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연결이 되었어!”
파이엔의 끝.
세계의 기둥이라 불리는, 인간의 역사가 시작되기 이전부터 존재했던 탑의 최상층에서 탑의 지배자가 외쳤다.
여자.
그녀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미궁 세계.
아들을 소환한 세상.
아들이 지금 있는 곳.
순간적으로 본 영상도 잊지 않았다.
아들은 자신이 보내 준 갑옷을 입고 있었다. 옆에는 분홍색 머리칼의 무척이나 예쁜 천사와 황금색 보석이 인상적인 검이 있었다.
천사.
날개가 달린 유익인이 있는 세상은 많았다. 당장 파이엔에도 유익인들이 있었으니까.
여자는 눈을 꽉 감았다.
연결이 되었지만 시간이 너무 짧았다. 역추적을 하기에는 충분한 자료가 모이지 않았다.
하지만 그래도 단서는 있었다. 적어도 범위를 획기적으로 좁힐 수는 있을 터였다.
그리고 한 가지 더.
천호의 눈동자가 황금색으로 변해 있었다.
아니, 애당초 카드의 통신 기능을 발동시켰다는 것 자체가 의미하는 것이 있었다.
“깨웠구나.”
자신에게 물려받은 피를.
파이엔에 존재하는 그 어떤 피보다 고귀하고 위대한 피를.
태양의 마력을.
다행이었다. 솔직히 안심했다. 남자의 피가 반이나 섞인 탓에 깨어나지 않을 수도 있다고 생각했으니까.
그런데 문득 의문이 들었다.
여자 자신의 피는 일깨웠다.
그렇다면 남자의 피는 어떨까. 남자의 피도 각성하였을까?
용사의 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었다.
보다 근원적인 것을 이야기하는 것이었다.
여자는 숨을 토했다. 흥분을 가라앉히고 옥좌에 몸을 묻었다.
일단 성왕국에 가 있을 남자에게 소식을 전해야 했다. 수하들을 동원해 미궁 세계라는 곳을 찾아내야 했다.
“그나저나… 헷, 천사에 성검인가.”
위대한 태양인 여자는 영혼의 본질을 볼 수 있었으니까. 그녀의 눈에는 미트라의 진정한 모습이 보였으니까.
‘우리 아들 인기 많구나.’
잠시 팔불출 같은 미소를 흘린 여자는 얼른 표정을 가다듬었다. 마력을 발산해 수하들을 집결시켰다.
* * *
“언젠가 이런 날이 올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정말로 오고 말았구나.”
녹화된 어머니의 영상은 말 그대로 무난했다.
“너도 알고 나도 알고 우리 모두 알다시피 네 아버지가 말이 많잖니. 녹화 가능 시간을 거의 다 잡아먹어서 남은 시간이 별로 없네. 그러니 효율적으로 진행해도 이해해 주렴.”
“네, 어머님.”
어머니의 미소에 루시엘이 홀린 듯 답했고, 그 대답에 흠칫한 미트라가 얼른 따라 답했다.
[알겠다. 아니, 알겠습니다, 어머님.]
“아까도 말했지만 녹화된 영상이에요.”
그래도, 뭐 꼬박꼬박 답하는 모습들이 귀여우니까.
적당히 넘어간 천호는 다시 영상에 집중했다.
“일단 보내 준 물건들에 대해 설명하자면…….”
그 다음부터는 처음 말씀하셨던 것처럼 효율적인 설명의 연속이었다.
“앞의 세 포션이야 너도 몇 번 사용해 봤으니 크게 설명할 게 없지만, 중요한 건 엘릭서란다.”
파이엔에서는 신수神水라고까지 불리는 엘릭서였다. 천호도 귀하다는 것만 알지 정확한 용법에 대해서는 알지 못했다.
“가장 간단한 활용법은 당연히 치유와 회생이지만, 그 외에도 용법이 있단다.”
이후 줄줄이 이어진 설명을 천호와 루시엘, 미트라는 열심히 경청했다. 루시엘의 경우에는 메모까지 했다.
“엘릭서 다음은 마갑이란다.”
이어진 설명에 천호는 눈을 깜박였고, 루시엘은 새삼 천호의 마갑을 돌아보았다.
이렇게나 기능이 많을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더욱이 마갑만이 아니었다.
캐리어에도 생각지 못한 사용법이 있었다.
[허, 그게 그렇게 되는 거군.]
캐리어 자체는 튼튼하긴 해도 평범한 물건이라 생각했는데, 사용법을 듣고 나니 예사로운 물건이 아니었다.
“마지막은 스크롤이란다.”
스크롤들에 대한 설명은 비교적 짧고 단순했다. 더욱이 이미 셋 중 둘을 사용한 천호라 앞의 두 개는 들어도 별 의미가 없었고 말이다.
