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24화 (24/211)

< 제2장 - 2층 #5 >

“꺼억.”

저도 모르게 트림을 한 아리스가 얼굴을 붉히자 루시엘이 작게 웃었다.

이틀 전의 자신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우리 용사님 요리 맛있죠?”

“네, 정말 맛있네요. 외뿔 토끼가 이렇게 맛있을 수 있다는 걸 처음 알았어요.”

천호는 요리를 했다.

루시엘에게 약속한대로 외뿔토끼 탕을 끓이는 한편, 소금으로 밑간을 해둔 자이언트 렛 고기로 통구이를 만들었다.

‘좋구나.’

사실 제대로 된 토끼탕은 아니었다.

본래 토끼탕을 끓이기 위해서는 고추장과 고춧가루가 필요했으니까.

하지만 천호는 만족했다.

이번에는 소금 말고도 탕의 맛을 더해줄 것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일단 마늘과 파.

괜히 마을이 아니었다.

양이 좀 적긴 했지만 마늘과 파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향신료들을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더해진 것이 과일.

포레스트 엘프는 작았지만 숲은 작지 않았다. 당연히 마늘과 파는 물론이고 과일 역시 정상 사이즈였다.

먹기 좋게 토막 낸 토끼 고기를 냄비에 담은 뒤 송송 썬 파와 으깬 마늘을 넣고 소금을 솔솔 뿌렸다.

여기에 더해진 것이 감칠맛 부여.

요리 스킬까지 있으니 재료가 부실해도 좋은 맛이 났다.

다 삶아진 토끼 고기를 다시 포레스트 엘프들이 먹기 좋게 자른 뒤 루시엘에게는 소금 종지를 주었고, 포레스트 엘프들에게는 진한 소금물을 주었다.

포레스트 엘프들은 자기 주먹보다 큰 고기를 소금물에 찍어 오물오물 먹었고, 천호가 컵으로 푼 국물을 다시 자기들 그릇에 나눠 담은 뒤 후후 불며 마셨다.

“그대의 요리 솜씨가 정말 훌륭하군. 진심으로 탄복했다.”

사스치엘이 근엄한 목소리로 말했다.

처음에 생고기를 주자 인상을 구긴 그였지만, 어느새 마음이 풀린 듯 했다.

“요리의 신께서도 인정하신 솜씨인걸요.”

“요리의 신께서?”

“네, 요리의 신께서.”

루시엘이 자기 일인 것처럼 살짝 젠체하며 웃었다.

‘아아, 정화된다.’

오늘 받은 마음의 상처들이 모두 치유되는 기분이었다.

[언제 상처를 받았다는 건가?]

상처를 주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미트라가 물었지만 천호는 굳이 답하지 않았다.

아리스에게 넉넉하게 받은 마늘을 보며 생각했다.

‘콩··· 콩이 갖고 싶다······.’

콩이 있으면 두부를 만들 수 있을 텐데.

고소한 두유도 만들 수 있는데.

여기에 볏짚까지 더해진다면 장도 담글 수 있고.

간장, 된장.

어떻게 고추만 구하면 고추장까지.

‘크··· 된장과 고추장이 갖춰지면 쌈장도 만들 수 있고.’

참기름이 없었지만 식물성 기름으로 대충 대체하면 되었고.

루시엘이 쌈장에 구운 고기를 찍어 먹는 모습을 상상한 천호는 결심했다.

언젠가 꼭 쌈장을 만들어주겠다고.

스스로에게 하는 약속이었다.

사실 고추가 있을지는 좀 의문이었지만, 콩의 존재는 이미 미트라에게 들어 파악해둔 상태였다.

사실 동서양을 막론하고 흔하디 흔한 게 콩이었으니까.

다행히 미궁세계에도 콩이 있는 모양이었다.

‘아버지, 감사합니다.’

역시 아버지의 가르침 중에서 쓸모없는 것은 없었다.

어릴 때는 왜 장 담그는 법을 가르치냐고, 몸에서 냄새난다고 투정을 부렸었는데.

[음, 뭔가 자기만의 세계에 빠진 것 같군.]

미트라의 말 덕분에 다시 현실 세계로 돌아온 천호는 모두를 돌아보았다. 다들 식사를 마친 눈치이니, 이제 다시 이야기를 진행시켜야 했다.

