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2장 - 2층 #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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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궁 세계가 당신의 이야기를 기억합니다.]
[미궁 세계가 새로운 용사의 각성을 축복합니다.]
[용감한 Lv3이 되었습니다.]
[각성 Lv1을 획득했습니다.]
[용사의-]
빛의 창이 연달아 떠올랐다. 동시에 천호를 휘감은 순백의 빛이 더욱 크고 밝게 빛났다.
렛맨들이 반사적으로 뒤로 물러섰다.
자이언트 렛들이 빛을 피하듯 눈을 감고 고개를 돌렸다.
[그대여.]
미트라가 말했다.
여전히 낮고 허스키한 목소리였지만, 어쩐지 평소와 달랐다.
보다 가깝게 느낄 수 있었다.
조금 이상한 비유였지만, 지금까지의 대화가 전화를 통한 대화였다면, 지금의 대화는 직접 만나 육성을 나누는 대화였다.
비로소 진정한 미트라와- 전쟁의 여신이 벼린 성검과 마주하게 된 기분이었다.
천호는 숨을 길게 토했다.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차오르는 고양감에 취하는 대신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렸다.
작금의 상황에서 눈을 돌리지 않았다.
천호는 정면을 보았고, 크게 포효했다. 전신에 휘감은 빛을 다시 한 번 방출했다.
“우오오오!”
빛이 커졌다. 자이언트 렛들이 다시 한 번 몸을 웅크렸다. 렛맨들 가운데 일부는 고통스런 비명까지 질렀다.
그리고 천호는 조금의 주저도 없이 뒤돌아섰다.
이유야 둘째 치고 기회가 생겼으니까.
시간이 만들어졌으니까.
‘튀자.’
고유직업 용사.
뭔가 있어보였다. 확실히 좋아보였다.
온몸에서 힘이 불끈불끈 치솟고 있었다.
하지만 불확실한 것에 목숨을 걸 순 없었다.
천호 자신의 목숨만이 아니라, 레나를 비롯한 모두의 목숨이 걸린 일이었다.
파!
돌아섬과 동시에 지면을 박찼다.
평소보다 빨랐다. 지면이 멀어지는 속도 역시 빨라졌다.
육체능력의 상승.
레벨 업이 아닌, 용사로 각성한 결과.
천호는 조율했다. 멍한 표정을 하고 앉은 레나를 향해 질주했고, 그녀의 가느다란 허리를 향해 팔을 뻗었다.
“꺅?”
허리를 낚아 채인- 연이어 천호의 어깨에 들쳐 메진 레나가 반사적으로 작은 비명을 질렀다.
천호는 그런 레나의 허리를 팔로 꽉 안았다.
[엉큼한 Lv4가 되었습니다.]
[미궁 세계가 당신의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는 엉큼함에 감탄합니다.]
아니 왜!
그리고 뭘 또 감탄하는데!
시스템에 불만을 터트리고 싶었지만 그럴 여유가 없었다.
천호는 재차 지면을 박차며 생각했다.
‘그런데 엉큼한 레벨이 오르면 대체 뭐가 변하는 거지?’
[그렇지 않아도 엉큼한데 여기서 더 엉큼해지는 것인가······.]
[그대여, 항상 이성을 유지하라. 범죄의 길에 빠져들면 아니 된다.]
미트라가 한숨과 함께 말했다.
마치 천호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것 같았다.
그리고 그것은 천호도 마찬가지였다. 미트라의 기분이나 생각을 조금이나마 알 수 있었다.
이어졌다.
성검과 용사가 서로에게 호응하고 있었다.
“쫓아라! 놓치지 마라!”
스카브론드가 크게 소리쳤다.
단순한 윽박지름이 아니었다. 역병신의 사도로서 역병신의 기운을 사용하고 있었다.
순백의 빛에 놀랐던 자이언트 렛들과 렛맨들로부터 희미한 진녹의 기운이 솟구쳐 올랐다.
이지를 상실한 놈들이 다시 맹목적인 돌진을 개시했다.
호세사천왕.
비루다카의 장.
신속의 스칸다.
천호는 바람이 되었다.
혼자일 때보다는 느렸지만, 그래도 빠른 속도였다.
“놓치지 마라!”
스카브론드가 다시 외쳤고, 렛맨들의 속도가 빨라졌다. 이번에도 역병신의 기운 덕분이었다.
크게 벌어졌던 천호와 놈들 사이의 거리가 다시 좁혀지기 시작했다.
호세사천왕의 깨우침이 얕았다. 신속의 스칸다를 오래 유지할 수 없었다.
“용사님!”
루시엘이 사스치엘의 등을 박찼다.