중요한 것은 세 번째 스크롤.
어머니의 설명에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다. 왜 세 번째 스크롤 사용에 앞의 둘과 달리 이것저것 요구되는 것들이 많은지도 대강 이해할 수 있었다.
“설명은 여기까지란다. 다시 들을 수 있으니 혹시라도 잘 모르겠으면 다시 들으렴.”
어머니의 설명에 지금까지 열심히 메모하던 루시엘이 흠칫했다.
천호는 작게 웃은 뒤 다시 어머니를 보았다. 영상일 뿐이었지만, 어머니도 천호 자신을 보고 계셨다.
“다른 누구도 아닌, 나와 네 아빠의 자식이니까. 우리 아들이니까. 믿고 있단다. 어딜 가든, 어떤 상황에 처하든 잘 해 나갈 거라고.”
웃으며 말씀하셨지만 천호는 알 수 있었다. 꾸며 낸 웃음이었다. 어머니의 두 눈에는 조금이지만 물기가 어려 있었다.
“하, 군대도 아니고 진짜.”
입술을 한 번 깨무신 어머니께서 다시 표정을 고치셨다. 짐짓 활기찬 미소를 지으시며 말씀하셨다.
“어떻게든 찾아낼 테니 찾으러 갈 때까지 얌전히 있으라고 해 봐야 소용없겠지. 넌 내 자식인 동시에 오지랖 넓은 네 아빠의 자식이기도 하니까. 용사의 피가 어디 가는 것도 아니고. 다른 세계에서 용사를 소환할 정도면 그 세계도 이래저래 위기일 테고, 그럼 넌 ‘씁, 어쩔 수 없죠’ 운운하며 그 세계 사람들을 위해 싸우겠지. 네 아빠도 그랬으니까.”
그런 점이 싫지는 않지만.
말끝에 작게 중얼거리신 어머니는 ‘내 말이 맞지?’하는 얼굴로 짓궂게 웃으셨다.
[과연, 어머님이신가.]
미트라가 작게 감탄했고, 루시엘은 새삼 천호를 돌아보았다. 충동적으로 천호의 손을 꽉 붙잡았다. 루시엘답게 두 눈 가득 감정을 보였다.
정말 멋진 분, 정말 고마운 분, 정말 좋은 분.
“음.”
천호는 열심히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그래도 입꼬리가 살짝 올라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다.
“힘내, 아들. 언제나 믿고 있단다. 파이팅이란다. 파이팅! 아, 그리고?”
주먹을 꽉 쥐며 응원하시던 어머니께서 돌연 표정을 고치셨다. 이제까지 중 가장 짓궂은 표정이 되어 말씀하셨다.
“네 아버지처럼 너무 여자 동료만 늘리지 말고. 알았지?”
“어, 음, 예.”
저도 모르게 답한 천호는 잠시 머릿속으로 동료들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다.
미트라, 루시엘, 천사 3인방.
모두 여자였지만, 아직 동료들이 많이 남아 있었다.
사스치엘을 필두로 한 전투 천사들과 락 드워프들까지 헤아리면 남녀의 비율이 얼추 반반이라 해도 좋았다.
[뭔가 필사적이군.]
미트라가 끌끌끌 혀를 차는 가운데 어머니께서 영상을 마무리 지으셨다.
“조만간 보자꾸나.”
그리고 윙크한 상태로 정지.
그 모습이 무척이나 매력적이었던 터라 루시엘은 눈을 깜박이며 흉내를 내보았지만 쉽지 않았다.
[음, 역시 범상치 않은 분 같군.]
???의 피.
검은 머리칼과 검은 눈동자로 본신의 모습을 숨겼음에도 비범하단 느낌이 들었다.
본신의 모습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
“아무튼 소득이 있긴 했네요.”
잠깐뿐이었지만 어머니와 통신이 되었다.
지금까지 몰랐던 마갑과 캐리어, 엘릭서의 진정한 사용법은 물론이고 세 번째 스크롤의 정체 또한 알게 되었다.
특히 마갑과 캐리어의 사용법이 좋았다. 즉각적으로 전투력을 높일 수 있을 것 같았다.
“정말 놀라워요.”
루시엘이 새삼 캐리어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천호 역시 그러한 터라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시선을 멀리하였다.
“어찌 되었든? 다시 현실로 돌아가야죠. 대책 논의를 해 봐야 할 것 같아요.”
당면한 문제는 겨울왕이었다.
9층의 요격대를 격파한 그가 어떤 움직임을 보일 것인가.
천호가 캐리어를 살펴보는 동안 천사 네트워크를 통해 정보를 수집하고 있던 라구엘과 사스치엘을 필두로 하여 대책 회의가 열렸다.
