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 결정적 순간 > (197/200)

< 결정적 순간 >

[경기 막판으로 향해가는 6회에 100마일을 찍었습니다. 에디 카날레스, 100마일의 강력한 패스트볼로 레온 퀸타나를 돌려세웁니다! 2루의 센시오 리코는 홈으로 돌아오지 못했습니다.]

[오늘 점수는 무조건 홈런으로만 나오네요. 두 팀 모두 2개씩 홈런을 기록했는데 점수는 2:2. 양 팀 도합 4개의 홈런으로 나올 수 있는 최소한의 점수죠?]

[신시내티 레즈의 강력한 타선이 드디어 기회를 잡는가 했는데, 카날레스를 무너뜨리기엔 역부족이었습니다. 아직은 Y-DO 홀로 팀의 모든 점수를 담당하고 있습니다.]

[사실, 카날레스니까 그럴 수 있다 칠 수 있죠. 오히려 제이미 리를 무너뜨리지 못하는 양키스 쪽이 문제예요. 레즈는 오늘 만에 하나 패배한다 해도 내일도 홈 경기고 포스트시즌 전승 우승에 실패하는 것, 그게 전부거든요? 그런데 오늘 경기가 계속 이렇게 이어지면 양키스는 불펜도 총동원해야 할 테고 그러면 내일 경기가 또 위험해져요.]

절대 여기서 끝나선 안 된다는, 자신의 등판한 경기에서 팀이 패배하고 월드시리즈 우승이 좌절되어선 안 된다는 메이저리그 슈퍼 에이스의 집념은 엄청났다.

영도의 홈런 이후 리코의 2루타가 연달아 나왔지만, 이번에는 1차전과 달랐다.

한 번 한숨을 크게 내쉬더니 100마일 패스트볼로 5번 타자 레온 퀸타나를 제압, 추가 실점 없이 6회를 끝낸 것.

[포스트시즌 전승을 기록 중인 신시내티 레즈! 다들 이 팀의 압도적인 공격력에만 집중하지만, 사실 마운드의 힘이 없었다면 여기까지 오는 것도 불가능했을 겁니다. 에이스 YG와 카를로스 사뇰, 토드 칸터는 말할 것도 없고 정규시즌엔 비교적 주목을 받지 못했던 4선발 제이미 리마저 포스트시즌 두 번째 등판인데 두 번 모두 엄청난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제이미 리가 레즈니까 4선발이지, 어지간한 강팀에서도 3선발은 충분한 선수죠. 중하위권 팀에선 2선발까지도 맡아줄 수 있는 투수고.]

[돈 라이스를 잡아내더니 이번엔 에디 카날레스와 치열한 맞대결을 펼치고 있습니다. 77마일 체인지업으로 삼진! 제리 페이지도 꼼짝 못 하고 당합니다! 포심보다 15마일 이상 느린 두 번째 체인지업! 본인의 트레이드마크로 제리 페이지를 잡아냅니다!]

[다시 한 번 말씀드리지만, 에이스와 4선발의 맞대결이에요! 4선발에게 4회까지 2점을 뽑아내고도 이후 3이닝을 무실점으로 묶인다? 7회 초 공격까지 끝났는데 2-2 동점이다? 이건 동점이 아니죠! 양키스가 기분이 아주 나쁜 상황이에요!]

하지만 포스트시즌 첫 패배를 자신의 등판 경기에서 기록할 수 없다는 4선발의 집념도 만만치 않았다.

지난 시즌까지만 해도 사뇰, 칸터와 함께 묶이며 2선발급 3인방으로 자주 묶였던 리는 이번 시즌 유형근이 등장해 평범한 에이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관심에서 살짝 멀어진 상태였다.

초반만 해도 2선발급 4인방이라는 독특한 형태 때문에 그래도 자주 언급되었지만, 유형근이 에이스, 사뇰이 2선발에 칸터가 차기 에이스 유망주라는, 평범하지만 왕도에 가까운 포지션이 잡히면서 4선발 제이미 리의 자리가 사라진 것.

이번 시즌을 끝으로 2년 28M의 계약이 끝나는 제이미 리로선 포스트시즌에라도 확실한 임팩트를 남겨야만 했다.

