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94화 (94/211)

“하층을 공략하는 것도 어려워요. 기둥을 통해 내려갈 수밖에 없으니 적들도 기둥을 집중 방어하고 있거든요.”

루시엘이 천호가 8층에 세운 눈 방벽을 바라보며 말했다.

지금까지 저층 변방을 통해 대미궁을 내려온 일행이라 겪어 보지 않았을 뿐, 치유의 신이 속한 최전선 공략대는 매번 기둥을 지키는 적들과 싸워야만 했다.

[공략이 더딘 이유가 이해가 가는군.]

23층에서 발이 묶인 지 약 반년.

깊이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적들의 방어선 역시 두터워질 터였다.

“오! 돌아왔군!”

바로 그때였다. 방벽 너머에서 루카스가 모습을 드러냈다. 천호 일행이 내려가 있는 동안 방벽에 커다란 구멍을 낸 그였다.

“음, 참혹한 광경이군 그래.”

삼백여 장병들의 구토질에 미간을 좁힌 그는 코를 살짝 막으며 말을 이었다.

“자네가 말한 대로 작업 준비는 대강 갖춰 두었네. 바로 시작할 건가?”

“바로 시작해야죠.”

9층에 다녀왔고, 실제로 겨울왕과 싸워 본 패잔병들도 구조했다. 그러니 이제 작업에 나서지 못 할 이유가 없었다.

“알겠네. 그럼 바로 시작하도록 하지.”

조금은 사악해 보이는 루카스의 미소와 함께 새로운 작업이 시작되었다.

* * *

그로부터 이틀 뒤.

겨울왕의 새로운 선봉대를 이끈 죽음의 기사는 8층으로 통하는 기둥 앞에 발이 묶이고 말았다.

더 이상 전진할 수 없었다.

길을 잃게 만드는 결계나, 언데드들의 출입을 금하는 강력한 신성 마법 때문이 아니었다.

그보다 훨씬 단순한, 그야말로 물리적인 이유 때문이었다.

계단 중턱에 멈춰 선 죽음의 기사는 어둠 속에서 보랏빛 안광을 불태웠다. 눈앞을 가로막고 있는 것들을 바라보며 노여움에 주먹을 떨었다.

성수로 젖은 흙과 바위.

많고 많은, 그냥 엄청 많은 흙과 바위.

천호는 생각했다.

8층과 9층을 연결하는 기둥은 하나가 아니다. 하지만 이 근방에는 오직 하나뿐이다.

기둥 주위에서는 강력한 마력 파장 때문에 마법을 사용하기 힘들다. 그리고 이건 기둥 안에서도 마찬가지다.

그러니 통로를 막는다.

흙을 채워서 막는다.

지금 중요한 건 9층으로 내려가는 것이 아니라, 9층에서 올라오는 적을 막는 것이었으니까.

물론 영원히 막을 수는 없었다.

하지만 시간은 충분히 벌 수 있었다.

“파헤쳐라!”

죽음의 기사가 명령했고, 스켈레톤들이 흙더미에 달려들었지만 속도가 더뎠다. 흙과 바위에 잔뜩 묻어 있는 성수 때문이었다.

‘흙 사이사이에 성수로 만든 눈덩이들 묻어 놔요.’

알아서 성수 리필하게.

막힌 통로를 뚫고 올라오는 데 시간이 얼마나 걸릴까.

아래로 그냥 흙을 퍼붓는 것과 경사로를 오르며 흙을 파헤치는 것은 일의 난이도가 달랐으니까.

죽음의 기사의 노성이 기둥 안에 울려 퍼졌다.

* * *

[언데드 파괴자 :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공격이 1.5배 강화된다.]

[언데드 특급 정화자 : 언데드를 대상으로 한 정화 마법의 범위가 2배가 된다.]

[언데드 사냥꾼 : 언데드를 쓰러트릴 때마다 체력과 마력이 조금씩 회복된다. 언데드들의 사기에 대한 저항력이 1.5배 강화된다.]