“지난번과 같다. 일단 겨울왕이 8층으로 온다는 가정하에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사스치엘의 말에는 근거 또한 있었다. 사방으로 흩어진 패잔병들이 각기 올린 정보들을 종합해 보았을 때, 겨울왕은 중앙이 아닌 8층으로의 진군을 결정한 것으로 보였다.
언데드 군단의 수복 때문인지, 아니면 파발의 신과의 싸움에서 입은 부상을 회복하기 위함인지 진군 속도가 꽤 느렸지만, 그래도 꾸준히 나아가고 있었다.
[으음, 정보 수집 자체는 고마운 일이지만… 천사들이 걱정이군.]
천사 네트워크에 접속하기 위해서는 꽤나 강한 성력을 발산할 필요가 있었다. 패잔병들 입장에서는 자신들의 위치를 주변에 광고하는 거나 다름이 없었다.
“패잔병들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 거죠?”
천호의 물음에 라구엘은 입술을 살짝 깨문 뒤 답했다.
“1만 남짓으로 추정되지만 워낙 사방으로 흩어져서 재집결이 쉽지 않은 모양입니다.”
치유의 신이 준비한 요격대는 4만에 달했다. 때문에 패잔병 1만은 결코 많은 숫자가 아니었다.
“9층에서 싸우는 건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 같네요. 8층에서 겨울왕을 막아야겠습니다.”
천호의 말에 라구엘과 사스치엘이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 역시 9층에서의 싸움은 무모하다고 생각했다.
“겨울왕은 본래 10층에 거하던 존재이니 8층까지 올라오면 조금이지만 힘이 약화될 겁니다. 그리고… 이러니저러니 해도 이동에 필요한 시간 덕분에 시간을 벌 수 있을 겁니다. 치유의 신께서도 다시 지원군을 보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병력의 층간 이동이 쉽지 않은 것은 선신들 역시 마찬가지였다. 어떻게든 시간을 끌어야만 했다.
“그럼 다시 눈 굴리기 하는 거예요?”
에이젤이 내심 기대된다는 얼굴로 말했지만 천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방어 자체는 실리피안 요새에서 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기둥 주위에 만든 방벽 덕을 톡톡히 보긴 했지만, 실제로 활용해 보니 명확한 한계점이 보였다.
첫째, 감당할 수 있는 병력의 한계치가 존재한다.
열심히 눈을 굴려 가며 적의 병력을 줄이고 접근을 방해하긴 했지만, 결국 끝에 가서는 백병전을 벌여야만 했다.
죽음의 기사 셋이 이끈 겨울왕의 선봉대 병력의 숫자는 약 2만 남짓.
그런데 겨울왕의 본대는 적어도 4만 이상이니, 그 배가 되었다. 아무리 입구를 좁혀 직접 충돌하는 병력의 숫자를 최소화한다고 해도 1만 남짓한 병력으로 감당할 수 있는 숫자가 아니었다.
둘째, 방벽과 눈덩이로 겨울왕을 막을 수 없다.
죽음의 기사들조차 검기로 눈덩이들을 베어 냈었다. 그보다 훨씬 강한 것이 분명한 겨울왕이 선두에 선다면 눈덩이 자체를 소멸시킬지도 모를 일이었다.
더욱이 방벽.
죽음의 기사들은 방벽을 파괴하는 대신 통로를 강행 돌파했지만, 겨울왕 정도의 강자라면 방벽 파괴를 선택할 가능성도 있었다.
셋째, 결국 직접 대결을 벌여야 한다.
눈덩이들로 재미를 실컷 보기는 했지만, 끝에 가서는 초인적인 전투력을 가진 죽음의 기사와 천호, 전투 천사들의 직접 대결이 승패를 결정지었다.
지구에서의 싸움과 가장 큰 차이점이었다.
단신으로 수백을 격파할 수 있는 존재들이 있으니, 그치들을 제압하지 못하면 일반적인 전술 이론은 무용지물이 되었다.
[결국 겨울왕이란 자를 막을 수 있느냐 없느냐 싸움이군.]
미트라가 침음을 흘렸다. 그도 그럴 것이, 겨울왕은 파발의 신을 쓰러트릴 정도의 강자였다.
파발의 신이 비록 하위 신이라고는 하지만, 다른 누구도 아닌 전쟁의 여신 이브나일의 하위 신이었다. 하위 신들 가운데서는 그야말로 손에 꼽는 전투력의 소유자였다.
“겨울왕의 진군 속도를 생각하면 그래도 아직 며칠 여유가 있습니다.”
라구엘의 설명에 고개를 끄덕인 천호는 잠시 지도를 바라보았다. 루카스가 준비한 8층의 지도와, 아우라엘이 천사 네트워크에서 보고 베낀 9층의 지도였다.
“그럼 작업으로 시간을 벌도록 하죠.”
