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85화 (85/211)

[아, 아니. 그것만이 아니라… 그, 그래. 그대에 대한 이야기도 나눠야 하지 않나. 어머님의 피가 각성한 게 영육에 어떤 영향을 주었는지도 분석해야 하고. 아, 어쩌면 분석 결과로 어머님의 정체를 알아낼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렇군요. 그것만이 아니면 아무튼 변한 모습을 보여 주고 싶다는 거군요.”

[으윽.]

새 옷 사서 자랑하고 싶은 거랑 비슷한 심리일려나?

“좋아요, 미트라가 이렇게까지 말하는데 아무리 피곤해도 가야죠. 갑시다, 정신세계.”

[그렇게까지 말하지는 않았다.]

“그럼 말든가요.”

[흑흑.]

역시 귀여운 성검. 목욕탕 욕조에 물을 다 채운 천호는 좀비처럼 흐느적거리는 천사들을 목욕탕에 몰아넣은 뒤 방에 설치해 둔 책장 욕조에도 물을 채웠다.

“그런데 미트라, 한 번에 먹기에는 좀 크지 않아요?”

[으음, 그래도 어떻게든 될 거다.]

베르가프가 사용하던 마검은 그 길이가 4미터에 육박했으니까. 천호의 방바닥을 점령하다시피 한 마검 위에 미트라를 가져다 대자 늘 그랬듯이 미트라와 마검 모두가 빛나기 시작했다.

[으으윽.]

하지만 역시 크기가 커서 그런지 평소보다 시간이 오래 걸렸다. 먹고 난 뒤의 반응도 달랐고.

[끄억. 꺽.]

“진짜 괜찮아요?”

[괜끄억다. 문제없다.]

헉헉거리는 것이 문제가 많아 보였지만 그래도 일단 소화하기는 소화한 모양이었다.

미트라의 황금색 보석이 이전보다 조금 더 커졌고, 그 색도 밝아졌다.

[자, 그대여. 빨리 벗어라. 정신세계에 가는 거다.]

“으음… 예.”

천호는 목욕탕에 몸을 담근 뒤 미트라를 한 손에 쥐었다. 늘 그러했던 것처럼 눈을 감고 몸과 마음을 편안케 하였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자연스럽게 눈을 뜨니 언제나의 풍경이 천호를 반겨 주었다.

아름다운 실리피안 고원.

그리고 그 사이에 서 있는 한 사람.

“미트라?”

[후후훗, 놀랐는가?]

천호가 저도 모르게 되묻자 미트라가 젠체하며 말했다.

확실히 변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졌다.

일단 제대로 된 색이 생겼다.

흑백이던 예전과 달리 머리칼과 눈동자, 살결, 옷 가릴 것 없이 모두 색이 생겼다.

그리고 키도 자랐다. 더 이상 열 살 남짓한 꼬맹이가 아니었다.

십대 초반.

에이젤과 또래로 보이는 여자 아이.

하얀 상의와 검은 바지를 입고 있었다. 수줍다는 듯 뺨을 살짝 붉히고 있는 얼굴에 자리한 것은 황금색 눈동자였다.

검푸른 머리칼과 황금색 눈동자.

‘역시 그랬나.’

용사의 검을 보여 준 황금빛 눈동자의 여인.

미트라가 맞았다.

모든 힘을 되찾은 미트라의 진정한 모습이 분명했다.

[그대여, 그렇게 놀랐는가? 정신을 못 차릴 정도로?]

후후훗 기분 좋게 웃는 미트라를 가만히 바라보며 천호는 생각했다.

‘엄청 자라는구나.’

키도 그렇고 이것저것.

황금빛 눈동자의 여인은 상당한 장신이었으니까. 키가 적어도 170은 되지 않을까 싶은.

[훗, 하지만 그대여, 놀라기는 아직 이르다. 진짜 내 모습을 보면 그대가 어떤 반응을 보일지 궁금하군.]

“그러게요.”

천호는 이미 봤다고 답하는 대신 장단을 맞춰 준 뒤 미트라에게 다가섰다.

“그래도 아직 작군요.”

[으읏…….]

아직 머리 높이가 천호의 가슴팍에도 닿지 않았으니까.

[아무튼 할 일이 많다. 그대나 나나 성장했으니까. 용사 스킬도 새로 얻어야 하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그대의 몸 상태를 점검한 뒤에는 어머님의 정체에 대해서도 의논해 봐야 한다.]

“팔베개도 하고요?”