긍정적인 임팩트를 남겨도 부족할 판에 포스트시즌 전승 중인 팀에게 첫 패배를, 그것도 전승 우승 직전에 첫 패배를 안긴다?

그건 FA로이드의 이름으로 용서할 수 없었다.

[어쨌든 월드시리즈 4차전이 되어서야 월드시리즈다운 팽팽한 명경기가 나오는 느낌입니다. 지난 1, 2, 3차전은 아무래도 레즈가 시작부터 끝까지 앞서나간 느낌이 있지 않습니까?]

[양키스도 분명히 힘이 있는 팀인데 너무 원사이드하긴 했죠. 사실, 홈런이라는 게 그렇잖아요? 홈런 한 방으로 분위기가 확 끓어올라서 팀 전체가 전력 이상의 힘을 보여주고, 그런 게 홈런의 매력인데... Y-DO와 리코. 이 두 선수를 보유한 데다가 기본 전력마저 한 수 위라는 평가를 받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일 수 있죠. 로키스와 다저스도 한 경기도 못 이기고 털릴 만큼 전력이 약한 팀은 아니잖아요?]

[두 선수가 그렇게까지 해줬는데도 마지막 4차전이 이렇게 흘러가는 걸 보면 포스트시즌 전승이라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느껴집니다.]

[양키스는... 오늘 이긴다 하더라도 기분이 좋진 않을 거예요. 유일하게 우세를 점할 수 있는 경기가 에디 카날레스 선발 경기인데 앞으로 세 번을 더 이기려면 오늘 분위기를 확 가져왔어야 하거든요? 그런데 7회 초까지 2-2의 팽팽한 경기. 이건 쉽지 않죠.]

그냥 이기기만 하는 걸로는 부족하고 압도적으로 이겨야만 했던 뉴욕 양키스.

그런 양키스에게 영도의 첫 홈런이 나온 4회 말 이후의 경기 흐름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마이클 키니와 제리 페이지가 홈런을 때려주고 에디 카날레스가 마운드 위에서 호투를 펼쳐주던 완벽한 그림이 그때부터 무너졌기 때문이었다.

이대로라면 승리한다 하더라도 월드시리즈 전체로 봤을 때 성공이라 말할 수 없는 상황.

하지만 그렇다 하더라도 일단 이 경기에선 무조건 이기고 봐야 했다.

당연히 그럴 것이 0-4 스윕은 일단 피하고 봐야 했고, 시리즈가 완전히 끝나는 그 순간까지 포기할 순 없는 노릇이니까.

[자, 에디 카날레스는 96구에서 7회 말까지 끝냈습니다. 그리고 신시내티 레즈의 제이미 리는 7이닝 동안 113개의 공을 던져 2실점, 그리고 마운드를 내려갔습니다.]

[레즈의 반이 올라왔죠? 이번 시즌 초반에는 살짝 헤맸지만, 초중반부터 확 살아나서 좋은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어요. 레즈의 불펜이 리그 13위로 평균 수준에 불과하지만, 반과 칸, 두 투수는 무조건 믿을 수 있죠.]

[제이미 리가 7회까지 맡아준 게 결정적이었습니다. 상대적으로 불안한 불펜에게 8회와 9회는 믿고 맡길 수 있지 않습니까?]

[그러니까요. 이번 월드시리즈에서 양키스가 고전하는 건 레즈의 선발투수를 무너뜨리지 못해서 그래요. 레즈의 불펜을 전면으로 끌어냈다면 못해도 1승은 챙겼을걸요?]

영도와 유형근이 워낙 반짝반짝 빛이 나서 그렇지, 반성훈 역시 신시내티 레즈에서 대체 불가능한 입지를 구축하고 있었다.

물론, 메이저리그의 불펜이라는 게 클로저를 제외하면 그리 가치가 높다고 말할 순 없지만, 그래도 프라이머리 셋업맨 정도 되면 클로저 다음 가는 귀한 몸이었다.

방어율 2.91, FIP 3.04, 21홀드 3세이브.