[요리의 신이 당신의 요리에 축복을 내립니다.]

[요리의 신이 당신의 화려한 요리 재료에 감탄을 표합니다.]

[천사들의 조력자 Lv6 : 천사들이 당신에게 호감을 보입니다.]

제10장?제국 수호검

8층과 9층을 잇는 기둥 안에서 죽음의 기사가 눈물 젖은 토목 작업을 개시한 시점으로부터 약 이틀 전.

기둥 막기 작업을 마친 천호는 엘리엘의 등에 올라 실리피안 요새로 향했다.

물론 혼자는 아니었다.

루시엘을 필두로 한 천사들 전부와 락 드워프들, 여기에 새로 합류한 루실리아와 실리키엘이 함께했다.

서두른 이유는 단순했다.

다음 작업을 위한 시간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다음 작업.

“으으, 저 뭔가 이상해진 것 같아요.”

작업이란 말만 들어도 가슴이 두근두근거리고 얼굴에 홍조가 떠오르기 시작했으니까.

에이젤의 말에 아우라엘이 타이르듯 말했다.

“괜찮아, 나도 그러니까.”

“선배도요?”

“응, 막 두근두근거려.”

거기까지 말한 아우라엘은 너도 그렇지 않느냐며 라구엘을 돌아보았다.

언제부터인가 눈을 살짝 게슴츠레 뜨기 시작한 라구엘이 요염한 미소를 흘리며 답했다.

“나도 그래. 하지만 역시 제일은 루시엘일걸?”

라구엘의 말에 두 천사는 잠시 루시엘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고, 이내 납득하였다.

눈에 감정이 다 드러나는 루시엘인 만큼, 작업이란 말을 들을 때마다 얼마나 흥분하는지가 정말 눈에 다 보였기 때문이다.

“이거 역시 좀 이상한 거 아니에요?”

다른 것도 아니고 작업이란 단어에 흥분하는 천사들이라니.

“뭐, 여차하면 용사님한테 책임지라고 하자꾸나.”

“채, 책임이요?”

“뭔가 대화가 이상해지는 기분인데.”

에이젤이 무한한 상상의 나래를 펼치고 아우라엘이 볼을 긁적이는 그때, 천호는 다음 작업의 초안을 머릿속에 그리고 있었다.

겨울왕과 그 군대는 강했다.

언데드 무리는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었지만, 역시 가장 강해지는 것은 사령술사가 함께할 때였다.

그리고 그 사령술사의 경지에 따라 언데드 무리의 강함 역시 달라졌다.

베르가프 때와 같았다. 겨울왕의 군대는 겨울왕과 함께 할 때야말로 진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었다.

기둥에서 무찌른 선봉대에는 겨울왕이 없었다.

실리키엘은 추정치지만, 겨울왕이 함께하면 언데드 무리가 적어도 1.2배 이상 강해질 것이라 말했다.

20% 남짓.

얼핏 작은 수치처럼 보일 수 있었지만, 군단원 전체가 1.2배 강해진다면 그 효과는 실로 무시무시했다.

그리고 겨울왕.

중층의 악신.

‘놈은 파발의 신님을 꺾었습니다. 뭔가 비겁한 수를 쓴 것도 아닙니다. 그냥 정면에서… 힘으로 파발의 신님을 제압했습니다.’

전장의 광경을 떠올린 실리키엘은 조금이지만 어깨를 떨었다. 새삼 겨울왕의 강대함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죽음의 신성.

끔찍할 정도로 강대한 마기.

하지만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겨울왕의 검.

천사들과 영웅들을 도륙하는 데 그치지 않고 그 영혼을 강탈하던 사악한 마검.

겨울왕은 베르가프와 달랐다.

그는 사령술사이기 이전에 검사였다.

그것도 단순한 검사가 아닌, 구제국의 표현을 따르자면 대검호의 경지에 이른 절정의 검사였다.