“그래도 일단 설거지부터 하죠.”

“네, 용사님.”

손발이 척척 맞는 천호와 루시엘이었다.

&

“대략적인 지형은 다음과 같습니다.”

아리스가 바닥에 지도를 펼쳤다.

포레스트 엘프들 기준으로는 무척 큰 지도였지만, 천호와 루시엘에게는 손바닥보다도 작은 지도에 불과했다.

그래도 어찌어찌 대강의 지형을 구분할 수는 있었다.

“일단 현재 위치는 여기입니다. 용사님과 천사님들이 오신 남쪽과 달리 북쪽으로 갈수록 그늘이 적어지고 평범한 숲처럼 됩니다.”

아리스가 지도의 남서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애당초 포레스트 엘프 왕국에서 만든 지도였기 때문에 중앙에는 포레스트 엘프 왕국의 왕도가 자리하고 있었다.

“역병신의 수하들이 왕도를 점령하고 있다. 각지에서 잡아온 포레스트 엘프들과 왕족들 역시 왕도에 갇혀 있고. 왕도 중앙에 제단을 만든 모양이다.”

사스치엘이 지도가 잘 안 보인다는 듯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

“단순히 렛맨들만 있는 게 아니다. 렛 오거는 물론이고··· 역병신의 사도- 네임드 몬스터가 있을 게 분명하다.”

제단과 세력의 완성도와 규모를 고려했을 때 1층에서 쓰러트린 미치광이 크라울러와는 비교조차 할 수 없는 강적일 가능성이 높았다.

“트리언트 일족은 여기서 북서쪽으로 이동하면 됩니다. 도중에 길이 갈리는데··· 포레스트 드래곤께서 머무시는 곳은 조금 더 북쪽입니다.”

아리스가 지도 위로 손가락을 옮기며 대강의 경로를 알려주었다.

중간까지는 함께 가다가 트리언트들의 마을이 나오기 직전에 갈라서야 할 것 같았다.

“마을 주민들은 어떻게 하실 생각이세요?”

루시엘의 물음에 아리스는 입술을 한 번 움츠린 뒤 답했다.

“트리언트 일족의 마을로 피난을 갈 생각입니다. 렛맨들이 다시 쳐들어올 수도 있으니까요.”

산제물을 얻기 위해 마을을 공격했는데 부대가 궤멸했으니, 역병신 측에서 새로운 부대를 보낼 가능성이 높았다.

“중간까지 함께 가다 갈라서야겠군요. 트리언트 일족의 설득에는 문제가 없나요?”

천호의 물음에 아리스는 다시 입술을 움츠렸다.

“그··· 천사님들 중 한 분이 저희와 함께 가주실 수는 없을까요? 아무래도 그쪽이 트리언트 일족을 설득하기 좋을 것 같은데······.”

이런 부탁을 드려 송구하다는 아리스의 태도에 무어라 쓴 소리를 할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루시엘이 천호를 보며 말했다.

“용사님, 제가 촌장님과 함께 트리언트 일족을 설득해볼게요.”

“그게 좋을 것 같군. 현재 문제가 되는 것은 포레스트 드래곤이니. 포레스트 드래곤 쪽은 내가 맡도록 하겠다.”

사스치엘도 말을 보탰다.

천호는 루시엘과 따로 가야한다는 사실이 살짝 아쉬웠지만, 이쪽이 정론이었기에 고개를 끄덕였다.

‘포레스트 드래곤 쪽은 위험할 수도 있으니까.’

포레스트 엘프들의 요청을 거부하고 있는 이유를 알 수 없는 상황이었다.

만약의 상황을 고려한다면, 루시엘보다는 사스치엘과 함께 가는 쪽이 맞았다.

[포레스트 드래곤들은 대체로 온화한 성품을 가지고 있다. 크게 걱정할 일은 없을 거다.]

너무 걱정하지 말라는 투로 미트라가 말했다.

천호는 미트라에게도 고개를 한 번 끄덕여 준 뒤 모두를 돌아보았다.

“포레스트 드래곤 설득에 성공하든 실패하든 트리언트 일족의 마을에서 합류하도록 하죠.”