사스치엘이 작금의 상황에 욕지거리를 토했고, 알레이스타는 공중에서 몸을 회전시켰다. 언니를 포기해야 한다는 괴로움과 눈앞에서 일어난 일에 대한 당혹스러움, 천호의 행동에 대한 경이가 뒤섞여 멍한 표정을 짓고 있던 엘리에게 말했다.
“전생의 식을 준비해라.”
엘리가 눈을 깜박였다. 깜짝 놀라 가면을 벗어던졌다.
긴 녹발이 바람에 흩날렸고, 레나를 닮은- 하지만 조금 더 날카로운 엘리의 얼굴이 드러났다.
아름다운 그 얼굴에 어린 감정은 경악이었다.
“알레이스타님?!”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인지 안다. 너무도 위험하겠지. 어쩌면 숲의 수호자의 대가 끊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해야 한다. 하고 싶구나.”
고귀한 피를 이은 자를- 용사를 믿고 싶구나.
레나를 구하고 싶구나.
알레이스타는 뒤를 돌아보지 않았다. 그는 여전히 지상을 보고 있었다. 때문에 엘리의 눈에 비치는 것은 그의 뒷모습뿐이었다.
엘리는 이를 악 물었다. 알레이스타와 마찬가지로 지상을 보았다. 렛멘들이 천호를 거의 다 따라잡았다.
거친 숨이 터져 나왔다. 알레이스타의 등 위에는 포레스트 엘프들이 있었다. 그녀들의 여왕과 왕녀도 있었다.
“천사들!”
엘리가 일갈했다.
용의 무녀로서 힘을 담아 외치자 사스치엘과 루시엘이 반사적으로 그녀를 돌아보았다. 엘리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포레스트 엘프의 왕녀를 루시엘에게 던졌다.
“어어어?!”
루시엘이 깜짝 놀라 몸을 날렸다. 다행히 왕녀를 공중에서 낚아챌 수 있었다.
하지만 엘리의 행동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사스치엘이 이게 무슨 짓이냐며 호통을 치려한 그때 바구니들까지 집어던졌다.
“받아!”
무리한 요구였다. 루시엘은 이미 왕녀를 안고 있었고, 사스치엘은 사자였다. 발은 있었지만 손이 없었다.
실제로 루시엘은 당황했고, 사스치엘은 발을 버둥거리며 어찌할 바를 몰랐다.
하지만 포레스트 엘프의 여왕이 있었다. 그녀가 신비한 힘을 발해 바구니들을 모두 들어올렸다. 사스치엘의 등 위에 안착했다.
[당대의 포레스트 드래곤이시여, 그간 즐거웠습니다. 다음 대의 당신과 마주할 날을 기다리겠습니다.]
여왕이 예를 표했다.
제단에서 갑자기 깨어난 터라 그녀는 상황을 정확히 알지 못 했다. 하지만 알레이스타가 말한 것이 무엇인지, 그가 지금부터 무얼 하려는지는 알 수 있었다.
“용사님!”
루시엘이 소리쳤다. 지상의 상황이 급박했다. 사스치엘이 으르렁거렸고, 엘리는 지상을 보았다. 알레이스타가 크게 날갯짓을 했다.
“안녕이다, 당대의 여왕이여. 숲의 요정들이여.”
쾅!
대기를 밀어냈다. 쏘아낸 화살처럼 지상을 향해 질주했다.
렛맨들을 깔아뭉갰다. 몸을 크게 회전시켜 수십 마리나 되는 렛멘들과 자이언트 렛들을 짓밟고 뭉개버렸다.
“알레이스타님!”
천호의 어깨에 들쳐 메진 레나가 알레이스타의 등을 보았다. 용의 무녀인 그녀는 지금부터 알레이스타가 무얼 하려는지 알 수 있었다.
[“함께 해서 즐거웠다. 다음 대의 나를 부탁하마.”]
알레이스타가 말했다.
마음을 통해 전해진 그 말에 레나가 입술을 깨물었다. 저도 모르게 터지려는 눈물을 막기 위해 이를 악 물었다.
엘리가 용의 무녀로서 의식을 시작했다.
전생의 식.
알레이스타가 생에 마지막 포효를 내질렀다.
세상을 진감시켰고, 지축을 뒤흔들었다.
스카브론드가 도끼를 움켜쥐었다. 금방이라도 알레이스타의 머리를 두 쪽 낼 기세였다.
하지만 알레이스타는 신경 쓰지 않았다. 그대로 하늘을 주시하였고, 눈을 감았다. 위대한 환원을 시작하였다.
빛.
알레이스타가 녹색의 빛이 되었다.
끝에서부터 조금씩 사그라들어 별의 조각이 되었다.
전생의 식.