‘솔직히… 평범하게 싸워서는 도저히 이기지 못할 것 같습니다.’

5급 천사의 수준으로는 절대로 무리였다.

상대는 전쟁의 여신 이브나일의 하위 신을 정면에서 제압한 자였다.

하지만 그래도 싸워야만 했다.

실리피안 요새 뒤에는 구제국의 인간들이 거하는 영지가 여럿 있었다. 겨울왕을 방치했다가는 끔찍한 대참사가 벌어질 수 있었다.

그러니 작업과 준비가 필요했다.

공격이 아닌 수비를 택한 만큼 전장을 선택하는 것은 저쪽이 아닌 이쪽이었다.

승률을 끌어올린다.

전장의 환경 자체를 이쪽에 유리하게, 저쪽에 불리하게 조성한다.

‘주어진 시간은 엿새 남짓.’

겨울왕의 본대가 기둥에 도달하는 시간.

기둥의 함정을 돌파하는 데 필요한 시간.

그리고 다시 8층의 기둥에서 실리피안 요새까지 기동하는 데 필요한 시간.

“철야는 필수겠네요.”

특히 천사들과 락 드워프들의.

천호의 머릿속에서 작업의 도안이 완성되었다.

* * *

실리피안 요새에는 남겨 놓고 떠난 수비 병력 외에도 각지에서 병력들이 모여들고 있었다.

이번 전투의 중요성을 실감한 부르크 백작과 올란도 백작이 추가 병력을 파견한 덕분이었다.

특히 부르크 백작은 직접 군사를 이끌고 실리피안 요새에 나타났다.

대미궁 안에서 나고 자란 젊은 백작.

선이 굵어 남자답게 잘생긴 자였다.

사실 그 외에도 이래저래 인상적인 부분이 많은 자였지만, 천호는 그냥 백작2 정도로 머릿속에 담아 두었다.

‘이래서 그랬구나.’

아버지의 이야기에 남자가 별로 안 나온 이유가.

아니, 사실 굳이 남자라 그런 것은 아니고, 당장에 바쁜 일이 워낙 많았으니까.

‘아니거든? 난 남자 이야기도 많이 했거든? 네가 기억 못?아니, 안 한 거거든?’

아버지께서 계셨다면 이리 말씀하셨겠지만, 아쉽게도 아버지는 지금 이곳에 계시지 않았다.

천호는 부르크 백작과 인사를 마친 뒤 바로 작업에 돌입했다.

오면서 생각했듯이 천호보다는 천사들과 락 드워프들의 힘과 노력, 열정이 필요한 작업이었다.

물론 실리피안 요새의 장병들도 마냥 놀게만 두지는 않았다. 전장의 환경 자체를 바꾸는 작업이었기에 일손은 아무리 많아도 부족했다.

“먹은 만큼 일한다!”

루실리아가 활기차게 외치며 전면에 나서자 다른 이들도 열정을 보였다.

겨울왕을 막아 내기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지만, 루실리아 자체의 힘이기도 하였다.

다른 이들을 이끄는 힘.

천호만큼은 아니었지만 루실리아에게도 용사의 자질이 있었다.

그렇게 이틀.

죽음의 기사가 토사 속에서 튀어나온 성수에 욕지거리를 내뱉고 있는 그때.

천호는 작업이 한창인 현장 대신 실리피안 요새의 연무장에 홀로 서 있었다.

“후우…….”

숨을 길게 토하고 다시 자세를 취했다.

달 세뇨 왕국검법의 기수식이었다.

이제 와서 검술 수련에 매진해 겨울왕을 꺾겠다는 생각이 아니었다.

죽음의 기사와의 싸움에서 발휘했던 힘.

아직 불안정했다. 출력만 높을 뿐, 제대로 다룰 수 없었다.

그렇기에 한 걸음 더 나아갈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발을 멈춰야만 했었다.

시간이 그리 많지는 않았다. 하지만 조금이라도 완성도를 끌어올려야 했다.

