았다.

영웅들과 전투 천사들은 눈앞에서 펼쳐지는 여명의 검에 빠져들었다. 그들 역시 시간을 잊고 바라보았다. 싫증을 잘 내는 루실리아조차도 눈을 빛내고 있었다.

하지만 일행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니었다.

천호를 열심히 응원하던 에이젤이었지만 대결이 세 시간을 넘어가니 계속 지켜보기가 힘들었다.

사령술사? 아니, 학자인 라구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두 사람은 모두의 시선이 집중된 대결에서 잠시 한눈을 팔 수 있었다.

눈 내리는 설원.

분지에 자리해 고립되었다고 해도 좋을 장소.

“어?”

에이젤이 눈을 깜박였다. 보다 자세히 보기 위해 눈을 가늘게 떴다.

* * *

마키나는 뒷걸음질 쳤다.

천호는 그런 마키나를 쫓지 않았다.

대결의 희열을 더 오랫동안 누리고 싶기 때문이 아니었다.

어느 누구도 소리 내어 말하지 않았지만 직감했다.

천호가 마키나를 보았다.

마키나가 천호를 보았다. 호흡 하나 흐트러지지 않은 자동인형은 여섯 개의 팔을 모두 늘어트렸다.

그리고 저도 모르게 입을 열어 물었다.

“주인님은, 태초의 대장장이님은 돌아가신 건가요?”

청년의 모습에는 어울리지 않는 어리고 앳된 목소리였다.

하지만 그렇기에 더욱 간절함이 느껴졌다.

일만 삼천육백십이일.

태초의 대장장이가 돌아오지 않은 시간이었다.

30년이 훌쩍 넘는 그 시간 동안 마키나는 태초의 대장간을 지켜 왔다.

찾아온 이는 천호가 처음이 아니었다.

세계가 대미궁에 침식되기 전에 찾아온 이들이 있었다.

대미궁에 침식된 후에도 대장간을 찾아낸 이들이 있었다.

그들은 하나 같이 말했다.

태초의 대장장이는 죽었다고. 이제 주인님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마키나는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머리로는 그들의 말이 옳다는 것을 알았지만, 가슴으로 인정하지 않았다.

인형답지 않은 일이었지만 그리하였다.

자신이 인정해 버리면, 그들의 말을 믿어 버리면, 자신 안에서조차 주인님의 생명이 끊어지는 것이라 생각했으니까.

마키나의 뺨을 따라 눈물이 흘렀다.

왜인지는 몰랐다.

아니, 알았다. 스스로 주인님의 죽음을 입에 담았기 때문이다.

‘너무 늦지 않게 돌아오마.’

언제나와 같은 말이었다.

지금까지 그러했고, 앞으로도 그러할 일이기에 마키나 자신도, 주인님도 딱히 의미를 부여하지 않았다.

주인님은 가볍게 말씀하신 뒤 대장간을 나서셨고, 대장간 정리를 하던 마키나 자신은 주인님을 돌아보지도 않았다. 바닥을 쓸며 그저 큰 목소리로 대답한 것이 전부였다.

‘다녀오세요.’

그리고 잊어버렸다. 청소를 하며 오늘 저녁 메뉴를 구상했다.

하루가 지났다.

이틀이 지났다.

준비해 둔 저녁은 차갑게 식었다.

시간은 계속해서 흘렀다.

얼굴도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대장간에 와서 말했다.

주인님이 돌아가셨다고.

마키나는 인정하지 않았다. 그를 내쫓고는 바닥에 주저앉아 생각했다.

그럴 리가 없다고. 주인님은 꼭 돌아오실 거라고.

마키나 자신은 자동인형이었다.

기계였다.

그러니 한결같이 믿고 기다릴 수 있었다.

그렇게 생각했다.

“나가 볼 걸 그랬어요.”

마키나가 말했다.

천호는 이해하지 못할 말이었지만 그래도 입에 담았다.

30년이 넘는 세월 동안 계속 생각해 온 일이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가슴을 죄어 오는 일이었다.

주인님을 배웅했더라면.

다녀오시라고, 나가시는 모습을 바라보았다면.

변하는 것은 없었다.

겨우 그 정도로 바뀌는 것은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후회가 되었다.

그게 마지막이었는데.

마지막 인사를 나눌 수 있는 기회였는데.

“마지막.”

마키나가 쓰게 웃었다.

얼굴을 구기며 울음을 터트렸다.

사실 대답은 필요하지 않았다.

이미 알고 있었다.

이미 몇 번이나 들어 모르지 않았다.

마키나가 여섯 자루의 검을 모두 놓았다.

마키나의 본체가 대결용 인형을 통해 천호를 보았다.