1+1년 보장 금액 7.5M, 최대 10M에 계약했다는 걸 감안하면 대성공이라 해도 이상하지 않은 성적이었다.

아주 뛰어난 성적은 아니지만, 선발 마운드, 타선에 비해 많이 떨어지는 불펜에서 클로저 제프 칸과 함께 유이하게 보조를 맞출 수 있는 투수.

반성훈의 가치는 그걸로도 충분했다.

레즈가 마음먹고 꾸린 선발진과 타선은 불펜에서 두 선수 정도만 도와줘도 충분히 월드시리즈 우승을 가져올 수 있었으니까.

[아... 여기서 또 삼진! 중요한 순간마다 삼진으로 물러나는 양키스 타선! 카를로스 쿠야테의 2루타, 빌 와튼의 볼넷으로 가까스로 잡은 1, 2루의 찬스가 또 한 번 무산됩니다!]

[아... 양키스, 이러면 정말 힘들어지거든요? 레즈의 8회 말 공격은 1번 타자 아즈라엘 알파로부터 시작해 레드 머신즈로 이어지는데 1, 2루 찬스를 놓치다니... 찬스 뒤에는 위기라는 말이 있잖아요!]

“으하하, 형 제대로 욕먹을 뻔했는데? 다신 신시내티 못 올 뻔했어?”

“... 말도 마라. 2루타에 볼넷까지... 내가 한국시리즈도 많이 뛰어봤지만, 이렇게 긴장한 건 처음이야. 그땐 우리 매지션즈 팬들만 신경 썼는데, 지금은 뭐... 한국팬 전체한테 욕먹을 뻔했으니...”

“한국 팬만? 아니지. 우리 영도 형이 또 한 번의 대기록을 쓰기 직전인데 한국 팬들만 욕했겠어? 여기서 전승 우승 실패했으면 1억 명의 영도 형 팬들이 형 SNS를 점령했을걸.”

“아... 맞다... 나 영도랑 같은 팀이지? 아이돌 팬덤 무서워하는 예능인들이 어떤 마음이었을지 이제야 알겠네.”

믿고 내보냈더니 2루타와 볼넷을 한 개씩 허용하며 가까스로 무실점으로 이닝을 마친 반성훈은 한숨을 크게 몰아쉬며 덕아웃으로 돌아왔다.

그래도 무실점으로 끝냈으니 멋쩍게라도 웃을 수 있었지, 1점이라도 내줬으면 울면서 돌아왔을 테고, 경기 후에도 전세계적으로 쏟아지는 비난에 SNS를 닫고 잠적을 선택해야 했을 수도 있었던 위기였다.

어쨌거나 반성훈은 자신에게 맡겨진 8회를 무실점으로 마무리했고, 동점 상황에서 레즈의 8회 말 공격으로 연결해주었다.

1번 타자 아즈라엘 알파로부터 레드 머신즈로 이어지는 절호의 찬스.

신시내티 레즈로선 여기서 점수를 내면서 앞서나가 다음 9회 초에 경기를 끝내는 게 베스트 시나리오였다.

[뉴욕 양키스는 에디 카날레스를 한 번 더 끌고 갑니다. 아직 투구 수가 100개도 넘지 않았으니 한 번 더 맡기는 것 같습니다.]

[이게 참... LA 다저스가 아주 많이, 매 시즌 보여주는 모습과 아주 비슷한데요... 에이스에게 너무 심하게 의지하다가 결국 힘이 떨어진 에이스가 무너지면서 팀 전체가 무너지는, 그런 그림이거든요, 지금?]

[아! 일단 선두타자가 안타로 출루합니다! 아즈라엘 알파로의 중견수 앞 안타! 이러면 Y-DO 앞에 무조건 주자가 생기는 겁니다!]

[이러면 알파로는 절대 2루로 안 달리죠! Y-DO를 거를 수 없게 1루에 딱 버티고 있을 거예요!]

‘좋아, 주자 나갔어.’

오늘 연타석 홈런을 때려내긴 했지만, 영도에게도 주자가 있는 게 훨씬 편했다.

