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50화 (50/211)

아주 약간의.50화

[기대를 하니까 실망을 하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괜찮다. 애당초 기대를 하지 않았으니까!]

아니, 사실 하긴 했다. 하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아주 조금밖에 하지 않았으니까![후우…….]

그런데 왜 한숨이 나오는 걸까.

정말 아주 조금밖에 기대를 하지 않았는데.

“미트라, 포기하면…….”

[그래,편하겠지. 하지만 용사여. 용사는 쉽게 포기하면 아니 된다. 자고로 용사는 포기하지 않는 자이니…….]

으음… 내가 요즘 좀 너무했나. 상태가 안 좋네.'본래 이렇게 호리를 늘어놓는 미트라가 아니었으니 말이다,

“흠흠. 그래도 제법 마음에 드는 작업이지 않아요? 어찌 되었든 적수가 마물이잖아요. 성검답게……."

[그대여, 도축은 전투가 아니다」

미트라가 흥 소리를 내며 대꾸했다.

그랬다. 천호는 지금 도축을 하고 있었다. 늘상 잡던 자이언트 랫이나, 지난번에 특식으로 잡은 데저트 크로우가 아니었다.

랫 키메라.

저층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중층의마수.

꼬리를 빼고도 몸길이가 20미터에 육박하는 괴수였다. 더욱이 락 골렘들로 깔아뭉개 압사시킨 터라 가죽에 상한 곳이 거의 없다시피 했다.

그래서 천호는 직접 칼을 뽑아 들었다.

맨날 먹기만 했지만, 기실 마물의 시체라 함은 음식 재료보다는 각종장비의 재료가 되기 마련이었다.

랫 키메라의 뼈와 가죽이라면 여기저기 쓸데가 많을 터였다.

물론 다른 기술들에 비해 장비 제작 기술이 다소 미숙한 천호였지만, 이쪽으로도 걱정할 게 없었다.

'주변에 넘쳐흐르는 게 드워프니까.'

더욱이 잔불이도 있지 않은가. 오레놀의 설명에 따르면 잔불이로 강화시킬 수 있는 건 금속만이 아니었다. 여간한 재료는 전부 강화가 가능했다.

그리고 고기가 실해."직접 먹어 보기 전까지는 모르는 일이었지만, 다년간의 도축과 요리경혐을 통해 온갖 고기를 다 다뤄본 천호는 알 수 있었다.

이 고기는 맛있는 고기다.

누런내도 적었고, 보다 마블링이 환상적이었다.

본래 자이언트 랫은 닭고기 비슷한 맞이 났는데, 랫 키메라는 소고기 비숫한 맛이 날 것 같았다.

"그래도, 미트라. 자이언트 랫 같은 잡돕도 아니고 랫 키메라에요. 써는맛이 좀 나지 않아요?"

[흥.]

미트라가 새침하게 답했다. 처음에는 허스키하고 꽤 낮아 중성적인 목소리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마검을 몇 개나 흡수한 지금은 조금 낮긴해도 꽤나 맑고 고운 미성이란 느낌이 들었다. 이전이 정말로 중성적이었다면, 지금은 낮은 여자 목소리에 가깝다고 해야 할까.

어찌 되었든 반응을 보아하니 아주 싫기만 한 건 아닌 것 같았다.[후우, 그래. 확실히 책장을 써는 것보다는 이쪽이 나은 것 같다.]

어찌 되었든 중층의 마수였으니까.

그리고 사실 샤프니스 소드를 흡수한 미트라였으니 이리 쉽게 랫 키메라의 가죽을 가르는 것이었지, 평범한 칼로는 어림없는 일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자이언트 랫들을 도축한 천호였지만, 미트라로 도축을하는 경우는 거의 없었다.

미트라는 미트라의 말마따나 성검이었으니까.

다른 평범한 칼로도 가능한 일에굳이 사용할 이유가 없었다, 천호는 괜스레 미트라의 황금빛 보석을 어루만진 뒤 고개를 들어 보았다.

해가 지고 있었다.

어제까지만 해도 밤의 장막과 함께 혹한이 몰아치던 사막이었지만, 오늘은 달랐다. 밤과 뒤섞여 하나가 되어 가는 황혼에는 따스함이 묻어 있었다.

락 드워프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전투 후 뒷정리로 아직 바쁜 그들이었지만, 그래도 얼굴에는 활기가 가득했다. 미래에 대한 희망으로 눈들이 빛났다.

저만치에서 루시엘이 천사들과 함께 잔불이에게 먹이를 주고 있었다.

천사들의 웃음소리가 기분 좋게 귀를 간지럽혔다.