[그, 그대가 하고 싶다면 뭐…….]

“해 달라는 거네요.”

입을 꾹 다물 뿐 부정은 않는 미트라였다.

어쩌면 변한 모습을 보여 주기보다는 팔베개를 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천호는 툴툴거리는 미트라의 머리를 쓰다듬은 뒤 자리에 앉았다.

“그럼 일단 미트라 변한 것부터 확인하죠. 성검 스킬도 좀 개방되었죠?”

[그렇다. 그대와의 유대도 좀 더 깊어진 것 같고.]

미트라는 천호의 앞에 마주 앉은 뒤 빛의 창들을 만들어 냈다.

성검 스킬이 두 개나 개방되었다. 그리고 둘 모두 꽤나 유용할 것 같았다.

“하나는 정찰용으로 좋겠고, 다른 하나는 강화용으로 좋겠네요.”

[정찰용?]

강화용은 이해가 되었지만 정찰용이라니.

“미트라를 숨겨 놓고 적들을 몰래 감시한다거나, 멀리 높이 던져서 적진 상황을 본다거나- 응용할 여지는 많죠.”

[…천사들의 목욕탕을 엿보는 용도가 아니라고 해서 다행이군.]

“사람을 어찌 보시고.”

천호와 미트라가 서로를 보며 흥 하고 웃었다.

“능력 공유는… 오, 저도 관련 스킬이 하나 생겼어요. 이건 제가 강해져서가 아니라 미트라에게 능력 공유 스킬이 생겨서 같네요.”

빛의 창을 살펴보던 천호가 말했다. 베르가프를 쓰러트린 직후에는 워낙 빛의 창이 많이 나타나서 놓쳤던 부분이었다.

한마디로 미트라의 스테이터스 열람이 가능하다는 소리였다.

[으음.]

“한번 보도록 하죠. 어떤 스킬이 있는지 궁금하니. 알아야 공유도 가능할 테고.”

[그, 그래.]

사실 미트라 자신도 자신의 스테이터스가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었으니까.

어떤 스킬들이 있을지 궁금하기는 했다.

“우선 성격이랑 특성부터 보죠.”

[으음.]

“보기 편하게 이쪽으로 와요.”

[그, 그래.]

미트라가 바짝 긴장한 얼굴로 마른침을 삼키더니 천호 쪽으로 돌아앉았다.

“자, 엽니다. 한 번에 다 보면 재미없으니 조금씩 보도록 하죠.”

미트라는 대답 대신 다시 한 번 마른침을 삼켰다.

“일단 전반부는 성검답군요.”

[흠.]

미트라가 안심한 듯 어깨를 살짝 늘어트렸다. 하지만 아직 방심하기에는 일렀다.

“오, 역시!”

귀여움이 있을 줄 알았다. 그것도 레벨이 무려 8이나 된다니!

[아, 아니다. 나는 귀엽지 않다.]

“여기 설득력 없는 말을 하는 사람이 있군요.”

허둥거리는 미트라에게 끌끌끌 혀를 차 준 천호는 빛의 창을 다시 한 칸 더 내렸다.

그리고 천호와 미트라는 동시에 얼어붙었다.

“잠깐, 잠깐, 잠깐.”

[아, 아니다! 아니다! 잘못되었다! 빛의 창이 고장 난 거다!]

“매, 맨날 한숨 쉬더니! 거기다 나보다도 레벨이 높잖아요!”

맨날 빨리 벗으라고 할 때 알아봤어야 하는데!

[아, 아니다! 아니란 말이다!]

얼굴이 새빨개진 미트라가 허우적거렸다.

[그, 그래! 그대 때문이다! 그대의 영향을 받은 게 분명하다! 나는 그대의 성검이니까! 그대의 것이니까!]

“변명은 죄악입니다, 미트라. 그냥 스스로를 받아들이시죠. 저는 엉큼한 성검도 받아들일 수 있으니.”

[흐윽.]

거의 쓰러지기 직전인 미트라였다. 얼굴도 살짝 건들면 터질 것만 같았다.

하지만 아직 끝이 아니었다.

성격과 특성 란에는 몇 개나 되는 스킬들이 남아 있었다.

그리고 마지막 남은 하나의 특성.

모든 것을 설명하는 단 하나의 단어에 천호는 고개를 끄덕였고, 미트라는 결국 쓰러졌다.

바닥에 머리를 박은 채 소리쳤다.

[으앙!]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감각 공유 : 성검과 시선을 비롯한 각종 감각을 공유할 수 있다.]

