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56화 (56/211)

‘어디 잠입해 보거라.’

도루마의 말대로라면 용사 일행은 기껏해야 열 명 남짓.

일천이 넘는 랫맨들을 향해 돌진하는 것은 절대로 무리였다. 놈들에게는 마탑에 잠입하는 것이 최선이었다.

그러니 잠입할 길을 열어 둔다.

잠입을 차단하는 것이 아니라, 교묘하게 길을 하나 열어 두어 놈들을 준비된 장소로 유도한다.

렉카로스의 얼굴에 미소가 번졌다. 단순히 숫자로 밀어붙이는 게 아니라, 지혜로 용사를 제압한다는 상황 자체가 몹시도 흥겨웠기 때문이다.

“렉카로스 님!”

바로 그때였다. 마탑주의 방문을 벌컥 열고 랫맨 하나가 얼굴을 내밀었다. 전력 질주라도 했는지 놈은 헐떡이며 말을 이었다.

“용사, 용사가 왔습니다!”

“드디어!”

렉카로스가 활짝 웃으며 자리에서 일어섰다. 밤이 아닌 오전 중에 잠입해 온 것이 좀 이상하긴 했지만, 중요한 건 용사가 왔다는 사실이었다.

렉카로스는 랫맨에게 빠른 걸음으로 다가서며 물었다.

“어디로 잠입했지? 우리가 열어 둔 길로 잠입했나?”

도루마의 말대로라면 이번 용사는 제법 유능했다. 그래서 경비의 구멍도 교묘하게 배치했다. 얼핏 보면 구멍이 없는 것 같지만, 자세히 살펴보면 구멍이 있는. 그렇기에 의심하지 않고 빠져들 수 있는.

렉카로스의 물음에 랫맨이 얼굴을 구겼다. 고개를 가로저으며 말했다.

“저, 정면으로 왔습니다.”

“뭐?”

“정면으로!”

* * *

“용사가 우리와 함께한다!”

“용사가 우리와 함께한다!”

“용사의 이름으로!”

“용사의 이름으로!”

거대한 함성에 마탑 전체가 진동했다.

땅울림에 주변 일대가 뒤흔들렸다.

날카로운 곡도를 든 루카나 여왕이 명령했다. 산맥과 숲을 통해, 백여 명씩 은밀히 기동했던 산의 일족이 한자리에 뭉쳤다. 이천에 달하는 병력이 마탑을 향해 질주했다.

산의 일족의 총력이었다.

천호는 루카나 여왕에게 산의 일족의 전력을 요구하였다.

어설프게 잠입이고 자시고 할 때가 아니었다.

속전속결.

놈들이 숫자를 내세운다면 더 큰 숫자로 밀어 버린다.

‘아들아, 용사는 원래 같이 싸우는 거다.’

모두의 힘을 모아 하나 된 힘으로.

뭔가 아버지의 말씀을 곡해한 기분이었지만, 그렇다고 아주 틀린 것은 아니었다.

포효하며 질주하는 산의 일족은 강맹함 그 자체였다. 작은 이조차 2미터에 육박할 정도로 덩치가 좋은 일족이다 보니, 평범한 사람보다도 작은 랫맨들은 일단 체격에서부터 상대가 되지 않았다.

‘왕도에서 구원이 오기 전에 끝낸다.’

마탑에서의 용건을 끝내고 산맥으로 돌아간다.

천호는 의식을 집중했다. 앞장서서 달리며 두 다리에 힘을 주었다.

신속의 스칸다를 사용하지 않았다. 하지만 천호는 어느새 바람이 되고 있는 자신을 느꼈다.

이전보다 더 빠르게.

이전보다 더 강하게.

선을 넘는다. 선 너머로 한걸음을 내딛는다.

그리하여 마침내 벽을 뛰어넘는다.

작은 변화였다. 하지만 그것으로 온전히 달라졌다. 이전과는 다른 무언가로 탈바꿈했다.

자연스럽게 알 수 있었다. 산의 일족과의 거리가 벌어졌다. 포효하며 달리던 전투 천사들 역시 천호의 등을 바라봐야만 했다.

미트라가 환희했다.

황금색 보석이 밝게 빛났고, 손끝에서 일어난 푸른 뇌전이 검신 전체를 뒤덮었다.

