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폭주의 끝 > (198/200)

< 폭주의 끝 >

뉴욕 양키스 덕아웃의 분위기는 참담했다.

월드시리즈에서의 패배? 충분히 예상할 수 있는 일이었다.

이번 시즌 신시내티 레즈는 팀의 완성도를 떠나 무시무시한 공격력만으로도 최강을 자부할 수 있는 강력한 팀이었고, 정규시즌 승률이 조금 앞선다 해서 유리한 상황이 절대 아니었으니까.

신시내티 레즈가 젊은 팀이기에 허점이 있었고, 경험 많은 뉴욕 양키스가 정규시즌엔 조금 덜 흔들리면서 이겨야만 하는 경기들을 조금 더 수월하게 잡아내 승률에선 앞설 수 있었다.

하지만 팀의 최고점은 레즈가 훨씬 높았고, 포스트시즌에 들어선 이후 경험이 쌓이고 계속된 성공으로 기세를 끌어올린 레즈는 양키스에게 버거운 적이었다.

그나마 오늘 승리했다면 신시내티 레즈의 젊음을 공략해 일발역전을 노려볼 수 있었겠지만...

그것마저 영도의 원맨쇼에 좌절되어버렸다.

제이미 리의 역투 역시 계산 밖에서 날아온 치명타였다.

‘끝인가...’

그러니 월드시리즈 우승을 내준다는 것 자체는 안타깝긴 해도 받아들이기 어려운 결과는 아니었다.

지금 뉴욕 양키스 덕아웃 분위기가 참담한 것은 우승을 내줬다는 이유 때문은 아니란 것이었다.

뉴욕 양키스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치열한 라이벌리를 구성하고 있지만, 구단의 역사와 의미, 가치를 보면 대항마를 꼽을 수조차 없는 독보적인 구단이었다.

월드시리즈 우승 횟수 2, 3, 4위를 더해야만 붙어라도 볼 수 있는 독보적 우승 횟수.

‘악의 제국’이라는 별칭에서 느껴지는 절대적인 존재감.

그런 양키스에게 월드시리즈 스윕은 아무리 전력 차가 있어도 쉽게 받아들일 수 없는 굴욕이었다.

언제나 유쾌하고 사람 좋은, 유머를 잃지 않는 마이클 키니마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마이클 키니는 그토록 자랑스러운, 너무나도 자랑스러워 야구인생 최고의 성과이자 전부가 된 뉴욕 양키스의 캡틴으로서.

뉴욕 양키스 역사상 세 번째 월드시리즈 스윕 패배를 용납할 수 없었다.

마치 자신의 탓만 같았으니까.

그게 키니가 캡틴으로서 점차 힘이 빠져버린 이유였다.

[1976시즌, 신시내티 레즈가 메이저리그 최초의 포스트시즌 전승 우승을 완성했을 때, 월드시리즈 상대는 뉴욕 양키스였습니다. 2042시즌, 또 신시내티 레즈가 또 한 번 포스트시즌 전승 우승을 눈앞에 둔 순간, 월드시리즈 상대는 또 한 번 뉴욕 양키스입니다.]

[참... 이게 이렇게 되네요. 뉴욕 양키스로서는 참 안타깝겠어요. 분명히 강한 팀이고 좋은 팀인데...]

9회 말, 신시내티 레즈는 클로저 제프 칸을 올렸고, 뉴욕 양키스는 9번 타자 제러드 매리언부터 비장한 마음으로 타석에 들어섰다.

하지만 대타 제러드 매리언은 제프 칸에게 너무 쉽게 물러났고, 이후 등장판 마이클 키니 역시 이렇다 할 힘을 쓰지 못했다.

키니는 이후 덕아웃으로 돌아가 고개를 푹 숙인 채 그라운드를 바라보지 못했다.

아담 소아즈가 뒤늦게 안타를 때려냈고, 양키스를 상징하는 거포, 제리 페이지에게 홈런 한 방으로 경기를 원점으로 돌릴 기회가 주어졌지만...

[아!! 3루수 라인드라이브!! 잘 맞은 라인드라이브가 Y-DO 정면으로 향합니다! 이걸로 끝! 경기 끝났습니다! 신시내티 레즈가 메이저리그 역사상 두 번째이자 프랜차이즈 역사상 두 번째 포스트시즌 전승 우승의 위업을 달성합니다!!]

[신시내티 레즈! 이 팀은 최근 수십 년 동안 전형적인 중소마켓 팀, 그것도 아주 가끔 다크호스 정도는 되었지만, 그 이상으로는 올라서지 못했던 평범 이하의 중소마켓 팀이었거든요! 하지만 신시내티 레즈는 신시내티 레즈네요! ‘빅 레드 머신’이라는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전성기를 달렸던 레즈가 또 한 번 ‘레드 머신즈’를 앞세워 완벽한 한 시즌을 완성합니다!]

