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던전 브레이커-1화 (1/211)

< 프롤로그 >

프롤로그

어릴 때부터 검술과 체술을 배웠다.

좋아서 한 게 아니었다.

반 강제로 배운 쪽에 가까웠다.

사실 무술만이 아니었다. 사격, 생존술, 요리와 재봉을 비롯한 가사전반까지.

유치원 다니던 시절에만 해도 내가 이상하다는 걸 몰랐다.

초등학교 들어갈 무렵부터 내가, 정확히는 우리 부모님의 교육 방침이 특이하다는 걸 알게 되었다.

그리고 중학교 2학년이 되던 해, 나는 아버지께 물었다.

왜 이런 걸 가르치냐고.

딱히 따지듯이 물은 것도 아니었다. 하도 어릴 때부터 배워온 거라 나도 꽤 익숙했으니까. 그리고 사실 불만도 별로 없었다. 이런 이상한 걸 가르치기 때문인지 막상 학교 성적 같은 것에는 무심한 부모님이셨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든 내 물음에 아버지께서는 생각 이상으로 고민하시더니 무척이나 진지한 얼굴로 말씀하셨다.

“우리 집안엔 용사의 피가 흐른다.”

“마왕이 아니라요?”

아니, 이 사람이 진짜.

내 심드렁한 되물음에 아버지께서는 절레절레 고개를 가로저으시더니 여전히 진지한 얼굴로 답하셨다.

“마왕이 아니라 용사다. 사실 이 애비가 용사거든. 파이엔··· 그러니까 판타지 세계도 이미 한 번 구했고.”

“아, 그러셨구나.”

아무래도 제대로 대답할 마음이 없는 것 같았다.

그래서 나도 그냥 농담으로 넘기려 했지만, 어쩐지 그러기가 힘들었다. 아버지의 눈빛과 표정이 너무 진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난 아버지가 진짜 용사라는 가정 하에 한 가지 질문을 더 했다.

“근데 왜 돌아오셨어요? 세계 구했으면 거기서 왕처럼 사실 수도 있었을 텐데.”

요즘 소설이나 만화에 자주 나오듯이 세계 구한 뒤에 토사구팽이라도 당했다고 하시려나.

아버지께서 무슨 답을 내놓으실지 묘하게 기대가 되었다.

그리고 아버지는 늘 그랬듯이 내 기대 이상의 대답을 내놓으셨다.

“판타지에는 인터넷이랑 비데가 없더라고.”

뭐라고 해야 할까, 분명 병신 같은 소리인데 설득력이 넘친다고 해야 하나.

잠시 멍해 있던 난 고개를 몇 번 내저은 뒤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어, 음. 아무튼 이쯤 하죠. 뭐··· 이런 것들 가르치신 이유는 나중에 말씀해주셔도 되고요.”

“아들아. 농담하는 거 아니다. 너도 이상하지 않던? 내가 딱히 하는 일도 없는데 굉장히 잘 먹고 잘 사는 게?”

“그냥 금수저 아니었어요?”

“아니거든? 건너올 때 가져온 재산 팔아서 번 돈이거든? 엄연히 피땀 흘려 번 돈이거든? 그리고······.”

“그리고?”

“네 엄마도··· 솔직히 좀 비정상적으로 예쁘지 않냐?”

“아니, 뭐··· 그렇긴 한데.”

확실히 어머니가 좀 비정상적으로 예쁘시긴 했다. 나이도 안 먹는지 옆에 나란히 서 있으면 다들 모자관계가 아니라 누나 동생으로 보기도 했고.

“뭐, 그냥 능력 보여주는 게 제일 빠르겠지.”

그렇게 말씀하신 순간, 아버지의 기세가 바뀌었다.

무어라 표현해야 할지도 잘 알 수 없었다.

그냥 어느 순간 깨달았다.

이 일대 모두가 아버지의 지배하에 있다.

아버지는 절대 평범한 인간이 아니다.

등에서 식은땀이 흘렀다. 거짓말 조금 보태서 신을 마주하고 있는 기분이었다.

“본래 네 엄마랑 같이 이야기하려고 했는데··· 조금 일찍 이야기하게 되었다.”

아버지의 기세가 다시 평소처럼 돌아왔다.

저도 모르게 주저앉은 내게 손을 내미시며 아버지는 계속 말씀하셨다.

“한 달 뒤에··· 네 엄마랑 같이 네 엄마 고향에 돌아가야 할 일이 생겼다. 그쪽에 다시 문제가 생긴 모양이라서. 마왕 놈이 부활한 모양이다.”

“그, 그렇군요.”

이제는 아까처럼 마주 농담- 아니, 반박할 마음도 들지 않았다.

아버지는 그런 내 모습에 피식 웃으셨다.

“최대한 빨리 돌아오마. 그래도 좀 늦어질 수도 있으니··· 그 동안 수련 빼먹지 말고 열심히 해라. 다 나중에 피가 되고 살이 될 테니. 너도 언제 나처럼 용사라면서 다른 세계에 납치될지 모르잖냐.”

“으음.”

뭔가 묘하게 땡기면서도 거부감이 드는 이야기였다.

그나저나 용사의 피라니.

그럼 돌아가신 할아버지도 용사셨다는 걸까? 아니면 그냥 아버지만 용사이신 건가.

내가 중2다운 망상에 빠져들려던 그때 아버지의 커다란 손이 내 머리 위에 올라왔다. 반사적으로 올려다보니 씩 웃으시는 아버지의 얼굴이 보였다.

“다녀오마.”

“다녀오세요.”

그로부터 4년 후.

아버지의 말씀은 현실이 되었다.

< 프롤로그 > 끝

ⓒ 취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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