[용사여.]

미트라가, 그녀가 천호를 불렀다. 천호가 그에 응답하듯 지면을 박차 도약했다. 단순한 도약이 아닌, 비상에 가까운 솟구침이었다.

산의 일족이 그런 천호를 보았다.

돌격을 막기 위해 도열해 있던 랫맨들 역시 반사적으로 고개를 들었다.

검은 하늘 아래 푸른 뇌전이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것이 지상을 향해 몰아쳤다.

콰가강!

검신으로 지면을 때렸다. 우레가 폭발했고, 사방으로 뻗어 나갔다. 가까이에 있던 랫맨 십여 마리가 그야말로 튕기듯 날아갔고, 근방에 있던 무리들이 나자빠졌다. 크게 일어난 푸른 뇌전이 랫맨들 사이에서 휘몰아쳤다.

“와우.”

천호가 저도 모르게 말했다.

미트라가 환한 웃음을 터트렸다.

[내가 말하지 않았던가!]

인간을 넘어 초월자의 경지로.

진정한 용사의 영역으로.

전투 천사들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천호가 강하다는 사실은 이미 알고 있는 그들이었다. 하지만 달라졌다. 자신들이 알고 있던 수준을 넘어섰다.

“꺄악! 용사님!”

후방에서 대기 중이던 에이젤이 폴짝폴짝 뛰며 좋아했다. 그녀의 옆에 서 있던 루시엘이 멍하니 입을 벌렸다.

1층에서 처음 천호를 마주했을 때.

식탁에서 무기가 쏟아져 나오고, 체술 하나로 랫오거를 제압했을 때.

그때가 떠올랐다. 그리고 그때와 같았다.

아니, 달랐다. 그때보다 훨씬 크고 강한 감정을 느꼈다.

“용사님!”

루시엘이 환히 웃으며 소리쳤다. 그리고 그런 그녀의 좌우에서, 주변 전체에서 환호성이 터졌다.

폭발적인 외침이 터져 나왔다.

“우오오오오!”

“용사여!”

“용사의 번개여!”

초대 용사의 후예들.

산의 일족이 울부짖었다. 용사의 상징인 푸른 번개를 눈앞에서 목도한 순간, 그들은 어린 시절부터 들어온 전설의 일부가 되었다.

주체할 수 없을 만치 큰 고양감 속에 돌진을 재개했다.

“가라! 가라! 용사의 자손들이여!”

루카나 여왕이 몸소 앞장섰다. 거대한 곡도를 휘둘러 랫맨들의 전열을 무너트렸고, 산의 일족이 그 뒤를 따랐다. 역병신의 기운으로 강화된 랫맨들이었지만 속수무책이었다.

“미트라.”

천호가 자리에서 일어나며 검을 고쳐 쥐었다.

정면을 주시한 채 요구했다.

“열풍.”

난방과 건조를 위한 바람.

하지만 이번에는 아니었다. 그렇기에 미트라는 그 어느 때보다 밝은 목소리로 응답했다.

[질풍!]

미트라의 검신에서 바람의 소용돌이가 일었다. 그리고 그 사이로 푸른 뇌전이 번뜩였다.

바람과 번개의 검.

미트라의 환호 속에 천호가 지면을 박찼다. 랫맨들 사이를 파고들었다.

새로운 용사의 전설을 시작했다.

* * *

[용사의 아우라 Lv1을 획득했습니다.]

[연쇄 우레 Lv1을 획득했습니다.]

겨울나무 숲의 마탑은 평지 위에 세워져 있었다.

주변에 세워진 방책이라고 해봐야 울타리 정도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어제의 싸움으로 불타 소실되었다.

때문에 숲속에서의 싸움임에도 불구하고, 마치 대평원의 회전처럼 지형에 상관없이 양 군대의 힘을 겨루는 양상이 되었다.

“파고들어라! 뭉개 버려라!”

루카나 여왕이 크게 외쳤다. 산의 일족은 오직 돌진만을 반복했다. 복잡한 전술을 사용할 능력이나 머리가 없어서가 아니었다.

개방된 평지에 이쪽 병력이 더 많았다. 여기서는 기세를 살려 단번에 몰아치는 것이야말로 가장 효율적인 전술이었다.