천호의 얼굴에도 절로 미소가 그려졌다1층에서 처음 탑을 해방시켰을 때 느겼던 감정을, 2층에서 용의 무녀들과 포레스트 엘프들을 구했을 때의 감정을 이번에도 느겼다. 아니, 서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달랐다. 그래서 더욱 마음에 남았다.

아버지.'

미궁 세계에 와서 아버지를 조금더 이해할 수 있게 된 기분이었다.

단순히 내공을 쓸 수 있게 되었기 때문만이 아니었다.

아버지가 낮선 이계인 파이엔을 구하신 이유.

그곳에서 느끼셨을 감정.

미트라는 부드럽게 웃었다. 천호의 안에서 조금씩 커져 가는 용사의 힘을 성검인 미트라는 느낄 수 있었다.

“미트라, 고마워요."

[응이

[갑자기 무슨 소리인가.]"그냥, 이것저것 다 고마워요.”

[흠음.]

솔직한 미트라답게 부끄러워하는 것도 티가 났다. 하지만 천호는 놀리는 대신 다시 한 번 진심을 담아 말했다.

“미트라에게 많은 도움을 받고 있어요. 미트라를 만나서 정말 다행이에요.”

단순히 생활 전반만을 이야기하는것이 아니었다.

내색을 하지 않아서 그렇지, 미트라에게 정신적으로 의지하는 부분이 적잖은 천호였다.

천호에게 있어 미트라는 속내를 모두 드러낼 수 있는, 그러면서도 믿고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아군이었으니까.

[나, 나도 그대를 만나 다행이다.]

천호의 감정을 닌 미트라가 허둥거리며 답했다.

조금, 아니, 꽤나 짓굿긴 해도 천호는 본질적으로 선한 이였으니까.

용사에 어울리는 인물이었으니까.미트라 자신으로 하는 일들도 결국천호 자신보다는 함께하는 일행 모두를 위한 일들이었고.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그래, 가능한 그대에게 힘을 보태겠다.

“좋아요, 그럼 부위 나누기랑 오늘 먹을 고기 확보는 대강 끝났으니 이쯤 하고 다음 작업으로 들어가죠."

[다음 작업]

“요리해야죠."저녁 먹을 시간이 다 되었으니까.

“조금만 도와주세요.”

살짝이지만 눈치를 보는 것 같은 천호의 부탁에 미트라는 결국 웃고 말았다. 그대로 작게 웃으며 답했다.

[그래.]

야해 가

사실 천호가 직접 요리를 할 필요는 없었다.

당장이라도 축제를 열 것처럼 흥분하고 있는 락 드워프들이 이천 명이나 있었으니 말이다.

하지만 그래도 천호는 요리하기를 선택했다.

이유는 두 가지였는데, 하나는 이곳이 락 드워프들의 도시가 아니라 옛 거주지라는 사실이었다.

결국 나오는 밥이 짱밥이란 소리지.'

락 드워프 이천도 결국엔 싸우러온 이들이었으니까.

식량도 전투를 위해 챙겨 온 식량에 가까웠으니까.

아무리 맛있게 만들어도 별로인 게 쌈밥인 법이었다.

그리고 두 번째 이유이자 가장 중요한 이유.

내가 만드는 게 더 맛있잖아:

그랬다. 다소 귀찮긴 했지만, 천호 자신이 만드는 쪽이 훨씬 더 맛있었다.

요리 스킬은 겉치레가 아니었으니까.더욱이 오늘은 승리의 날이었다. 고생한 천사들에게 맛있는 걸 먹여 주고 싶었다.

“용사님, 이게 뭐예요?"

“이건 만두라는 거예요."

미궁 세계에 오기 전에 탐독했던 소설이나 만화 속에서나 나오던 대사를 하며 천호는 만두를 만들었다.

하필 만두를 고른 이유는 단순했다.

밀가루가 생겼으니까.지금까지 일행의 식사는 너무 고기 쪽으로 편중되어 있었다. 모처럼 탄수화물을 섭취할 수단이 생겼으니, 팍팍 먹어 줘야 하지 않겠는가.

만두소는 미트라 덕분에 쉽게 만들수 있었다.

자이언트 랫 고기와 랫 키메라 고기를 섞어서 간 뒤 다진 마늘과 소금으로 밑간을 했다.

여기에 2층에서 가져온 파를 잘게 써 넣은 뒤 계란까지 풀어서 잘섞어 주었다.

사실 당면이나 두부도 넣는 것이한국식 만두의 정석이었지만, 다음 기회로 미루기로 했다.