천호는 미트라를 거두었다. 대화는커녕, 마키나의 말을 몇 마디 들은 것뿐이었지만 마키나의 심정을 이해했다.

겨울왕 때와 마찬가지로 검의 대화를 나누었기 때문이다.

마키나가 입을 연 것 역시 같은 이유였다.

천호는 희열을 가라앉혔다.

새삼 느껴지는 피로 속에서 담백하나마 성심껏 답하였다.

“돌아가셨다고 들었습니다.”

마키나가 고개를 끄덕였다. 새삼 더 무너지거나 울음을 터트리는 대신 그저 작게 감사하다 말했다.

“시험을 통과하셨습니다. 태초의 대장간 출입을 허가합니다. 대장간의 입구를 개방하겠습니다.”

마키나가 말을 마친 순간 지면이 흔들렸다. 마키나의 등 뒤로 땅이 솟아올랐다.

태초의 대장간으로 통하는 진정한 입구였다.

아이테리움의 성문을 연상시켰다.

한 번에 수십 명도 지나갈 수 있을 것 같은 커다란 문이었다.

마키나의 등 뒤에서 그 문이 열렸다. 30여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오오, 오오오!”

태초의 대장간은 대장장이들의 성지라 할 수 있었다. 락 드워프들이 탄성을 토했고, 천사들과 영웅들 역시 저마다 기쁨을 표했다.

하지만 에이젤은 아니었다.

문이 열리는 그 순간에도 뚫어져라 먼 곳을 바라보던 그녀가 목소리를 높였다.

“적이에요!”

목소리가 단번에 퍼졌다. 문 쪽을 바라보던 시선들이 사방으로 퍼졌다. 에이젤과 같은 방향을 본 이들은 절반 정도에 불과했지만, 나머지 절반도 거의 같은 것을 볼 수 있었다.

분지 전체가 일어섰다.

수천에 달할 마물들 사이사이에 악신들이 존재했다.

오랜 시간 태초의 대장간을 예의 주시하던 자들이었다.

결코 약한 자들이 아니었다. 부리는 마물들 또한 많았다. 혼자인 마키나를 쓰러트리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한 작자들이었다.

하지만 시험은 통과할 수 없었다. 단순히 싸워 이기는 것과 무기술 대련으로 승리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이야기였기 때문이다.

물론 그들이라 하여 그저 하염없이 대장간 주변에 진을 치고 있던 것은 아니었다.

대장간이 내려다보이는 곳에 남겨 둔 마물이 천사들과 영웅들을 발견했다.

그들이 시험에 응해 패했음에도 불구하고 떠나지 않고 머무는 것을 보며 악신들은 그다음을 생각했다.

저들이 떠나지 않는 것은 무언가 대책이 있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마물들을 모았다. 아름아름 분지를 포위한 뒤 때를 기다렸다.

그리고 마침내 때가 되었다.

시험을 통과한 자가 나왔다. 대장간의 문이 열렸다.

대결로 인해 마키나는 망가졌다.

마키나를 쓰러트린 자 역시 오랜 대련으로 힘이 빠졌다.

더욱이 애당초 마키나를 대련으로 꺾지 못할 뿐이지, 파괴하는 것은 가능한 악신들이었다. 시험을 통과한 자라 하여 두려워할 이유가 없었다.

“용사님!”

루시엘이 급히 외쳤다. 여차하면 포탈 시스템을 이용해 아이테리움으로 도주할 생각인 그녀였다.

다른 천사들도 마찬가지였다.

사스치엘이 포탈 시스템이 있는 곳을 돌아보았다. 락 드워프들이 서둘러 동물형 전투 천사들의 등 위에 올라탔고, 나머지 전투 천사들과 영웅들이 저마다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마키나는 대장간 입구의 파괴를 생각했다.

악신들이 어림없다는 듯 마물들을 돌진시켰다. 수천에 달할 마물들이 분지의 경사를 따라 돌진하니 그 속도가 무시무시했다.

절체절명이었다.

숫자는 비교가 되지 않았다.

천호 자신은 세 시간이 넘는 대결로 지친 상태였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천호는 루시엘을 향해 달리지 않았다.

발걸음조차 떼기 힘들 정도로 지쳐서가 아니었다.

“용사님!”

루시엘이 다시 천호를 불렀다. 네 장의 날개를 활짝 펴 이쪽을 향해 날아왔다.

마물들이 분지를 반 이상 내려왔고, 마키나가 서둘러 대장간의 입구를 다시 봉하려 했다.

미트라는 다시 입을 벌렸다.

멍하니 벌린 채 눈을 깜박였다.

능력 공유 때문이었다. 생각은 공유할 수 없었지만 천호의 가슴이 벅차오름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그 벅차오름이 어디서 기인했는지 어렴풋이 짐작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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