작업.
천사들이 반사적으로 흥분한 그때 천호가 계속해서 말했다.
“그리고… 9층에 잠시 다녀오도록 하죠.”
“찬성입니다. 조금이지만 격이 높아질 겁니다.”
라구엘이 힘주어 말하자 천사들의 얼굴에 약간씩이지만 미소가 번졌다.
9층에 내려가면 일단 아래층으로 향하라는 메인 퀘스트를 완수할 수 있었다.
천호뿐만 아니라 천사들 역시 거의 대부분 대미궁 밖이나 저층에서 온 자들답게 9층에 가 본 적이 없었다. 다들 소소하게나마 격의 상승을 기대할 수 있었다.
“내려간 김에 구조 요청이 온 패잔병 무리 가운데 하나와도 접선하도록 하죠. 아무래도 직접 보고 들은 이의 정보가 더 소상할 테니.”
지도 위에는 하얀 마커가 하나 올라가 있었다. 기둥에 거의 근접한 상태였기 때문에 금방 합류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으으, 상층 등반 효과도 처음 느껴 보겠네요.”
하층에서 상층으로 올라갈 때 느끼는 부하.
초월자의 영역에 들어서기 시작한 천호나 날 때부터 초인인 천사들은 일반인들처럼 목숨이 위태로운 수준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꽤나 고통스런 경험을 해야만 했다.
[그래도 마신의 수하들처럼 전투력이 약해지지는 않아서 다행이다.]
마신의 수하들은 위로 올라갈수록 심층의 마기로부터 멀어지는 탓에 그 힘이 약화되었다.
겨울왕처럼 다소 독립적으로 활동하는 악신 역시도 이는 마찬가지였다.
물론 그렇다고 선신들에게 무조건 유리한 구조는 아니었다.
반대로 마신의 수하들은 아래층에 내려가는 것만으로 꽤나 큰 힘의 상승을 누릴 수 있었고, 선신들이나 천사들은 아래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심층의 마기가 강해지는 터라 여러 가지 제약이나 압박을 받았다.
애당초 격의 상승 자체가 저런 각종 시련을 이겨 낸 보상이라 해도 좋았으니 말이다.
“다시 한 번 정리하도록 하죠. 일단 저와 천사 분들은 9층에 내려가 패잔병 무리와 합류한 뒤 바로 다시 8층으로 귀환하겠습니다.”
락 드워프들은 데려가지 않는다. 작업에 능한 그들은 8층에서 해야 할 일들이 있었다.
“루카스는 저희가 다녀올 동안 작업 준비를 해 주세요. 실리피안 요새로 회군할 준비도 해 주시고요.”
“음, 알겠네.”
무슨 작업인지는 몰랐지만, 아무튼 좋은 것이겠지.
이미 천사들과 마찬가지로 천호의 작업에 매료된 루카스였다.
“좋아요, 그럼 작업 설명을 시작하죠.”
천사들의 얼굴에 기대와 홍조가 번졌다.
* * *
9층에 내려선 순간 빛의 창들이 연속해서 떠올랐다.
그래도 8층까지 내려오며 해 둔 것들이 많은지 기대했던 것보다는 좀 더 강해진 기분이었다.
“하아, 좋아라. 조금만 더 하면 6급 천사도 될 것 같아요.”
본래 급이 낮은 자일수록 성장이 빠른 법이었다.
에이젤이 폴짝폴짝 뛰며 좋아하자 검은 옷 덕분에 눈에 확 띄게 된 라구엘이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나도 좀… 변한 것 같네. 어둠의 마력이 강해졌어.”
“어…둠의 마력?”
“어, 응.”
아우라엘이 불안한 얼굴로 묻자 라구엘이 역시 불안한 얼굴로 답하며 손가락을 세웠다. 그 끝에서 보랏빛 마력의 불꽃이 피어올랐다.
[저러다 진짜 타락하는 거 아닌가?]
“에이, 설마요.”
라구엘이 얼마나 착한데. 날개도 아직 하얀색이고.
천호와 미트라가 짧게 잡담을 나누는 사이, 루시엘은 눈을 감고 기도를 올렸다. 무사히 9층에 도착하게 된 것을 감사하는 한편, 패잔병들의 구조 신호를 보다 명확하게 느끼기 위함이었다.
치유의 신의 사도가 된 이후 마치 껍질을 깬 것처럼 천사로서의 역량이 쑥쑥 성장 중인 루시엘이었다.
기도를 올린 지 얼마 되지 않았음에도 패잔병들의 위치와 상황을 정확히 읽어 냈다.
“전투가 벌어지기 직전이에요.”
거리는 10km 남짓.
결코 가까운 거리가 아니었지만, 비행이 가능한 일행에게는 먼 거리 또한 아니었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천사들이 날개를 펼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