[대중에게 기억되는 건 순간이다! 야구와 메이저리그, 구단의 기나긴 역사에서 한 시즌은 순간이라고 표현할 수 있을 겁니다. 그런 의미에서 신시내티 레즈의 이번 시즌은 완벽한 순간이었습니다.]

[Y-DO도 참 대단하네요. 두 시즌 연속 월드시리즈 우승, 두 시즌 동안 포스트시즌에서 26경기를 치러 23승 3패. 포스트시즌 통산 24홈런으로 데릭 지터, 버니 윌리엄스를 제치고 매니 라미레즈에 이어 2위! 월드시리즈 통산 12홈런으로 18홈런의 미키 맨틀, 15홈런의 베이브 루스에 이어 요기 베라와 함께 공동 3위!! 이 얼마나 압도적인 클러치 플레이어인가요!?]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파크를 가득 메운, 관중석을 넘어 경기장 바깥까지 꽉 채우고 주변 펍과 식당들까지 메워버린 신시내티 레즈의 팬들은 일제히 그라운드 근처로 몰려들었다.

구단도 팬들의 마음을 이해했기에 안전요원들 또한 안전에만 유의하면서 내야 펜스에 붙어 열광하는 팬들을 적극적으로 제지하지 않았다.

선수단과 팬들이 같은 감정을 공유하며 완벽한 시즌의 마무리를 만끽하는 상황.

2042시즌의 신시내티 레즈는 구단 최전성기였던 1976시즌, ‘빅 레드 머신’ 시대를 떠올리게 하는, 그리고 잠시나마 잊게 하는 ‘레드 머신즈’의 시대를 완성했다.

비록 절대적인 지분을 차지했던 영도가 팀을 떠날 것이 거의 확실한 상황이라 말 그대로 짧고 굵은 임팩트와 함께 해체되겠지만...

신시내티 레즈와 같은 중소마켓에겐, 그 팬들에겐 더 바랄 게 없는 완벽한 마무리였다.

***

[신시내티 레즈, 52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 팀의 모든 것을 걸고 올인한 전략의 승리!]

[매 시즌 우승후보면 뭐하나... 레즈와 다저스로 보는 월드시리즈 우승 방정식]

[52년 만의 월드시리즈 우승을 52년 만의 포스트시즌 전승 우승으로 장식한 신시내티 레즈. 뒤가 없었던 위험한 투자는 이보다 더 완벽할 수 없는, 이견의 여지조차 없는 완벽한 성공으로 돌아왔다]

[Y-DO, YG, 반... 신시내티 레즈의 월드시리즈 우승에 빼놓을 수 없는 한국인들... 신시내티, 한국에 감사를 표하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초의 2년 연속 윌리 메이스 상 수상자, Y-DO. 샌디 쿠팩스, 밥 깁슨, 레지 잭슨과 함께 윌리 메이스 상 최다 수상자 자리에...]

- Y-DO의 위력이 그대로 드러난 시즌이었다. 정규시즌부터 포스트시즌까지 단 한 번도 Y-DO가 빛나지 않은 적이 없었음

- Y-DO만 데리고 있으면 뭐가 되어도 된다는 인식이 생길 것 같아 불안하긴 하네. 다른 것 다 포기하고 Y-DO 영입에만 목메는 팀들이 꽤 많이 나올 듯.

- 하필이면 이번 시즌 끝나면 FA잖아? 당장 이번 시즌 끝나고 가관이겠는데?

- 77홈런, 포스트시즌 11홈런, 두 시즌 동안 정규시즌 141홈런, 포스트시즌 24홈런... 내가 지금 뭘 쓰고 있는 건지 모르겠다

- 메이저리그 데뷔 이후 지난 시즌 전까지 5년, 한국에서의 한 시즌까지 한 6년 동안 헤매기만 한 것 같은데 돌아와서 2년 지나니까 통산 226홈런이 되어있음.

- 유망주 시절부터 수많은 전문가들, 에이스 팬들까지도 메이저리그 역사를 바꿀 재능이라고 막 떠들었잖아? 하도 그래서 오히려 조롱거리가 된 느낌도 있었는데 알고 보니 진짜였네... 6년을 헤매고 돌아와 2년 만에 226홈런이라니...

- Y-DO는 내가 볼 때 앞으로 한 10년은 평균 50홈런 때릴 것 같음. 지금부터 새로 시작해도 은퇴 전에 통산 500홈런 넘기지 않을까?

- 말도 안 되는 소리인데 왜 이해가 되는 걸까...

- 배리 본즈 762홈런에 도전할 유일한 선수가 있다면 Y-DO겠지. 이번 시즌이 고작 26세 시즌이기도 했고...