랫맨들은 속수무책으로 무너져 갔다. 역병신의 방울을 크게 울리고, 사특한 마기로 산의 일족의 기세를 억누르려 했지만, 천사들이 이를 허용치 않았다. 더욱이 산의 일족의 기세가 너무 높았다. 어중간한 마기로는 억누르는 게 불가능했다.

“용사의 이름으로!”

“용사의 이름으로!”

폭발적인 외침이 방울 소리를 집어삼켰다. 사스치엘을 비롯한 전투 천사들은 크게 웃으며 성스러운 기운을 방출했다. 기세만으로 마기를 몰아내고 있는 산의 일족 전사들을 이끄는 대신 그들의 등을 미는 기분 좋은 바람이 되었다.

그리고 이 모든 상황을 만들어 낸 자는, 가장 치열한 최전선에 선 자는 흥분한 성검과 함께 포효하고 있었다.

[꺄아!]

비명이나 울부짖음이 아니었다. 너무 기뻐 외치는 환희의 외침이었다.

저도 모르게 뿜을 뻔한 천호는 현자의 시간으로 겨우 스스로를 진정시켰다. 차분한 가운데 성검을 휘둘렀고, 미트라와 빠르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미트라!”

[계속해라! 계속해라! 용사!]

미트라의 검신에서 일어난 소용돌이가 천호의 전방에 휘몰아쳐 랫맨들을 밀어냈다. 천호는 뒷걸음질 치는 놈들의 가슴을 베며 대화를 일단 중단했다. 흥분한 미트라를 상대로 말을 잇는 대신 바로 능력을 발동시켰다.

천호의 전신에 새하얀 기운이 어렸고, 이내 주변으로 방출되었다. 미트라가 소리쳤다.

[용사의 아우라다! 주변에 있는 아군의 용기를 북돋고, 마기를 억누른다!]

“범위는?!”

[어… 당장은 반경 2미터?]

너무 짧았다. 하지만 이제 겨우 레벨1이었으니까.

더욱이 반경 2미터로 아군의 용기를 북돋는 건 어려웠지만, 적의 마기를 꺾는 것은 충분히 가능했다.

“크으!”

“큿!”

용사의 아우라 범위 안에 들어온 랫맨들이 저마다 괴로운 신음을 토했다. 오랫동안 어둠 속에 있다가 빛을 쐰 자들 같은 반응이었다.

천호는 그들을 향해 미트라를 휘두르는 대신 왼손에 움켜쥔 우레를 쏘아 냈다.

푸른 뇌전이 한 놈을 강타했고, 놈의 몸을 통과한 우레가 다시 옆의 놈을 때렸다.

[연쇄 우레! 이름 그대로 적에서 적으로 옮겨 붙는 우레다!]

[레온이 곧잘 사용하던 기술이지!]

미트라의 목소리에 기쁨이 가득했다. 하지만 역시나 Lv1. 아직은 한 명에서 다른 한 명으로 옮겨 가는 것이 한계였다.

[보다 강해질 것이다. 레온은 연쇄 우레 한 방으로 수십 명을 쓰러트리고는 했으니까!]

아직은 레벨도, 마력도, 우레의 숙련도도 모두 부족했다. 하지만 분명히 성장하고 있었다. 선을 넘은 순간 천호는 초대 용사 레온을 향해 한발, 한발 나아가고 있었다.

“카푸아!”

괴성과 함께 측면에서 랫오거가 덤벼 왔다. 놈이 내려친 거대한 쇠몽둥이를 한걸음 물러서는 것으로 피한 천호는 왼손을 놀렸다. 보이는 손과 함께 던진 나이프가 보기 좋게 랫오거의 목을 꿰뚫었고, 나이프에 어려 있던 우레가 터져 놈의 목을 박살 냈다.

“키악?!”

목을 움켜쥔 랫오거가 바닥에 주저앉았다. 천호는 죽어가는 놈에게 굳이 추가타를 날리는 대신 기감을 퍼트렸다. 본능적인 행동이었고, 어느 순간 천호의 몸에 난 솜털들이 일제히 곤두섰다.

위험을 느꼈다. 위기를 감지했다.