만두는 흔히 생각하는 것 이상으로 많은 종류가 있었지만 한국에서 주로 먹는 것은 자오쪼 즉, 교자에 속했다.

만두피를 부풀리지 않고 그대로 사용하는 형태였는데, 국물에 넣어서 삶아 먹어도 좋았고, 기름에 구워 먹어도 좋았다. 물론 쩌 먹어도 좋았고 말이다,

“만두피에 만두소를 넣고 곱게 접어 줘요.”천호와 루시엘뿐만 아니라 천사 3인방에 전투 천사들, 여기에 드워프들에게도 좀 나뉘 줘야 했기 때문에 천호 혼자서 다 만드는 건 무리였다.

때문에 천호는 루시엘과 천사 3인방의 도움을 받고 있었다,

“이렇게요?"

“네, 잘하네요."

천호 옆에 자리한 루시엘이 가늘고 긴 손가락으로 열심히 만두를 만들었다. 흐못한 눈으로 루시엘의 손을 바라보던 천호는 문득 맞은편을 보았다. 루시엘과 마찬가지로 천사 3인방이 열심히 만두를 만들고 있었는데, 에이젤이 슬찍슬썩 이쪽을 보며 실실 웃고 있었다.

씨익.

효과음이 들릴 것만 같은 미소를 그린 그녀는 천호와 눈이 마주치자 표정을 고치는 대신 더욱 음흉하게 아니, 잔망스럽게 웃더니 눈까지 한 번 찜긋했다.

그리고 천호는 이해했다.

지금의 자리 배치.어쩌다 이렇게 된 것일까.

우연이 아닌 필연이었다. 누군가의 의지가 개입한 결과였다.

천호는 잠시 포커페이스를 유지할까고민했지만, 이내 마주 눈을 짱굿했다.

그것으로 계약이 체결되었다.

에이젤 꺼는 속이라도 좀 더 넣어야겠네.'

앞으로도 뭘 하는 신경 좀 쓰고.

[음.]미트라가 낮은 목소리를 흘리는 가운데 천호와 에이젤은 다시 서로에게 눈짓을 보냈다.

그리고 루시엘은 열심히 만두를 빛었다.

참 예쁜 만두였다.

그날 밤.

만두를 찌고 삶고 구워서 맛나게 먹은 일행은 한자리에 모였다.옛 거주지에 있는 큰 건물 가운데 하나였다.

일행을 한자리에 모은 사스치엘이 입을 열었다.

'3층이 해방되었다. 우리 전투 천사들은 이대로 용사를 도와 4층으로 내려갈 생각이다."

천사들과 미궁 세계에 소환된 영웅들의 궁극적인 목적은 대미궁 최하층에 도달해 대미궁과 미궁 세계의 연결을 끊는 것이었다.

하지만 현재 천호 일행이 당면한목표는 역병신의 음모를 저지하는 것이었다.

대미궁의 변방.

그렇기에 다섯 여신의 군세가 닿지 않은 곳.

이 땅에서 역병신은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 그런 놈의 야욕을 저지할 수 있는 것은 천호 일행뿐이었다.

“4층에 있는 제단과 신상을 파괴하면 역병신의 음모를 분쇄할 수 있을 거예요."

루시엘이 주먹을 곽 쥐며 말하자라구엘이 말을 받았다.

'4층의 상황은 3층보다 심각할 가등성이 높습니다. 의식이 진행된 기간도 더 길 터이고, 심증에 보다 가까우니까요.”

마신의 무리들은 심층에 가까워질 수록 강해졌다. 이는 단순히 심층에 강한 마물들이 포진해 있다는 것만을 의미하지 않았다.

심층의 존재들은 심증에서 멀어지면 멀어질수록, 저층으로 올라가면 올라갈수록 그 힘이 약해졌다.저층은 5층까지였으니, 4층이면 사실상 중층 직전이라 해도 좋았다. 심층의 영향력이 3층보다 강한 것이 당연했다.

“그러하겠지. 하지만 물러설 수는 없다. 지금까지 그러했던 것처럼 4층의 힘을 규합해 역병신에 맞서야한다. 그리고 그 구심점이 되는 것은 바로 그대, 용사이다."

사스치엘이 천호를 바라보았다. 진중한 목소리에 어울리는 엄숙한 눈빛이었다.천사들 또한 천호를 보았다. 저마다 조금씩 다르긴 했지만, 모두들 눈빛에 호의가 가득했다.

뭐라도 한마디 해야 하는 분위기였기에 천호는 가장 무난한 대사를 선택했다.

"함께 힘을 합지죠."

'네, 용사님."

'함께하겠다. 용사여."

