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39화 (39/211)

39화

락 드워프들의 도시가 공격받고 있다.

검은 연기를 발견한 사스치엘은 바로 지면을 박차 오르려 했지만 천호가 그런 그를 만류했다.

“침착해요.”

“용사여! 저 검은 연기가 보이지 않는가?"

"그러니 침착해요. 아직 일행이 다모이지도 못 했어요."

무조건 빨리만 가는 것이 능사가 아니었다.

더욱이 도시 규모의 싸움이었다. 어느 한 명이 급히 달려가기 보다는, 이쪽 역시 충분한 전력을 모은 뒤기동해야 했다.

"용사님!"

때마침 천막 밖으로 루시엘과 천사들이 나왔다. 천호는 빠르게 말했다.

“천막을 인벤토리에 수납해요. 바로 출발할 거예요."

네!"

자세한 사정은 듣지 못 했지만 거친숨을 투해 대는 사스치엘만 보아도 상황의 급박함을 짐작할 수 있었다.

아우라엘과 라구엘, 에이젤은 루시엘을 도와 천막을 해체했다. 워낙 서 두르느라 제대로 된 정리가 안 되었지만, 어차피 당장은 인벤토리에 욱여넣는 게 우선이었다.천호는 다시 사스치엘의 등 너머, 멀리서 날아오고 있는 전투 천사들을 돌아본 뒤 사스치엘에게 물었다,

“정보의 출처는 어떻게 되죠?"

“무지엘과 라엘은 락 드워프 정찰병들을 지키고 있었다. 그들에게 들은 정보다."

사실 지키고 있었다기보다는 같이 죽어 가고 있었다는 표현이 움았다, 락 드워프 다섯.

오늘 아칩 도시 공격이 감행될 것이란 정보를 접한 그들은 급히 도시로 돌아가던 중에 공격을 받았고, 쫓기던 와중에 마찬가지로 쫓기던 중인 전투 천사들과 합류하게 되었다.

“적의 추적대는 우리가 전부 쓰러트렸다. 하지만 도시가 문제다."

"적의 숫자와 구성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없나요?"

"일천에서 이천쯤 될 거라 들었다.

역병 법사들도 제법 합류한 모양이다."

"마법사인가요?”

“그렇다. 사악한 마법을 사용하는 종자들이다. 주로 상태 이상을 야기하는 저주를 사용한다."

확실히 2층과는 상황이 달랐다.

천호는 고개를 끄덕인 뒤 다시 시선을 멀리하였다. 엘리엘을 필두로 한 전투 천사들이 거의 다가온 상태였다.

“용사님! 정리 끝났어요!"

루시엘이 아우라엘, 라구엘, 에이젤과 함께 다가왔다. 넷 중에 인벤토리를 가진 것은 루시엘뿐이었다.

천호는 네 사람에게도 빠르게 상황을 설명한 뒤 사스치엘의 등 위에 올랐다.

모래 먼지를 일으키며 착지한 전투천사들을 보니 이전에는 보지 못 했던 개와 표범이 추가되어 있었다.

아마 저 둘이 무지엘과 라엘인 모양이었다.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 가자!]

락 드워프들의 도시를 구해야 한다!

미트라가 성검답게 말했고, 천호도 더는 토를 달지 않았다. 루시엘이 사스치엘의 등 위에 올라 천호의 뒤에자리를 잡았고, 라구엘은 에이젤과 함께 엘리엘 위에 올라랐다.

“전 직접 날아가겠습니다."

7급 전투 천사인 아우라엘의 비행속도는 엘리엘 다음으로 빠른 사스치엘과 호각을 이룰 수준이었다.

“좋아요, 출발하죠."

천호가 말한 직후 사스치엘이 지면을 박차 올랐다.전투 천사에, 사자이기는 했지만 사스치엘 역시 천사였다. 락 드워프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절절히 느껴졌다.

역병 법사.'

천호는 미트라를, 요정검 엘렌디아의 손잡이를 까 움켜쥐었다. 미트라와 루시엘에게 몇 가지 질문을 던졌다.

* * *

성문은 닫히지 않았다.락 드워프들의 자랑이었던 성벽은 적의 공격을 막는 데 조금도 도움이 되지 못했다.

시체가 겹겹이 쌓였다.

흘러내린 피가 모여 웅덩이를 이룰지경이었다.

개폐 장치가 있는 방.

창가에 선 도루마는 천천히 전장을 살펴보았다.

락 드워프들의 도시는 두 개의 성벽으로 이루어져 있었고, 도루마 자신이 장악한 곳은 외성의 개폐 장치였다.시가전이 되었군.

내성의 규모는 작았다. 아마 외성에 살던 이들 가운데 절반도 몸을 피하지 못 했을 터였다.

그리고 내성 밖은 이미 지옥이나 다름없었다.

락 드워프들은 뭉치지 못했다. 곳곳에서 산발적인 저항을 할 뿐, 제대로 된 전쟁을 하지 못했다.

뭐, 그래도 제법 잘들 싸우고 있었다.