정규시즌 159개의 안타 중 홈런이 거의 절반 수준에 달하는 압도적인 장타자였지만, 그래도 주자가 있을 땐 꼭 홈런이 아니어도 타점을 올릴 수 있었으니까.

이런 당연한 일을 설명까지 해야 한다는 것만으로도 이번 시즌 영도의 활약이 얼마나 말이 안 되는지를 알 수 있었다.

[이렇게 주자가 나가면 레즈는 편해집니다. 파체코는 스윙에서부터 더블 플레이만 면하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입니다! 걸리면 타점, 아웃되더라도 혼자 죽겠다는 의도가 뻔히 보이는 홈런 스윙!]

[크게 퍼올리는 스윙, 너무 높게 떴네요. 하지만 혼자 죽을 것 같죠?]

알파로는 1루에서 한 발자국 이상 떨어지지 않으면서 2루로 달릴 의지조차 없다는 걸 보여주었다.

파체코도 어퍼 스윙으로 일관하면서 장타로 타점을 올리거나 실패해도 혼자 죽겠다는 강한 의지를 내비쳤고.

결과적으로 높게 뜬 외야 플라이로 물러났지만, 혼자 죽으면서 1아웃 1루, 거를 수 없는 상황에서 영도에게 기회를 넘겨주었다.

‘안 바꾼다고? 내 타석인데?’

언제나 도전자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타석에 들어서는 영도지만, 아무리 그래도 사람인 이상, 성과를 낸 이상 변화가 아예 없을 순 없었다.

77홈런 타자, 메이저리그의 역사를 바꾸는 타자로서의 프라이드는 분명 있었다.

그런데 아무리 에디 카날레스라 해도 연타석 홈런을 얻어맞고 투구 수도 110개를 향해 가는 데다가 2-2로 치열한 승부가 이어지는 상황에서...

오늘 패배하면 월드시리즈가 끝나버리는 상황에서 투수를 안 바꾼다고?

‘뉴욕 양키스가 이 정도로 불펜이 약한 팀은 아닐 텐데.’

영도를 상대할 투수는 카날레스밖에 없다.

그렇게 생각하는 건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하지만 그럴 때일수록 감정을 억누르고 냉정한 판단을 내려야 했다.

영도는 이미 카날레스에게 연타석 홈런을 때려냈고, 1차전에서도 홈런을 때려냈다.

이번 시리즈에서 카날레스를 만나 절반의 타석에서 홈런을 때려낸 상황.

심지어 여기서 영도를 거르면 스코어링 포지션에 주자가 나가게 되고 거른다 해도 50홈런 타자, 포스트시즌에 영도 못지않게 타격감이 좋은 리코를 만나는 상황.

여기선 아무리 카날레스가 대단한 투수라 할지라도 교체해주는 쪽이 조금 더 설득력 있는 선택이었다.

다저스의 계속된 실패를 보는 듯한 결정.

그냥 다저스가 저주받은 것이냐, 아니면 선택이 잘못되었기에 당연히 실패한 것이냐...

[아... 역시 여기서 Y-DO가 또! Y-DO가 또 결정적인 한 방을!! 너무나도 결정적인 투런 홈런! 이건 정말 결정적입니다!!]

[이건 정말 너무 크죠! 2-2로 팽팽하던 경기가 단번에 2점 차로 기우는 한 방인데요! 양키스에게 남은 기회는 9회 초, 단 한 번밖에 없어요!!]

다저스는 워낙 오랫동안 실패를 반복하고 있으니 아마 저주라고 말해도 이상하지 않을 만한 심리적인 문제가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들은 꾸준히 잘못된 선택을 해왔다는 것 역시 증명되었다.

에이스에 대한 지나친 의존.

몇 번은 성공할 수도 있겠지만, 대체적으로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슈퍼 에이스를 데리고 있지만, 뒤를 받치는 선발진과 불펜, 타선까지 강력해 뛰어난 밸런스로, 어느 하나에 의존하지 않고 리그 승률 1위와 월드시리즈 진출을 이뤄냈던 뉴욕 양키스.

그들답지 않았던 선택은 결국 잘못된 선택이었음이 드러났다.

신시내티 레즈 4 : 2 뉴욕 양키스.

< 결정적 순간 >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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