“네, 용사님. 그게 좋을 것 같습니다. 트리언트 일족이 혹여 싸우지 않는다 해도 피난 온 우릴 쫓아내지는 않을 테니까요.”

말하는 투로 보아 나름 자신이 있는 모양이었다.

“그럼 이제 출발하죠.”

밥도 다 먹었고, 설거지 하는 동안 피난 준비도 갖추었으니 시간을 더 끌 이유가 없었다.

천호는 자리에서 일어나 북쪽을 돌아보았다.

&

포레스트 엘프들의 피난은 순조로웠다.

렛맨들이 가지고 있던 큰 바구니에 포레스트 엘프들을 잔뜩 태운 뒤, 사스치엘의 등 위에 바구니들을 올렸다.

와이어로 고정도 한 터라 공중제비만 돌지 않는다면 포레스트 엘프들이 떨어질 위험도 없었다.

그대로 이동.

해질 무렵이 되자 갈림길에 당도할 수 있었다.

“다녀올게요, 용사님.”

“조심하세요. 밥도 꼭 챙겨먹고요.”

“네, 용사님도요.”

천호가 루시엘의 손을 꼭 잡고 인사를 하자, 루시엘도 마주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잠시간의 이별이 아쉬운 것은 천호만이 아닌 것 같았다.

[그대여, 인벤토리를 가진 건 루시엘이다. 그대보다 잘 먹고 잘 잘 테니 걱정하지 마라.]

‘음.’

사실 이미 인벤토리에 완성된 음식을 몇 개나 담아둔 천호였다. 일단 들어가면 시간이 정지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인벤토리였으니, 그냥 끼니마다 꺼내 먹기만 하면 되었다.

반면 천호는 바구니에 건조식 - 쥐고기 육포 -를 조금 담은 게 전부였다.

[평소처럼 막 이것저것 해먹지는 않을 건가 보군.]

‘루시엘이 없잖아요.’

사스치엘 밖에 없는데 굳이 요리를 할 필요가.

사실 루시엘 때문만은 아니었다. 인벤토리가 없으니 생고기를 가지고 다니기 어려운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조리기구 일체도 그러했고.

“그럼 출발하지.”

사스치엘이 앞장서자 천호가 그 뒤를 따랐고, 루시엘은 한참이나 제자리에 서서 그런 천호를 배웅했다.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하늘을 한 차례 살핀 천호가 말했다.

“조금 더 북쪽으로 이동한 뒤에 야영하도록 하죠. 아침 일찍 출발하면 점심 때 쯤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겁니다.”

“그리하지.”

천호는 아버지의 가르침을 떠올려가며 야영장소를 물색했다.

사실 숲 한가운데서 야영을 하는 것은 무척 위험한 일이었지만, 사방이 숲이니 도리가 없었다.

적당한 곳에 자리를 잡은 천호는 바로 잘 준비를 시작했다.

사스치엘 역시 배를 깔고 눕더니 그대로 몸을 웅크렸다.

“음.”

천호는 잠시 그런 사스치엘을 바라보았지만, 사스치엘은 딱히 한쪽 날개를 펼쳐준다거나, 자기 곁에 와서 자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역시 루시엘이 진짜 천사 같은 거였어.’

천호는 적당한 나무 밑에 주저앉은 뒤 바구니에 담아온 담요를 둘둘 감았다.

미트라가 말했다.

[그대여, 내가 불침번을 설 터이니 안심하고 자도록 하라.]

야영장소에서 들을 수 있는 가장 자애로운 말에 천호는 약간이지만 감동했다.

“미트라, 미트라도 혹시 천사인가요?”

[나는 성검이다. 천사가 아니다.]

사스치엘보다 훨씬 천사 같지만 천사는 아닌 모양이었다.

천호는 작게 웃은 뒤 눈을 감았다.

“내일 봐요, 미트라.”

[잘 자라, 그대여. 좋은 꿈꾸고.]

미트라의 말대로 되었다.

미궁 세계에 온 지 삼일 째.

천호는 그 어느 때보다 편히 잠들 수 있었다.

&

다음날 아침 일찍 일어난 천호는 사스치엘과 더불어 계속 북쪽으로 이동했다.

