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6화 (6/211)

< 제1장 - 1층 #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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약도를 따라 쥐구멍 앞에 도착한 루시엘은 눈을 깜박였다.

어째 대미궁에 들어온 이후 계속 눈만 깜박이는 것 같았지만, 어쩔 수 없었다.

“지금 뭐하시는 거예요?”

“불 피웁니다.”

쥐구멍은 말 그대로 쥐구멍이었지만, 평범한 쥐구멍보다는 훨씬 더 컸다.

직경 2미터쯤 될까. 새카만 구멍 너머로는 긴 터널이 이어졌는데, 아래로 이어져 있었다.

천호는 쥐구멍에 도착하자마자 근처에 돌아다니던 자이언트 렛들을 일소한 뒤 쥐구멍 앞에 불에 탈만한 잡다한 물건들을 쌓았다.

고블린들이 들고 다니던 조잡한 무기들, 잔해 더미에서 찾은 나무 조각 등등.

하지만 이 정도로는 장작이 부족했다.

‘씁, 어쩔 수 없지.’

천호는 하얗고 작은 고체 연료 하나를 장작더미들 사이에 밀어 넣은 뒤 컴뱃 나이프 뒤에 붙어 있는 부싯돌로 불을 붙였다.

불이 활활 잘도 타올랐다.

천호는 모닥불을 가만히 바라보다가 루시엘에게 손을 뻗으며 말했다.

“뒤로 물러나세요. 가능하면 입이랑 코도 가리고요. 조금이라도 마시면 위험하니까.”

설마 연기를 말하는 것일까?

의아했지만 루시엘은 일단 시킨 대로 했다.

“음.”

천호는 일단 심호흡을 짧게 했다. 사실 천호 자신도 진짜로 사용해보는 것은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앙카브라의 독.’

파이엔에 존재하는 괴물이라는데, 당연히 직접 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그냥 아버지께 효능만 들은 게 다였다.

식탁 안에 숨겨둔 건 한 알이 전부였지만, 모름지기 아꼈다 똥 되는 법이었다.

천호는 환약처럼 뭉쳐 있던 앙카브라의 독 한 알을 모닥불에 던져 넣었다. 그러자 모닥불의 연기가 순식간에 보라색이 되는 것이, 척 보기에도 위험했다.

“루시엘, 날갯짓! 날갯짓해요!”

“네? 아, 네!”

천호의 갑작스런 명령에 루시엘은 얼른 날갯짓을 시작했다.

과연 날개가 장식이 아닌지 금방 강한 바람이 불어 연기를 구멍 안으로 밀어 넣었다.

“계속해요. 가능한 조금 더 강하게!”

“자, 자꾸 밀려나서!”

날갯짓을 세게 하니 몸이 밀려나는 것이 당연했다.

천호는 급히 루시엘의 뒤로 돌아가 등을 돌리고 섰다. 서로 등을 맞대는 형태였다.

“이제 괜찮죠?”

“아, 으, 네!”

천호에게 등을 기댄 루시엘은 땀을 뻘뻘 흘려가며 열심히 날갯짓을 했다.

모닥불에서 피어오른 보라색 연기는 조금도 빠짐없이 쥐구멍 안으로 밀려들어갔고, 그렇게 몇 분이 지나자 효과가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빛의 창이 연속해서 떠올랐다.

쥐구멍 안의 자이언트 렛들이 떼죽음을 당하기 시작한 탓이었다.

“효과가 있어요! 효과가 있다고요!”

루시엘에게도 경험치가 들어갔을 테니까.

환희에 찬 루시엘의 목소리에 천호는 씩하고 웃었다.

“조금만 더 힘내요!”

“네!”

루시엘이 신나서 날갯짓을 계속했다.

쥐구멍의 자이언트 렛들을 소탕하는 것도 소탕하는 것이었지만, 도움이 되고 있다는 사실 자체에 신이 난 것 같았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헉헉······.”

루시엘이 날갯짓을 시작한지 30여분.