'함께하겠습니다."

역시 아버지는 옮으셨다. 딱히 할말이 없을 때는 다 같이 힘을 합치자고 하면 된다 하셨으니까, 분위기가 훈훈해진 가운데 아우라엘이 입을 열었다.

“용사님, 락 드워프들 가운데 일부가 동행을 요청했습니다."

“동행을요?”

“용사님과 함께 싸우고 싶다 합니다."

아우라엘의 말에 모두가 음음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와, 진짜 이런 식으로 진행되네.'

#6나 아버지의 이야기도 이러했는데.

딱히 마다할 이유가 없었던 만큼천호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데 아우라엘, 몇 명이나 함께 가는 거죠?"

"내일 한 번 더 이야기를 주고받아야겠지만… 네 명에서 다섯 명 정도 일 것 같습니다. 아, 이번에 함께한 오레놀도 포함된 인원입니다.”

"든든하네요."

손재주 좋은 락 드워프들이 다섯이나 합류한다니.

잔불이도 바빠지겠구나.

솔직히 전사로서의 기량보다는 장인으로서의 기량을 더 기대하는 천호였다.

오레놀은 실제로 대장장이 기술이 상당했고.[용사의 결에는 사람이 모이는 법이지.]

미트라가 추억을 회상하듯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레온도 동료들이 참 많았었다.

나중에는 사실상 군세를 이루었고.

“좋아요, 대강 정해졌으면 오늘은 이만 쉬도록 하죠. 내일부터 다시 바빠질 것 같으니."

4층으로 내려갈 준비를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실제로 4층으로 향해야만 했으니까, 지금 이 순간에도 4층에서는 의식이 진행되고 있을 터였다.

“잘 자라, 용사.”

“폭 쉬세요."

“내일 겠습니다."

옛 거주지는 말 그대로 옛 거주지 였고, 역병신의 무리들에게 한 번 점령당한 곳이었다.

때문에 일행은 천막 안에서 그러했던 것처럼 건물 안에 모여 잠자리에 들었다.

“안녕히 주무세요, 용사님.”

[잘 자라, 용사.]

“잘 자요. 루시엘, 미트라.”

바로 결에서 들려온 목소리들에 화답한 천호는 천천히 눈을 감았다.

길었던 하루를 마감하며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역병신은 노성을 터트렸다.

이미 내렸던 명령을 반복했다. 사방에서 집결 중이던 역병신의 무리들을 더욱 재촉하였다.

4층.

4층은 지켜 내야만 했다. 4층의 제단과 신상까지 파괴된다면, 그리하여 의식이 붕괴하면 더 이상 돌이킬 수 없었다.

저층의 무리들만으로는 안심할 수 없었다. 다소 무리하는 결과가 된다 할지라도 중층의 존재들을 동원해야만 했다싸움이 커질 터였다. 아무리 변방이라 하나 다섯 여신의 수하들 또한 지금 이상으로 개입할 여지가 있었다.

하지만 그래도 지켜 내야만 했다.

의식을 완수해야만 했다.

전쟁.

자잘한 전투 따위가 아닌 진정한 의미로서의 전쟁.

역병신이 다시 한 번 노성을 토했다. 납작 얼드린 신관들에게 새로운명령을 내렸다.

도루마는 4층으로 통하는 계단을내려가기에 앞서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락 드워프들의 옛 거주지.

아쿠아 블레이드에 걸린 추적술은 사라진 지 오래였다.

그것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도루마는 모르지 않았다.

루카브론드.

최후까지 당당했던 3층의 사도.

“반드시 복수해 주마."

무슨 일이 있더라도.도루마는 의식적으로 등에 찬 대검을 뽑아 들었다. 다섯 자루의 마검가운데 가장 강대한 힘을 가진 그것에 맹세했다.

도루마는 돌아셨다. 루카브론드의 유언대로 4층의 무리들에게 용사의 위혐성을 경고할 터였다. 그들과 힘을 합쳐 용사를 막을 터였다.

하지만 그 전에 준비해야만 하는 일이 있었다.

본래 중층의 존재인 도루마였지만 근래는 4층에 머물고 있었었다. 때문에 4층에는 그의 은거지가 하나있었다.다섯 자루의 마검 가운데 둘을 잃었다. 지금 가진 세 자루만으로는 용사를 확실하게 제압할 수 없었다.

그러니 힘을 보강한다.

은거지에 숨겨 둔 마검들을 꺼내 다시 다섯 자루의 마검을 몸에 지닌다.

“루카브론드.”

도루마는 그 이름을 가슴에 묻었다.

더 이상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4증을 향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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