딱히 길잡이는 없었지만, 포레스트 엘프들이 구해준 지도가 워낙 정밀했기에, 천호의 독도법이 탁월했기에 딱히 문제될 것은 없었다.

‘날지 못 하는 게 조금 아쉽긴 하네.’

하늘을 나는 황금빛 사자는 낮이고 밤이고 너무 눈에 띄었다.

더욱이 아직 부상이 완전히 낫지는 않은 사스치엘이었다.

[그대여.]

걷기 시작한지 두어 시간 남짓이 되었을 때 미트라가 돌연 낮게 말했다.

그리고 이변을 느낀 것은 미트라만이 아니었다.

제자리에 멈춰 선 천호가 눈을 가늘게 떴다.

사스치엘 역시 전방을 경계하였다.

천호의 머릿속에 선이 그어졌다. 지금 선 자리에서 10미터 앞.

저 선 너머부터 영역이 달라졌다.

저 선 너머에서 이쪽을 주시하는 자들이 있었다.

“나는 7급 전투천사 사스치엘이다! 숲의 수호자 포레스트 드래곤을 만나고자 왔다!”

사스치엘이 날개를 활짝 펴며 소리쳤다.

부분 갑옷을 입은 날개 달린 천사가 그리하니, 그 위용이 실로 대단했다.

하지만 선 너머에서는 이렇다 할 반응이 없었다.

“다시 말하겠다. 나는 전투천사 사스치엘이다! 대답이 없다면 방문을 수락한 것으로 알겠다!”

다시 포효한 사스치엘이 아예 한 걸음을 내디뎠다.

그러자 직후 화살이 날아와 천호와 사스치엘의 발치에 박혔다.

화살의 숫자는 둘.

서로 다른 방향에서 날아왔으니 상대는 최소 두 명 이상이었다.

목소리가 들려왔다.

“돌아가라.”

잔뜩 낮췄지만 미성이었다. 여인의 목소리가 분명했다.

사스치엘이 낮게 으르렁거렸다.

“다섯 여신을 모시는 천사를 내쫓을 셈인가?”

“천사라 해도 상관없다. 출입을 허락할 수 없다. 다음에는 경고로 끝나지 않을 것이다.”

단호한 목소리에 사스치엘이 얼굴을 굳혔다. 푸른 눈에서 미미하지만 노기가 느껴졌다.

[그대여, 나를 뽑아들어라. 나의 이름을 대면 통과시켜줄지도 모른다.]

다름 아닌 성검 미트라였으니까.

옳게 여긴 천호는 히트 대거를 뽑아든 뒤 앞으로 한걸음을 나섰다.

“성검 미트라입-”

말을 채 끝맺기도 전에 화살이 다시 날아왔다. 아까보다 조금 더 높고 경쾌한 목소리가 선 너머에서 들려왔다.

“뻥치지 마! 미트라는 장검이라고!”

[음.]

아무래도 미트라나 사스치엘의 이름으로 통과하기는 그른 것 같았다.

때문에 천호는 미트라를 허리춤에 꽂은 뒤 두 팔을 옆으로 벌렸다.

적의가 없다는 것을 몸으로 표하며 다시 한 걸음을 내디뎠다.

“포레스트 엘프들에게 큰 환란이 닥쳤습니다! 숲의 수호자이신 포레스트 드래곤님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천호의 외침에 답이 바로 돌아오지 않았다.

아무래도 약간이지만 망설이는 모양이었다.

“그래도 안 돼!”

“돌아가라!”

목소리 둘이 바로 연이어졌다.

하지만 여기서 정말 돌아갈 수는 없었다. 천호는 숨을 한 번 고른 뒤 기감을 퍼트렸다.

다시 숨을 토함과 동시에 발걸음을 내디뎠다.

“마지막 경고다!”

화살이 날아왔다. 아직까지는 맞힐 의사가 없는 화살이었다. 때문에 천호는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이제부터가 진짜였다.

그리고 그 순간 목소리의 주인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정말 마지막 경고다. 더 이상 다가오지 마라.”

낮고 침착한 목소리의 주인은 아무런 모양 없는 녹색 가면을 쓰고 있었다.