지칠 대로 지친 루시엘이 땀투성이가 되어 헐떡거렸고, 모닥불에서 피어오르던 보라색 연기도 이제는 무척이나 가늘게 변했다.

“이쯤 하죠.”

루시엘의 날갯짓을 멈추게 한 천호는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은 뒤 모닥불을 발로 차 불을 꺼버렸다.

몇 번 발로 짓밟기까지 해 불씨를 완전히 꺼트린 천호는 루시엘 쪽을 돌아보았다.

“하아··· 하아······.”

바닥에 털썩 주저앉은 루시엘이 다 죽어가는 얼굴로 겨우겨우 숨을 골랐다.

어째 미안한 마음이 든 천호는 루시엘에게 다가서며 물었다.

“괜찮아요?”

“괜찮··· 아요······ 후우, 진짜··· 괜찮··· 그냥··· 좀··· 쉬면··· 허억······.”

전혀 안 괜찮아 보였지만 애써 웃어 보인 루시엘은 계속해서 숨을 골랐다.

천호는 그런 루시엘에게 괜히 말을 더 붙이는 대신 쥐구멍 안쪽을 노려보았다.

앞으로 일어날 수 있는 경우의 수는 두 가지.

하나, 쥐구멍 안이 외길이다. 즉, 눈앞의 쥐구멍 말고는 다른 출구가 없는 밀폐된 공간이다.

둘, 다른 통로가 있어서 환기가 가능하다.

물론 환기가 가능하다 할지라도 일단 지하이니 연기가 쉬이 빠질 리는 없었다.

“음.”

그러니 남은 것은 준비를 하는 것뿐.

천호는 주머니에서 와이어를 꺼낸 뒤 다음 작업을 시작했다.

그리고 다시 5분여.

쥐구멍 안쪽에서 요란한 소리가 울렸다.

다급히 땅을 박차는 소리들이었다.

자이언트 렛 무리.

그나마 옅어진 연기를 뚫고 쥐구멍 밖으로 탈출하려는 놈들이었다.

“찍찍! 찍찍찍!”

바로 저기야! 조금만 더 힘을 내면 돼!

모두 같이 사는 거야!

너와 함께!

마치!

물론 쥐소리를 알아듣는 재주 따위 없었기에 그저 짐작일 뿐이었다.

“찌직?!”

첫 번째 놈이 괴성을 토했고, 다른 놈들도 연이어 비슷한 소리를 냈다.

가느다란 무언가에 진로가 막힌 탓이었다.

격자무늬로 쥐구멍을 막고 있는 와이어들.

촘촘하진 않았지만 대형견 크기인 자이언트 렛들이 통과할 수 있는 크기는 아니었다.

천호는 쥐구멍 앞에서 아우성치는 놈들을 향해 연달아 투척용 나이프를 던졌다.

“찌직! 찍!”

그렇잖아도 연기 때문에 쇠약해져 있던 자이언트 렛들이 줄줄이 죽어나갔다.

동시에 놈들의 시체로 입구가 막혔고, 뒤에 있던 자이언트 렛들은 독무로 가득 찬 쥐구멍 안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경험치가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단시간에 엄청난 숫자의 자이언트 렛들을 학살했습니다!]

[쥐 학살자 타이틀을 획득했습니다.]

[쥐 학살자 : 쥐 계열 몬스터들에게 가하는 공격이 1.1배 강해진다.]

두 번째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좋아하기에는 일렀다. 천호는 의식을 집중했다. 진동이 느껴졌다. 쥐떼가 쏟아져 나왔을 때와는 비교조차 되지 않는 거센 진동이었다.

“루시엘! 뒤로 물러나요!”

퍼뜩 놀란 루시엘이 서둘러 뒤로 물러섰다.

천호는 다시 쥐구멍을 보았다.

직경이 2미터는 족히 될 쥐구멍.

자이언트 렛들이 크다고는 하나 대형견 크기에 불과했다. 저렇게 거대한 쥐구멍은 필요하지 않았다.