숲의 수호자인 포레스트 드래곤들의 번식법.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들이 대를 이어가는 방식.
육체를 재구성한다.
혼을 재구성한다.
그리하여 새로운 개체로서 다시 태어난다.
불길에 뛰어들어 새로운 생을 얻는 불사조와 같았다.
빛이 폭발했다.
밤하늘의 어둠을 순간이나마 모두 날려버릴 정도로 강렬한 빛이었다.
알레이스타의 거체가 사라졌다. 대신에 남은 것은 맹렬하게 회전하는, 3미터 남짓한 길이의 빛의 기둥이었다.
[전생의 식이 시작되었다. 저 기둥이 파괴되거나 상하면 포레스트 드래곤의 계승 의식 역시 실패로 돌아간다.]
안전한 곳에서 해야만 하는 일이었다.
지금 같이 개방된 전장에서 전생의 식을 펼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설사 기둥이 물리적으로 상하지 않는다 할지라도, 전장의 수많은 기운들이 새로이 태어날 포레스트 드래곤에게 영향을 끼칠 것이 분명했다.
하지만 알레이스타는 전생의 식을 택하였다. 그리고 그 결과가 지금 눈앞에 나타나고 있었다.
“끄아아!”
“아악!”
렛맨들이 고통스러워했다. 자이언트 렛들이 바닥을 뒹굴었다. 고통을 참지 못 한 렛오거들이 난폭하게 주먹을 휘둘러댔다.
역병신의 기운이 사라지고 있었다.
한 번에 방출된 포레스트 드래곤의 성스러운 힘이 역병신의 기운을 몰아내고 있었다.
레나는 알레이스타의 의도를 읽었다.
미트라가 빠르게 설명했다.
[지금까지의 놈들은 죽음을 도외시했다. 두려움을 모르고 돌진할 수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럴 수 없다. 놈들은 비겁하고 겁 많은 렛맨들로 돌아갔다. 빛의 힘 앞에 무력한 어둠의 종자들이 되었다.]
굉장한 변화였다.
하지만 상황을 완전히 반전시킨 것은 아니었다.
렛맨들과 자이언트 렛들은 여전히 수백을 헤아렸다.
렛오거들도 열 마리가 넘게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스카브론드가 있었다.
역병신의 기운이 사라져 놈의 힘 역시 약화되었지만, 그렇다 해도 놈이 강대한 괴물이라는 사실에는 변화가 없었다.
아직 부족했다.
상황을 완전히 타개하기 위해서는, 지금의 전장을 뒤엎기 위해서는 아직 강력한 한 방이 더 필요했다.
“나는- 높고 큰 가지다!”
후퇴하던 트리언트들이 다시 돌진하기 시작했다. 혼란에 빠진 렛맨들을 짓밟았고, 역병신의 기운이 사라진 놈들은 맞서 싸우기보다 도망치는 것을 택했다.
“미천한 것들아! 싸워라! 싸우다 죽으란 말이다!”
스카브론드가 날카롭게 외쳤다. 직접 도망치던 자이언트 렛의 머리 하나를 박살내자 렛맨들이 주춤하기 시작했다.
“용사님!”
여왕에게 왕녀를 넘긴 루시엘이 천호를 향해 날아왔다. 하늘에서 내려오는 루시엘을 바라보며 천호는 숨을 골랐다. 레나를 바닥에 내려놓았고, 지상에 안착한 루시엘을 보았다.
“부탁할게요.”
천호가 말했다. 길게 더 말하지 않았지만 신기하게도 루시엘은 천호의 의도를 이해할 수 있었다.
잠시 망설였지만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맡겨주세요.”
루시엘이 레나의 치료를 시작했다. 천호는 그런 그녀를 바라보는 대신 다시 돌아섰다.
주춤한 렛맨들과, 저만치 앞에 자리한 빛의 기둥과 다시 더 먼 곳에 자리한 스카브론드를 보았다.
아버지께서는 말씀하셨다.
‘아들아, 싸울 때는 일단 대가리부터 조지는 거다.’
‘머리를 때리라고요?’
‘그래, 놈이 혼자든, 무리라는 이름의 하나이든 똑같다. 머리를 잃으면 제대로 싸울 수 없는 법이지.’
스카브론드.
역병신의 사도.
“후우.”
천호는 숨을 길게 토했다. 히트 대거- 성검 미트라를 움켜쥔 손에 힘을 주었다.
[가자, 용사여.]
미트라가 성검답게 말했다. 천호는 작게 웃으며 지면을 박찼다.
호세사천왕.
비루다카의 장.
신속의 스칸다.
천호가 질풍이 되었다.
스카브론드를 향해 돌진했다.
&
< 제2장 - 2층 #8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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