녹색 상의와 가죽 바지를 입고 있었는데, 등에 차고 있는 화살통과 허리춤의 단검들, 손에 쥔 큰 활 때문에 레인저보다는 사냥꾼이라는 인상이 강했다.

함께 나타난 경쾌한 목소리의 주인은 녹색 가면을 쓴 여인과 거의 동일한 차림새였지만 한 가지가 결정적으로 달랐다.

침착한 목소리의 주인은 흑발이었는데, 경쾌한 목소리의 주인은 연한 녹발이었다.

두 사람을 마주한 천호는 포커페이스를 유지했지만, 속으로는 무척이나 놀라고 있었다.

‘사람 크기다!’

정상적인 사람 크기였다.

가면 옆으로 길게 솟은 귀를 보아 요정족인게 분명했는데, 아리스가 말했던 용의 무녀- 쉐도우 엘프 자매인 모양이었다.

[그대여, 심장의 박동 수가 갑자기 높아진 것 같다.]

[무슨 문제라도 있는 것인가?]

“음.”

천호는 객관적인 시선으로 쉐도우 엘프 자매를 살폈다.

두 사람에게서 미미한 적의는 느껴질지언정, 살의는 느껴지지 않았다.

무언가 사정이 있어 방문을 허락하지 않는 것이지, 딱히 천호 자신과 사스치엘에게 악의를 가진 것 같진 않았다.

‘모습을 드러낸 것도 나름 성의를 표한 거 같고.’

정말로 공격하기는 싫으니 제발 물러가달라는 뜻에 가까웠다.

하지만 여기서 그냥 물러갈 수는 없었다.

천호는 쉐도우 엘프 자매- 그중에서도 흑발 엘프를 똑바로 마주한 채 한 걸음을 더 내디뎠다.

“정말 마지막 경고다.”

흑발 엘프의 활이 천호의 어깨를 조준했다. 녹발 엘프 역시 천호의 다리 쪽으로 화살을 겨냥했다.

역시 살의가 없었다.

천호는 숨을 삼켰고, 화살들이 그릴 궤적을 머릿속에 그렸다. 사실상 강제로 뚫고 들어가는 모양새였지만, 그렇다고 쉐도우 엘프 자매와 혈전을 벌일 수는 없었다.

‘파고들자.’

신속의 스칸다로 급속 접근해 녹발 엘프를 무력화시킨다.

어디까지나 감이었지만, 흑발 엘프 쪽이 언니인 느낌이었다.

성격도 좀 더 고지식할 것 같았고 말이다.

협상을 하기에는 고지식한 쪽보다는 융통성이 있는 쪽이 수월한 게 보통이었지만, 고지식함에도 종류가 있었다.

천호가 내공을 끌어올렸다.

두 자매의 화살 끝이 미미하게 떨렸고, 사스치엘은 날개를 크게 펼친 채 자매를 노려보았다.

그리고 바로 그 순간이었다.

천호를 겨냥하고 있던 두 자매가 돌연 움찔하고 몸을 떨었다.

두 사람 모두 당황한 기색이 역력했다.

“네, 예··· 알겠습니다. 그리하겠습니다.”

흑발 엘프가 아주 작게 중얼거리더니 천호를 겨누고 있던 활을 거두었다.

그녀는 약간 망설이는 듯 하더니, 이내 허리를 살짝 숙이며 천호에게 예를 표했다.

“숲의 수호자께서 고귀한 피를 이으신 분의 방문을 허락하신다 합니다.”

고귀한 피.

가면을 썼지만 흑발 엘프가 의아해하는 것이 느껴졌다.

녹발 엘프로부터 강한 호기심이 느껴졌다.

그리고 사실, 천호도 궁금했다.

천사조차 무시하던 두 사람을 움직이게 한 고귀한 피.

사스치엘이 눈을 껌벅이며 천호를 보았다.

미트라가 아주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그대여, 혹여 출생의 비밀이라도 있는 것인가?]

사실 천호도 잘 몰랐다.

지금 저들이 말하는 고귀한 피는 용사인 아버지의 피를 이야기하는 것이 아닐 테니까.

‘어머니.’

???의 아들.

천호가 발걸음을 내디뎠다.

&

< 제2장 - 2층 #5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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