[그래도 많이 좋아졌다.]

미트라가 격려하듯 말했다.

사실 요즘 천호와 미트라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거의 하루 종일 함께하고 있었다.

낮에는 지금처럼 연무장에서 수련을 했고, 밤에는 정신세계에서 수련을 했다.

밤의 수련은 거의가 대련이었다.

실리키엘은 겨울왕이 제국의 검법을 쓰는 것 같다고 했다. 그리고 미트라는 그 제국 검법의 창안과 발전 과정을 모두 지켜본 산증인이었다.

제국검법의 파훼법을 배웠다.

제국검법 자체에 익숙해졌다.

“후우?.”

한차례 더 힘의 정련을 마친 천호는 양어깨를 늘어트렸다. 온몸이 땀투성이였다.

[그대여, 잠시 쉬는 것이 어떤가. 땀도 많이 흘렸으니 목욕이 좋을 것 같다.]

[금방 뜨거운 성수로 목욕물을 만들어 주지. 아, 차가운 물이 좋으려나? 미지근한 물도 가능하니 원하는 대로 말만해라.]

천호 자신을 위하는 미트라의 마음이 열렬히 느껴져 참으로 고마웠지만, 엉큼한 레벨이 1도 아니고 7이나 된다는 사실을 알게 된 뒤로는 뭔가 순수하게 받아들일 수 없게 된 천호였다.

“으음.”

[그대여?]

“아뇨, 뭐. 닳는 것도 아니고. 더욱이 미트라니까.”

[닳는다니? 그리고 나라니?]

고개를 갸웃갸웃하는 미트라의 얼굴이 절로 떠오르는 목소리였지만 천호는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대신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튼 조금만 더 해 보고요. 오늘부터는 슬슬 다음 단계로 넘어가야 할 것 같기도 하고.”

천호가 생각한 수련은 총 3단계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요 이틀간은 1단계만을 반복하고 있었다.

하지만 이제 슬슬 2단계로 나아갈 때가 되었다.

[으음, 그래도 무리는 하지 마라.]

“그래야죠. 후? 그나저나 역시 좀 빡세긴 하네요. 아버지의 이야기 속에서는 좀 달랐는데.”

[달랐다니?]

“그, 뭐랄까. 강적과 싸우다가 죽기 직전인 순간에 팍!하고 각성을 한다든지, 숨겨진 힘을 깨우친다든지… 아무튼 중요한 순간에 갑자기 파워 업을 해서 적을 물리치는 경우가 많았거든요.”

아버지의 이야기에서 가장 좋아하는 대목들이었다.

하지만 미트라는 정색하며 말했다.

[그대여, 다시는 그런 소리 하지 마라. 그러다 죽는다. 결정적인 순간에 숨겨진 힘이 깨어난다니, 그렇게 형편 좋은 일이 반복해서 일어난다는 보장이 어디 있는가. 그리고 그렇게 깨어날 힘이면 진즉 깨워야지. 뭐 하러 싸우던 중에 깨운단 말인가. 위험하게.]

하나부터 열까지 모두 맞는 정론이었다.

“레온은 어땠는데요?”

[레온은 늘 성실하게 싸웠다. 그대가 말한 경우는? 딱 한 번뿐이었다.]

“한 번?”

[그래, 마왕과의 마지막 싸움 때였지.]

“어떤 각성이었는데요?”

[아직은 비밀이다.]

“왜요?”

[용사의 궁극기와 관련된 각성이었기 때문이다. 그대도 때가 되면 알게 될 거다.]

“흐음.”

용사의 궁극기.

천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수련 쪽으로 정신을 돌렸다.

미트라의 말마따나 언젠가 때가 되면 알게 될 일이었다.

“아무튼 그럼 시작해 보죠.”

긴장을 풀 듯 숨을 한 번 길게 토한 천호는 미트라를 잠시 손에서 놓았다. 연무장 바닥 위에 잘 내려놓은 뒤 캐리어가 세워진 방향을 돌아보았다.