아마 랫맨들만으로 공격했다면 지금처럼 락 드워프들을 압도하지 못했으리라. 락 드워프 전사 하나가 랫맨 서너 명쯤은 우습게 해치울 수 있었으니.

도루마는 잠시 눈을 감고 구를 기울였다.

정신을 집중하자 도시 곳곳에서 들려오는 작고 여린 방울 소리를 포착할 수 있었다.

역병신의 축복과 저주였다, 랫맨들에게는 힘을 주었고, 락 드워프들에겐 혼란과 정신적인 고통을 주었다.

도루마는 미소를 지였다. 역병신의 사도인 그에게 있어 저 방울 소리는 극상의 선윤이나 다름없었다.용사는 오지 않는 모양이군.'

아예 이 도시의 참상을 모르고 있거나.

아쉽지만 어찔 수 없는 일이었다.

도루마는 샤프니스 소드를 늘어트렸다. 너무나 날카로운 칼날에는 기름과 살점은커녕 피조차 엉기지 않았다.

가자, 내성으로."

도루마는 긴 꼬리를 흔들며 갑게발걸음을 내디다.

이번에도 소리 없는 발걸음이었다.

락 드워프 오레놀은 피를 흘리고 있었다, 젯어진 이마에서 흐른 피가 오른쪽눈을 덮었다.

하지만 오레놀은 피를 다아 낼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커다란 도끼를 움켜퀸 채 정면을 노려볼 뿐이었다.“제법이구나.”

칙칙한 회색 로브를 뒤집어쓴 랫맨하나가 낄낄거리며 말했다. 오레놀은 본능적으로 알 수 있었다.

평범한 놈이 아니었다,

“제법이야."

랫맨, 역병 법사 가롯은 오레놀의 발치에 쓰러져 죽은 랫맨들의 숫자를 헤아렸다. 적어도 열이 넘었다.'그래서 도끼도 엉망이고."

피와 살점으로 범벅이 되어 제대로 베일지조차 의문일 만치.

'공금하면 한 대 맞아 보든가."

오레놀은 코웃음을 치며 호기롭게 말했다. 하지만 가롯은 그저 작게 웃을 뿐이었다. 말하는 오레놀의 얼굴이 잔득 굳은 데다가 무릎까지 떨고 있었기 때문이다.

피를 너무 많이 올렸다.어차피 제대로 싸우지도 못할 놈이다.

“와라, 상대해 주마."

가롯이 연극조로 말하며 손을 까딱였다. 그 건방진 태도가 오레놀에게 마지막 힘을 주었다.

“뭉개 주마!"

오레놀이 포효했다. 가롯을 향해 돌진했다, 가롯은 그런 오레놀을 보며 손에쥐고 있던 지팡이로 지면을 찍었다.

칸!

작은 소리. 아무런 의미도 없는 소리. 하지만 이어진 소리는 달랐다.

지팡이 끝에 달려 있던 방울이 탁한 소리를 낸 순간 돌진하던 오레놀의 균형이 흐트러졌다.

'젠장할!"

이미 경험해 본 일이었다. 오레놀은드워프 특유의 뚝심으로 버터 보려했지만 무리였다. 정신이 혼미해졌다. 환청이 들려왔고, 눈앞의 가롯이 셋으로 분열했다.

오레놀은 결국 볼싸납게 나자빠졌다. 가롯이 깔깔 웃으며 그런 오레놀의 등을 지팡이로 찍었다.

오레놀은 컴 소리를 내며 몸을 떨었지만 그게 다였다. 정신이 혼미해몸에 힘을 줄 수 없었다. 도끼를 쥐고 있던 손이 절로 풀렸다. 지팡이 끝에 달린 뭉특한 칼날이 오레놀의 등판을 찔렀다.

여기까지인가.

이대로 죽고 마는 것인가.이리 될 줄 알았다면 제니에게 고백이라도 해 볼걸.

오레놀의 머릿속에 호탕하게 웃는 제니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리고 커다란 포효가 울려 퍼졌다.

무시무시한 일갈에 오레놀은 순간정신을 차렸다.

오레놀의 등을 찍으며 즐거워하던 가롯도 흠짓 놀라 고개를 쳐들었다.

하늘.포효하며 강림하는 거대한 사자!

주변에 있던 랫맨들이 모여들었다.

조잡한 활을 쑤 됐고, 가롯은 뒤로 크게 물러서며 지팡이를 크게 흔들었다.

역병신의 방울 소리, 오레놀은 다시 혼미함을 느겼다. 하지만 최후의 힘을 다해 있는 힘껏소리쳤다.

“수리를 조심해!"

무의미한 외침이었다.

이미 방울 소리가 퍼지고 있었다.오레놀 자신이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날개 달린 사자조차도 현혹에 걸 린 것인지 사자의 비행이 기묘해졌다.

“크어|”

사스치엘이 엉거주춤 지면에 착지했다. 천사의 저항력 덕분에 방울의 저주를 어느 정도 견더 낼 수 있었지만, 아예 무시할 정도는 아니었다.

“공격해!"가롯이 소리치며 지팡이를 다시 흔들어 냈다. 방울 소리에 힘이 난 랫맨들은 아예 창을 꼬나 들고 사스치엘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사스치엘이 머리를 흔들며 다시 한 번 포효했다.