용사의 위기가 아니었다. 다른 누군가의 위기였다. 그렇기에 보다 민감하게 느낄 수 있었다.

천호가 신형을 날렸다. 보법을 밟아 예측한 경로상에 몸을 밀어 넣었다. 순간적으로 판단했다.

‘무리야!’

아쿠아 블레이드를 이용한 방벽으로는 막을 수 없었다. 바람으로 경로를 바꾸는 것도 불가능했다.

천호는 미트라를 세웠다. 저 멀리서부터 무시무시한 기세로 날아오는 화살을 정면에서 받아 냈다.

카앙!

미트라의 검신과 거대한 화살이 충돌했다. 왼손으로 검신을 받치고 있던 천호가 손을 떠는 데 그치지 않고 뒤로 밀려날 정도로 강한 화살이었다.

“용사?!”

그제야 화살의 존재를 눈치챈 루카나 여왕이 깜짝 놀라 천호의 등을 보았다. 천호는 미트라를 휘둘러 화살을 쳐 냄과 동시에 시선을 멀리했다. 화살이 날아온 경로 끝에 자리한 자를 보았다.

마탑의 최상층, 30여 미터쯤 되는 그곳에 거대한 활을 든 랫맨이?아니, 랫오거가 서 있었다.

신비한 약물로 덩치를 키우고 육체 능력을 강화한 렉카로스였다.

놈도 천호를 보았다. 순간 천호는 온몸의 솜털들이 다시 한 번 곤두서는 것을 느꼈다. 반사적으로 소리쳤다.

“머리 위!”

렉카로스가 연달아 시위를 당겼다. 한 번에 다섯 개씩 화살을 걸고 지상이 아닌 하늘을 향해 내쏘았다.

영민한 루카나 여왕은 천호의 외침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했다. 아니, 직감했다는 쪽이 옳았다.

“방패 들어!”

비명처럼 외친 그 명령에 근방에 있던 산의 일족이 기계적으로 반응했다. 정면의 적을 향해 무기를 휘두르던 자들 외에는 거의 전부가 왼팔에 차고 있던 방패를 들어 머리를 보호했다.

하지만 충분하지 못 했다.

콰가가가가가가강!

하늘에서 화살의 비가 쏟아져 내렸다.

아니, 그것은 이미 화살이라 하기 어려웠다. 하늘에서부터 내리꽂히는 섬광들이었다.

방패가 꿰뚫렸다. 그나마 팔이나 어깨를 꿰뚫린 자들은 목숨을 건졌지만, 머리가 깨져 죽는 이들이 나왔다.

렉카로스는 웃을 시간조차 아깝다는 듯 계속해서 시위를 당겨 댔다.

렉카로스를 따라 옥상에 오른 랫맨들 역시 지상을 향해 화살을 쏘아 댔다.

산의 일족은 이천이나 되었다. 이십 여명이 쏘아 대는 화살 따윈 본래라면 무시할 수 있었다.

하지만 렉카로스의 화살이 그것을 불가능하게 하였다. 놈 혼자서만 순식간에 수십 발을 쏘아 대는 판국이었다.

놈을 막아야 했다. 놈을 막아야만 이 싸움에서 승리할 수 있었다.

“엘리엘!”

천호가 부르짖었다. 양측을 합쳐 삼천 명이 넘는 이들이 고함을 지르며 싸우고 있었지만, 하늘에서 쏟아지는 섬광에 비명과 울부짖음이 퍼지고 있었지만, 그 목소리는 분명히 닿았다. 애당초 천호의 부름에 대응하기 위해 근방에서 싸움을 이어 가던 엘리엘이 곧장 고개를 쳐들었다.

그녀는 평범한 말이 아닌 전투 천사였다. 성스러운 기운을 양껏 발산하며 지면을 박찼다. 이내 날개를 펼쳐 날아올랐다.

“용사님!”

엘리엘이 외쳤다. 천호는 지면을 박차 비상했다. 자신 앞을 지나쳐 날아가는 엘리엘의 등 위에 정확히 안착해 정면을 보았다.

[온다!]

미트라가 외쳤다. 렉카로스였다. 놈은 하늘을 향해 연사를 하는 대신 거대한 화살을 시위에 걸고 있었다. 놈도 눈이 있으니, 이 전장의 중심이 누구인지를 알고 있었다. 일순간의 주저도 없이 시위를 놓았다.