[능력 공유 : 성검의 능력치 일부를 용사에게 더해, 용사를 강화시킨다.]

[능력 열람 : 성검의 각종 능력치를 살펴볼 수 있다.]

[고결한 Lv9]

[용감한 Lv8]

[정의로운 Lv8]

[다정한 Lv8]

[순진한 Lv7]

[귀여운 Lv8]

[엉큼한 Lv7]

[단단한 Lv4]

[날카로운 Lv7]

[어둠 저항 Lv7]

[마법 저항 Lv5]

[신성한 Lv9]

[호구 Lv7]

천호는 고개를 들었다.

푸른 하늘은 쾌청했고, 바람은 시원했다. 미트라는 여전히 꼼짝도 하지 않았고 말이다.

미트라는 엉덩이를 세운 채 머리는 바닥에 박은, 쥐구멍을 찾다 못 해 머리만 담요로 겨우 가린 것 같은 모습을 하고 있었다.

‘수수께끼는 모두 풀렸군.’

정말로 모든 의문이 해소되었다.

그 정도로 강력한, 미트라라는 존재의 핵심을 꿰뚫는 단어였다.

“미트라.”

부름에 엉덩이가 움찔했지만 거기까지였다. 대답을 하거나 일어나지 않았다.

하지만 천호는 여유를 잃지 않았다. 미트라 바로 옆에 앉은 뒤 계속해서 말했다.

“자아, 자. 일어나요. 능력치마저 봐야죠. 이야기도 하고, 팔베개도 하고.”

미트라가 다시 한 번 움찔움찔했다.

천호는 가만히 눈치를 보다가 양손을 뻗었다. 이러니저러니 해도 결국 십대 초반의 소녀의 몸인 터라 가벼운 미트라의 상반신을 휙 들어 올린 뒤 와락 끌어안았다.

[그……!]

“괜찮아요.”

미트라가 무어라 반항하려 했지만 천호가 조금 더 빨랐다. 미트라를 품에 꽉 안은 채 계속해서 말했다.

“미트라가 고결하든, 귀엽든, 엉큼하든, 호구든, 상관없어요. 아무리 엉큼하고 음흉하고 깜찍해도 미트라는 미트라인 걸요. 제국 호구검이든 뭐든 제게는 미트라인 게 중요해요.”

[우긋.]

뭔가 반발하고 싶은 내용들로 가득한 말이었지만 어쩐지 모르게 그럴 마음이 들지 않았다.

미트라는 천호의 가슴에 머리를 묻은 채 입술을 움츠렸다.

‘으음, 뭔가 예상과 다른데.’

미트라가 무어라 앙탈을 부리면 거기에 합을 맞추며 어영부영 넘어갈 생각이었는데.

미트라가 예상 밖으로 너무 얌전했다.

“으음.”

결국 머쓱해진 천호는 미트라의 머리를 조심스럽게 쓰다듬었고, 미트라는 그런 천호의 품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그렇게 다시 1분, 2분.

[흠흠.]

“음.”

누가 먼저랄 것 없이 헛기침을 토한 천호와 미트라는 서로를 안고 있던 팔에서 힘을 조금 뺐다.

천호가 먼저 장난스럽게 말했다.

“제 품에 안기는 게 그렇게 좋아요?”

[우으… 그, 그런 것 같다.]

천호 외에는 누군가와 이렇게 서로 안아 본 적도 없어서 비교 대상이 없었지만.

미트라가 얼굴을 붉힌 채 우물쭈물 답하자 천호는 얼른 고개를 다른 곳으로 돌렸다.

새삼스런 이야기였지만 ‘초’자가 붙어도 좋을 정도의 미소녀로 거듭난 미트라였다. 솔직히 예뻐도 너무 예뻤다.

[아, 아무튼! 빛의 창이 고장 난 게 분명하다. 나는 귀엽지도, 엉큼하지도 않다. 호구도 아니고.]

“어, 음, 네. 그런 걸로 치죠.”

적당히 답한 천호는 잠시 고민했다. 어찌 되었든 이야기를 계속 진행하려면 미트라와 서로 안고 있는 지금 자세를 바꿔야 했으니까.

[흠흠.]

다행히 미트라가 먼저 움직였다. 그런데 천호의 예상과 조금 다른 움직임이었다. 천호의 품에서 떨어지는 대신 방향만 빙글 돌린 그녀는 천호의 가슴에 등과 머리를 기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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