아직 온전한 힘을 회복하지 못한 상태였지만, 중층도 아닌 저층의 역병 법사 따위에게 놀아날 수 없었다.

사스치엘의 포효가 대기를 울렸다.

루시엘이 양손으로 귀를 막았고, 천호가 나이프를 던졌다.

떡펑!앞장서서 달려오던 랫맨 셋이 목에 나이프가 꽂힌 채 고꾸라졌다.

천호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아예내려서 달리기 시작했다. 당황한 랫맨들은 천호와 싸우기보다는 피하기를 선택했고, 천호와 가롯 사이에 거짓말처럼 길이 만들어졌다.

"이, 이놈들이?"

가롯은 다시 한 번 지팡이를 흔들었다. 역병 법사로서 마법을 발해 방울 소리를 천호에게 집중시켰다.하지만 아무런 소용이 없었다. 천호의 질주는 조금도 흐트러지지 않았고, 오히려 더 빨라졌다. 더욱이 사스치엘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랫맨들을 향해 성난 이빨과 발톱을 드러냈다.

…그우"

가롯이 지팡이를 휘둘렀다. 하지만 마법사의 서툰 몸짓에 불과했다. 요정검 엘렌디아가 그런 놈의 허리를 깊게 베어 갈랐다.

“크악|”타는 듯한 고통에 정신이 나갈 것만 같았다. 가롯은 상처를 어떻게 할 엄두도 내지 못한 채 누구에게랄 것없이 소리쳤다.

"어, 어떻게?"

도시에 자리한 드워프들은 물론이고 전투 천사들조차 영향을 받은 방울의 저주이거늘!

천호는 대답하는 대신 요정검 엘렌디아로 가롯의 가슴을 찔러 확실히 처리했다. 가롯의 죽음을 확인하자마자 도망치는 랫맨들의 등판을 보며 생각했다.

방울 소리를 듣자마자 발동시킨 오늘 처음 사용해 본 능력.

[현자의 시간 Lv1]

[아무리 긴급한 상황 속에서도 침착한 정신 상태를 유지할 수 있다」

“6 99

1ㅋㆍ

효과는 굉장했다.'용사님!"

'용사여!"

아우라엘과 엘리엘을 필두로 한 전투 천사들이 지상에 안착했다.

사스치엘은 성난 사자처럼 날뛰며 주변의 랫맨들을 쫓아내고 있었고, 루시엘은 가롯의 발치에 쓰러져 있던 드워프 전사 오레돌을 치료했다.

천호는 잠시 눈을 감고 하늘에서 내려다본 도시의 구조를 떠올렸다.머릿속에 대강의 지도를 구축한 뒤아우라엘에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계획대로 진행하죠. 엘리엘?"

“알겠습니다, 용사님."

이미 날아오는 와중에 대강의 작전설명을 마친 일행이었다, 라구엘과 에이젤을 얼른 엘리엘의 등에서 뛰어내린 뒤 루시엘을 도와 주변에 쓰러져 있던 드워프 전사들을 치료했다.천호는 엘리엘의 등 위에 올라탄뒤 사스치엘에게 소리쳤다.

“사스치엘! 지휘를 맡김니다!"

*맡겨라! 용사!"

도시는 넓고 적은 많았다.

겨우 열 명 남짓한 일행이 마구잡이로 날뛰어 봐야 대국을 바꾸기는 어려웠다.

그러니 눈덩이를 굴린다.

이곳을 시작으로 사방에 흘어져 있는 드워프들을 집결시킨다,시가전은 난전이 되기 쉬웠다. 더욱이 정황상 제대로 된 수성전을 치른흔적이 없었다. 성문이 열려 적들이 난입했다면, 더더욱 아군을 모을 필요가 있었다.

“용사님."

루시엘이 천호를 보았다. 하얀 옷에 드워프 피가 잔득 묻었지만, 조금도 개의치 않는 것이 참으로 그녀다웠다.

'다녀올게요.”천호가 말했고, 루시엘은 입을 꼭다문 채 고개를 끄덕였다.

엘리엘이 날개를 펼쳤다.

“가죠!”

“가겠다!”

천마가 지면을 박차 날아올랐다. 아버지에게 오만 것을 다 배운 천호였지만, 전장 지휘에 대해서만은 그리깊게 배우지 못 했다.

그도 그럴 것이 딱히 지휘할 부하들이 없었으니까.

그러니 괜히 나서지 않는다.

드워프들을 규합하고, 그들을 이끄는 역할은 사스치엘에게 맡긴다.

천호는 요정검을 허리춤에 갈무리한 뒤 접이식 활을 펼쳤다. 순식간에 날아올라 하늘 높이 속구친 엘리엘의 등 위에서 지상을 겨누었다.

천호 자신은 유격대였다.

전장 곳곳을 돌며 막힌 곳을 풀고, 드워프들의 합류를 돕는 한편 적진에 혼란을 야기하는 역할이었다.

'방울을 든 놈.'깃발을 든 놈.

크게 소리치는 놈.

명령을 내리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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