촤악!

화살이 마치 총알처럼 회전하며 돌진했다. 대기의 벽을 관통하며 날아오는 그것은 역병신의 힘을 상징하는 진녹의 기운으로 뒤덮여 있었다.

천호는 엘리엘의 목을 끌어안았다. 그녀를 믿었고, 엘리엘은 도망치는 대신 정면을 향해 내달리는 것으로 천호의 믿음에 응답했다. 허공을 지면처럼 박차며 몸을 뒤틀었다.

츄화?!

화살이 허공을 꿰뚫었다. 곡예비행으로 화살을 피해 낸 엘리엘은 잠시도 멈추지 않았고, 렉카로스가 이번에는 화살 두 개를 동시에 내쏘았다.

“커헝!”

사스치엘이 끼어들었다. 그의 포효가 대기를 뒤흔드는 데 그치지 않고 화살의 경로에까지 뒤틀림을 일으켰다.

“가라!”

사스치엘이 소리쳤다. 엘리엘이 경로가 뒤틀려 양옆으로 흩어지는 두 화살 사이를 관통하여 달렸다.

커다란 박쥐들이 몰려들었다. 하지만 이번에는 카지엘과 유지엘이 나섰다. 고릴라와 백곰이 양팔을 마구 휘두르며 성스러운 기운을 발하니, 박쥐 떼 따위가 견뎌 내지 못 했다.

렉카로스와의 거리가 좁혀졌다.

렉카로스는 포기하지 않고 시위에 화살을 걸었다.

랫맨들이 화살을 쏘았다. 렉카로스의 손에서 마지막 화살이 떠났다.

쾅!

굉음이 터질 정도로 강맹한 화살이었다. 아무리 엘리엘이라 해도 이번에는 피할 수 없었다.

쾅!

그래서 다시 굉음을 일으켰다. 천호가 엘리엘의 등을 크게 박찼다. 아니, 밀어냈다. 엘리엘이 짧은 비명과 함께 땅으로 쑥 꺼지듯 내려갔고, 그런 엘리엘의 머리 바로 위를 렉카로스의 화살이 스치고 지나갔다.

“노옴!”

렉카로스가 즉시 천호를 쫓아 시선을 하늘로 돌렸다.

천호가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고 있었다.

렉카로스가 속사했다.

하지만 천호가 허공에서 몸을 비틀어 이번에도 공격을 피해 냈다. 그대로 렉카로스를 향해 추락 같은 활공을 개시했다.

랫맨들이 그런 천호를 맞추기 위해 우왕좌왕했다. 렉카로스는 활을 던지고 허리춤에서 검을 뽑아 들었다.

[마기가 강하다! 평범한 공격으론 무리다!]

미트라의 말은 정확했다. 천호도 느낄 수 있었다. 렉카로스의 전신에 어린 진녹의 기운은 3층의 사도였던 루카브론드 이상이었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판단했다. 그랬기에 주저하지 않았다.

“미트라!”

천호의 외침에 미트라가 바로 응답했다. 강한 바람을 일으켜 추락하던 천호를 잠시나마 상승하게 만들었다.

천호의 활공 경로가 렉카로스의 바로 머리 위를 지났다. 렉카로스가 고개를 쳐들었고, 천호가 손 안에서 미트라를 회전시켰다.

아쿠아 블레이드를 이용한 아쿠아 실드.

검신에서 방출된 물이 큰 원을 그렸다. 순간이지만 렉카로스의 시야에서 천호를 가려 주었다.

렉카로스는 긴장했다.

그리고 물이 쏟아져 내렸다.

“크앗?!”

물벼락을 뒤집어쓴 렉카로스가 크게 당황하며 스스로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이상할 정도로 아무렇지 않았다. 독 같은 게 섞여 있는 것도 아니었다. 그저 평범한 물이었다.

탁.

아주 작은 소리가 났다.

렉카로스는 급히 시선을 돌렸고, 지면에 안착해 있는 천호를 볼 수 있었다.

성스러운 빛을 발하는 성검이 그런 천호의 손을 떠났다. 렉카로스를 향해 섬광처럼 날아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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