어머니께서 알려 주신 마갑과 캐리어의 진짜 사용법.

천호는 주먹을 쥐었다. 마력을 끌어올렸고, 동시에 마갑의 힘을 개방하였다.

푸른 마갑 위로 황금빛 마력의 선이 그어졌다. 마치 회로라도 되는 것처럼 전신으로 뻗어 나갔다.

마갑을 발동시키는 키워드는 아머드.

그리고 여기에 더해지는 또 하나의 키워드.

“유니온.”

천호가 낮게 말한 그 순간, 캐리어로부터 황금빛 섬광이 일었다.

3단계로 구성된 수련 중 2단계의 시작이었다.

* * *

그로부터 하루 뒤.

죽음의 기사와 휘하 언데드 군단은 마침내 기둥을 빠져나왔다.

참으로 길고 지난하며 힘겨운 작업이었다.

흙을 단순히 파내는 것으로 끝날 일이 아니었으니까.

뒤에서 따라오고 있을 본대의 길을 막으면 안 되었으니, 파낸 흙을 아래에 그냥 버릴 수 없었다. 기둥 밖으로까지 퍼 날라야만 했다.

기둥은 높았고, 계단은 엄청나게 많았다.

흙을 퍼서 계단을 내려간 뒤 기둥 밖으로 버리고, 다시 올라와서 흙을 파낸다.

상상만 해도 끔찍한 작업이었지만, 다행히 이쪽은 1만이 넘는 대병력이었다. 더욱이 지치지 않는 언데드들이었다.

하지만 그래도 쉽지 않았다.

성수로 젖은 흙과 바위는 언데드들의 작업 효율을 몇 번이고 어그러트렸다.

그리고 가끔씩 튀어나오는 반쯤 녹은 성수 눈덩이.

도대체 뭘 어떻게 하면 성수로 눈덩이를 만들 수 있는지 의문이었지만, 한번 눈덩이가 터질 때마다 작업 중이던 언데드들이 비명을 질렀고, 죽음의 기사는 노성을 터트렸다.

아무튼 약 하루.

죽음의 기사는 마침내 길을 여는 데 성공했다. 보무도 당당하게 계단을 올라 기둥을 빠져나왔다.

언데드가 된 이후 한 번도 울어 본 적이 없거늘, 어쩐지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

밖은 깊은 밤이었다.

차가운 밤공기가 마치 치하라도 하듯 죽음의 기사를 반겨 주었다.

하지만 죽음의 기사는 긴장을 풀지 못했다.

기둥 밖을 에워싼 눈 방벽 때문이었다.

‘뭐지, 대체?’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산 자의 기운에 민감한 언데드들이었다. 방벽 뒤에 숨거나 한 것이 아니었다. 눈앞에는 정말로 방벽뿐이었다.

죽음의 기사는 안광을 가늘게 하더니 이내 마음을 굳혔다. 스켈레톤 스카우터들을 추려 전진하게 해 보았다.

세 기사들이 왔을 때처럼 가운데 커다란 통로가 뚫려 있지는 않았던 터라 스켈레톤 스카우터들은 방벽을 기어올라야 했다.

그런데 막 방벽에 손을 댄 순간이었다.

스켈레톤 스카우터가 비명과 함께 자지러졌다.

그리고 그 순간 방벽 전체에 황금빛 문자들이 떠올랐다.

성스러운 문구.

죽음의 기사는 비로소 방벽의 진짜 의미를 깨달았다.

결계.

언데드들의 접근을 불허하는 성스러운 빛의 장벽.

대부분의 장병들이 열심히 흙을 퍼 나를 동안 락 드워프들과 천사들이 벽에 달라붙어 새긴 문구들이었다.

기둥을 막은 흙과 같았다.

결국에는 돌파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번에도 시간이 필요했다.

죽음의 기사는 노성을 터트렸다. 다시 한 번 방벽을 무너트리기 위한 토목 작업에 착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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