그렇다면 어째서일까.

이유는 단순했다.

더 큰 무언가가 있다.

저 정도 쥐구멍을 필요로 하는 무언가가 존재한다!

바닥이 울렸다.

겹겹이 쌓인 자이언트 렛들의 시체가 찢어발겨졌다.

와이어를 거칠게 뜯어내며 그것이 모습을 드러냈다.

미치광이 크라울러.

괴물이었다.

머리는 쥐와 닮았지만 훨씬 더 흉악했다. 이마와 머리통에 뿔이 몇 개나 돋아 있었고, 입술을 비집고 나온 이빨이 칼처럼 날카로웠다.

바짝 엎드린 몸이 쥐구멍을 가득 채웠다. 아직 덜 나왔지만, 다 나와서 일어서면 머리 높이가 못해도 4~5미터는 될 게 분명했다.

루시엘이 비명을 삼켰다. 쥐구멍에서 머리를 내민 놈이 노란 눈동자를 굴려 천호를 보았다.

그리고 천호는 허벅지에 차고 있던 쿠크리를 휘둘렀다. 와이어를 끊어 미리 설치해둔 함정을 발동시켰다.

쿵!

렛 오거의 시신으로 고정해두었던 잔해더미가 놈의 머리를 수직으로 강타했다.

잔해가 박살이 났다. 동시에 놈의 다리 역시 풀렸다.

순간이지만 머리가 바닥에 닿았고, 놈의 움직임이 정지했다.

천호는 직감했다.

지금이 기회였다.

지금밖에 없었다.

뛰었다.

쿠크리를 바로 쥐고 도약했다. 놈이 풀린 눈을 한 채 고개를 든 그때 숨을 멈추었다.

시선이 교차했다.

놈의 노란 눈동자에 천호의 모습이 비쳤다.

쿠크리가 놈의 목에 박혔다. 살을 갈랐고, 뼈에 부딪혔다. 하지만 멈추지 않고 나아가야만 했다.

천호가 두 팔에 힘을 주었다.

렛 오거 슬레이어가 놈을 조금이지만 억제했다. 쥐 학살자가 공격력을 강화시켰다.

끊는다.

베어낸다.

잘라낸다!

쿵!

쿠크리의 칼날이 바닥에 닿았다.

약간의 시간차를 두고 거대한 살덩이가 철푸덕 소리와 함께 지면에 떨어졌다.

미치광이 크라울러의 머리.

다시 둔탁한 소리가 났다. 머리를 잃은 크라울러의 몸이 쓰러지면서 난 소리였다.

천호는 고개를 들었다. 긴장을 풀지 않은 채 크라울러의 머리를 노려보았고, 멀리서 루시엘이 가쁜 숨을 토했다.

그리고 다시 몇 초.

마침내 천호가 크라울러의 죽음을 확신한 순간.

[미치광이 크라울러를 쓰러트렸습니다!]

[1성 영웅 최초로 1층에서 네임드 몬스터를 쓰러트렸습니다.]

[경이로운 업적에 추가 보상이 주어집니다.]

[역병신이 자신의 사도를 쓰러트린 당신에게 격한 분노를 토합니다.]

[당신의 빛나는 업적을 미궁 세계가 기억합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습니다.]

[레벨이 올랐-]

천호는 숨을 토했다.

연속해서 떠오르는 빛의 창에서 잠시 눈을 돌린 뒤 루시엘 쪽을 돌아보았다.

“용사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난 루시엘이 천호를 향해 달려왔다. 아니, 거의 날아와 품에 안겼다.

최초의.

경이로운.

‘짜릿해, 늘 새로워. 1등이 최고야.’

아버지의 말씀.

이번에도 틀리지 않았다.

루시엘을 마주 안으며 천호는 살아있음을 실감했다.

그대로 눈을 감은 채 승리의 쾌감을 만끽했다.

&

< 제1장 - 1층 #5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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