- Y-DO의 피지컬을 봤을 때 아마 40세 근처까지는 기량을 유지할 수 있을 것 같음. 그럼 762홈런도 충분히 도전할 수 있지.

- 니네 왜 다들 Y-DO 이야기밖에 안 하냐!! 신시내티 레즈가 우승했다고!! 신시내티 레즈의 우승을 찬양해라, 무지한 것들아!

- 으하하하, 그렇지! 신시내티 레즈! 전통과 역사의 신시내티 레즈가 월드시리즈를 먹었다, 이거야!

- 뭐... 센시오 리코도 좋았고, YG, 파체코도 좋았지만... 솔직히 그냥 Y-DO를 찬양하면 끝나는 팀 아닌가. 너무 원맨팀이었지.

- 솔직히 원맨팀이었다는 걸 부정할 순 없지만... 우리 레즈가 아니라 그 어떤 팀도 Y-DO를 데려갔을 때 원맨팀이 되지 않을 수 없을걸? 이번 시즌 리코를 봐. 메이저리그 전체에서 Y-DO만 빼면 가장 뛰어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 타자였는데 Y-DO한테 바로 묻혔잖아. 이건 Y-DO가 너무 뛰어났던 거지, 팀이나 선수들한테 뭐라 하는 건 잔인해.

- 이건 인정할 수밖에 없네. 다음 시즌에 보자고. FA로 Y-DO 데려간 팀은 이제 계약 기간 내내 원맨팀 소리 지겹게 들을 거임.

[2042시즌 내셔널리그 MVP!! 아마 모두가 예상하셨겠죠? 다들 예상했듯, 다른 답이 없는 절대적인 MVP! 가장 압도적이었던 강렬한 선수! 이 시대 최고의 선수, 신시내티 레즈의 Y-DO, Absolute-Zero!! Y-DO, Youngdo Yoo!!]

<2042시즌 내셔널리그 MVP Youngdo Yoo>

영도의 얼굴 아래로 멋지게 깔리는 자막.

모두가 예상했듯 2042시즌 내셔널리그 MVP는 영도의 차지였다.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에 가까운 MVP 2연패.

77홈런이라는 한 시즌 최다 홈런 신기록과 포스트시즌에서의 엄청난 활약, 그리고 미래에 대한 기대감으로 이미 26세에, 제대로 포텐셜이 터지고 두 시즌 만에 명예의 전당 예약자처럼 취급되는 상황.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새로 쓰고 싶다는 영도의 새로운 목표는 아주 이른 시점부터 조금씩 실체가 보이기 시작했다.

[2년 연속 MVP 수상입니다. 메이저리그 복귀 이후 2년 연속 MVP. 그것도 그냥 MVP도 아니고 베이브 루스의 WAR TOP 3 기록에 역사상 최초로 끼어들면서까지 가져온 MVP! 아무래도 이번 시즌의 감상은 또 다를 것 같은데, 지금 기분이 어떠십니까?]

“완벽에 가까운 시즌이었죠. 완벽하다고 말하고 싶진 않습니다. 말씀하신 것처럼 아직 복귀 후 두 번째 시즌이었고, 나에겐 아직 포텐셜이 남아있다고 생각하니까. 하지만 일반적으로 완벽에 가까운 시즌이었다는 것까지 부정하고 싶진 않습니다. 개인적으로는 물론 팀으로서도 마찬가지였죠.”

[Y-DO의 2042시즌을 말하면서 이걸 말하지 않을 순 없겠죠. 77홈런! 배리 본즈의 73홈런 기록을 훌쩍 뛰어넘은 신기록입니다. 정규시즌부터 월드시리즈까지 너무 완벽한 시즌을 보냈는데, 다음 시즌에 대한 부담감은 없으십니까?]

“부담감은 없습니다. 언제나 그래 왔던 것처럼 매 시즌, 매 순간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77홈런도 그 과정이 있었기에 나올 수 있었던 것이라 믿고 그런 태도를 유지하려 합니다.”

이번 시즌을 끝내고, 주변의 모두의 충고가 드디어 먹혔다.

영도에겐 여유가 생겼고, 확고한 자신감이 쌓였다.

하지만 그게 영도의 애티튜드에까지 변화를 일으키진 않았다.

여전히 하루하루, 매 경기, 매 순간 야구에 집중하고, 그게 전부인 야구 바보.

이것저것 엄청난 변화를 겪었고, 그게 당연한 꽉 찬 2년을 보냈지만, 적어도 영도의 근본은 변하지 않았다.

[다음 시즌, 그리고 앞으로의 각오 한 마디 부탁합니다.]

“지금 말한 것처럼 기본을 지켜가겠습니다. 그리고 앞으로 오래도록 기억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욕심이 생겼습니다. 개인 기록이든 우승 기록이든... 가능한 한 반짝반짝 빛나고 싶어졌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드립니다.”

< 폭주의 끝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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